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십천야(十天夜) ― 맞구나 (1)
당문추와 그를 따랐던 최측근 모두가 제압당한 채로 마차 옆에 일렬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혈도를 점혈당하고 있어 입을 열 수도 없었고,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천무진이 파 놓은 함정에 빠져 결국 오랫동안 감춰 놨던 추악한 속내를 드러내고야 만 당문추.
그는 이 싸움으로 인해 모든 걸 잃고야 말았다.
다른 것도 아닌 혈육까지 죽이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 이상 그의 몰락은 너무도 당연했다.
곧장 이들을 끌고 사천당문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조사단을 기다리는 건 확실히 이 일을 매듭짓기 위해서였다.
이들만 끌고 돌아간다면 당문추가 또 어떤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할지 몰랐으니까.
그랬기에 당소련은 마차를 끌고 왔던 마부에게 지금 상황에 대해 그대로 보고하라며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서찰을 건넸다.
마부는 곧바로 사천당문으로 갔고, 서찰이 전해지는 즉시 조사단이 이곳으로 올 것이다. 조사단이 오면 당문추가 이곳에서 벌인 일을 확인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게다.
싸움의 흔적과 당문추가 사용하는 암기들.
거기에 증인이 되어 줄 당문추 쪽 사람들까지.
여태까지 모아 놓은 증거들과 지금의 이 상황까지 합쳐지면 당문추는 빠져나갈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사천당문의 조사단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천무진이 마차 옆에 잡혀 있는 당문추를 향해 다가갔다.
마차 옆에 서 있던 백아린과 당소련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천무진이 당문추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놈 좀 잠깐 빌려 가도록 하죠."
"지금요?"
"알고 싶은 게 좀 있어서 말입니다."
"곧 조사단이 도착할 테고 그들을 통해 알아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은데……."
괜한 문제가 생길 것이 걱정인지 당소련이 조심스레 말꼬리를 흐렸다. 그런 그녀를 향해 천무진이 말을 이었다.
"사천당문과 별개로 제 개인적인 용무라서요."
천무진의 말에 당소련이 슬쩍 백아린을 바라봤다.
사실 그녀는 천무진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줬고, 그 이후로도 당문추를 막아 내는 데 일등 공신인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체도 모르는 사람을 막연하게 믿을 순 없는 노릇이다.
당소련이 보내는 시선의 의미를 알았는지 백아린이 말했다.
"믿어도 될 분이에요. 적화신루의 이름을 걸죠."
신분이 확실한 백아린의 대답을 듣고서야 당소련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총관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저도 믿죠. 큰 신세를 지기도 했고요."
뒤에서 당문추 일행을 쓸어버리는 천무진의 무위를 두 눈으로 직접 본 당소련이다. 오랜 시간 무림에 몸담아 왔던 그녀에게도 큰 충격을 줬을 정도의 실력.
온 무림을 뒤져도 이 정도의 실력자를 찾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닐 게다.
죽립을 쓰고 있어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분명 자신이 아는 무림의 이름난 최고수 중 하나일 거라 판단했다.
물론 그렇게 보기에는 목소리나 이런저런 부분에서 너무 젊다는 느낌을 풍겼지만.
당문추를 향해 성큼 다가간 천무진이 곧바로 그를 어깨에 둘러업었다.
"허락을 받았으니 잠시 빌리겠습니다."
비밀리에 나눠야 할 대화였기에 천무진은 당문추를 짊어진 채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그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떨어진 곳에 이르러서야 발걸음을 멈췄다.
천무진이 아무렇지 않게 그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몸과 입은 움직일 수 없었지만 정신은 멀쩡한 상태였다. 그랬기에 당문추는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천무진을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씹어 먹을 것처럼 무섭게 노려보는 당문추의 시선에 천무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잔뜩 화가 난 모양이네? 허기야 그동안 쌓아 왔던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는데 아무렇지 않으면 그게 이상하겠지."
말을 마친 천무진이 잠시 그를 내려다보다 이내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
"아 참, 혈도를 풀어 줘야 대답을 하겠군."
말과 함께 천무진은 당문추의 아혈을 풀어 줬다.
덕분에 그는 움직일 순 없었지만 말을 하는 건 가능해졌다.
바닥에 누워 있는 덕분에 그는 어둠 속에서도 천무진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처음 나타날 때 보긴 했지만 이렇게 더욱 또렷하게 보니 다시금 의문이 맴돌았다.
이 얼굴……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대체 그 무공은 무엇이란 말인가?
무림에서 알아주는 고수인 자신이 마치 어린아이라도 된 것처럼 그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 말도 안 되는 실력 차.
당문추가 입을 열었다.
"무림에서 너 같은 놈을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다. 뭐하는 자인가?"
막혀 있던 아혈이 풀린 직후라 그런지 그에게서 가래 끓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에게 누구냐고 묻는 당문추를 향해 천무진이 대꾸했다.
"네 질문을 받고 싶어서 아혈을 풀어 준 게 아니야. 내가 듣고 싶은 게 있는 것뿐이지."
"……넌 지금 실수를 하는 거다. 당소련에게서 무엇을 받기로 하고 손을 잡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날 건드린 대가로 넌 죽을 테니까."
말을 내뱉으며 당문추가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확신 가득한 목소리.
그걸 듣고 있던 천무진이 이내 입을 열었다.
"네 뒤에 있는 그들이 그리도 대단한가 보지?"
천무진의 그 한마디에 당문추가 움찔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뒤에 있는 그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런데 처음 보는 자가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당황했지만 당문추는 애써 태연한 척 말을 꺼냈다.
"……내 뒤에 있는 그들이라니?"
"발뺌이라도 할 생각인가 본데, 그러기엔 네 생각보다 내가 아는 것이 많거든. 그놈들이랑 십수 년이 넘게 지독한 악연으로 얽혀 있어서 말이야."
"미친 자식. 무슨 헛소리야? 도통 무슨 소린지……."
쾅!
벼락처럼 뽑혀진 천무진의 검이 당문추의 볼을 스치고 지나가며 땅에 박혔다.
주르륵.
얇은 실에 베인 것 같은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순간 놀랐지만 당문추는 애써 놀란 감정을 추슬렀다.
땅에 박아 넣은 검을 쥐면서 덩달아 낮춰진 천무진의 몸.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댄 채로 검을 쥐고 있던 그가 누워 있는 당문추를 향해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주먹 두어 개 정도 들어갈 만큼 좁혀진 두 사람의 얼굴.
두 눈동자에서 꿈틀거리는 살기를 느껴서인지 점혈을 당해 움직이지 못하는 와중에서도 당문추는 자신의 손이 떨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마주하고 있는 천무진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살기는 치명적이었다.
얼굴을 들이민 그가 입을 열었다.
"어디서 되도 않는 말장난이야? 고작 네깟 놈 하나를 잡으려고 내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나. 애초부터 내가 잡으려는 건 너 따위가 아니라…… 네 뒤에 있는 그놈들이다."
"……."
천무진의 말에 당문추는 침묵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며 알아 버렸다. 지금 자신을 잡고 있는 이 사내는 확실하지 않은 걸로 떠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고, 또한 자신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도 이미 아는 게 분명했다.
허나…….
"크, 크크크!"
당문추가 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의 행동에 천무진이 맘에 안 든다는 듯 표정을 살짝 찡그릴 때였다.
"그래서? 나한테 묻고 싶은 게 뭔데? 그런데 이거 어쩌나. 난 아는 것이 별로 없는데."
마치 이거 어쩌냐며 놀리는 듯한 말투.
천무진을 도발하려 했던 당문추, 그렇지만 아쉽게도 그런 그의 계획은 먹히지 않았다.
천무진이 손으로 당문추의 턱을 움켜쥐고는 오히려 조롱하듯 말했다.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 애초에 너한테서는 그리 큰 걸 바라지도 않았어. 너 같이 별 볼 일 없는 자에게 자신들의 실체를 드러낼 정도로 어수룩한 놈들이 아니거든."
그 수법이 어땠든 간에 천룡성의 무인인 자신을 십수 년이 넘게 꼭두각시로 만들어 버린 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아무에게나 자신들의 본모습을 보였을 리가 없다.
하물며 겨우 이런 작자에게 중요한 비밀을 드러냈을 그들이 아니다.
천무진의 말에 당문추의 미간이 부들부들 떨렸다.
뭐라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의 말이 맞았다. 그들에 대해 뭔가 이야기할 만한 것 자체가 없었고, 그 말은 곧 상대의 말대로 자신은 하찮은 잔챙이라는 걸 증명하는 꼴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그저 엄청난 힘을 가졌다는 사실과 중원 곳곳에 그들의 사람들이 퍼져 있다는 것 정도만이 당문추가 아는 전부였다.
허나 그 정도야 천무진 또한 이미 당연히 추측하고 있던 바.
천무진이 물었다.
"네가 그들에 대해 아는 건 아마 없을 거야. 있어 봤자 거짓이거나, 아니면 나 또한 짐작하고 있을 별 볼 일 없는 사실이겠지. 그러니 난 너한테 그들에 대해 물을 생각이 없어. 너에게 묻고 싶은 건 단 하나."
쓰러져 있는 당문추와 잠시 시선을 맞추고 있던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들이 너에게 시킨 것이 뭐냐는 거지."
당문추에게서 알아야 할 건 그것이었다.
그들이 당문추에게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걸 통해 그들의 목적을 알고자 했다. 그래야만 그들의 진짜 정체에 한발 다가갈 수 있었으니까.
천무진의 말에 당문추가 실소를 흘리며 대꾸했다.
"모든 걸 망친 네게 내가 뭔가를 이야기해 줄 거라 생각했더냐?"
"하게 될 거야. 그 입 어떻게든 열게 만들 생각이거든."
"고문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필요하다면 그 이상이라도 얼마든지."
어떻게든 그 답을 받아 내겠다는 듯 뜨거운 시선을 보내오는 천무진을 바라보던 당문추가 대답했다.
"좋아, 말해 주지."
생각지도 못한 순순한 반응.
천무진이 오히려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뭐야? 이렇게 쉽게 말해 줄 거라 생각 못 했는데."
"맞아. 사실 네 질문에 어떤 대답도 해 주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이 질문이 네가 묻고자 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너무 상관이 없을 것 같아서."
"상관이 없다고?"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되묻는 천무진을 향해 당문추가 답했다.
"그들이 내게 바란 건 하나였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 아, 종종 필요하면 사천당문의 독을 대 주기도 했지. 그건 너도 알고 있을 거 같은데."
"……그게 다야?"
"아마도?"
말을 하며 입가에 실소를 머금은 당문추를 바라보던 천무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애초에 많은 걸 알지 못할 거라 여겼다. 그랬기에 그가 한 일을 바탕으로 그들의 목적을 어느 정도 알아보려 했지만…….
‘쉽진 않겠군.’
생각보다 알아낸 것이 너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예 소득이 없는 건 아니다.
사천당문에 뻗쳐 있던 마수를 일차적으로 걷어 냈고, 그들의 목적이 당문추가 원하는 것과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까.
이후의 것들은 조사를 통해 보다 많은 걸 알아내야 했다. 어차피 사천당문으로 잡혀간 이후에도 당문추는 계속 심문을 받을 것이고, 그걸 통해 또 다른 뭔가를 알아낼 수도 있다.
천무진은 멀리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며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사천당문의 조사단이 도착한 모양이다.
천무진이 바닥에 누워 있는 당문추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헤어질 시간이 된 것 같네. 하지만 이대로 끝이라고는 생각하지 말라고. 널 계속 쥐어짜서 하나라도 더 알아낼 계획이거든."
"……그 재수 없는 상판대기는 그만 봤으면 좋겠는데."
자신의 모든 계획을 망친 정체불명의 주범 두 명 중 하나.
볼 때마다 부아가 치밀 것이다.
쌓아 온 모든 걸 잃었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순 없지만 적어도 그 미래가 잿빛일 거라는 건 분명했다.
지금은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 당문추의 입장에선 하늘이 무너진 것이나 진배없었다.
당문추의 말을 들으며 천무진은 천천히 손가락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 내공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혈을 제압하기 위해 가볍게 지공을 쏘아 내려는 것이다. 그렇게 손가락으로 당문추를 겨눈 채 천무진이 대답했다.
"안타깝게도 네 바람은 들어주지 못할 것 같네. 난 네가 죽을 때까지 괴롭혀 줄 생각이거든."
* * *
다시 혈도를 제압한 당문추를 당소련에게 인도한 직후 천무진은 백아린과 함께 빠르게 모습을 감췄다. 그곳에서 많은 이들에게 노출되고 싶지는 않았던 탓이다.
그렇게 곧바로 거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두 사람은 나란히 걷고 있었다.
꽤나 긴 시간 얼굴을 가리고 있었던 탓에 답답했는지 백아린은 죽립을 풀고는 밤바람과 마주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꽤나 긴 이틀이었네요."
사공량에게 납치를 당했다가 당소련을 구해 냈고, 그 이후엔 가짜 당율을 연기하며 사천당문 내에서 해선 안 될 일을 벌여 대던 당문추를 잡아냈다.
하나하나가 꽤나 큰 사건들이었는데 고작 이틀 안에 이 모든 것들이 일어났다.
정신없이 휘몰아친 사건들.
덕분에 백아린은 상당히 피곤했다.
그녀가 걷는 와중에 길게 기지개를 펴며 소리를 토해 냈다.
"으으."
"입 닫아. 벌레 들어가겠다."
"아, 이런. 아무리 배고파도 그건 좀 별로네요."
말도 안 되는 천무진의 농담을 백아린이 웃으며 받아 줬다.
그녀의 대답에 천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하루 종일 뭐 하나 먹지 못하고 바삐 움직여야만 했다. 제대로 잠도 못 자는 와중에, 식사조차 챙기지 못할 정도의 상황들이 벌어졌으니까.
그걸 알기에 천무진이 진심을 담아 백아린에게 말했다.
"고생했어."
"고생은요. 하루 종일 시체처럼 누워 있던 건 당신이잖아요."
"지루하긴 했지만 잠은 잤으니까. 그쪽은 잠도 못 잤잖아."
"겨우 하루인데요, 뭘."
"슬슬 그냥 써먹기에 미안할 정도인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백아린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천무진이다.
오래된 천도의 맹약과, 정보 단체로서 얻을 수 있는 이득 때문에 도와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생각보다 더 큰 조력자가 되어 주고 있었으니까.
천무진의 말에 백아린이 곧장 답했다.
"미안하면 성의를 보이시면 되죠."
"성의? 어떻게 보여 주면 되는데?"
"정보 단체한테 성의라면 이거 아니겠어요?"
손가락을 말아 엽전 모양을 취한 그녀의 모습에 천무진이 픽 웃음을 터트렸다. 생긴 것과 어울리지 않는 행동에 웃어 버리고야 만 것이다.
웃는 천무진을 바라보며 마찬가지로 미소를 짓고 있던 백아린이 이내 뭔가 생각이 났는지 양 손바닥을 마주쳤다.
"아, 말이 나와서 그러는데 적화신루에 잠시 다녀와야 해서 며칠 정도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아요."
"왜? 무슨 일 있어?"
"별건 아니고, 원래 주기적으로 총회가 있는데 거기에 참석해야 하거든요. 부총관과 같이 다녀올게요."
"얼마나 걸리는데?"
"음 거리가 좀 있으니…… 열흘 정도?"
"생각보다 기네."
"열흘 동안 혼자 잘 지낼 수 있죠?"
"내가 애야?"
천무진은 장난스럽게 말하는 백아린을 가볍게 흘겨봤다.
그런 그를 향해 백아린이 말했다.
"중요한 시기니까 최대한 빨리 다녀올게요. 그간 혹시 급한 의뢰가 있으면 연락하실 수 있도록 적화신루 쪽 사람도 하나 붙여 두고 가니 그 자를 통해 전하시면 돼요."
"알았어. 필요한 의뢰는 그쪽을 통해서 하지. 그래서 언제 가는데?"
"내일 바로요."
"그렇게 빨리?"
"네, 이왕이면 서둘러 매듭짓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며칠 안에 무림맹에서 저희 거처에 갇혀 있는 자들에 대한 처분 결과도 연락이 올 거예요."
현재 천룡성의 비밀 거점에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갇혀 있다. 그중에 개인적 용무로 잡아 온 양휴를 제외하고는 슬슬 처리를 할 때가 온 것이다.
천무진이 불만스레 말했다.
"왠지 나한테 귀찮은 일을 떠맡기고 도망치는 거 같은데……."
"설마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실실 웃으며 대답하는 백아린을 보며 천무진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를 향해 백아린이 말했다.
"어쨌든 저 없는 열흘 동안 잘 지내고 계세요."
그런 그녀의 말에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별일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