105화. 주선 ― 만나고 싶어 (1)
회의가 끝이 났다.
하지만 맹주 추자후에 대한 의심만 거뒀을 뿐, 해결된 건 아무런 것도 없었다.
반맹주파 측에서 자신들 또한 거짓 증언에 속았다는 식으로 나온 건 당연했고, 오히려 이번 일에 대해 자신들 또한 조사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거짓 증언이 반맹주파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증거가 없는 이상 이번 일은 시간이 지나며 유야무야 넘어갈 공산이 커 보였다.
우선적으로 오늘의 회의는 끝났지만 무림맹에 모인 이들은 당장에 이곳을 떠나지는 않았다.
이틀 후에 다시금 회의가 잡힌 탓이다.
그리고 그 회의의 안건은 바로 천무진이 쫓아 왔다는 정체불명의 세력에 관한 것이었다.
맹주로 복귀한 추자후는 권한을 돌려받는 것으로 일단락됐고, 별동대 생존자들의 치료 또한 필요했기에 일차적으로 오늘의 자리를 파한 것이다.
천무진 또한 당장에 이곳에서 할 일은 없었기에 우선적으로 백아린과 동행한 채로 회의장을 걸어 나왔다.
걷는 내내 사람들의 시선이 천무진에게 쏠리는 건 당연했다.
허나 이건 이미 자신이 정체를 드러내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예상했던 바다.
사실 이번에 천무진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건 비단 무림맹주를 지켜 주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예전 반조를 만난 이후부터 더는 자신이 정체를 감추는 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해 왔기 때문이다.
이미 그들은 자신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다.
심지어 두 번째 삶을 언급한 일은 아직까지도 풀지 못한 의문이었다.
거기다 별동대의 임무까지 끝이 났으니, 이제는 정체를 감추고 움직이는 것보다 드러내고 활동하는 쪽으로 계획을 바꿨다.
상황이 이 정도 와 버리니 오히려 그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회의실이 자리하고 있던 장원을 나서자 그곳에는 한천이 그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바깥으로 나온 두 사람을 향해 다가서며 물었다.
"일은 잘 끝나셨습니까, 대장."
"응, 마무리하고 왔어. 그 녀석은?"
"여기 들어오기는 좀 뭐하지 않습니까. 거처에 가서 자고 있겠답니다."
사파의 인물인 단엽이 무림맹에 멋대로 드나들 순 없었기에 먼저 거처로 가서 쉬고 있는 모양이었다.
백아린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때 뒤편에서 누군가가 빠르게 다가왔다. 보이지 않는 쪽에서 접근하고 있거늘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그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특유의 악취를 풍기는 인물.
거지들의 왕인 장량이었다.
그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여기들 계셨군요."
앞장서서 걸어 나왔던 천무진과 백아린이 동시에 몸을 돌려 말을 걸어오는 장량을 응시했다.
장량이 능글맞은 미소와 함께 포권을 취해 보였다.
짧은 인사를 건넨 그가 이내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한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여기 계신 이분은 누굽니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묻자 백아린이 대신 대답했다.
"이쪽은 제 부관이에요."
"아……."
상대가 천룡성이 아닌 적화신루와 관련된 이라는 걸 안 장량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그를 향해 천무진이 물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아, 네 조금 있지요. 그런데 제가 용건이 있는 쪽은…… 이쪽입니다."
장량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백아린이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요?"
"그래, 자네와 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시간 괜찮은가?"
"뭐 잠깐이라면 가능해요."
백아린이 문제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승낙에 장량이 한결 더 밝아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면 같이……."
막 이야기를 꺼내던 그가 슬그머니 말을 멈춘 건 멀리에서 이쪽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당소련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등장에 장량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개인적으로 당소련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개방과 사천당문이 좋지 않은 관계이기 때문인지 그녀와 직접 마주하는 것이 무척이나 불편했다.
장량이 서둘러 말했다.
"무림맹 바깥 인근에 영란객잔이라고 있는데 아는가?"
"네, 알고 있어요."
"그럼 조금 있다가 거기서 보지. 난 그곳에 머물고 있으니 아무 때나 찾아와도 된다네. 저 사람과 마주하는 것이 그리 내키지 않아서 그래."
다가오는 당소련을 힐끔 쳐다보며 말하는 장량의 말에 백아린이 이해한다는 듯 빠르게 답했다.
"그렇게 할게요."
"이따가 보자고."
말을 마친 장량은 당소련이 도착하기 전에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멀어지는 장량과, 반대로 가까워지는 당소련의 사이에서 세 사람은 멀뚱멀뚱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당소련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장 방주께서 부리나케 도망가시는군요."
그녀가 멀어지는 장량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허나 그런 장량의 태도에 당소련 또한 딱히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불편한 건 그녀 또한 매한가지였으니까.
당소련이 이내 화제를 돌렸다.
"저희 구면인데 재밌게도 이렇게 직접 얼굴을 뵙는 건 처음이네요. 아, 저만 그런 거지만요."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당소련. 그리고 그녀와 마주하고 있던 백아린 또한 미소로 화답했다.
"오늘 들어서 아시겠지만 얼굴을 감춰야 할 사정이 좀 있었거든요."
"아, 이해해요. 탓하는 건 절대 아니었으니 오해는 말아 주세요. 그나저나 목소리를 듣고 상당한 미인이실 것 같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이상이신데요."
갑작스러운 당소련의 칭찬에 백아린이 당황한 듯 말을 받았다.
"과찬이세요."
"그리고 저를 도와주셨던 분이 천룡성의 분이셨다니…… 영광이에요."
말을 마친 당소련이 옆에 서 있는 천무진을 향해 포권을 취해 보였다.
이에 포권으로 화답한 천무진이 답했다.
"일전에도 독에 대해 알아봐 주셨는데, 오늘 회의장에서도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고맙긴요.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하는 건 제 쪽이죠. 저와 우리 가문을 구해 주신 분들인데요. 그리고 제가 한 게 뭐 있나요. 그저 제가 아는 진실을 이야기한 것뿐인데요."
별거 아니라는 듯 말을 한 그녀가 이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반가워서 인사를 드리려고 한 것도 있지만 하나 여쭙고 싶은 것도 좀 있어서요. 아마 아시겠지만 이번 별동대에 우리 가문 쪽 아이가 하나 있었어요."
"……당자윤 소협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역시 알고 계셨네요."
백아린의 대답에 당소련이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내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 아이 역시…… 죽었죠?"
물어 오는 당소련의 질문에 백아린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그녀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거의 확신하고 있긴 하지만 혼자 살기 위해 동료들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말을 꺼내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거기다 아주 만약에라도 그것이 아니라면 당소련에게 큰 실례를 하는 꼴이 될 테니까.
백아린은 자신의 생각을 일절 배제한 채로 입을 열었다.
"사실 당 소협은 저희가 도착하기 직전까지 생존자들과 함께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갑자기 실종되셨다고 하더군요."
"실종이요?"
"네, 지금 적화신루가 백방으로 찾고 있으니 뭔가 단서가 나온다면 말씀드릴게요."
"그래 주신다면 저야 너무 감사하죠. 죽었을 거라 생각했던 아이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니…… 감사할 일입니다."
표정이 밝아지며 말하는 당소련을 바라보는 백아린의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말대로 당소련에게 신세를 진 것도 있고, 직접 겪어 본 그녀는 꽤나 괜찮은 사람이었다. 하필이면 이런 여인과 연관된 자가 당자윤 같은 자라는 사실이 못내 안타까울 정도로.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당소련이 재차 미소를 지었다.
"아, 이런. 귀한 시간들을 너무 오래 뺏었네요. 개인적으로 감사함도 표할 겸 사천당문으로 한 번 초대를 하고 싶은데 받아 주실 건가요?"
"그럼요."
"고마워요. 적화신루를 통해 연락드릴게요."
말을 끝낸 당소련이 짧게 인사를 하고는 곧장 바깥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듯 한천이 혀를 찼다.
"쯧쯧, 이거야 원."
세상엔 때론 모르는 게 나은 진실도 있는 법이다.
한천이 보기에 지금 이 일이 그러했다.
알려진다면 오히려 괴롭기만 할 일.
허나 생존자들의 입에서 결국 당자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고, 이 일은 어떤 방향으로든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백아린이 옆에 서 있는 천무진을 향해 말을 걸었다.
"영란객잔에 잠깐 다녀와야 할 것 같은데 먼저 가 있어요. 일 끝내고 뒤따라갈게요."
"혼자 괜찮겠어?"
"어? 지금 저 걱정하시는 거예요?"
장난스러운 백아린의 말투에 천무진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보다 더욱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걱정은 무슨."
"걱정하지 말아요. 정식으로 초대한 건데 함부로 대하긴 어려울 테니까요. 거기다가 제 뒤에 당신이 있는 걸 아는데 더더욱 절 건드릴 순 없겠죠."
"걱정 안 했다니까 그러네."
천무진이 슬쩍 표정을 찡그리며 대꾸했고, 그런 그를 바라보며 웃고만 있는 백아린을 번갈아 살피던 한천이 슬쩍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한천이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흠흠, 그런데 대장 거기에 저도 갑니까?"
"그럼 내가 가는데 부총관이 빠질 생각이었어?"
"별걱정 할 거 없다고 하셨잖아요."
"빠져서 술 마실 생각하는 거 모를 줄 알고? 괜한 소리 말고 따라와."
백아린의 그 말에 한천이 당황한 듯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러고는 이내 정말로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어떻게 매번 제 생각을 그리 잘 아십니까? 독심술이라도 익히신 겁니까?"
"……독심술을 익힌 게 아니라 그만큼 부총관이 뻔하다고는 생각 안 해 봤고?"
"제가요?"
한천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전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그를 향해 백아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됐고, 빨리 따라와. 어서 끝내고 우리도 좀 쉬어야지."
말을 마친 백아린이 먼저 걸음을 옮기자 한천 또한 어쩔 수 없다는 듯 그 뒤를 터덜터덜 따라 걸었다.
몇 걸음 나아가던 그녀가 슬쩍 고개를 돌려 뒤편에 있는 천무진에게 말했다.
"이따 집에서 봐요."
"알겠어."
대답을 한 직후 천무진도 몸을 돌려 다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천무진과 헤어진 백아린과 한천은 그대로 곧장 무림맹 바깥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방주 장량과 약속된 영란객잔을 향해 나아갔다.
무림맹과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영란객잔.
휘장을 걷고 들어선 객잔의 내부는 엉망진창이라는 말이 정말로 잘 어울렸다.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거지들.
술과 음식을 잔뜩 쌓아 놓고 소란스레 술자리를 즐기는 이들도 가득했다. 그 모든 것들이 뒤엉켜 퀴퀴한 냄새로 가득한 이 영란객잔은 개방의 거지들이 점령한 상태였다.
통째로 객잔을 빌린 탓에 외부인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거지들 사이에 자리한 한 사내.
커다란 호리병을 든 장량이 들어선 두 명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손을 들어 올렸다.
"여, 빨리 왔네."
장량을 발견한 백아린은 곧장 그쪽으로 다가갔다.
술에 취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거지들을 피해 가며 순식간에 다가간 그녀가 자리에 않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은 남았는데 벌써 난리가 아니네요."
"그치? 내가 돌아오니까 벌서 이 꼴이더라고. 하여튼 더러운 놈들이 술들은 오죽 좋아해서 말이야. 아무리 말려도 말들을 안 듣는다니까."
"술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말리면 더 마시고 싶고, 뭐 그런 거죠."
뒤편에 있던 한천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의 말에 장량이 박수를 치며 대꾸했다.
"흐흐, 거 뭐 아는 친구군그래. 아까는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정식으로 인사를 못했군. 개방 방주 장량이야."
"부총관직을 맡고 있는 한천이라고 합니다. 소문난 의협이신 장량 대협을 만나 뵙게 되니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의협? 하하하! 재미있는 소리를 하네."
"좋은 말씀 드렸는데 저도 술 좀 얻어 마셔도 됩니까? 목이 좀 타서요."
목을 어루만지며 죽는시늉을 하는 한천을 장량이 뭔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올려다봤다.
자신을 앞에 두고도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장량이 들고 있던 호리병 속의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적화신루에 재미있는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군."
백아린에 이어 한천까지.
오늘 만난 두 사람 모두 탐이 나는 인물들이었다.
이내 장량이 한천에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던졌다.
"자네 우리 쪽으로 오면 어떤가? 마음에 드는데."
"하하, 저도 방주님이 무척이나 맘에 듭니다. 저희 대장과 다르게 술도 잘 사 주실 것 같고요. 이 기회에 확 소속을 바꿔 버려야 되나 싶군요."
"당연하지. 개방 하면 술 아닌가! 그 술 좋아하는 것도 맘에 들고, 여유 있는 표정도 맘에 들지만 무엇보다 맘에 드는 게 하나 있군그래."
"그게 뭡니까?"
기대 가득한 얼굴로 한천이 묻는 그때였다.
장량이 곧바로 답했다.
"얼굴이 딱 거지 상이야."
그 한마디에 웃고 있던 한천의 표정이 미묘하게 뒤틀렸다.
그가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제가요?"
"그래. 내가 관상을 좀 볼 줄 알거든? 그런데 딱 보니 없어 보이는 게 거지 상이야. 거지하기에 정말 좋은 얼굴이라는 거지."
백아린은 웃음이 터져 나왔는지 고개를 푹 수그린 채로 애써 호흡을 골랐고, 한천은 무척이나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쉽지만 제가 의리남이라서 말입니다. 대장을 배신할 수가 없군요."
"그런가? 거참 아쉽네."
입맛을 다시며 말하는 장량을 보며 한천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장난스럽게 말을 이어 나가던 상황.
백아린이 애써 웃음을 지운 채로 장량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제게 만나자고 하신 이유가 뭔가요?"
그녀가 질문을 던지는 그 순간이었다.
웃고 있던 장량이 호리병으로 가볍게 탁자를 툭툭 쳤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시끄럽던 이들이 모두 입을 닫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술에 잔뜩 취해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거지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이내 단 한 명도 남지 않고 모두가 객잔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내부에 남게 된 건 장량과 백아린, 그리고 한천뿐이었다.
바깥으로 나간 개방의 거지들은 영란객잔을 기준으로 하여 마치 호위하듯 넓게 진을 짜고 있었다. 내부에서 오가는 대화들을 바깥에서 듣지 못하게 엄중히 감시하는 것이었다.
과연 개방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모습이었다.
평소의 모습만 보자면 거칠 것 없이, 자유분방하기만 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 사이에는 엄격한 규율이 존재했다.
장량이 백아린의 뒤편에 있는 한천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 너도 빠지지."
말을 내뱉는 장량의 어투는 평범했다.
허나 한천이 느끼는 바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과 농담이나 주고받던 인물과 동일 인물이 맞는 건가 의심이 들 정도로 바뀐 분위기가 풍겨져 나왔다.
한천이 짧게 포권을 취해 보이고는 이내 먼저 나갔던 개방의 거지들처럼 객잔을 벗어났다.
그렇게 모두가 나가고 텅 비어 버린 객잔에서 장량과 백아린 단둘이 마주하고 있었다.
장량이 여전히 호리병 하나를 쥔 채로 물었다.
"술 좋아하나?"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마셔요."
"그래? 아쉽게 됐군."
말과 함께 장량은 쥐었던 호리병을 옆으로 밀어 놓았다. 잠시 백아린을 응시한 그가 본격적으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따로 만나자고 한 건 개인적으로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야."
"그 부탁이 뭐죠?"
물어 오는 백아린의 질문에 장량이 밀어 놓았던 호리병을 다시 쥐고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고는 이내 호리병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탕.
백아린을 응시한 채로 장량이 말했다.
"적화신루 루주를 만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