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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62화 (62/293)

62화. 별동대 ― 보고 올리겠습니다 (1)

무림맹 총군사 위지겸의 집무실.

이곳을 천무진과 백아린이 직접 찾아오는 경우는 무척이나 드물었다. 대부분 서찰을 통해 원하는 것들을 전달하거나, 외부에서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백아린이 직접 위지겸의 집무실에 온 적은 있었지만 그때도 미리 사전에 연락을 하고 나타났었다.

그랬기에 위지겸은 지금 이 상황이 참으로 놀라웠다.

지금처럼 이렇게 연락도 없이, 그것도 두 사람이 같이 집무실에 나타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갑작스럽게 입구를 지키는 무인을 통해 손님이 찾아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미리 약조가 된 자리가 아니었기에 바쁘다며 돌려보내려던 찰나, 수하에게서 건네받은 증표를 보고 찾아온 이들이 다름 아닌 천룡성과 관련된 이들이라는 걸 알았다.

그랬기에 은밀히 바깥에 있는 두 사람을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들어오게끔 했고, 그렇게 지금 천무진과 백아린이 이곳 집무실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자리에 앉은 천무진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얼굴 잊어 먹겠습니다. 총관님처럼 종종 얼굴도 비치고 하시죠."

"제가 나타나면 오히려 곤란하실 텐데요."

천무진도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고, 마찬가지로 무림맹주 쪽에서도 반대파의 견제를 피해 지금 이들을 돕고 있는 걸 비밀로 하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조심해 주는 것이 나쁘지 않은 상황.

천무진의 말에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답하지 않은 그가 이야기를 다른 쪽으로 넘겨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이렇게 이른 시각에 두 분이 무슨 일이십니까? 아침 식사라도 같이하자고 오신 것들은 아니실 테고."

아직 해도 채 뜨지 않은 시간이다.

자리에서 막 일어나 집무실에 오기 무섭게 두 사람이 찾아왔고, 이토록 다급하게 움직인 걸 보아하니 뭔가 또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위지겸의 질문에 백아린이 답했다.

"도움이 필요해서요."

그녀의 말에 위지겸이 고개를 갸웃했다. 평상시에도 서찰을 통해 도움을 요청했었고, 자신의 기억으로는 아직까지 그 청들 중에 거절한 건 없었다.

그랬기에 물었다.

"서찰로 해 주셔도 될 걸 왜 굳이……."

말을 내뱉던 위지겸은 천무진과 백아린의 표정을 보며 이내 알 수 있었다.

서찰로 할 만큼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웃음기 가득했던 위지겸의 얼굴이 순식간에 진지하게 변했다.

그가 말했다.

"말씀하시죠."

"이번에 저희가 빌리고자 하는 건 맹주님의 힘이나, 총군사님의 힘 정도가 아니에요."

"그럼 뭘 원하십니까?"

"무림맹이 공식적으로 직접 나서 주셔야 할 일이에요."

"그건…… 힘듭니다. 죄송하지만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맹주나 총군사인 자신이 사적인 힘을 움직이는 것과 무림맹이 공식적으로 나서는 건 다르다.

비밀리에 진행할 수 없을 뿐더러, 개인의 일을 돕기 위해 무림맹의 힘을 사용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큰 분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힘들다는 위지겸의 말에 백아린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애초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부분이니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공식적으로 나서야 한다면 당연히 거절부터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허나 백아린은 할 말이 있었다.

지금 자신들이 부탁하려고 하는 건 비단 천룡성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말했다.

"제 말을 들으시면 생각이 바뀌실걸요. 이건 움직이지 않으실 수 없는 일이니까요."

확신에 찬 백아린의 말에 멈칫한 위지겸이 잠깐 침묵하다 물었다.

"그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는 일이 뭡니까?"

"저희가 어떤 모종의 세력을 쫓는다는 건 알고 계시죠?"

"예, 압니다."

그들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천룡성이 뒤쫓고 있다는 건 곧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 수 있는 위험한 자들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천도의 맹약을 떠나 그들을 도왔던 맹주와 위지겸이다.

백아린이 말했다.

"그들을 쫓다가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어요. 그들이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납치한다는 걸요."

"납치요?"

위지겸이 떨떠름한 얼굴로 되물었다.

납치라니? 부모를 잃은 그 불쌍한 어린아이들을 납치해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백아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말했다.

"네, 그리고 그들은 고아들을 자신들이 만드는 독을 실험하는 데 사용하고 있고요."

"그 무슨……!"

믿을 수 없는 말에 위지겸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말아 쥔 채로 벌떡 일어났다. 허나 그는 이내 들끓는 감정을 힘겹게 추스르며 물었다.

"……납치된 아이들의 숫자가 얼마쯤 됩니까?"

"장부에 적힌 것만 봐도 십몇 년 정도가 쌓인 기록이긴 하지만 수천 명 이상이었어요. 만약 우리가 알아낸 곳 말고도 또 다른 장소가 있다면 그 숫자는 곱절 이상이 될지도 모르죠."

최소 수천에서 몇 만이 될지도 모르는 고아들의 실종.

한마디로 대략 일 년에 천 명 이상의 아이들이 납치됐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잔혹한 실험의 대상으로 쓰이기 위해서 말이다.

숫자가 적었다고 해도 그냥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 숫자가 수천에서 수만이 될지도 모른다니…… 실로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털썩.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던 그가 이번에는 오히려 다리에 힘이 풀린 것처럼 주저앉아 버렸다. 의자에 기댄 채로 그는 한참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리가 복잡했고, 화가 치밀었다.

위지겸은 냉정하기 위해 애썼다.

이런 때일수록 총군사인 자신이 침착해야 한다 여겼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그는 최대한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희에게 원하시는 게 뭡니까?"

"저희와 함께 움직여 줄 이들이 필요해요. 숫자는 꽤 있었으면 좋겠어요. 공식적인 임무고요."

"그들을 찾아서 일망타진할 별동대를 원하시는 겁니까?"

"네, 정확히 말하자면 신원이 확실한 이들의 눈이 필요해요. 그들의 거점으로 의심되는 곳은 이미 발견했어요. 하지만 저희만 움직이는 건 급한 불을 끄는 용도밖에 되지 않아요."

잠시 숨을 돌린 백아린은 별동대를 조직해서 움직여야 하는 이유를 계속해서 설명해 나갔다.

"이 일이 세상에 알려져야 하고, 그렇게 해서 다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만들어야 해요. 그러려면 인원이 좀 있어야 증거를 찾고, 확실하게 뿌리를 뽑기에도 훨씬 용이하고요."

"……한마디로 무림맹의 이름으로 그들을 찾아내서 벌하고, 세상에 이 같은 이들이 있다는 걸 알리시겠다는 말이군요."

"네, 맞아요."

백아린의 말을 들으며 위지겸은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 그녀의 말은 타당한 이야기들이었다.

정말로 거점이 한 군데뿐이라면 모를까 다른 어딘가가 또 있다면 그곳을 찾기 위해서는 다른 무인들도 움직여야 한다.

그 모든 일을 천룡성과 백아린 일행만이 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일을 크게 벌여서 무림맹의 이름으로 해결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고, 약자를 돕고 불의와 싸운다는 그 명분 자체가 무림맹의 설립 취지와도 들어맞았다.

백아린의 말대로 이것은 무림맹이 전면에 나서야 할 일.

그가 물었다.

"의심되는 장소가 어딥니까?"

"광서성이에요. 그런데 별동대가 움직일 때 그곳으로 간다고 하면 그들이 눈치를 챌 수도 있어요. 시선을 속일 뭔가가 필요해요."

"……."

위지겸의 머리로 많은 생각들이 스쳐 갔다.

별동대의 구성부터 해서, 그들의 이목을 속일 수 있는 방법까지.

사실 애초부터 하나의 단체를 뚝 떼서 별동대로 파견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건 지금 상황에 맞지 않다.

이미 있는 하나의 단체에 천무진과 백아린 둘을 갑자기 투입한다는 것 자체가 뭔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아예 처음부터 사람들을 뒤섞어 하나의 별동대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인데…….

허나 위지겸은 고민을 접었다.

지금 당장은 그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

위지겸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두 명을 바라봤다.

천무진과 백아린은 그의 대답을 기다리며 자리하고 있었다.

위지겸이 이내 입을 열었다.

"별동대 건을 맹주님께 바로 보고 올리겠습니다."

* * *

이지강(李志崗).

무림맹 소속이자 점창파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로 쾌검의 달인이다.

오십의 나이로 한참 정정한 그는 날렵한 쾌검을 구사하는 것과 어울리게 다소 마른 체형에, 날카로운 인상을 풍기는 사내였다.

맹주파의 사람이기도 한 그는 지금 연락을 받고 어딘가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지강에게 갑작스레 날아든 맹주의 명령.

그 명령은 다름 아닌 일정에 맞춰 운남성으로 떠날 채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원래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었기에 그 연락은 그리 대수로운 건 아니었다.

새외 세력으로 인해 분쟁이 잦아진 운남성으로 무림맹은 몇 차례 병력을 파견하곤 했다. 그랬기에 지금처럼 무인들을 꾸려 나가는 건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이상한 건 이번 일정에 동행할 병력에 관해서는 아직 뽑지 말고 함구하라는 것과, 밤 시간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 뒀다는 점이다.

떠나는 자신을 위한 송별회라고 하기에는 뭔가 너무 은밀한 만남이었기에 이지강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무림맹 내부에 있는 자그마한 장소.

그곳을 가는 길은 밤이 늦었다고는 하지만 그 누구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이지강은 직감할 수 있었다.

‘맹주님께서 손을 쓰신 모양이로군.’

맹주가 오늘 이 만남을 누군가에게 드러내지 않고 싶어 한다는 걸 이지강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궁금해하면서 그는 빠르게 약속 장소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내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두 명의 사내가 있었다.

한 명은 총군사 위지겸이었고, 나머지 인물은 바로 무림맹의 맹주인 추자후였다.

내부로 들어선 이지강은 곧바로 추자후를 향해 예를 갖췄다. 한쪽 무릎을 꿇으며 그가 절도 있는 인사를 건넸다.

"맹주님께 인사드립니다."

"거참, 사람도. 아무도 없는데 뭘 그리 깍듯이 하는가. 적당히 좀 하라니까."

추자후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딱 부러지게 말했다.

"그럴 순 없지요. 전 앞에서나 뒤에서나 똑같은 걸 좋아합니다."

무척이나 예의가 바른 성격답게 오랫동안 추자후를 모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 번도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이지강을 추자후 또한 무척이나 아꼈다.

빈 의자로 다가온 그가 자리에 앉아서 물었다.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어쩐 일로 오라고 하신 겁니까? 그리고 운남성으로 갈 인원은 왜 뽑지 말고 대기를 하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제 수하들 위주로 하면 금방 정리가 될 텐데요."

"자네 수하들은 남쪽 지리에 능통하지 않은가. 그래서 안 되네. 거기다가 이번엔 좀 여러 무리들이 뒤섞여서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운남성으로 가는데 남쪽 지리에 능숙해서 안 된다니. 그의 질문에 추자후가 말을 이었다.

"대내외적으로 이번에 출발하는 이들은 평소처럼 운남성의 분쟁 지역을 도우러 가는 걸로 되어 있지만 사실 우리의 목적지는 그곳이 아닐세. 바로 광서성이지."

광서성은 운남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지역이다.

거리상으로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왜 지금 굳이 광서성으로 병력을 움직인단 말인가?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지강에게 추자후가 말을 이었다.

"자네가 해야 할 일은 운남으로 가는 척하면서 교묘하게 광서성으로 방향을 틀어 움직이는 일일세. 그리고 그 사실이 최대한 늦게까지 드러나지 않도록 잘 조절해야 하네."

"제가 해야 하는 일이 뭡니까?"

이지강은 추자후를 믿었다.

그랬기에 왜 그래야 하냐는 질문보다, 무엇을 해야 하냐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의 물음에 추자후가 막 답을 내리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뒤편에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이윽고 바깥에서 누군가가 걸어 들어왔다.

자리에 앉아 있던 이지강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누구냐?"

말과 함께 이지강이 슬그머니 검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대답 여부에 따라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상대를 베기라도 할 것 같은 기세였다.

순간 추자후가 손을 들어 그를 저지했다.

"그만하게."

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처음 보는 젊은 사내였다. 전혀 본 적이 없는 이였기에 이지강은 계속해서 방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가 물었다.

"맹주님의 손님이십니까?"

이지강의 질문에 추자후가 짧게 답했다.

"천룡성에서 오신 분일세."

그 한 마디에 검을 잡고 있던 이지강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무림에 몸담은 이에게 천룡성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힘은 그만큼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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