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왕-37화 (37/293)

37화. 팔(八) ― 찾았어요 (2)

천무진이 찾고 있는 그들이 고아들을 이용해 그 끔찍한 실험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백아린은 이미 한천을 통해 적화신루에 연락을 넣어 둔 상태였다.

최근 십오 년 정도를 기점으로 하여 고아들이 대량으로 사라진 곳과, 그에 관련된 무엇을 찾기 위해서였다.

상황은 무척이나 복잡했고, 또한 혼란스러웠다.

새롭게 알게 된 몇 가지 사실들로 인해 처분해야 할 일들도 꽤나 많았다. 아직까지도 창고에 갇혀 있는 양휴의 처분 또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점혈을 당한 채로 혼절해서 이곳까지 끌려온 탓에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양휴다.

얼굴을 보긴 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보니 이 넓은 중원에서 자신들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자신들을 찾으려 할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유야 어쨌든 그를 감시하고 있던 정체불명의 누군가에게서 구해 준 꼴도 되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양휴를 그냥 내보냈다가는 정체불명 그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리고 아직 양가장에 대한 결론도 나오지 않았기에 아직까지 그를 쭉 창고에 가둬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양가장에 대한 조사와 고아들의 행방, 그리고 추가적으로 금호와 친분이 있는 자들의 최근 행적을 비롯하여 수도 없이 많은 자잘한 것들까지.

적화신루는 천무진에게 큰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

그런 지금 무엇보다 기다리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사천당문에 의뢰한 독과 관련된 정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사천당문에서는 의뢰받은 독과 관련된 조사에 열중이었다.

가주의 딸인 당소련에게 부탁한 소맷자락들로 조사에 열중하고 있는 이는 독선자(毒仙子) 당백이라는 자였다.

나이가 칠십이 훌쩍 넘은 노인으로, 무공 실력은 별로였지만 독에 대한 지식으로는 사천당문 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물이었다.

현재 두 개로 나뉜 사천당문의 세력 다툼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하는 전형적인 학사 같은 인물이었다.

그가 펄펄 끓는 가마솥 앞에서 뭔가를 확인하다가 표정을 확 구겼다.

"에잉! 이것도 아니군그래."

불만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당백은 자신이 준비했던 천 조각을 바닥에 휙 내던졌다.

수백 가지가 넘는 독을 가지고 실험을 해 봤지만 아직까지 소맷자락에 묻어 있는 것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알려져 있는 것들부터 해서 남만의 독들까지.

구할 수 있는 건 모조리 구해서 실험에 열중하고 있는 당백이었다.

그나마 어떻게 죽었는지를 전해 들었고, 그와 비슷한 증상의 독만 추려서 진행을 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많은 종류의 걸 실험해야 했을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삼 일 밤낮을 거의 꼬박 새우다시피 한 그는 무척이나 퀭해 있었다. 주름이 가득한 얼굴은 삼 일 만에 무려 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당백이 죽는소리를 하며 옆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아이고, 늙어서 이게 무슨 고생이냐."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눈은 옆에 놓여 있는 수십여 개의 실험 도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특별한 용액에서부터 해서 다른 독을 만나면 반응하는 특이한 독까지.

열을 가해도 봤고, 오히려 반대로 온도를 떨어트리기도 반복해가며 독의 변화를 감지했다. 거기에 독을 실험해 볼 작은 쥐나 벌레들까지.

백아린이 건네주었던 피와 꿀물이 묻어 있는 소맷자락은 수도 없이 갈가리 찢긴 채로 그 모든 곳에 활용되고 있었다.

당백이 얼마 남지 않은 것들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 정도로 조사를 했는데도 나오지 않을 정도라면 세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독이라는 것인데……."

삼 일 밤낮을 조사하며 알게 된 이 독에 관련한 것.

이 독은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독살을 당하게 되면 그 독의 성분이 몸 안에 남아야 한다. 그런데 쥐를 이용해 실험을 해 본 당백은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신체로 들어간 이후 이 독은 점점 몸 안에서 자취를 감춘다. 아예 아무런 것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죽은 시신을 부검한다고 해도 독살을 당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소리다.

그저 갑자기 비명횡사했다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토록 죽은 이후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조사가 이어져 갈 수 있는 건 기적이었다.

이 독이 아직까지 성분을 유지하고 있는 건, 이것이 옷자락에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몸 안에 들어갔다 나온 핏자국에서는 이미 독성분은 없었다.

꿀물과 함께 옷자락에 뒤엉킨 독, 그것이 있었기에 지금 이토록 조사를 이어 갈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턱을 괸 채로 왔다 갔다 하며 혼잣말을 되뇌었다.

"대체 왜 독성분이 없어진 건지 모르겠군."

쥐에게 소맷자락 조각의 일부를 먹여 보았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쥐는 자는 듯이 숨을 거뒀다.

곧바로 그 쥐의 시신을 이용해 확인해 보았지만 처음엔 그나마 좀 확인되던 독성분도 곧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고민이 길어지고 있는 그때 당백이 있는 그곳으로 제자 한 명이 들어섰다.

"스승님, 식사하셔야죠."

"됐다, 이놈아. 지금 식사가 문제냐."

"연세도 있으신데 자꾸 이렇게 끼니를 거르시면 몸에 탈 나십니다."

제자의 말에도 당백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만 몰두했다.

발걸음을 멈추어 선 그가 옷자락과 죽은 쥐의 시체를 번갈아 바라봤다.

"으으음!"

고민스러운 신음 소리를 토해 내던 그였지만…….

순간 당백이 갑자기 고개를 갸웃했다.

"음?"

며칠 밤을 샌 탓에 피곤함이 가득했던 그의 눈동자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뭔가를 알아낸 듯한 그가 갑자기 품에서 비수 하나를 꺼내어 들었다.

그러고는 이내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손가락을 비수의 끝자락에 가져다 댔다.

쿡.

가볍게 손가락을 찌르자 피가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옆에 서 있던 사내가 놀란 듯 말했다.

"스승님 갑자기 이게 무슨……."

"시끄러우니까 방해 말고 나가 있어!"

버럭 소리친 당백이 곧바로 손가락에 생긴 상처 옆을 꾸욱 눌러 피를 맺히게 하고는 이내 찢겨져 있는 옷자락 중 하나에 그걸 뚝뚝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그런 당백의 모습을 바라보던 제자는 이내 못 말리겠다는 듯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제자가 사라지고도 한참 자신의 피를 떨어트린 옷자락을 바라보던 당백이 이내 시간이 됐다 생각했는지 서둘러 그걸 쥐에게 먹일 음식 사이에 섞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통 안에 있는 쥐에게 음식을 넣어 줬다. 허기가 졌는지 순식간에 쥐는 자신에게 준 음식을 깨끗하게 비웠다.

통 안에 든 쥐를 당백은 계속해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당백의 눈동자는 기대에 가득 차 있었고, 이내 그가 주먹을 불끈 쥔 채로 소리쳤다.

"이거다!"

독의 정체를 파악해 냈는지 그의 얼굴엔 환희가 가득했다.

"이런 젠장, 이걸 왜 이제야!"

분하다는 듯 소리치고는 있었지만 얼굴에는 만족스러움이 가득했다. 일반적인 상식선에 있지 않은 독의 특징, 그랬기에 한 번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 독은 놀랍게도 피와 만나면 점점 그 독성을 잃었다.

처음 몸에 흡수되는 순간에는 장기에 스며들며 숨을 앗아 가지만, 그 이후에 피와 섞이면서 독성이 없어지는 것이다.

무척이나 독특한 특징을 지녔지만 놀랍게도 당백은 이런 종류의 독을 하나 알고 있었다.

혈린만혼산(血燐萬魂散).

그리고 이 독은…… 사천당문의 것이었다.

극비의 독인 데다가 만드는 과정 또한 위험하기에 사천당문 내에서도 금기로 분류되는 독이다. 세가 내에서도 아주 극소수만이 그 존재를 알고 있는 독으로, 정말 일부만이 비밀 창고에서 보관되고 있다 들었다.

혈린만혼산으로 의심된다는 사실을 깨닫자 당백은 당장에 자신의 조사가 맞았는지 미칠 듯이 궁금해졌다.

그가 미소 가득한 얼굴로 옆에 벗어 두었던 겉옷을 챙겨 입었다.

"가 봐야겠어."

당백 또한 직접 혈린만혼산을 본 적은 없었기에 어떻게든 자신이 가진 이 의문의 해답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막 몸을 돌린 그가 걸어 나가려고 할 때였다. 문을 넘어서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이는 육십 대 후반이었지만 그 나이대로 보이지 않는 커다랗고 건강해 보이는 풍채와 무인다운 얼굴. 짧게 기른 수염은 그를 더욱 강인하고 사내다운 느낌을 풍기게 만들었다.

당소련이 견제하는 인물이자 현재 약해진 가주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당문추였다.

그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당백을 향해 말을 걸었다.

"형님, 어딜 그리 급히 가십니까?"

친형은 아니었지만 당씨 성을 지닌 친족 관계였고, 또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 왔기에 당문추는 당백을 항상 형님이라 불러 왔다.

친근하게 다가서는 그를 발견한 당백이 화색을 띠며 말했다.

"마침 잘 만났군! 내 급히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금장전(禁藏殿)의 문을 좀 열어 주게나."

"금장전을요?"

금장전은 사천당문 내에서 출입이 금지된 장소였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몇몇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당문추였다.

되묻는 당문추를 향해 당백이 칭찬을 받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

"아주 재미있는 녀석을 찾았거든."

"재미있는 녀석이라 하시면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뭐겠어! 당연히 독이지. 소련이의 부탁으로 독의 성분을 하나 조사했는데 이 녀석이 말이야, 혈린만혼산과 너무도 비슷하더군. 그 독이 혈린만혼산인지, 아니면 비슷한 다른 뭔지 확인을 해 봐야겠단 말이지."

유쾌한 목소리로 떠들며 당백은 당장이라도 금장전으로 가겠다는 듯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그가 막 문가 근처에 도착할 무렵이었다.

당백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금장전에 혈린만혼산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르겠군. 좀 남아 있으면 좋……."

목소리를 이어 가던 당백이 움찔했다.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고, 그곳에는 가슴 옆쪽으로 틀어박힌 단검의 손잡이가 보였다.

퓻 하고 피가 터져 나오는 그 순간 당백이 천천히 뒤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당문추가 있었다.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지 당백의 목소리가 떨려 왔다.

"무, 문추 네 이놈 이게 무슨……."

더듬거리는 그를 향해 당문추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쓸데없는 걸 아셨습니다, 형님."

말과 함께 당문추는 가슴 옆으로 박은 단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잡았다. 놀란 당백이 뭔가 더 말을 이으려고 하는 그때였다.

텁!

소리를 지를 것에 대비하기 위해서 당문추의 커다란 손바닥이 당백의 입을 틀어막았다.

당문추가 입꼬리를 비튼 채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나대지 좀 말고 얌전히 있으라니까."

말과 함께 박혔던 단검을 뽑아 든 당문추는 곧바로 그걸 정면에서 심장이 있는 부근에 가져다 댔다.

독에 대한 지식은 뛰어났지만 무공 실력은 별반 뛰어나지 못한 당백이었기에, 당문추의 손에 잡혀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로 눈을 크게 치켜뜰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향해 당문추가 말했다.

"편안히 가쇼, 형님."

푹푹푹!

당문추의 손에 들린 단검이 연달아 세 번 그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심장을 찔린 당백은 즉사했다.

세 번이나 찌르고도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당문추는 당백의 숨이 멎었는지까지 확인하고는 이내 죽었다는 확신이 들자 그제야 박아 둔 단검을 뽑아 들었다.

당백을 죽인 당문추는 품에서 미리 준비해 온 천을 꺼내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았다. 거리가 지척이었기에 행색이 꽤나 엉망이었다.

피가 묻은 천을 품속에 다시 넣은 그가 불만스러운 듯 투덜거렸다.

"칫, 쓸데없는 일을 만드는군그래."

지금의 이 피 묻은 행색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돌아가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당백의 거처가 세가의 외곽에 위치해 있었고, 항상 연구에 몰두하는 탓에 인근에 사람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피 묻은 옷을 감추기 위해 옆에 놓여 있는 장포를 대충 휘감은 그가 탁자 한쪽에 놓여 있던 백아린이 의뢰를 위해 건네준 소맷자락들을 모두 쥐고는 그대로 불타고 있는 아궁이 안에 던져 넣었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증거물을 바라보던 당문추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그가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내 조카가 점점 죽어야 할 이유를 하나씩 더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이거 어쩝니까, 형님."

사천당문이 발칵 뒤집혔다.

세가 내에서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다른 이도 아닌 가장 윗배분에 있는 세가의 어른이자, 많은 지식을 자랑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당백이 죽은 것이다.

그것도 암살자에 의해서.

아무도 왜 당백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됐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명, 그의 죽음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당소련이었다.

백아린이 부탁한 의뢰를 당백에게 맡겼고, 그랬던 그가 갑자기 죽었다.

이게 우연일 리가 없지 않은가.

거기다가 자신이 건네줬던 소맷자락들 또한 모조리 사라졌다. 그러한 사실이 자신의 의심이 결코 틀리지 않음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당백을 죽인 이유는 바로 이 조사를 막기 위함이리라.

갑자기 벌어진 이 상황에 당소련은 우선 자신을 찾아온 적화신루의 사람을 통해 백아린에게 연락을 넣었고, 곧바로 약속을 잡았다.

워낙 다급한 사안인지라 두 사람의 만남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약속 장소인 외곽에 위치한 조그마한 객잔.

오늘은 저번과 달리 백아린이 먼저 와서 자리하고 있었다.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당소련이 자리하고 있는 백아린을 보고는 인사를 건넸다.

"조금 늦었죠? 미안해요. 워낙 큰일이 벌어진지라 자리를 비우는 게 쉽지 않아서요."

"괜찮아요. 소식은 이미 전해 들었어요.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바랍니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죽립을 쓰고 있는 백아린은 먼저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했다.

짧은 인사말을 주고받은 당소련은 곧바로 백아린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런 그녀를 향해 백아린이 곧장 물었다.

"소맷자락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네, 그거 때문에 뵙자고 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증거품을 그렇게 잃게 될 줄은……."

"증거품을 없앤 걸 보면 이번 살인의 범인은 그 일에 관련된 자로 보여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혹시 살인 현장에서 증거가 될 만한 뭔가는 없었을까요?"

"아쉽게도요."

당소련이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받았고, 백아린 또한 그리 쉽게 일이 풀릴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마친 당소련은 못내 괴로운지 표정을 구겼다.

당백이 죽었다는 사실에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삼촌뻘인 그는 어릴 때부터 그녀를 자주 챙겨 주곤 했었다.

당백과 얽힌 여러 가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토록 가까웠던 당백이 자신의 부탁 때문에 죽었거늘, 그런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아무런 것도 없었다.

그 사실이 당소련을 못내 힘들게 만들었다.

그녀가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범인을 찾아낼 수도 없고, 독에 대한 단서도 모두 잃어버렸고요. 방법이 모두 사라져 버렸어요."

괴로움 가득한 한탄을 듣고 있던 백아린이 그 순간 입을 열었다.

"……포기는 아직 일러요."

확률이 희박하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지만 백아린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그녀가 말했다.

"부탁 하나만 할게요."

자신을 향해 시선을 건네는 당소련을 향해 백아린이 말을 이었다.

"제가 직접 그분이 돌아가신 곳을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