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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76화 (76/293)

76화. 청아원 ― 네가 활약할 시간이야 (2)

반나절 전까지만 해도 엄청나게 소란스러웠던 청아원은 밤이 찾아오자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청아원은 소등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그 이후의 시간에는 절대 떠들지 않고 잠을 자는 것이 규칙이었다. 그 규칙에 익숙해져서인지 아이들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청아원의 아이들은 잠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들의 움직임이 멈춰 있는 건 아니었다.

내일 먹을 아침 식사의 재료를 손질하느라 분주한 이들도, 또 아이들의 옷을 빨고 해진 옷을 꿰매느라 바쁜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상황에 맞춰 시간을 보내는 그때였다.

조용한 청아원의 창고 인근에 조그마한 그림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불쑥.

땅속에 몸을 감추고 있던 치치가 위에 난 구멍을 통해 머리를 내민 것이다. 치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이내 자신이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게 만든 원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창고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사내 하나.

구멍에서 빠져나온 치치가 빠르게 그 뒤를 쫓았다.

치치는 지금 이곳 청아원에 있는 창고들 중에 상당히 많은 곳의 염탐을 이미 완료한 상황이었다. 그러고도 계속 몸을 감춘 채로 창고에 드나드는 사람의 뒤를 쫓아 댔다.

그 누구도 땅바닥에서 은밀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치치에 대해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설령 누군가의 눈에 띈다고 한들 아무도 의심할 리 없는 상황이었다.

이윽고 사내가 어느 창고 앞에 이르자 걸음을 멈춰 섰다. 그는 커다란 바구니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음식 냄새가 솔솔 흘러나왔다.

애초에 치치가 움직인 이유, 그건 바로 이 냄새 때문이었다.

아까부터 주기적으로 오고 가는 이들이 있었고, 이렇게 음식을 가지고 온 자가 나타난 경우에는 항상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굳게 닫혀 있던 창고 문이 열렸을 때다.

끼이익.

문이 열렸고, 안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윽고 어둠만이 가득한 창고 내부의 공간이 치치의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대략 백여 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행색이 엉망이었고, 다소 지쳐 보였다.

음식을 가지고 온 자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치치 또한 빠르게 안으로 움직였다.

스스슥.

어두운 쪽으로 움직인 치치는 그대로 두리번거리며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음식을 가지고 온 사내가 바구니에 담긴 주먹밥을 하나씩 건네주는 사이 모든 이들의 얼굴을 확인한 치치는 보다 빠르게 바깥으로 움직였다.

그러고는 이내 창고의 뒤편으로 삥 돌아 움직이더니, 이빨로 창고 외벽 구석을 열심히 갉아 냈다.

그러자 창고에는 콩알 하나 정도 크기의 흔적이 생겼다.

이곳 청아원에 있는 창고 중 무려 네 개에는 지금 치치가 새긴 이 흔적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이 창고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뜻하는 표식이었다.

이 모든 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영물인 치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치치는 백아린이 시킨 대로 창고들을 모두 돌며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녀가 보여 줬던 여덟 개의 초상화. 그것과 비슷하게 생긴 아이들을 찾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잠시 후 다시금 음식을 나르는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다다닥.

치치가 재빠르게 땅을 박차며 달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내의 발아래 쪽으로 순식간에 접근하더니 껑충 뛰어올랐다. 치치는 그대로 바구니 아래쪽에 매달린 채로 사내가 이동하는 곳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바구니 바로 아래에 다람쥐인 치치가 매달려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사내는 계속해서 목적지를 향해 다가갔다.

그렇게 들어선 새로운 창고.

그리고 이곳은 치치가 여태 봐 왔던 여타의 곳과는 뭔가 조금 달랐다.

툭.

바구니에 매달려 있던 치치는 창고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러고는 이내 들키지 않으려는 듯 빠르게 사내의 발아래에서 사라졌다.

창고 구석에 몸을 감춘 치치가 내부를 살펴보려는 듯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여태까지의 창고들은 어린아이들이 가득했던 것에 비해 이곳에는 고작 몇 명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창고 안에 있는 어린애들은 발목에 쇠사슬이 묶여 있다는 점이었다. 거기다 며칠은 제대로 먹지 못한 것처럼 핼쑥하고 잔뜩 지쳐 있는 얼굴까지.

아이들은 사내가 들어서자 뭐가 그리도 무서운지 움찔하면서 몸을 움츠렸다.

사내가 그런 아이들의 앞으로 주먹밥 하나씩을 휙휙 던졌다.

주먹밥이 지저분한 창고 바닥에 떨어졌지만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그가 짧게 말했다.

"오늘 식사다. 특별히 챙겨 주는 거니까 고마운 줄 알라고. 그러니 앞으로 여길 나갈 때까지 얌전히 좀 있어라. 응?"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은 사내가 나가려는 듯 막 몸을 돌렸을 때였다.

그의 뒤편으로 그림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적으로 허리춤에 있는 검에 손을 가져다 댔던 사내는 상대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급히 예를 갖췄다.

"오셨습니까."

"어휴, 냄새하고는."

한 손으로는 코를 막고, 반대편 손으로 허공을 휘휘 저으며 창고 안으로 들어서는 이는 바로 이곳 청아원의 원장인 두예진이었다.

두예진의 시선이 창고 안에 있는 아이들을 스윽 훑었다.

그녀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얘들아 원장님을 봤으면 뭘 하라고 했지?"

"……."

아이들은 침묵했고, 그 순간 두예진의 표정이 표독스럽게 돌변했다. 그녀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어린아이의 어깨를 발로 걷어차며 소리쳤다.

"인사! 인사를 하라고!"

겨우 여덟 살이나 됐을지 모를 조그마한 아이가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너무나 무섭고, 아파서 울 법도 하련만 그 조그마한 남자아이는 겁에 질려 어떠한 감정도 내비치지 못하고 있었다. 엉거주춤 일어선 아이가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아, 안녕하세요……."

"하여튼 어린애들이란 이래서 싫다니까. 꼭 몇 번을 가르쳐 줘야 뭘 알아 처먹으니."

짜증 난다는 듯 중얼거리던 두예진이었지만 이내 그녀는 다시금 선해 보이는 특유의 그 미소를 얼굴에 머금었다.

그녀가 창고에 갇혀 있는 몇 안 되는 아이들에게 들으라는 듯 말했다.

"자 여러분. 원장님이 말해 줬죠? 며칠만 좀 얌전히 있으면 된다고. 이제 곧 여길 떠나서 그토록 그리던 사람들 곁으로 갈 수 있다고. 그러니까 제발 여기에 있는 그 며칠만 얌전히 있어요. 그러면 아플 일도 없고, 원장님이 이렇게 화낼 일도 없잖아요? 그죠?"

따뜻해 보이는 말투와 미소.

그렇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무섭다는 듯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두예진은 그런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질린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고는 이내 더는 이 냄새나는 곳에 있기 싫다는 듯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려 하는 바로 그때였다.

덥석.

이 창고 안에 갇혀 있는 아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소년이 자신을 지나쳐 가는 두예진의 소맷자락을 움켜잡은 것이다.

나이가 가장 많다고 해 봤자, 고작 열두 살 남짓밖에 되지 않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용기를 내서 그녀를 잡은 것이다.

슬며시 고개를 돌려 아이를 내려다보는 두예진의 미간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너 지금 뭐하니?"

"거짓말이죠? 제 삼촌을 찾았다고 조용히 있으면 데리러 온다는 거 다 거짓말이잖아요!"

"이게 어디서 꼬박꼬박 말대꾸야!"

급히 손을 털어 내며 아이에게 잡혀 있던 소맷자락을 끄집어냈지만, 이미 옷은 지저분해져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그녀의 짜증이 재차 폭발했다.

"감히 어디서 그 더러운 손으로 날 만져!"

두예진의 손이 움직였다.

짝짝!

손바닥이 불을 뿜듯이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아이의 볼은 새빨갛게 물들었고, 입에선 피가 터져 나왔다. 허나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그녀의 손바닥이 연신 허공을 가로질렀다.

아이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얼굴은 순식간에 부어올라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제야 다소 진정이 됐는지 두예진은 엉망이 된 옷매무새를 어루만지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휴우."

맞은 아이는 기절을 했는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그녀는 옆에 있는 수하에게 짧게 말을 이었다.

"기절해서 어차피 밥 못 먹을 거야. 이 애한테 먹이려고 가지고 온 주먹밥 가지고 나가."

"하, 하지만 어차피 이미 엉망인 주먹밥이라 굳이 가지고 갈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요? 쓸 데도 없는데 그냥 일어나서 먹게 해 주는 것이……."

흙과 지저분한 것들이 잔뜩 뒤엉킨 창고 바닥에 나뒹구는 주먹밥이다.

가지고 간다 해도 사람이 먹기는 힘들뿐더러, 이렇게 맞은 아이를 쫄딱 굶기는 것도 그리 내키지 않아서 한 말이었다.

허나 사내의 말에 두예진이 답했다.

"쓸 데가 왜 없어?"

"예?"

"개한테 주면 되잖아?"

아이들을 개 이하로 보는 듯한 말투였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두예진의 모습에 사내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자신도 꽤나 악당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여인에 비한다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허나 그도 굳이 명령에 반발하면서까지 아이에게 주먹밥을 먹일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자신의 일이 아니었으니까.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말과 함께 사내는 바닥에 던져 놓은 주먹밥 하나를 회수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두예진이 몸을 돌려 걸어 나가며 말했다.

"빨리 문 닫아. 냄새나니까."

말과 함께 그녀는 곧장 창고를 나가 버렸고, 이내 그 뒤를 쫓은 사내가 몸을 돌려 문고리를 움켜쥐었다.

쿠웅.

서서히 닫혀 가는 창고의 문.

그나마 남아 있던 빛줄기가 사라지며 창고 안은 점점 어둠에 잠식되어져 가고 있었다.

마치 이 아이들의 운명을 말하려는 것처럼.

그렇게 마지막 달빛과 함께 막 사라지는 창고의 그 자그마한 문틈 사이로 주먹만 한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사라졌다.

치치였다.

* * *

마지막 창고까지 확인한 치치는 곧장 담장을 타고 바깥으로 움직였다. 짧은 다리로 빠르게 내달린 치치를 반긴 건 바로 백아린이었다.

"치치야."

백아린을 발견한 치치는 곧장 그녀의 손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갔다.

어깨에 올라선 치치와 시선을 맞춘 채로 백아린이 물었다.

"그림에 그려진 아이가 저 안에 있었어?"

"끽끽. 끼익."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치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듣는 순간 백아린이 활짝 웃으며 쥐고 있던 옥수수 알갱이 하나를 치치에게 건넸다.

그러자 치치는 그 옥수수를 쥔 채로 입에 머금었다.

수고했다며 치치를 다독이던 백아린이 이내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얼굴에 확신이 차 있었다.

"확인 끝냈어요. 이제 움직여도 될 것 같아요."

"……대단한데."

돌 위에 걸터앉아 있던 단엽이 대단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치치가 영물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런 임무까지 수행해 낼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놀란 단엽을 향해 한천이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말했잖습니까. 저 녀석이 우리 적화신루 최고의 능력자라니까."

당연히 해낼 줄 알았다는 듯 말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천의 목소리에는 대견함이 잔뜩 묻어 나오고 있었다.

백아린이 천무진을 향해 물었다.

"언제 움직이실 건가요?"

"……내일."

마음 같아서야 당장이라도 움직이고 싶었지만, 이번 일은 자신들만으로 처리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무림맹의 별동대를 통해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림맹 별동대가 직접 개입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모든 상황들을 눈으로 보아야 보다 확실하게 증인이 되어 줄 수 있을 테니까.

애초에 무림맹의 별동대를 끌고 나온 것 자체가 이 이유 때문이 아니었던가.

별동대를 모으고, 완벽하게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미 다소 시간이 지난 지금보다는 내일 밤이 낫다는 판단이 섰다.

허나 천무진은 그 와중에서도 중요한 걸 놓치지 않았다.

"단엽."

"어? 왜 주인?"

"넌 이곳에 있으면서 창고에 어떤 수상한 움직임이 없는지 계속 감시해. 혹시라도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하면 안 되니까."

운이 없게 작전을 실행하기 전날에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생각하여 내놓은 천무진의 대책이었다.

그의 명령에 단엽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어. 그런데 말대로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어떻게 할까?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끌고 가려거나 하면 말이야."

물어 오는 단엽의 질문.

천무진이 곧장 답했다.

"네 판단대로 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부터."

천무진의 대답에 단엽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지.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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