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잔꾀 ― 드시지요 (2)
엽차에 독이 든 걸 확인하는 순간 백아린의 표정은 복잡했다.
독에 당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걸 어쩌지.’
오히려 그 반대였다.
순간적으로 밀려드는 독기를 이미 날려 버린 상황.
백아린은 아직 입가에 대고 있던 엽차가 든 잔을 어째야 하나 손가락으로 어루만지고만 있었다.
몸 안으로 독이 파고드는 순간 이미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 파악한 그녀였다.
마비산의 일종으로, 어지간한 무인들에게는 곧바로 효과가 나타날 정도로 제법 강한 독성을 지녔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상대가 좋지 못했다.
독에 대한 뛰어난 내성과, 강인한 내공을 지닌 그녀에게는 이 정도 독은 너무도 가볍게 날려 버릴 능력이 있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오히려 이 독에 억지로 당해 줘야 하는 건가 하는 고민이 들고 있다는 것이다.
상대가 누군지 모른다.
왜 자신이 마시는 엽차에 독을 탄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자신에게 어떠한 이유가 있어 이 같은 일을 벌였다는 것.
얼굴을 최대한 감추며 일을 진행했으니 정체가 드러났을 확률은 아주 미미한 상황. 하지만 그럼에도 만약 들통이 났고,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고 움직인 거라면…… 분명 이건 기회였다.
생각을 정리한 백아린은 의심을 받지 않도록 한 모금 더 엽차를 머금었다.
다시금 몸 안으로 퍼지는 마비산이 아주 조금씩 그 효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 마비산은 곧바로 독성을 쏟아 내기보다는 천천히 몸을 잠식해 가는 부류의 것, 그랬기에 백아린은 모르는 척 엽차 한 잔을 모두 비워 냈다.
곧이어 그녀는 조금씩 표정을 찡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괜스레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기를 펼쳤다.
그러던 백아린의 감각 안에 자신을 향한 시선이 느껴졌다.
미리 들어와 자신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한 무리. 사내 셋으로 구성된 그들이 슬쩍슬쩍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짓을 눈치채자 범인이 누군지는 굳이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
‘독을 탄 건 저놈들인가?’
그제야 백아린은 방금 전 갑자기 왜 술을 안 가져다주냐는 핑계를 대며 주방으로 다가갔던 사내의 행적을 떠올렸다.
아마도 그때 이걸 직접 차에 섞었거나, 객잔 주인에게 그렇게 시킨 것이 분명했다.
범인은 찾아냈지만 진짜 중요한 자라면 이곳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터.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는 법이지.’
생각과 함께 백아린의 손이 탁자 한편에 자리했다. 지금 자신에게 닥친 이 일에 대해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손가락 끝에 조금의 내력을 담아 탁자 한편에 알아보기 힘든 무늬를 남겼다.
자신이 실종된다면 적화신루는 그녀의 흔적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된다면 뭐라도 단서가 될 수 있도록 이곳 객잔에 자그마한 흔적 하나를 남겼다.
적화신루라면 자신이 이 객잔에 왔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낼 테니까.
손가락으로 흔적을 내는 것까지 끝마친 백아린은 괜스레 어지러운 척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늉을 했다. 잠시 비틀거리던 그녀는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쿵.
그녀가 바닥에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탁자에 앉아 있던 사내 세 명이 급히 일어나 백아린 쪽으로 움직였다.
그중 한 사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됐어?"
"당연히 완벽하지. 얼마나 힘들게 구한 물건인데."
슬쩍 백아린의 상태를 확인하던 자가 씩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나머지 한 명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확인됐으면 빨리들 움직이자고."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사내가 곧바로 백아린을 둘러업었고, 나머지 둘은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그사이에 백아린을 업은 자가 구석에 서 있는 객잔 주인을 향해 말했다.
"오래 살고 싶으면 그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그, 그럼요."
객잔 주인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사내가 경고를 하는 그사이 바깥에서는 자그마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객잔 문이 열렸다.
"어이!"
바깥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그는 백아린을 업은 채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객잔의 입구 바로 앞에는 커다란 마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주변의 시선을 완벽히 차단하는 곳에 위치한 마차의 문은 열려져 있었고, 백아린을 업은 사내는 곧바로 안으로 올라탔다.
그리고 바깥에서 주변을 둘러보던 다른 이 또한 급히 몸을 실었다.
두 사내는 이내 마무리가 됐다는 신호를 주려는 듯 가볍게 마차 옆면을 두드렸다.
그러자 마부석에 자리하고 있던 나머지 한 사내가 말고삐를 움켜잡으며 소리쳤다.
"이랴!"
정말 눈 몇 번 깜빡할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진 납치였다.
마차의 한편에 내려놓은 백아린을 힐끔 쳐다보며 사내 하나가 짧은 감탄을 터트렸다.
"크으, 진짜 예쁘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사고 치지 마라."
"뭔 소리야. 그냥 감탄한 것뿐인데."
"아까부터 확 눈이 뒤집혀 가지고 정신을 못 차리던데?"
"인마, 이런 여자를 보고 그 정도 관심이 가는 거야 당연한 거고. 오히려 덤덤한 네가 문제 아니냐?"
시끄럽게 떠드는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눈을 감고 있는 백아린이 둘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다는 사실을.
마차 한구석에 쭈그리고 있는 바람에 그녀는 자세가 무척이나 불편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무림맹에서 움직이다가 나왔기에 대검이 아닌 일반 검을 들고 있었다는 거다.
아마 이 자세에서 대검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보다 몇 곱절은 불편했을 터.
그나마 그게 다행이라 위안 삼고 있었다.
덜컹덜컹.
마차의 바닥 부분에 쓰러져 있었기에 마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백아린의 머리가 연신 바닥에 쿵쿵 부닥쳤다.
마음 같아서야 눈을 뜨고 일어나 단숨에 두 놈을 때려눕히고 편안하게 앉아서 가고 싶었지만…….
백아린은 꾹 참으며 마차에 몸을 맡겼다.
최악의 경우 몇 날 며칠을 이렇게 불편하게 달릴 것까지 각오했던 그녀였는데, 그 예상은 빗나갔다.
고작 한 시진 정도나 됐을까?
열심히 달리던 마차가 점점 속도를 줄이더니, 이내 멈추어 선 것이다. 밤이 늦어 잠을 청하려고 한다기에는 아직 저녁 식사를 할 시간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멈추어 섰으니 백아린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감각을 끌어모았지만 바깥에서는 딱히 다른 누군가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마차의 문이 열렸다.
먼저 마차에서 내린 사내가 곧바로 백아린을 자신의 등에 업었다. 그렇게 어딘가로 이동되어져 가는 그녀는 당황스러웠다.
‘뭐야? 벌써 도착한 거야?’
한 시진이라면 기껏해야 성도 인근이라고 봐야 옳았다.
마차에서 내려졌을 때 인근에서 기척이 느껴지진 않았으니 마을은 아닐 테고,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으니 허허벌판으로 끌고 가는 건 아니다.
아마 다소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자그마한 장원일 공산이 컸다. 그녀의 감각 안으로 수많은 장애물들이 들어왔고, 그걸 통해 얼추 내부의 구조를 파악해 냈다.
그 덕분에 백아린은 지금 이곳이 어딘가의 장원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입구를 넘어서서 조금 더 이동되어져 가던 그녀가 마침내 이른 장소.
끼익, 끽.
낡은 문소리가 들렸고, 이내 퀴퀴한 냄새가 풍겨져 나왔다.
백아린을 등에 진 사내가 걸음을 옮길 때 뒤편에서 다른 자가 말했다.
"대충 던져두고 나와. 약속 시간까지 좀 남았으니 술이나 먹자고."
"오, 술 좋지!"
좋다는 듯 목소리를 높인 사내는 곧바로 백아린을 바닥에 툭 던졌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그녀의 주변으로 먼지가 훅 하고 일었다.
바닥에 떨어졌거늘 생각보다 충격은 크지 않았다.
푹신거리는 지푸라기들이 쌓여 있었던 덕분이다.
백아린을 던져 놓은 상대는 곧바로 바깥으로 걸어 나갔고, 이내 열렸던 문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닫혔다.
바로 그 순간.
죽은 듯 누워 있던 백아린이 번쩍 눈을 치켜떴다.
상반신을 일으켜 세운 그녀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창문 하나 없는 이곳은 깜깜했다.
허나 백아린은 금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미 눈을 뜨기 전부터 예상했던 것처럼 이곳은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창고로 보였다.
쌓여 있는 지푸라기들은 오래돼서인지 만지는 것만으로도 쉽사리 부러졌고, 주변에 대충 놓여 있는 잡동사니들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자리에 앉은 그녀가 턱을 괸 채로 고민에 잠겼다.
‘이게 뭐지, 대체?’
애초부터 마비산을 먹이는 걸 보며 납치는 예상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그 이후의 많은 것들이 예상을 벗어났다.
우선적으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올지 몰랐다. 게다가 자신을 이토록 간단하게 창고에 던져두고 감시조차 붙이지 않을 거라고도 생각지 못했다.
자신이 찾고 있는 그들은 무림맹의 부관주를 아무런 증거도 남지 않게 죽일 정도로 위험하고 치밀한 자들이다.
그런데 지금 이 모든 것들은 그런 그들의 수법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단순했고, 또 모자랐다.
마비산 하나만을 먹여 두고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이런 곳에 두면서, 감시하는 자 하나 없이 술이나 먹으러 가는 이들이 과연 자신이 찾고 있는 그들일까?
백아린은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자신이 적화신루의 총관이라는 것만 알아도 이 정도로 수준 낮은 계략은 짜지 않았을 터.
이들의 모든 행동은 마치 무림맹에 갓 들어온 가짜 신분의 자신에게 맞춰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는 이 모든 상황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백아린은 이내 자신을 납치한 이들이 주고받았던 대화를 떠올렸다.
약속 시간까지 좀 남았다는 말.
그 말은 곧 뭔가가 있을 거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최소한 자신을 건드렸으니, 그 이유는 알아야 했다. 그것이 어떠한 일과 연관이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약 반 시진 정도를 가만히 누워만 있던 그녀는 이내 지루했는지 다시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백아린이 소매를 가볍게 두드리자 기다렸다는 듯 안에서 치치가 빠져나왔다.
바닥에 내려선 치치가 그녀를 올려다봤다.
검지로 가볍게 치치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던 백아린의 시선이 자신이 끌려 들어온 창고의 입구로 향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그대로 이곳에서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을지, 아니면 먼저 이쪽에서 움직일지를.
잠깐 고민했지만 답은 금방 나왔다.
백아린이 소매를 벌리자 나와 있던 치치가 쪼르르 안으로 사라졌다. 치치를 소매 안으로 넣은 그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툭툭.
가볍게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낸 백아린이 슬쩍 위쪽을 올려다봤다.
천장은 제법 높았지만…….
그녀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가만히는 못 있겠네."
말과 함께 그녀의 손바닥이 하늘을 향해 움직였다.
부웅!
백아린의 손에서 뿜어져 나간 장력이 순식간에 지붕의 한 부분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소리도 없이 지붕의 일부분을 날려 버린 그녀는 곧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커다란 나무판자 하나를 챙겼다.
판자가 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세로로 세워 든 백아린은 곧바로 가볍게 땅을 밟으며 허공으로 도약했다.
파악!
새처럼 날아오른 그녀가 지붕 위로 간단하게 착지했다.
백아린은 들고 있던 판자를 구멍 위에 올려 뒀다. 혹시나 상황이 달라지면 창고 내부로 돌아가 마비산에 중독된 연기를 해야 할 수도 있어서다.
지붕 위에서 몸을 낮춘 채로 그녀는 주변을 둘러봤다.
장원의 크기는 크지 않았기에 내부에 건물이라고 해 봤자 창고를 제외하면 두 개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빛이 흘러나오는 곳은 하나.
아마도 저곳에서 자신을 납치한 사내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목적지를 확인한 백아린이 가볍게 몸을 날려 바닥에 착지했다.
그녀의 시선이 불빛이 흘러나오는 건물로 향했다.
‘자 그럼 움직여 볼까.’
생각과 함께 백아린이 성큼성큼 건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납치를 당해 이곳에 온 인물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근방에 도달하자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백아린은 곧바로 벽에 기댄 채로 창을 통해 내부의 모습을 살폈다.
반 시진이 조금 더 지난 상황이지만 이미 이들은 거나하게 술을 마신 듯해 보였다. 커다란 술 항아리가 몇 개는 나뒹굴고 있었고, 안주가 담겼을 접시 또한 상당수가 이미 빈 채로 자리하고 있었다.
딱히 뭔가 의심스러운 건 보이지 않았기에 백아린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계속해서 쉼 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
그렇지만 그 대부분이 의미 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과거 자신의 무용담이나 여자 이야기만 떠들어 댔으니까.
시끄러운 소리를 억지로 참으며 듣던 중, 결국 백아린의 귀를 쫑긋 세울 만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번 일 처음 맡았을 땐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부르기에 의뢰를 한 작자가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직접 보니까 그 가격도 이해가 되네?"
"킥킥, 그러게. 저렇게 곱상한 여자면 그 돈이 안 아깝지."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자신이라는 걸 눈치챈 백아린은 좀 더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금액과 가격이라는 말에 그녀는 자신을 납치하는 대가로 저들이 돈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백아린은 표정을 찡그렸다.
‘예상대로 내가 찾는 놈들이 아닌가 보네.’
적어도 그들이라면 돈을 받고 자신을 납치하지는 않았을 터.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자신이 또 다른 어떠한 귀찮은 일에 연루가 된 모양이다.
저들이 돈 때문에 자신을 납치했다는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구심이 들었다.
찾고 있는 그들이 아니라면 자신을 납치할 이유가 있는 자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지 않아서다.
그때 안에서 떠들어 대던 사내 중 하나가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야 그런데 그놈한테 안 넘기고 저 여자를 우리가 직접 다른 데다 팔면 돈을 더 받지 않겠냐?"
"아서라. 의뢰한 놈도 보통 놈은 아니었어.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안전하게 가자. 납치해 온 여자도 무인이라 잘못하면 시끄러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고 말이야."
"쳇, 아깝네."
아쉽다는 듯 중얼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그 와중에 백아린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을 감지해 냈다.
혹시나 창 쪽으로 다가오면 지붕 위로 몸을 감추려 했지만, 다행히도 그 인기척의 주인은 정문을 통해 방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 안에서 이번 일에 대해 떠들던 사내들 또한 곧 그 기척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쉿."
한 사내가 손가락으로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이내 그들은 방금 전까지 뒤통수치고 싶다며 나누던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을 쏟아 내는 그때 문이 열리며 방 안으로 누군가가 걸어 들어왔다.
상대가 나타나자 방 안에 있던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오셨소?"
친근한 목소리.
벽에 기댄 채로 이야기만 듣고 있던 백아린은 직감할 수 있었다. 지금 나타난 자가 자신을 납치하게 만든 이 정체 모를 의뢰의 당사자라는 걸.
그때 여태까지 듣지 못했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이, 그 여자는?"
들려온 목소리는 분명 세 사내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백아린은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목소리. 들은 적이 있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라는 걸 깨달은 백아린이 조심스레 창을 통해 내부의 모습을 살폈다.
그리고 막 문을 통해 방 안에 나타난 사내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상대는 예상대로 낯이 익은 자였다.
최고의 후기지수들이 모여 있다는 잠룡대의 이름을 연신 떠들어 대며 무림맹 내에서 툭하면 자신에게 치근덕거렸던 사내.
‘……사공량?’
그가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