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준비된 함정 ― 쉴 틈이 없네 (2)
백아린이 따라오라고 한 곳은 거리가 꽤나 멀었다.
그래서 천무진 일행은 마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야 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야 목적지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길이 다소 가팔라지는 곳이었기에 마차를 멈추고 직접 움직여서 도달한 장소.
그곳은 다름 아닌 무척이나 높은 절벽이었다.
천무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작게 중얼거렸다.
"여긴……."
싸움의 흔적이 있었던 곳에서 동쪽으로 대략 일각 이상은 더 움직여야 올 수 있는 장소였다.
높은 절벽 위의 장소였기에 바람이 꽤나 강하게 불어닥쳤다. 백아린은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가지런히 어루만졌다.
그런 그녀를 향해 천무진이 물었다.
"뭐가 있다는 거야?"
가볍게 주변을 훑어봤지만 싸움의 흔적으로 보이는 건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있었다고 해도 비에 씻겨 갔거나, 아니면 그자들의 손에 의해 깨끗하게 정리되었겠지만.
백아린이 그를 향해 말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게 당연하죠. 여긴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야?"
다른 누군가가 이런 대답을 했다면 쓰잘머리 없이 장난질이나 한 거냐고 짜증을 냈을 수도 있는 일.
하지만 천무진은 백아린에 대해 이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장난질이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여인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고도 남았다.
그랬기에 천무진은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백아린이 앞장서서 절벽 쪽으로 걸어가며 손짓했다.
"이쪽으로 와 봐요."
말을 마친 백아린이 아슬아슬하니 떨어지기 직전의 절벽 끝자락까지 다가가서야 걸음을 멈추어 섰다.
끝 부분에 자리하니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무공을 익힌 이가 아니라면 그 바람에 밀려 균형을 잡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쫓아 나머지 세 사내가 다가섰다.
자리에 선 한천이 죽는소리를 내뱉었다.
"어휴, 이런 높은 곳은 질색인데 말이죠."
"대체 여기 뭐가 있다는 건데? 바람 말고는 뭐 아무것도 없구만."
단엽이 이해가 안 간다고 되물었고, 천무진 또한 같은 생각에 고개를 끄덕거릴 때였다. 절벽 아래를 살펴보던 백아린이 마침내 찾던 것을 발견하고는 급히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예요! 저기 아래쪽이요."
"아래?"
천무진은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높은 절벽의 떨어져 내리는 단면 곳곳에는 나무들이 자라 있었다.
그리고 백아린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또한 그런 나무들이 꽤나 여럿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가리키는 건 나무가 아니었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한 자루의 검.
그 검이 천무진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검을 확인하는 순간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절벽에 박혀 있는 저 검은 무척이나 낯익은 것이었으니까.
"저 검은 분명……."
이곳에 검이 박혀 있다는 보고만 들었을 뿐 직접 와서 확인한 건 백아린 또한 지금이 처음이었다.
그녀는 절벽 한쪽에 박혀 있는 검을 보며 두 눈을 빛냈다.
"저거 이지강 대협의 검 맞죠?"
"맞아, 분명히 그가 가지고 다니던 검이야."
"그럼 역시 이곳까지 그가 도망친 건 확실하겠네요."
"아마도 절벽으로 뛰어내린 것 같은데."
직접 눈으로 보진 않았지만 얼추 상황이 그려졌다. 이곳까지 어떻게든 도망쳐 왔고, 싸워선 이길 수 없다는 판단하에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 것이다.
워낙 높은 절벽이다 보니 중간에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검을 박아 넣으며 속도를 줄인 걸로 보였다.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혼자 도망쳤을까?"
"가능성은 반반이겠죠."
별동대의 대장인 그다.
그가 이곳까지 도망쳤다면 상황이 좋지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백아린이 절벽 중간 부분에 박혀 있는 검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살아 있을 가능성이 생겼네요."
"그래,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진 않을 거야."
별동대를 기습한 그자들의 목적이 뭔지는 모른다. 허나 그들이 움직였다면 별동대의 생존자를 남겨 두고 싶어 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확신이 있었다.
백아린이 말을 이었다.
"절벽을 기점으로 인근을 뒤져 봐야겠어요. 자의든 타의든 지금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만약 이지강이 움직였다면 지금쯤 적화신루의 감시망에 걸렸어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와 비슷한 이에 대한 정보조차 올라오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답은 두 개다.
몸을 감추고 있거나 아니면…… 죽었거나.
백아린의 말에 절벽 중간 부분에 박혀 있는 검을 지그시 바라보던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둘러 줘. 부탁할게."
서둘러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지강이 살아 있을 확률은 줄어들 테니까.
* * *
부스럭.
사람이 살던 흔적은 찾기도 힘들 정도로 허름한 인가에서 자그마한 소리가 일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탓에 당장에 무너져도 전혀 이상할 것 없어 보였다.
물가와 붙어 있는 이 인가는 십 년이 넘게 비어 있던 폐가였다.
이미 곳곳에 균열이 가거나 구멍이 뚫려, 제대로 된 집 구실을 하기도 힘들어 보이는 모양새였다.
그런 허름한 인가에서 자그마한 인기척들이 들려왔다.
지푸라기들이 미묘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그 안에서 한두 명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실종된 별동대원들이었다.
이 인가에는 놀랍게도 여섯 명이나 되는 생존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며칠 전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후부터 물을 마실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움직이지 않으며 몸을 감추고 있었다.
여섯 명의 생존자들 중에서 가장 경공에 능한 자가 빠르게 물을 떠왔고, 이내 대기하고 있던 다른 이가 그걸 깨어진 바가지에 담아 한 명씩 건넸다.
지푸라기 사이에 숨어 있던 이들이 하나씩 몸을 일으켜 세우며 바가지에 담긴 물로 입을 축였다.
허나 그들 중 일부는 혼자의 몸으로 물을 마시는 것 또한 그리 쉽지는 않아 보였다.
부상 때문이었다.
여섯 명의 별동대 대원들 중에서 멀쩡한 건 단 한 명, 나머지 다섯 중 세 명은 경상이었고 두 명은 꽤나 깊은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심각한 건 바로 별동대의 수장 이지강이었다.
그가 몸을 감추고 있는 지푸라기 쪽으로 다가간 수하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목이라도 축이시죠."
슬쩍 얼굴 부분만 드러나게 지푸라기를 치워 준 수하는 곧 누워 있는 이지강의 입에 바가지를 조심스레 가져다 댔다.
바짝 마른 입술과 핏기 없는 얼굴이 그의 상태가 얼마나 좋지 않은지를 말해 주는 듯싶었다.
물을 마시는 것조차 힘겨웠는지 어렵사리 한 모금 삼키는 그를 보며 수하가 입을 열었다.
"이대로 여기 있다가는 결국 죽습니다. 어떻게든 의원에게 가야……."
"……움직이지 마라. 명령이다."
쇳소리 같은 목소리로 이지강이 말을 내뱉었다.
그날 마주했던 세 명의 무인.
그들은 괴물이었다.
전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세 명은 별동대를 휩쓸었다. 그토록 강한 이들과 싸우다 입게 된 내상으로 인해 이지강의 몸 상태는 좋지 못했다.
그처럼 위험한 적과 마주한 상황에서 그나마 이렇게 여섯이나 살아서 도망친 것이 기적이었다.
이 조 조장인 혜정과, 삼 조 조장 남궁격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많은 인원이 살아 있는 건 불가능했을 게다.
처음엔 정면으로 붙었지만 순식간에 열세로 몰리게 되면서 별동대는 빠르게 자리를 이동하며 싸움을 이어 나갔다.
이지강은 선두에서 싸웠지만, 셋 중 두 명의 합공에 당해 곧바로 큰 부상을 입고야 말았다.
그런 그를 구하기 위해 혜정과 남궁격이 시간을 벌어 줬고, 덕분에 높은 절벽이 있는 곳까지 도망칠 수 있었다.
허나 막고 있던 이들을 정리한 사내 중 둘이 자신들의 뒤를 빠르게 쫓았고, 결국 절벽까지 도망치는 데 성공했던 별동대 무인들 열 몇 명은 아래로 몸을 던졌다.
물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는 별동대를 사내들이 가만히 내버려 뒀을 리가 없다. 그들은 빠르게 절벽으로 움직이며 손에 들린 암기를 내던졌다.
매섭게 파고든 암기들이 절벽에서 떨어져 내리던 별동대 무인들의 숨통을 끊어 놨다.
떨어지는 과정에서 이지강은 날아드는 암기를 확인했고, 망가진 몸으로도 내력을 쥐어짜며 그것을 막아 냈다. 동시에 검을 절벽의 벽면에 틀어박았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던 이들의 손목을 잡아채며 빠르게 다른 이들을 잡으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가까스로 서로를 잡아 낸 자들이 바로 이곳에 남아 있는 이들이었다.
결국 내력으로 날아드는 암기를 쳐 내긴 했지만 그것이 이지강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이었다. 힘을 잃은 그는 결국 검을 놓치며 아래로 추락했고, 물살에 휩쓸려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하들이 혼절한 그를 업고 서둘러 찾아낸 곳이 바로 이 무너질 것 같이 허름한 인가였다.
이지강이 힘겹게 말을 이었다.
"움직이면…… 발각된다."
"압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도 답이 없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저희를 구하러 올 이들이 없잖습니까."
당장에야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찾지 못하고 있지만 들키는 것도 결국 시간문제다. 인근을 샅샅이 뒤지다 보면 아무리 숨어 있어도 들통이 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 그들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단 한 명도 살아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 누구도 구하러 올 이가 없다는 수하의 말에 이지강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있다. 우리를…… 구하러 올 사람이…… 있다."
"저희를 구하러 올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
입을 열기가 힘들었는지 이지강은 대답 대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가 계속해서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
그건 바로 천무진이었다.
적화신루의 정보력도 눈으로 봤었고, 천무진이라는 사내의 진짜 정체도 알고 있다.
그랬기에 아주 희박한 확률이긴 하지만 그가 자신들을 찾아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부탁합니다. 당신이 와야 이들이 살 수 있습니다.’
제일 부상이 심한 건 이지강이었지만, 나머지 중상을 입은 둘 또한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이렇게 치료도 받지 못하고, 식사 또한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 길어지고 있으니 호전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이지강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홀로 상념에 잠겼다.
‘생존자는 우리가 전부겠지.’
절벽에서 뛰어내렸던 이들 중에서도 절반이 넘는 인원이 죽었다.
절벽까지 오지 못하고 길목을 막고 싸우거나, 다른 쪽으로 도망쳤던 이들 중 생존자는 없을 것이다. 그리 쉽게 놓칠 정도로 어수룩한 자들이 아니었으니까.
자신들 또한 이렇게 살아 있기는 하지만…… 사실 이건 잠시 몸을 감추고 있는 것일 뿐, 결론적으로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건 아니었다.
움직이는 순간 곧 들통이 나고 죽게 될 상황.
그랬기에 이지강은 더욱 천무진의 도움이 간절했다.
자신의 목숨 때문이 아니었다.
별동대를 이끌던 수장으로서 수하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이 너무도 괴롭게 느껴졌다.
그나마 살아 있는 자신을 제외한 이 다섯 명, 이들이라도 어떻게든 살리고 싶은 것이 바로 이지강의 마음이었다.
‘뭔가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릴 방도가 있다면 좋을 터인데…….’
허나 아쉽게도 천무진에게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리려 하다가는 반대로 적들에게 노출될 확률이 컸다. 그랬기에 이지강은 이곳에 숨어 천무진이 자신을 찾아 주기를 기다리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그가 간절히 천무진을 기다리고 있는 그때였다.
지푸라기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누군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자신의 얼굴에 붙은 지푸라기들을 신경질적으로 탁탁 털어 내고는 이내 몸을 완전히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지푸라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의 정체는 다름 아닌 당자윤이었다.
언제나 화려한 행색의 그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평소와 많이 달랐다.
얼굴에는 거뭇거뭇한 것들이 잔뜩 묻어 있었고, 옷에서는 거지처럼 냄새가 풀풀 풍겼다. 그는 방금 전까지 지푸라기 속에 숨어 이지강과 다른 이의 대화를 엿들은 상태였다.
가뜩이나 이곳에 숨어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것 같은 상황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다.
‘이곳에서 기다리고만 있으라고? 웃기지 말라 그래. 다치더니만 제정신이 아니군.’
당자윤은 이지강의 선택이 옳지 않다 여겼다.
다른 누군가가 자신들을 구하러 올 거라는 말을 거짓말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리고 설령 온다 한들, 결국 죽이려고 혈안이 된 그들이 먼저 자신들을 찾을 게 분명했다.
당자윤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죽은 듯이 있어야 할 당자윤이 움직이려 하자 중년의 사내가 물었다. 그러자 그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짧게 대꾸했다.
"목이 좀 말라서요. 물이라도 좀 더 마시고 오겠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내가……."
"계속 고생하셨는데 조금 쉬시지요. 어차피 바로 코앞이고 전 부상이 그리 크지 않아 움직이는 데 별다른 제약이 없습니다."
괜찮다는 당자윤의 말에 결국 중년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서 다녀오거라."
"그리하지요."
말을 마친 당자윤은 슬쩍 입구를 빠져나가 물가가 있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잠시 몸을 움직이던 당자윤이 빠르게 방향을 바꿨다. 그의 시선이 점점 멀어지는 허름한 인가로 향했다.
처음 그곳을 나올 때부터 당자윤의 계획은 하나였다. 그들을 두고 도망치는 것.
어쩌면 이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큰 부상으로 짐이 될 이들을 버리고 혼자 움직이니 들통날 확률도 적었다.
‘개죽음은 당신들이나 당하라고. 난 어떻게든 빠져나갈 테니까.’
어차피 이곳에서 모두 죽을 놈들이니 저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쓸 이유도 없었다.
당자윤은 혹여라도 잡힐까 걱정이라도 되는지 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슉슉.
자그마한 경상을 입은 것이 전부였기에 그는 움직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하나 힘든 것은 며칠째 쫄쫄 굶은 탓에 허기가 진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움직이던 당자윤의 눈에 인가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은 아주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시간은 어느덧 저녁 시간, 곳곳에서는 음식을 하는 냄새가 가득했다.
마른침을 삼키며 은밀하니 마을로 다가간 당자윤이 안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휙휙!
몸을 날려 담장을 곧바로 넘은 그는 인기척을 확인하며 음식 냄새가 나는 주방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주방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옮기려 하고 있었는지 쟁반 위에는 음식들이 가득했다.
기름진 음식들을 보는 순간 당자윤은 참지 못하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와락.
손으로 음식을 움켜쥔 그는 허기진 배를 달래려는 듯 게걸스럽게 그것들을 입 안으로 욱여넣기 시작했다. 며칠째 쫄쫄 굶었던 배는 어서 음식을 더 넣어 달라는 듯 요동쳤다.
꾸르륵, 꾸륵.
그렇게 막 당자윤이 옆에 놓여 있던 닭고기의 다리를 거칠게 뜯어 입에 욱여넣는 바로 그때였다.
"어이, 꼬마야."
들려오는 섬뜩한 목소리에 음식을 밀어 넣던 당자윤의 등골이 오싹했다.
그는 서둘러 입 안에 있는 음식을 삼켰다. 그러고는 이내 부드러운 표정을 지은 채로 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제가 허기가……."
조용히 넘어가기 위해 얼마라도 지불하려고 했던 당자윤이다. 하지만 그의 말은 이어질 수 없었다.
뒤돌아서 본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으니까.
씨익 웃으며 서 있는 중년의 사내.
바로 별동대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던 그 세 명의 괴한들 중 하나였다.
그 사내가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 구면이지?"
알아보지 못하길 바랐다.
하지만 아쉽게도 상대는 당자윤의 얼굴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성큼 다가서며 말했다.
"너무 겁먹지 말라고. 넌 참 운이 좋은 놈이구나. 특별히 너한테…… 기회를 줄 생각이거든."
"기, 기회가 뭡니까?"
긴장한 기색으로 되묻는 당자윤을 향해 사내가 웃는 얼굴로 말을 받았다.
"뭐긴 뭐겠어. 네가 살 수 있는 기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