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내부 조사 ― 두 번짼가 (2)
수하들을 대동한 채로 흑마신은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뒤편에 따르는 십여 명의 수하들.
그 안에는 흑마련을 대표하는 네 명의 고수인 흑사귀들 또한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까지 대동한 채로 흑마신이 도착한 곳은 바로 흑마련 내부의 성역, 일명 사해신전(四海神殿)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사해신전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긴 했지만 이곳엔 딱히 대단한 물건이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단 하나, 바위에 박혀 있는 천인혼을 제외하고는.
그리고 흑마신이 다급히 이곳에 온 이유는 바로 그 천인혼 때문이었다.
천인혼을 지키는 무인들 중 하나가 수장인 흑마신의 등장에 황급히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췄다.
"련주님을 뵙습니다!"
"됐고. 대체 무슨 소리야 그게? 천인혼이 울었다고?"
"예, 그렇습니다. 저희도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한 시진 좀 전쯤에 갑자기 웅웅 소리를 내면서 낮게 떨리던 터라……."
말을 하는 사내 또한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하는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검명(劍鳴).
일명 검의 울음소리라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검과, 그걸 사용하는 무인이 하나가 되었을 때 느끼는 정신적 교류를 뜻할 때 사용된다.
그런데 칠신기로 불리는 신검인 천인혼은 모두가 들릴 정도로 웅웅 소리를 내며 울어댄 것이다.
흑마신이 불편한 표정을 지어 보인 채로 입을 열었다.
"우선 확인해 봐야겠군."
"이리로 오시죠."
사내는 흑마신과 그의 수하들을 천인혼이 박힌 돌이 있는 단상에 오르는 계단으로 안내했다.
그 계단 앞에 이르자 흑마신이 짧게 명령을 내렸다.
"흑사귀들 제외하고는 아래에서 대기해."
"옙."
수하들에게 명을 내린 그는 곧바로 흑사귀들만을 대동한 채 계단 위로 걸음을 옮겼다. 계단은 꽤나 길었지만 무인인 그들은 몇 번의 도약만으로 간단히 가장 위쪽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단상 위에는 커다란 바위가 자리한 채였다.
크기는 흑마신의 머리 높이 정도였고, 두께는 성인 장정 세 명이 함께 감싸 안아야 손이 닿을 정도로 컸다. 그런 커다란 바위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검의 손잡이.
검은 손잡이에 새겨진 붉은 악귀의 형상이 마치 흑마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천인혼의 손잡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뒤편에서 흑사귀들 중 가장 위인 일귀가 입을 열었다.
"지금은 별 이상이 없는데요?"
"애초에 잘못된 보고 아닙니까? 갑자기 얌전하던 이놈이 왜 웁니까? 쩝, 처음부터 이상하다 생각했습니다. 검이 혼자 울다뇨. 하여튼 아랫놈들의 쓸데없는 호들갑 때문에 괜한 헛걸음만 했군요, 칫."
삼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갑작스러운 보고에 식사까지도 거르고 이곳에 온 상황이 그리 탐탁지 않아 보였다.
삼귀의 말에 가만히 천인혼을 응시하던 흑마신이 짧게 말했다.
"들은 것이 한둘이 아니라면 허튼 호들갑은 아니지."
말과 함께 흑마신의 손이 천천히 천인혼의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이내 바위에 박혀 있는 검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파앙.
검은 그리 어렵지 않게 바위에서 뽑혀져 나왔다.
피를 머금은 듯한 붉은 검신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헌데…….
붉은 검신은 순식간에 그 빛을 잃고 보통의 검처럼 변해 버렸다.
동시에 흑마신의 표정이 돌변했다.
"큭!"
넘치는 기운이 검의 손잡이를 타고 몸 안으로 스며 들어왔다. 그는 곧바로 천인혼은 원래 있던 바위의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카앙!
검 끝이 바위 속에 있는 공간과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린 직후에야 흑마신은 쥐고 있던 천인혼의 손잡이를 놓았다.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일귀가 황급히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련주님?"
"버틸 만해. 다만…… 더 날뛰는 느낌이군."
천인혼은 주인을 선택하는 무기다.
선택받지 못한 이가 검을 쥐면 천인혼은 놀랍게도 본래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방금 전 붉은 검신이 하얗게 변한 것도 그 증거다.
거기다가 손잡이를 통해 커다란 힘을 발산해 검을 쥔 자를 도리어 고통스럽게 만든다.
몇 번이고 이 천인혼에 욕심을 내고 쥐어 봤던 흑마신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매번 지금과 같은 고통을 느껴야 했는데, 그의 경험상 이번은 뭔가 달랐다.
예전보다 더욱 큰 고통이 밀려든 느낌.
‘대체 이 변화는 무슨 의미지?’
흑마신은 탐욕이 가득한 눈빛으로 천인혼의 손잡이를 바라봤다.
전설로 내려오는 신병이기의 하나인 천인혼을 눈앞에 두고도 가질 수 없는 이 상황이 무인인 그에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는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거기다가 자신이 선택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인으로서 자존심을 상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했다.
주인을 선택하는 특별한 신검 천인혼.
그런 천인혼의 갑작스러운 울음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흑마신이 물었다.
"오늘 사해도로 들어온 자가 있느냐?"
"글쎄요. 금황상단의 작자들 말고는……."
이귀가 특별할 것 없다는 듯이 말꼬리를 흐렸다.
여전히 천인혼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흑마신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금황상단이라."
* * *
흑마신의 거처인 오 층 전각의 크기는 무척이나 컸다. 옆으로의 면적도 넓었지만 매 층마다 놓인 천장도 바닥으로부터 상당한 높이에 있어서 더욱더 커다란 느낌을 줬다.
천무진은 전각 내부에 들어선 직후 빠르게 구조를 확인했다.
예전의 기억을 더듬은 덕분에 이동하는 건 한결 수월했다. 아무래도 흑마신과 그의 주요 일당들이 나가자 내부의 감시는 그리 심하지 않았다.
천무진은 벽을 이용하거나, 내부의 계단을 통해 계속해서 아래로 움직였고 결국 목표였던 일 층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우습게도 정문으로 들어오면 가장 가까운 일 층이, 지붕을 통해 잠입하니 가장 멀 수밖에 없었다.
그가 곧바로 일 층으로 움직인 이유는 역시나 비밀 통로를 찾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비밀 통로라면 지하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니까.
무척이나 넓기도 했고, 오고 가는 이들이 있었기에 천무진은 최대한 신중하게 내부를 살폈다.
의심스러워 보이는 물건은 직접 손으로 만져 봤고, 내부를 오고 가는 무인들의 움직임 또한 예의 주시했다.
허나…….
‘젠장, 역시 쉽지 않네.’
처음부터 간단하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던 바. 아무리 살펴봐도 뭔가 의문스러운 것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바닥을 두드려 보기도 하면서 비어 있는 공간을 찾아보려 했지만, 의심스러운 장소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청아원이 발각되었다는 소식이 곧 그들의 귀에 들어갈 테고, 당연히 그곳과 연관된 사해도에 대해서도 조치를 취할 테니까.
어떤 식으로 이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하나 고민에 잠겨 있던 그때였다.
덜컹.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에 천무진의 시선이 자연스레 뒤편에 있는 창문으로 향했다. 순간 위쪽에서 뭔가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천무진이 움찔하며 막 방비를 하는 그 찰나였다.
투욱.
천무진의 시선으로 뭔가가 휙 하니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건 분명 사람이었다.
놀란 천무진이 서둘러 창가 쪽으로 다가가 바깥을 확인했다.
이곳 거점의 뒤편으로는 가파른 경사가 있었고, 그 아래로는 바다와 이어지는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천무진의 시선이 떨어진 사람을 향해 움직였다.
위쪽에서 떨어진 그 사람은 데굴데굴 비탈길 아래로 구르고 있었다. 마치 실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는 모습을 보며 천무진은 알 수 있었다.
살아 있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천무진은 서둘러 손을 움직였다.
파앙!
날아간 검이 비탈길 아래에 있는 물줄기로 빠지려는 상대의 옷을 꿰뚫고 땅에 틀어박혔다.
덕분에 구르던 몸은 일순간 멈춰 설 수 있었다.
천무진은 곧바로 창틀을 박차고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동시에 그는 시체가 떨어진 위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막 열렸던 자그마한 틈이 닫히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천무진의 시선이 꿈틀했다.
삼 층과 사 층 사이다.
‘저기에 뭐가 있다고?’
지하에 숨겨져 있을 거라 예상했던 비밀 통로.
그런데 천무진의 생각이 틀렸다.
삼 층과 사 층 사이에 뭔가가 있었다.
하지만 천무진은 그것보다 시체를 먼저 확인하기 위해 움직였다.
순식간에 비탈길을 타며 아래로 움직이던 천무진은 곧 시체가 고정된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시체에 다가간 천무진은 우선 상대의 얼굴부터 확인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씻지 못했는지 얼굴은 지저분했지만 정체를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굴러떨어지는 작은 덩치를 봤을 때부터 예상했던 부분.
시체의 정체는…… 어린아이였다.
천무진이 그토록 찾고 있었던 실종된 고아 중 하나가 분명했다.
시신은 처참했다.
얼마나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삐쩍 말라 있었고, 행색 또한 엉망이다.
거기다가 눈조차 감지 못하고 죽은 소년의 눈동자에는 직전까지 받았던 짙은 고통의 흔적이 머물러 있었다. 그런 소년을 바라보던 천무진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빠드득.
입 주변으로 흘러 딱딱하게 굳어 버린 피와, 차갑게 식어 버린 몸까지.
천무진이 천천히 손을 내밀어 소년의 뜨인 눈을 슬며시 감겨 줬다.
‘……미안하다. 너무 늦어서.’
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그렇지만 아무리 안다고 해도 죽은 소년을 보고 있자니 짙은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화가 났다.
이런 일을 벌이는 그들에 대해서.
자신에게 한 짓뿐만이 아니라 죄 없는 많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그들의 모든 것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다.
천무진의 시선이 방금 전 닫혔던 공간이 있는 전각의 삼 층과 사 층 사이로 향했다.
당연히 지하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들의 비밀 장소가 저곳에 존재할 거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다.
창문을 통해 오 층의 전각이라 판단했었다.
허나 진짜 저 전각은 육 층,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구조를 교묘하게 이용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한 개 이상의 비밀 층을 만들어 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그곳에서 아이들의 몸을 가지고 모종의 실험을 벌이고, 지금처럼 그 시신을 처리했을 게 분명했다.
이곳 비탈길로 굴어간 시신들은 곧바로 바다로 사라졌을 테니 그 뒤처리 또한 간단했을 게다.
천무진은 잠시 죽은 소년을 바라보다 이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아이의 신체를 고정시키고 있던 검을 뽑아냈다.
팍.
자연스레 비탈길 아래로 다시금 굴러떨어지려는 소년의 시신을 천무진이 양손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이 시신을 이대로 바다에 떨어져 사라지게 만들기도, 그렇다고 해서 이곳에 놔뒀다가 새들의 먹이로 만드는 것도 탐탁지 않아서다.
제대로 된 무덤은 만들어 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죽은 이 마당에라도 편안하게 쉬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야겠군.’
비밀 공간 내부까지 확인하면 좋겠지만 그건 그리 쉽지 않은 문제다.
우선은 이 전각이 실험 장소라는 것과, 또 비교적 정확한 위치를 알아낸 정도로 충분하다. 이후엔 그것에 맞춰 작전을 짜고 움직이면 되니까.
이대로 다른 세 명과 합류해서 다음 작전을…….
막 시신을 가지고 돌아가려던 천무진이 멈칫했다.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천무진이 천천히 위쪽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흑마련의 수장이자, 사파에서 손꼽히는 최고수들 중 한 명인 흑마신의 얼굴이.
그가 전각 위쪽에서 웃는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무진이 시선을 맞추자 흑마신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킥킥, 뭐냐 네놈은?"
"……."
"뭐야? 말할 생각 없는 건가? 이곳까지 들키지 않고 잠입한 걸 보아하니 그냥 시체나 수집하는 변태 새끼는 아닌 것 같고."
자신을 향해 조롱 섞인 도발을 내뱉는 흑마신을 천무진은 말없이 응시했다.
가능하면 들키지 않고 이곳을 빠져나가려 했는데 운이 없게도 이곳에서 시신을 가지고 미적거리다가 뒤가 잡혀 버린 모양이다.
처음에는 흑마신의 시선만을 느꼈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인근으로 점점 다가오는 흑마련 무인들의 기척을.
‘어떻게 해야 하지?’
천무진은 순간 고민했다.
도망치려 한다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지금 서 있는 비탈길 아래로 도망쳐서 물줄기를 타고 바다까지 도망치는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천무진은 뒤가 아닌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히려 그가 성큼성큼 비탈길로 올라선 것이다. 그런 천무진의 모습에 전각 위에서 시선을 주고 있던 흑마신이 잠시나마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들통났으니 당연히 비탈 아래로 도망을 칠 거라 생각했다.
물론 그 뒤에 잡을 방도 또한 생각해 두긴 했지만. 그런 상황에서 전혀 예상치 못하게 상대가 오히려 자신이 짜 놓은 포위망이 있는 위쪽으로 올라서니 도리어 당황스러웠다.
천무진은 슬그머니 품 안에 넣어 뒀던 막대기 모양의 신호탄을 꺼냈다.
백아린이 주었던 바로 그 신호탄이었다.
‘쓸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는군.’
천무진은 슬그머니 신호탄의 아랫부분에 충격을 가했다. 그러자 하늘 위쪽으로 얇은 붉은색의 실선이 쏘아져 나갔다.
이왕 들킨 이상 굳이 피하지 않고 싸우는 걸 선택한 것이다.
가능한 정면 돌파보다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해 보려 했지만 이미 침입자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 이상 지금 몸을 숨기고 있는 장소도 얼마 안 가 들통 날 공산이 컸다.
그렇다면 굳이 도망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싸워야 할 상대다.
오히려 지금 물러난다면 그나마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들마저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 이곳에 있는 놈들이 더 뭔가를 하기 전에 그 모든 걸 막아 내는 게 더 나았다.
여기서…… 승부를 본다.
아예 위쪽까지 올라선 천무진의 시선에 주변을 에워 싼 이백여 명에 달하는 흑마련 무인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들은 살기등등한 눈을 한 채 점점 천무진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천무진의 시선은 그들이 아닌 다른 이에게로 향했다.
천무진이 고개를 치켜들고는 여전히 전각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흑마신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이, 내려와."
"나?"
흑마신이 천무진의 도발적인 언사에 기가 막힌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자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너."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거냐? 지금 눈앞에 있는 내 수하들을 보고도 나보고 내려오라고?"
"여기에 네가 낀다고 뭐 크게 달라지나?"
"내가 누군지 모르나 본데 나는……."
"알아, 흑마신."
"아는데도 지금 날 거기 있는 그런 놈들과 비교하는 건가?"
"귀찮아서 그래."
"……귀찮다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흑마신을 향해 천무진이 말을 받았다.
"어차피 다 죽일 건데 그냥 한 번에 죽이려고."
"뭐? 하, 하하하하!"
흑마신이 배를 움켜쥔 채로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자신에게 건방을 떠는 상대를 본 것이 얼마 만인가?
그가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네놈 따위가 날 아래로 불러낼 수 있다 생각해?"
"떠들지 말고 그냥 내려와. 그러다가 도망가지 말고."
"도망?"
비웃음이 사라진 흑마신의 얼굴에는 싸늘한 살의만이 감돌았다.
흑마신이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알았지만 네놈 제정신이 아니구나. 뭐 얼마든 떠들라고. 곧 네놈 손에 들린 그 아이처럼 차가운 시신이 되어 있을 테니까."
조롱 가득한 말투에 천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려올 생각이 없나 본데 그럼 기다려. 여기 있는 놈들부터 다 정리하고 널 또 죽여 줄 테니까."
"……또라니?"
저번 생의 일에 대해 언급하니 흑마신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런 그를 향해 천무진이 말을 받았다.
"아무래도 넌…… 한 번 죽는 걸로는 그 죗값을 다하기 어려워 보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