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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02화 (102/293)

102화. 주인공 ― 처음 뵙겠습니다

모두가 기립한 상황에서 추자후가 회의장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별동대를 죽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긴 했지만 아직은 맹주인 그에게 모두가 예를 갖춰 인사를 건넸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인사를 건네받으며 들어선 추자후는 곧장 자신의 자리를 향해 다가가 몸을 돌렸다.

맹주의 자리다 보니 다른 이들이 있는 곳보다 다소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가 서 있는 다른 이들을 향해 짧게 말했다.

"앉으시오."

허락이 떨어지자 모두가 자리에 착석했고, 뒤이어 추자후 또한 의자에 걸터앉았다.

무림맹주인 그가 앉자, 자연스레 열려 있던 회의장이 문이 닫혔다.

회의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자리에 앉은 추자후는 회의장을 가득 채운 이들을 하나씩 살펴봤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무척이나 많았고, 개중에는 실로 반가운 이들도 있었다.

허나 그 반가움을 표시하기엔 상황이 그리 여의치 않았다.

무엇보다 마음이 아픈 건 자신을 향해 매서운 눈빛을 보내고 있는 남궁위무의 표정이었다.

서책에 감춰진 위지겸의 연락을 통해 그가 돌아선 것 같다는 사실은 전해 듣긴 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마음이 복잡했다.

남궁위무가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 알기에 추자후는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그는 지그시 시선을 맞춘 채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를 이해한다는 듯이 말이다.

생각지도 못한 추자후의 행동에 남궁위무는 순간 움찔했다. 허나 이내 그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며칠 동안 전해 들었던 그 말들이 모두 맞다면 추자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것이었으니까.

추자후가 잠시 심호흡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런 일로 모이게 되어 모두에게 미안하오. 모든 것이 다 맹주인 내가 모자라서 생긴 일인 것 같아 마음이 쓰라린 것이 사실이오."

마음이 아픈 것도 사실이고, 이번 임무로 인해 죽은 그들에 대한 책임도 질 것이다. 허나 그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꼴은 결코 좌시할 생각이 없었다.

바로 지금처럼.

추자후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을 이었다.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려야 할 터. 어디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해 봅시다."

말을 끝낸 추자후가 곧바로 위지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맹주님께 씌워진 죄명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영천교와의 밀약을 통해 돈을 받고 운남성 하구 지역을 넘겼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일을 알고 있는 별동대를 살인멸구했다는 겁니다."

이미 저번 회의를 통해 들었던 말이기에 추자후는 억울한 누명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영천교에 관련한 일부터 캐물어도 되었지만 그는 그 부분은 우선 넘겼다. 미리 짜 맞춘 가짜 자료를 가지고 자신을 압박하려 들 것이 분명한데 굳이 그것에 놀아나 줄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영천교는 자신을 보다 궁지로 몰아넣기 위한 방법일 뿐이지, 진정으로 그들이 휘두르려 하는 날카로운 칼은 바로 별동대의 전멸이라는 패였다.

그 칼만 피해 낸다면 어차피 영천교에 대한 소문은 무용지물이 될 터.

추자후는 영천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곧바로 반맹주파 무인들을 향해 말을 꺼냈다.

"분명 내 기억으로 그대들은 오늘 이 자리에 생존자를 데리고 오겠다 했소. 기억들 하시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몇몇 있었기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시 반맹주파 쪽에서 생존자가 존재하고, 그가 온다면 이 모든 일의 진실이 낱낱이 밝혀질 거라며 호언장담을 했었다.

추자후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양승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그는 이곳에 참석하기엔 다소 급이 낮았다.

허나 저번 회의에서 이 같은 발언을 직접 꺼냈던 당사자였기에 특별히 이 회의에 참석할 권한을 얻게 된 것이었다.

그가 곧바로 대답했다.

"그랬지요. 제가 그리 말한 것을 분명 기억합니다."

"그 말을 책임질 수 있겠는가?"

"물론이지요."

말을 끝낸 양승필이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한 명이 서둘러 바깥으로 나갔고, 이내 그자는 다른 누군가와 함께 회의장 안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생존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생존자는 두 사람이었는데 한 명은 금정문(金頂門)이라는 문파의 고수인 노효방(魯爻方)이라는 자였고, 다른 하나는 정파의 명문가문 중 하나인 모용세가의 모용진(慕容進)이라는 이였다.

추자후는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을 보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존자가 있다고 해도 분명 반맹주파를 도울 만한 그런 이들로 구성되어져 있을 거라 여겼다.

노효방은 중립에 가까웠던 인물이니 저들에게 넘어간 것이 이해가 갔다. 다만 문제는 모용진이었다.

서른 중반의 인물로 모용세가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다.

그리고 그는 젊은 시절부터 충성스럽게 맹주를 따랐던 인물이었다.

그런 모용진이 지금 자신의 앞에 있었다.

추자후가 그 둘을 바라보고 있는 그때 양승필이 입을 열었다.

"맹주님께 여쭙습니다. 이 두 사람이 당시 떠났던 무림맹 별동대 소속이 맞습니까?"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른 이들 또한 확인할 수 있게끔 양승필이 물은 것이다. 잠시 침묵하던 추자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웅성웅성.

추자후가 맞다고 대답하자 자그마한 소란이 일었다.

맹주파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불안해 보였고, 반맹주파 사람들의 얼굴에는 역시나 자신들의 생각이 맞았다는 듯 당당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자신 있게 내놓은 생존자들.

뭔가 확실히 듣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나서게 했을 리가 없다.

생존자를 여기까지 소개한 양승필은 이제 더는 자신이 나설 자리가 아니라 판단했는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다른 이에게 이후의 일을 부탁했다.

"지금부터는 제가 아닌 하후경 가주님께서 진행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하지."

사전에 이야기되어 있었기에 하후경이 기다렸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가 입을 열었다.

"노효방 자네에게 묻지. 자네 두 사람을 제외한 별동대의 인원들은 어찌 되었는가?"

"……죽었습니다."

노효방의 대답에 사람들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육십 여 명에 달하는 무림맹의 별동대가 몰살당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지금 이곳 회의장에 참석한 이들과 연관 있는 이들 또한 많았다.

모두의 얼굴 표정이 묘하게 변하며 맹주인 추자후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하나같이 점점 의심스러워하는 표정들이 역력해지고 있었다.

분위기가 그리 흘러가는 걸 잠시 시간을 두며 지켜보던 하후경이 이내 질문을 이었다.

"그럼 이번 별동대의 일이 어떻게 된 일인지 소상히 말해 줄 수 있겠는가?"

"예, 보고하겠습니다."

대답을 한 노효방이 이내 몸을 돌려 모든 이들에게 듣기 좋도록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출발을 할 때까지만 해도 저희는 운남성으로 향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광서성으로 목적지가 변하더군요."

"그래서?"

"당연히 의아했지만 그곳에 임무가 있다 하여 가서 잘 매듭지었습니다. 그 이후 저희는 무림맹으로 복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게 임무가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더군요."

"그 이후에 또 뭔가를 한 겐가?"

"예, 무림맹으로 돌아가던 길에서 또 살짝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움직이더군요.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그러려니 하던 찰나에 모종의 세력과 접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누군지 아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는 세력이라고만 들었습니다."

"누군지는 몰라도 당시의 위치는 대략 기억하겠지?"

"예, 전양(田陽) 인근이었습니다."

대답을 들은 하후경이 곧바로 좌중을 둘러보며 상황을 설명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전양에 터를 잡고 있는 건 영천교입니다. 그곳에는 영천교의 분타가 있지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거기까지 말을 끝낸 하후경은 다시금 노효방에게 물었다.

"그 이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사실 저야 왜 그곳에 갔는지, 또 뭘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이 일에 대해 정확히 아는 건 아마도 별동대를 이끄셨던 이지강 대협뿐이셨을 겁니다. 그저 전 잠깐 그들과 만났다가 곧 갈 길을 가니 별일이 아니라 여겼습니다."

긴말을 내뱉은 노효방이 잠시 숨을 몰아쉬더니 괴로운 표정으로 힘겹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일은 그날 밤에 일어났습니다. 모종의 세력이 저희를 급습했고, 그곳에 있는 모두를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어떻게든 반항을 하려 했지만…… 불가능 했습니다."

"그럼 여기서 묻지. 무림맹 별동대를 궤멸시킨 그들을 보낸 자가 누구라 생각하는가?"

"그건……."

말을 잠시 끌던 노효방의 시선이 상석에 자리하고 있는 추자후에게로 향했다. 잠시 입술을 꽉 깨물고는 침묵을 지키던 그가 손가락을 들어 추자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맹주님이십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던 회의장에 다시금 웅성거림이 밀려들었다.

그런데 그 웅성거림은 처음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더 격앙되었고, 왠지 모를 분노들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추자후가 입을 열었다.

"왜 나라고 생각하는가? 설마 그들이 직접 자신들의 입으로 무림맹주인 내가 시켜서 왔다 이런 말을 했다고 하려는 건 아니겠지?"

여태까지 자신은 잘 모르고 위의 지시를 따르기만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던 노효방이다. 그러던 자가 갑자기 범인으로는 정확하게 자신을 지목하는 모양새가 실로 기가 막혔다.

가볍지만 나름 핵심을 짚고 들어가는 추자후의 질문에 웅성거리던 이들이 움찔하는 바로 그 찰나였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던 또 다른 생존자 모용진이 입을 열었다.

"죽이러 온 자들이 그런 말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죽는 당사자는 다르지요."

"그게 무슨 말인가?"

"맹주님께서는 실수를 하셨습니다. 저희에게는 이지강 대협이 있었으니까요."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꺼낸 모용진이 우선 모두를 향해 포권을 취하며 말을 이었다.

"무림의 선배님들을 뵙습니다. 모용진이라고 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저는 무림맹주님을 혈육처럼 따랐던 이입니다. 그런 제가 이곳에 서 있는 건…… 그만큼 맹주님께서 벌인 악행을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 여겨서입니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당시 보고 들은 것들을 전하겠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모용진의 질문에 하후경이 그러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 떨어지자 그가 여태까지 이야기를 하던 노효방을 대신하여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저희만 있었다면 아마도 이번 별동대 전원을 암살한 그 일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몰랐을 겁니다. 허나 이지강 대협은 달랐지요. 그분은 이번 임무의 진짜 목적을 모두 알고 계셨던 분이니까요. 이지강 대협이 죽기 직전에 이리 말씀하시더군요."

말을 멈춘 모용진이 추자후를 응시했다.

숨소리조차 안 들릴 정도로 고요한 회의장의 내부.

모용진이 말을 이었다.

"맹주님께서 보내서 온 놈들이구나, 라고요."

그 충격적인 한마디에 회의장 내부의 공기가 싸늘하게 변했다.

지금 이 모든 상황들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허나 믿기 어렵다는 듯 맹주파의 인물 중 하나가 다급히 소리쳤다.

"증거! 증거가 없지 않은가! 그저 두 사람의 증언만으로 맹주님이 계략을 꾸몄다 말하기에는……."

"증거라 하셨습니까?"

그 말이 나오기 무섭게 한 곳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자운이었다.

화산파 최고의 무인이자, 실질적인 반맹주파의 수장.

그가 품속에서 하나의 서찰을 꺼내어 들었다.

그러고는 이내 그것을 천천히 펼치며 소리쳤다.

"보십시오!"

촤악!

펼쳐진 서찰 안에는 글씨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거리가 있어 알아보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뛰어난 수준의 무인들이었다.

먼 거리에 있는 바늘조차도 볼 수 있는 안력의 소유자들에게 이 정도 거리에 있는 서찰을 확인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서찰은 다름 아닌 하나의 계약서였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천천히 몸을 돌리던 자운이 이내 이 서찰이 무엇인지 직접 입으로 말을 꺼냈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영천교의 교주와 맹주님이 맺은 밀약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 끝에 찍혀져 있는 것이 바로 맹주님의 직인이지요."

"맙소사 저건 분명히……."

누군가가 서찰에 찍혀 있는 맹주의 직인을 발견하고는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서찰의 내용은 지금 반맹주파가 주장하는 것 그대로였다. 운남성 하구 지역을 넘겨주는 대가로 일정 금액을 상납 받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계약서.

그리고 그 끝에는 무림맹주의 직인과, 영천교 교주의 직인이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자운은 안타깝다는 듯 얼굴을 감싸 쥔 채로 말을 이어 나갔다.

"실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림맹의 맹주라는 중대한 직책에 있으신 분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다니요. 높은 자리에 계신 만큼 더 많은 이들을 아우르고, 그들을 위해 싸우셔야 할 분이 사사로운 욕심에 눈이 멀어 이런 악행을 저지른 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증인에 이어 영천교에 관련된 증거까지 한 번에 쏟아져 나오자 맹주파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기 어려웠다.

끝까지 추자후를 믿고 버텼다.

그런데 지금 드러난 이것들은 점점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몰아치는 반맹주파의 거친 언행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자후는 이상할 정도로 침묵만 하고 있었다.

"……."

"뭐라 말을 해 보시지요 맹주님!"

그런 그를 향해 자운이 닦달했다.

사실 애써 감추고 있었지만 그는 무척이나 신이 나 있었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도 못하는 맹주를 보고 있노라니 오랜 시간 쌓여 온 묵은 화가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사실 다른 보는 눈만 없다면 당장이라도 양손을 들며 쾌재라도 부르고 싶은 지경이다.

무림맹주 추자후가 자리에서 쫓겨나게 된다면 그 뒤를 잇게 되는 건 누구인지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자신이다.

그리고 무림맹주는 곧 정도 무림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자리기도 했다.

자운은 기가 막힌다는 듯 추자후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할 말이 없으신 모양이군요! 허기야 증인에 증거까지 나왔으니 제아무리 철면피라 할지언정 둘러댈 변명조차 없겠지요!"

말을 마친 자운이 양쪽을 둘러보며 목소리에 힘을 주어 명령을 내렸다.

"뭣들 하십니까? 저런 악인을 그대로 저 자리에 두실 생각입니까?"

"내가 가지."

기다렸다는 듯 종남파의 노고수 진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전부터 추자후를 싫어했던 그로서는 이런 기회를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힘으로 그를 의자에서 끌어내리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의 감각이 짜릿거릴 정도로 쾌감이 밀려들었다.

당장이라도 추자후에게 달려가 그를 끌어내리려는 진환을 향해 자운이 손을 들어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뜻을 표했다.

지금 저 자리에서 추자후를 끌어내리는 건 반맹주파만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자운이 말했다.

"맹주님 쪽에서도 한 분이 나서 주시지요."

"……."

모두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자운은 맹주파 쪽 사람들을 살펴보며 자신의 생각을 재차 밝혔다.

"안 나서실 겁니까? 저 악인을 여태까지 믿고 따라오셨던 여러분 아닙니까. 뒤처리에서는 손을 싹 빼는 것 또한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말을 하는 자운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은연중에 명령 또한 담겨져 있는 말투였다. 지금 자운은 이 같은 대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 추자후의 시대는 끝이 날 것이고, 그 뒤를 자신이 이을 거라는 걸.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그 상황을 개방의 방주 장량은 팔짱을 낀 채로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추자후와, 자신의 옆에 자리한 위지겸을 슬쩍 보고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짧게 콧소리를 흘렸다.

"흐음."

뭔가가 이상하다.

사실 자신이 봐도 지금 이 상황에서 무죄를 주장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증거에 증인까지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둘 모두가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고 있는 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거기다가 둘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저 묘한 분위기는 대체 뭐란 말인가?

마치 주인공이라도 된 듯이 날뛰는 자운.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두 사람까지.

이 그림의 구도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기던 바로 그때였다.

입구 위쪽에서 갑자기 일련의 뭔가가 떨어져 내렸다.

투두둑.

떨어져 내린 것들이 곧바로 안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데구루루르.

굴러 들어오는 수십여 개의 구슬들.

순간적으로 회의장 안에 있던 이들이 움찔했다. 마구 떨어져 내리는 그 구슬이 벽력탄이나, 아니면 여타의 암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다.

허나 떨어져 내린 구슬들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저 회의장 곳곳으로 퍼져 나갈 뿐이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신이 나서 떠들고 있던 자운조차도 입을 닫고 자신의 발치에 와 닿은 구슬을 응시했다.

모두가 이 이상한 상황에 침묵하는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가 가장 먼저 몸을 굽혀 아래에 있는 구슬을 주워 들었다.

무당파의 장문인 청허진인이었다.

무표정으로 정체불명의 구슬을 집어 들었던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비취색의 옥구슬.

허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 옥구슬의 안에 박혀 있는 글자가 너무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으니까.

천(天).

청허진인이 뭔가를 떠올렸는지 몸을 가볍게 떨었다.

"이건 설마……."

말과 함께 그는 곧바로 그 구슬을 향해 자신의 내력을 쏟아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비취색 구슬의 색이 피처럼 붉게 변해 버렸다.

그걸 확인한 청허진인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세상에 이런 구슬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천룡성의 증표, 천루옥.

바로 그것이다.

청허진인의 손바닥 안에서 붉게 변하는 구슬을 본 모든 이들이 같은 생각을 떠올렸는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둘러 아래에 있는 구슬들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자신들의 내공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오십여 개에 달하는 천루옥들이 붉은빛을 토해 내기 시작했고, 마찬가지로 그걸 집어 들어 내력을 불어 넣었던 자운 또한 놀란 듯 눈을 크게 치켜떴다.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천룡성?"

자운의 입에서 모두의 머리에 떠오른 그 이름이 나오는 바로 그 찰나였다.

끼이이익.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열린 그 문을 통해 누군가가 회의장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터벅, 터벅.

상대는 생면부지의 인물이었다.

무척이나 젊었고, 또 놀랄 정도로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였다.

이곳이 어디인가?

무림맹이다!

정도 무림의 심장 무림맹.

거기다가 보통 일도 아닌 맹주의 자리가 걸린 중요한 회의에 외부인이 들어섰다.

평소였다면 결코 그냥 있지 않을 일이었다.

헌데…… 지금은 달랐다.

초대받지 않은 이가 들어와 회의장 중앙을 걷고 있거늘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고, 막기 위해 나서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걸어가는 그 사내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자가 향하던 길의 끝에는 추자후가 있었다.

추자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더니 이내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사내는 곧바로 계단을 밟으며 맹주가 자리하던 바로 그 자리에 가서 섰다. 그러고는 이내 맹주의 의자 앞에 자리하고 있는 탁자에 양손을 얹었다.

그가 그곳에 선 채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

회의장 내부에 있는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한 채로 그저 그 젊은 사내를 응시하고만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천무진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쥐고 있는 그 구슬의…… 주인입니다."

천무진의 등장.

그리고 그 순간…… 이곳의 주인공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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