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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98화 (98/293)

98화. 섬멸 ― 까불지 마 (1)

갑작스럽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무진과 마주한 상황에서 오가위는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에 묻은 땀을 옷에 닦아 내다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긴장했다고? 내가?’

상대는 고작 젊은 풋내기일 뿐이다.

그런데 대체 뭘까?

이 알 수 없는 중압감과, 불안감의 정체는.

그리고 긴장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나란히 서 있던 마염 또한 긴장한 표정으로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오가위가 애써 겁먹은 감정을 감추며 말을 꺼냈다.

"네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혼자서……."

"혼자 아니거든?"

갑자기 뒤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오가위와 마염, 그리고 이곳에 동행한 스무 명이 넘는 이들 모두가 황급히 고개를 돌려 뒤편을 확인했다.

그곳엔 언제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 단엽이 서 있었다.

오가위와 마염의 당황한 표정을 보며 단엽이 귀를 후비며 중얼거렸다.

"나 하나로 놀라기는 이를 텐데. 너희 완전히 포위됐거든."

단엽의 그 말을 듣고서야 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그들의 뒤편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백아린과 한천 또한 자리하고 있었다.

천무진까지 포함한 네 명이 순식간에 그들을 가둬 놓은 듯한 모양새였다.

물론 이토록 적은 숫자로 이 인원들을 도망치지 못하게 완벽히 포위하기 위해서는 그 개개인이 말도 안 되는 무위로 적들을 찍어 누를 수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자신들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네 개의 방위를 모두 점해 버린 적들의 모습에 그들이 놀라고 있는 때였다.

단엽이 빠르게 물었다.

"주인, 어떻게 할까? 힘 조절해, 말아?"

"물어서 뭐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다 박살 내 버려."

"뭐 그렇다면야."

쾅쾅.

단엽이 자신의 주먹끼리 부닥치며 눈을 빛냈다.

자신만만해 보이는 이 네 명을 보며 오가위와 마염은 서로를 바라봤다. 둘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자신들의 실력을 믿었다.

‘우리는 특별해. 그런 우리가 저런 놈들에게 질 리가 없지.’

마음을 다잡은 오가위가 명령을 내렸다.

"지금 나타난 놈들부터 모두 죽이고, 무림맹 별동대를 처리한다."

명령을 전달받은 수하들은 각자의 무기를 쥔 채로 가까이에 있는 상대를 응시했다. 겉보기엔 그리 강해 보이지 않는 이들.

거기다가 이들의 등장에 무림맹 별동대의 인원들은 다른 의미로 당황하고 있었다.

천무진이나 백아린, 한천의 얼굴을 알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그들은 지금 이 상황이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특별한 임무를 띠고 사라지긴 했지만 이 셋 모두가 그리 대단한 무인들은 아니었다.

무림맹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이들.

그런 그들이 자신들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이들을 막아서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 모습이 이상하기도 했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건 천무진이 나타났을 때 이지강이 보였던 반응 때문이었다.

훨씬 어린 천무진에게 공손하게 말을 하는 걸로 모자라, 그가 나타난 직후부터 한결 편안해진 얼굴까지.

투지를 불태우던 이지강이 검을 쥔 채로 그저 이 싸움을 구경하는 방관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별동대 쪽 사내 하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녀석은 무진 아닙니까."

"맞아."

"저희도 도와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는 도움은커녕 방해거리만 될 게야. 우선은 두고 보자고."

이지강과 별동대 사내가 나누는 대화를 오가위와 마염 또한 들을 수 있었다.

정체 모를 이자는 무림맹과 연관이 있는 자로 보였다.

그런데 무진이라는 이름은 너무도 생소했다.

‘무진이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오가위가 천무진이 무림맹에서 쓰는 무진이라는 이름에 대해 고민하는 그 찰나 싸움이 시작되었다. 백아린을 향해 네 명의 무인들이 빠르게 몸을 날렸다.

파앙!

순식간에 밀려드는 네 개의 그림자.

백아린이 힐끔 그 그림자들을 확인하며 손을 재빠르게 등 뒤로 넘겼다.

동시에 손에 잡히는 대검의 손잡이.

그녀가 낮게 몸을 낮추면서 대검을 휘두르며 회전했다.

부웅, 붕!

파파팟!

순간 놀랍게도 주변으로 파도처럼 검기가 휘몰아쳤다. 자신 있게 달려들었던 이들이 뒷걸음질 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파파파팡!

특별한 훈련을 받은 빼어난 무인들이다.

그런 그들이 백아린의 일격에 놀란 듯 마구 물러났다. 가까스로 공격을 받아 낸 그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움직임은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부웅!

순식간에 허공을 가르고 날아든 그녀의 대검이 그들 사이를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쾅!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으로 그들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컥!"

함께 튀어 나간 돌에 가슴을 적중당한 한 명이 주춤할 때였다. 백아린의 대검이 빠르게 그자의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퍽.

몇 번 되지도 않는 공격에 한 명의 무인이 쓰러졌고, 나머지 상대들도 주춤거리며 밀려 나가던 상황에서 한천 또한 적들 사이로 파고들고 있었다.

슉슉.

빠르게 움직이는 검이 순식간에 상대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특유의 좌수검법으로 상대의 검로를 끊고 들어가는 공격은 치명적이었다.

둘이 움직이자 단엽이 주먹을 움켜쥔 채로 적들을 향해 성난 황소처럼 달려들었다.

"간다!"

쾅쾅쾅!

주먹을 마구 휘젓는 순간 사방팔방으로 적들이 밀려 나갔다. 순식간에 적들을 휩쓸어 버리는 세 명의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잡혀 있는 그때였다.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어이, 그쪽에 신경 쓸 여유가 있을까?"

말과 함께 천무진의 손에 들린 천인혼이 허공을 주욱 그었다.

그 순간 주변으로 아지랑이가 일 듯 공기 중에 묘한 변화가 보이며 이내 모든 공간이 휘날리는 꽃잎으로 뒤덮였다.

천룡비공 무수화가 순식간에 쏟아져 나왔다.

스윽, 슥.

은밀히 날아드는 꽃잎, 그렇지만 그 위력은 파괴적이었다.

쿠웅!

마구 터져 나가는 주변의 모습을 보며 오가위와 마염이 날아올랐다.

둘의 몸이 쏜살같이 떨어져 내렸다.

촤르르륵.

오가위의 무기는 평범한 검이었지만, 마염의 무기는 조금 특이했다. 겉보기엔 평범한 검처럼 생겼지만 대나무처럼 낭창낭창 휘는 연검의 일종이었다.

두 개의 검이 순간적으로 천무진에게 밀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지강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찔하고 움켜쥐었다.

이지강 또한 저 두 명의 협공에 당해 지금의 이 상태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두 개의 방향을 노리고 날아드는 검.

거기다가 검날이 마구 휘어 대는 연검이라는 특징 때문에 검로를 예측하기 어려운 공격이 쏟아져 나왔다.

천무진은 쥐고 있는 천인혼을 바삐 좌우로 번갈아 움직였다.

탕탕.

협공을 가하고 있었지만 천무진은 쉽사리 둘의 공격에 말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침착하게 공격을 막아 내는 것과 동시에 둘이 만들어 가고 있는 움직임을 조금씩 헤집고 있었다.

‘뭐가 이래?’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할 합공인데, 자꾸 맥이 끊기자 마염은 조급해졌다.

촤륵! 촤르르륵!

연검의 날이 부르르 떨리며 천무진을 찔러 왔다.

뒤에서 치고 들어가야 할 오가위와 움직임이 어긋나는 그 짧은 찰나, 천무진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몸을 옆으로 비틀어 연검을 흘려보내며 순간적으로 가까워진 거리.

천무진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까불지…… 마!"

쾅!

날아드는 주먹을 어렵사리 받아 내긴 했지만 그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마염의 몸이 밀려 나가는 그 찰나였다.

천무진의 몸이 회전하며 천인혼에 순간적으로 내력을 쏟아부었다.

파앙!

강기가 귀신처럼 솟구쳐 오르며 주변을 휩쓸었다.

쿠카카카캉!

강기의 표적이 되었던 오가위가 공격을 펼치던 검을 황급히 회수하며 날아드는 공격을 받아 냈다.

천무진의 강기는 겨울날의 차가운 바람처럼 그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피피피핏.

팔과 다리를 비롯한 신체 곳곳에 얇은 상처가 생기면서 피가 솟구쳐 올랐다.

허나 오가위 또한 절정의 경지에 다다른 무인.

그대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흐아압!"

땅을 발로 강하게 디디며 천무진을 향해 검기가 휩싸인 검을 대각선으로 들이밀었다.

지지 않겠다는 듯 천무진 또한 날아드는 그의 검을 받아 냈다.

카카캉!

두 개의 검날이 충돌하며 주변으로 불꽃이 튀었다. 그렇게 서로가 검을 맞대고 있는 찰나 밀려 나갔던 마염이 다시금 달려들었다.

스윽.

뱀처럼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오르는 그 공격은 피하기 무척이나 까다로워 보였다.

거기다 검까지 맞대고 있어 움직임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

검이 천무진의 가슴을 반으로 갈랐다.

아니…… 그렇게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분명 베었거늘 손에는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형환위!’

몸을 도약하여 순간적으로 위치를 바꾸는 경신술이다. 너무도 빨라 잔상만이 남는다는 최상승의 경신술 중 하나.

마염은 뒤편에서 풍겨 오는 섬뜩한 무언가를 느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앞으로 몸을 날렸다.

스윽.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음에도 불구하고 천무진의 천인혼이 그의 등에 깊은 상처를 만들며 스쳐 지나갔다.

등에서 터져 나온 피가 옷을 붉게 적셨다.

"으윽."

마염이 베이는 걸 보며 오가위가 빠르게 달려들었다.

"이놈!"

천무진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검을 어깨너머로 힐끔 바라봤다. 그러고는 이내 검을 빠르게 왼손으로 바꿔 쥐었다.

왼손에 쥔 검을 천무진은 곧바로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몸을 반쪽 내겠다는 듯 날아들던 오가위의 검이 천인혼에 막혀 멈춰 버리는 그 틈이었다.

천무진은 그대로 천인혼을 맞댄 채로 몸을 뒤로 밀고 들어갔다.

차르르르.

검을 타고 올라가듯 빠르게 다가간 천무진은 즉시 팔꿈치로 명치를 가격했다.

비어 있던 명치에 내공이 실린 공격이 제대로 틀어박히자 그의 상체가 흔들렸다.

지척의 거리, 그리고 흔들린 균형까지.

천무진의 천인혼이 순식간에 그 틈을 파고들었다. 목을 베기 위해 다가온 천인혼을 보며 오가위는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죽는다!’

조금만 더 다가오면 당장에 목이 떨어져 나갈 상황이었기에 그로서는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목숨부터 지켜야만 했다.

그는 그대로 날아드는 천인혼을 팔뚝으로 막아 냈다.

콰드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오가위의 왼쪽 팔이 완전히 찢겨져 나갔다. 동시에 엄청난 양의 피가 땅으로 쏟아져 내렸다.

"이잇!"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이렇게 지척에서 머뭇거리다가는 이번엔 목이 날아가 버릴 거라는 걸 알기에 오가위는 반대편 손으로 천무진을 밀쳐 내며 다급히 뒤로 몸을 움직였다.

팔을 움켜쥔 오가위의 안색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어이! 괜찮아?"

놀란 마염의 목소리에 오가위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시팔! 괜찮게 생겼어?"

항상 여유 가득한 웃음으로 상대방을 가지고 놀던 오가위다. 그랬던 그가 천무진과의 싸움이 시작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웃지 못했다.

시종일관 몰아붙이는 그 막강한 공격을 버텨 내는 것만으로도 급급했으니까.

덜렁거리는 왼손은 이미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거기다가 계속해서 밀려드는 끔찍한 고통까지.

팍팍!

오가위는 서둘러 왼쪽 팔의 혈도를 점혈해서 더는 피가 흐르지 않도록 응급조치를 취했다. 이대로 뒀다가는 싸움이고 뭐고 과다 출혈로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점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너 이 새끼…… 누구야? 무진? 그게 진짜 네 이름은 맞아?"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던진 질문.

물어 오는 질문에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게 내 이름이야."

"젠장. 난 그딴 이름 들어 본 적 없다고."

자신 하나만을 감당해 내는 것만 해도 놀라울 법한 상황에 지금 저 젊은 사내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무인 마염까지 함께 상대하고 있다.

그것도 둘을 압도하면서 말이다.

그랬기에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그런 상대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무명소졸이라는 사실이.

이름을 들어 본 적 없다 말하는 오가위를 향해 천무진이 퍼뜩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아 참, 성을 빼먹었네."

천무진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오가위를 향해 말을 이었다.

"나는 천씨야."

"천씨? 천…… 무진?"

천씨 성을 붙인 채로 되뇌던 그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그러고는 이윽고 뭔가를 깨달은 오가위가 기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천룡성의 천무진?"

그들과 관련 있는 자였기에 오가위는 천무진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오가위의 입에서 나온 천룡성이라는 말에 맞은편에서 살기를 뿜어내던 마염도, 한쪽에서 이 싸움을 보고만 있던 무림맹 별동대들조차 기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천룡성의 무인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야 만 것이다.

전설의 문파 천룡성.

그리고 그 천룡성의 인물인 천무진.

자신을 향한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느끼며 천무진이 답했다.

"맞아, 그게 바로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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