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왕-67화 (67/293)

67화. 감금 ― 싸우자는 겁니까 (1)

구천회의 등장.

기습을 눈치챈 것은 비단 단엽뿐만이 아니었다. 각자의 천막에 자리하고 있던 천무진과 백아린, 한천 모두가 이미 구천회가 나타나기도 전에 그들의 움직임을 눈치챈 상황이었다.

제법 먼 거리에서 은밀하게 움직였지만, 그들의 기척을 알아차리는 건 이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천무진은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백아린과 슬쩍 시선을 맞추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귀찮게 됐군.’

최대한 조용히 목적지까지 가고자 했거늘, 아직 절반도 오지 못한 지금부터 뭔가 꼬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모두의 귓가로 별동대를 이끄는 이지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형을 갖춰라!"

소리를 치는 그의 옆으로 어느새 단엽이 빠르게 다가갔다. 이지강이 아직까지도 어둠 속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적들이 있는 방향을 응시하며 물었다.

"누군지 알겠는가?"

"구천회입니다. 이런 화살 장식을 쓰는 놈들은 그들밖에 없거든요."

손에 들고 있는 화살을 흔들며 단엽이 말했고, 이지강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역시 구천회인가."

말을 하는 이지강의 얼굴에 곤란하다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차라리 멋모르는 녹림도들이었으면 했지만 사실 그럴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건 이지강 또한 알고 있었다.

사파를 대표하는 네 개의 세력 중 하나인 구천회의 영역, 녹림도들을 그냥 뒀을 리가 없었다.

처음 십여 개에 달하는 화살을 날려 나무에 틀어박은 것을 제외하고는 그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애초부터 구천회 또한 무림맹의 무인들을 죽일 의도가 없다는 소리였다. 그들 또한 미치지 않고서야 아무런 이유 없이 무림맹과의 싸움을 원하지는 않을 터.

이지강이 나섰다.

"무림맹의 풍뢰검(風雷劍) 이지강이오. 그리들 숨어 있지만 마시고 나오시오."

이지강의 자신의 정체를 밝혔을 때였다.

"호오, 풍뢰검이라. 생각보다 거물이셨구려."

마치 쇠를 긁는 것 같은 소름 끼치는 목소리와 함께 기다렸다는 듯 노인 한 명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작은 키에 덩치 역시 너무도 왜소했지만 풍겨져 나오는 범상치 않은 기운이 결코 녹록지 않은 자라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칠십이 훌쩍 넘어 보이는 외향에 작은 덩치.

그리고 손에 든 청색의 긴 지팡이를 연상케 하는 무기까지.

이지강은 상대의 정체를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고루혈괴(骷髏血怪) 심방(深芳)?’

지금은 무림에서 크게 활동하고 있지 않지만 이십 년 전까지만 해도 구천회의 일선에서 움직이던 고수다. 손속이 꽤나 잔혹하고, 한 번 눈 밖에 나면 상대가 누구라고 해도 결코 물러나지 않는다는 지독한 독종이다.

그리고 심방은 이지강보다 한 단계 위급의 고수였다.

애초에 운이 나쁘게 구천회와 조우하게 된다고 해도 대화로 풀어 가려 했던 이지강이다.

어차피 그들에게 해코지를 한 것도 아니고, 잠시 그들의 구역을 지나쳐 가는 정도니 쉽게 대화로 풀 수도 있다 여겼으니까.

그러던 와중에 만나게 된 구천회, 원래도 싸움을 피하려 했지만 그들을 이끄는 수장의 정체를 알게 되자 그 생각은 더욱 커졌다.

고루혈괴 심방, 그는 싸워서는 안 될 상대다.

심방이 성큼 무림맹 무인들을 향해 다가서는 바로 그때였다.

막 이지강이 입을 열려는 찰나 선두에 서 있던 별동대의 무인 중 하나가 그를 향해 검을 겨눴다.

아직 무림에서의 경험이 적은 새파랗게 어린 사내였다.

"멈춰라!"

상대의 신체를 겨눈 검이 날카로운 빛을 쏟아 냈고, 그걸 보는 순간 이지강은 움찔했다.

‘저런 어리석은……!’

이지강에게서 움직이라는 명령이 떨어지지도 않았거늘 지레 앞서서 다가오는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검을 겨눈 것이다.

피식.

상대를 바라보며 심방이 가벼운 비웃음을 흘렸다.

지금 이런 행동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냐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곳은 구천회의 구역, 그곳에서 직접적으로 검을 겨눴다. 이건 정식으로 싸움을 하자는 말로 받아들여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심방의 시선이 놀라서 눈을 치켜뜨는 이지강에게로 향했다.

"허어, 나는 무림맹 쪽도 우리와 대화로 풀어 가기를 바랄 거라 여겼는데…… 내 착각이었나 봅니다."

말과 함께 심방이 손을 들어 올렸다.

순간 그의 뒤편에서 숲을 가득 채우는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터벅, 터벅.

어둠 속에서 밀려 나오는 발소리.

동시에 여태까지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있던 일련의 무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숫자는 무려 이백 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무림맹의 별동대보다 세 곱절 이상 많은 숫자였다. 생각보다 많은 무인들이 등장하자 심방을 향해 검을 겨눴던 젊은 무인이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들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살기 때문이었다.

심방이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쪽이 검을 들었으니, 우리 구천회도 그에 맞는 방식을 취해야겠군요."

구천회라는 말에 그들의 정체를 모르고 있던 이들이 놀란 듯 움찔했다. 만만치 않은 적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구역의 패자인 구천회일 거라 생각한 이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검을 겨눴던 젊은 무인 또한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한 것인지 깨닫고는 얼굴이 새카맣게 변했다.

이지강이 서둘러 나섰다.

"아직 미숙한 젊은 무인의 실수입니다. 노선배께서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지요."

빠른 사과 덕분이었을까?

심방이 다시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모습을 드러냈던 구천회의 무인들 모두가 그 자리에서 발을 멈추어 섰다.

심방이 여전히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뭐, 좋습니다. 풍뢰검의 말대로 아직 새파란 애송이 하나가 주제도 모르고 날뛴 거라 생각하면 한 번 정도 넘어가 줄 수도 있지요."

말을 하며 젊은 무인을 향해 심방이 강렬한 눈빛을 쏘아 보냈다.

웃고 있는 입가에 걸린 진득한 살의.

만약 이 젊은 사내에게 무림맹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까지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 가능했을까?

아니, 아마도 어려웠을 게다.

지금 점잖게 말을 이어 가고는 있었지만 심방이라는 노인은 무척이나 위험한 인물이었으니까.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니……."

"허나, 이건 그냥 넘어가기 어렵겠군요."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무림맹의 부대가 지금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귀주성의 모든 구역이 구천회의 영역은 아니다.

허나 지금 무림맹 별동대들이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그들의 본거지와 무척이나 가까웠다. 그들이 날을 세우는 건 당연했다.

정파와 사파.

언제라도 싸울 수 있는 사이다.

무림맹의 별동대가 자신들의 안채와 가까운 인근을 지나쳐 가는 것은 두 세력 간의 좋지 못한 사이를 염두에 두고 봤을 때 당연히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이들이 자신들을 염탐하러 온 간자일 수도 있는 노릇 아니던가.

무엇을 염두에 두고 이 같은 말을 꺼냈는지 알기에 이지강은 곧바로 답했다.

"오해는 마시지요. 중요한 임무가 있어 잠시 길을 따라 움직이고 있던 것뿐입니다. 구천회에게 피해를 줄 일은 절대 없으니 길을 내주시지요."

"물론 그러실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그 말 하나만을 듣고 그렇군요, 하고 보낸다면…… 모두가 저희의 지역을 짓밟고 다니겠지요."

아무나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 된다면 그 누가 구천회의 이름을 두려워하고, 또 그들의 영역을 존중하겠는가.

그 사실은 이지강 또한 알고 있었지만 대화로 어떻게든 풀어 가려는 자신과는 다르게 바짝 날을 세우고 있는 구천회 쪽의 모습에 슬슬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마치 싸우자는 말로 들려왔으니까.

천룡성을 도와, 실종되는 고아들에 대한 조사를 하고자 빠르게 광서성으로 가야 하는 상황인지라 최대한 마찰을 피하고자 했다.

자신들이 움직이는 걸 조용히 처리하라는 무림맹주의 명령이 있었으니까.

가능하면 조용히 지나가려고 했지만 만약 저쪽에서 먼저싸움을 걸어온다면…… 피할 생각은 없었다.

정파의 기둥인 무림맹이다.

그런 자신들이 사파인 구천회에게 쩔쩔맬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그 말은…… 싸우자는 겁니까?"

말을 내뱉는 이지강의 목소리에는 가시가 가득했다.

정 안 된다면 목숨을 건 싸움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보여 준 것이다.

그를 바라보며 심방이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요. 정식으로 출범한 무림맹의 부대를 건드린다는 건 곧 전면전을 하자는 말인데…… 이 정도 문제로 그런 큰일을 벌인다면 서로가 우스운 노릇 아니겠습니까."

경험 많은 노고수다.

그랬기에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가장 옳은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심방이 말을 이었다.

"구천회의 구역에 들어오신 것이니, 당연히 우리의 규칙을 따라야 맞는 것 아니겠습니까?"

"원하시는 게 뭡니까?"

심방의 말대로 이곳은 구천회의 구역이고,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선 건 무림맹의 별동대다. 말도 안 되는 규칙만 아니라면 어느 정도 그들의 의사에 따라 줄 의향이 있었다.

이지강의 질문에 그가 곧바로 답했다.

"따라오시지요. 구천회에서 잠시 모시다가 판단이 내려오면 돌려보내 드리지요. 뭐, 그리 길지는 않을 겁니다."

"……."

말을 듣는 순간 이지강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지금 저 말은 자신들을 잡아 두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잠시 발이 묶이는 것도 분명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큰일은 그들이 자신들에게 길을 내주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최악의 경우 다시금 무림맹이 있는 사천으로 내쫓기게 될 터인데 그건 자신이 바라던 바가 아니다.

이지강이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우리는 반드시 길을 따라 가야 합니다."

"그건 구천회의 상부에서 판단할 일이지요."

심방이 지지 않고 받아쳤다.

이지강은 직감적으로 문제를 이곳에서 대화로 풀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가 꼬여 버린 상황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슬쩍 천무진을 향해 전음을 날렸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외부에서 볼 때 별동대를 움직이는 건 이지강이었지만, 사실상 이번 임무의 결정권자는 천무진이라고 봐야 옳았다.

이지강이 전음을 날리기 전부터 이미 고민을 하고 있었던 터라 천무진은 생각보다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우선 따라가야 할 것 같군요.』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럴 확률이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저들과 이곳에서 싸운다면 그건 더 어리석은 행동이니까요.』

사실 지금 상황에서 저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건 곧 싸우자는 말이나 다를 게 없다.

그리고 방금 전 심방이 말한 것처럼 이 정도 일로 서로 전면전까지 가게 되는 건 실로 우스운 상황.

거기다 단순하게 지금 이곳에서 구천회와 싸운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무림맹과의 전면전이나 이런 건 나중 일로 두더라도, 지금 광서성으로 향해야 할 자신들의 뒤를 구천회의 병력이 계속해서 뒤쫓을 게다.

고작 육십 명 정도의 별동대, 그들로 구천회의 실질적인 힘과 맞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광서성으로 가서 중요한 임무를 해야 하는 지금 그 같은 번거로운 일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들에게서 빠져나오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물어 오는 이지강의 질문에 천무진의 시선이 잠시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여전히 죽립을 눌러쓴 채로 이 모든 상황을 방관만 하고 있는 단엽이 있었다.

천무진의 확신 어린 전음이 이지강에게 날아들었다.

『네,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시키시는 대로 하지요.』

천무진에게 뭔가 방도가 있음을 알게 되자 이지강은 더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가 심방을 향해 말했다.

"좋습니다. 우선 따라가도록 하지요."

생각보다 순순하게 대답을 내리는 이지강의 모습에 심방이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상하군그래. 최소한의 마찰 정도는 각오했는데 말이야.’

분명 뭔가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렇지 않다면 구천회의 영역에 발을 집어넣는 행동 따위는 애초에 하지 않았을 테니까.

허나 이내 심방은 상념을 지우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편히 모시도록 하지요."

* * *

싸움이 벌어질 뻔했던 장소에서 약 두 시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커다란 분타.

이곳은 수십여 개에 달하는 구천회의 분타 중 하나였다. 기거하고 있는 구천회 무인의 숫자만 대략 천여 명에 육박하는 거대한 거점이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주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매서운 눈초리가 절로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그렇지만 별동대 무인들은 최대한 어깨를 편 채로 걸었다.

사전에 이지강을 통해 이런 상황에 대한 명령을 하달 받은 탓이다.

이지강은 말했다.

무림맹의 자부심을 지키라고.

적지로 들어가게 된 상황이지만 그들 또한 결코 자신들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을 거라며, 결코 위축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한 것이다.

그런 명령 때문인지 많은 젊은 별동대 무인들도 경험이 없어 당황할 법한 상황에서 애써 침착한 척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구천회의 거대 거점 내부에서 그들이 안내받은 장소는 다름 아닌 커다란 연무장이었다.

편히 모시겠다는 말과는 다르게 심방은 무림맹의 별동대들을 이곳 연무장 안에 모두 들어가게끔 했다.

그가 사람 좋게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허허, 갑작스럽게 손님을 받은 거라 딱히 장소가 마련된 곳이 없군요. 감옥으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곳 연무장에서 한동안 지내셔야 할 것 같은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상관없습니다."

이지강이 짧게 답했다.

사실 말이 연무장이지 이렇게 커다란 건물 안에 가둬 두고 밖에서 감시를 하는 상황이면 감옥이랑 다를 게 없었다.

그렇지만 별동대를 쪼개서 가둬 두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모두 모아 두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섰기에 이지강은 크게 불만을 토해 내지 않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면 이렇게 뭉쳐 있는 쪽이 더 나았으니까.

"그럼 전 상부에 보고를 해야 해서 이만. 곧 다시 찾아뵙지요."

인사를 마치고 심방은 곧장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연무장 내부에 남게 된 별동대 무인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생각지도 못하게 구천회에 잡혀 온 상황 때문이다.

침체된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이지강이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어쩌다 보니 일이 좀 꼬였는데 조만간 나갈 수 있을 거다. 다들 짐 풀고, 우선 휴식들부터 취해."

다행히도 연무장의 크기는 꽤나 컸기에 육십 명이 넘는 인원들이 쉬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일행들이 하나씩 짐을 풀며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그때였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짐을 내려놓고 벌렁 눕던 단엽에게로 천무진의 전음이 흘러들어 왔다.

『어이, 단엽.』

막 자리에 누운 단엽이 고개를 돌려 전음이 들려온 쪽을 응시했다.

벽에 기대어 선 천무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좀 쉬려고 하던 단엽이 표정을 와락 구기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죽립을 고쳐 쓰며 단엽이 성큼 천무진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단엽이 움직이는 걸 눈치챈 백아린과 한천이 동시에 천무진의 근처로 다가갔다.

추후의 계획을 알고 싶어서였다.

벽에 기대어 서 있는 천무진의 옆으로 백아린과 한천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리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단엽이 와서 섰다.

단엽이 작게 투덜거렸다.

"뭐야? 좀 쉬려는데?"

쉴 시간도 안 주냐며 투덜거리는 그를 향해 천무진이 씨알도 안 먹힐 소리 말라는 듯 말했다.

"쉬긴. 이제부터 네가 본격적으로 일해야 할 시간인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