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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6화 (26/293)

26화. 소개 - 누굽니까 (2)

말을 마친 방건은 한달음에 동생인 방소청에게 달려갔다. 어린 그녀를 번쩍 안아 들어 올린 방건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얼마 못 본 사이에 또 훌쩍 자랐네."

"피, 그러게 집에 자주 오라니까."

곧바로 방소청은 방건을 향해 투덜거렸다.

"오라비가 얼마나 바쁜데. 너 보러 그 먼 곳까지 가는 게 쉬운 줄 아냐?"

말은 그리하면서도 얼굴에는 오랜만에 보는 동생에 대한 반가움이 가득했다.

산동에 있는 옥수문 출신이니 이곳 무림맹에 오는 데만 해도 오십 일 가까운 시간이 필요할 게다.

그런 처지다 보니 아무리 긴 시간의 휴가를 받아도 고향에 한 번 가는 게 쉽지 않은 방건이다.

다행히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외가 쪽 친지의 집이 있어 그곳에 들를 겸 이렇게 방소청이 직접 사천성 성도까지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객잔 입구에서 반가움을 나누던 남매는 이내 안으로 들어가려고 걸음을 옮겼다.

방소청이 움직이지 않는 천무진을 보며 물었다.

"오라버니, 그런데 같이 오신 저분은?"

"아, 맞다."

그제야 천무진의 존재를 기억해 냈는지 방건은 고개를 돌려 멀찍이 서 있는 그에게 손짓했다.

"거기서 뭐해? 빨리 와."

방금 전까지 기억도 못 하고 있던 그가 도리어 큰소리로 재촉했다.

말을 마치고 먼저 객잔 안으로 들어서는 남매를 바라보며 천무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둘의 뒤를 따라 들어선 객잔은 이미 손님들이 꽤나 많았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천무진은 먼저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막 천무진이 자리에 앉자 방건이 소개를 시작했다.

"이쪽은 무진이라고 이번에 막 들어온 신입."

"아, 오라버니랑 같은 곳에서 일하시는 분이구나."

"엉. 막 들어와서 한참 어수룩할 때지. 밥도 잘 못 챙겨 먹고 다니는 것 같아서 좀 먹이려고 데리고 왔어."

한순간에 어수룩한 사람이 된 천무진은 기가 막혔지만 겉으론 별다른 말 없이 웃고만 있었다. 그러자 방소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오라버니인 방건의 말에 동조했다.

"그치. 신참이면 아무래도 좀 그럴 수 있지. 오라버니가 잘했네."

"내가 맘이 약해서 문제라니까."

어려서 사회생활이라곤 해 본 적도 없을 어린 소녀의 대답과, 곧바로 맞장구치는 방건을 보며 참 합이 잘 맞는 남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건이 말한 대로 정말 식사라도 챙겨 주고 싶어서 불렀던 것인지 그 이후로 그는 천무진에겐 별다른 관심 없이 동생인 방소청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오랜만에 만난 두 남매의 대화는 화기애애했다.

가족 이야기에서부터 문파의 식솔들에게 최근 있었던 일들까지. 큰일로부터 시작된 대화는 곧 자잘한 취미나 요즘 즐거운 일이 있었던 것 등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에 열중했고, 동석한 채로 식사를 이어 가던 천무진의 그릇들 또한 어느 정도 비워졌을 무렵이었다.

방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 잠시만 뒷간 좀 다녀오마."

"천천히 다녀와."

방소청의 말을 들으며 방건은 급한 듯 바쁘게 뒷간이 있는 바깥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고 순식간에 둘만 남게 된 자리, 천무진은 말없이 남아 있는 차를 마셨다.

얼추 식사도 끝났고 언제 자리를 떠야 하나 보고 있을 때였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방소청이 물었다.

"같은 부대에 계신다니 오라버니를 자주 보시겠네요?"

"아무래도 그렇지."

천무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대수롭지 않은 질문이라 여기던 천무진의 눈에 막 입구에 있는 휘장 너머로 뒷간에서 돌아오는 방건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막 안으로 들어서려는 찰나였다.

갑작스럽게 방소청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우리 오라버니는 훌륭한 무인이시죠?"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천무진은 멈칫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방건 역시 놀라 황급히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딱딱해진 얼굴로 급하게 몸을 감췄다.

벽에 기댄 방건은 슬쩍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방건이라고 해서 어찌 모를까.

천무진 앞에서 언제나 강한 척 뽐내고는 있지만 매번 보여 오던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했는지를.

며칠 전만 해도 당자윤에게 비웃음과 모멸을 당하는 걸 직접 옆에서 목도한 천무진이니 자신에 대해 어찌 생각할지 사실 안 봐도 뻔했다.

하지만 알면서도 최대한 뻔뻔하게 굴었다.

상대는 오대세가의 하나인 사천당문의 무인이었고, 그런 자에게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건 옆에서 함께 겪은 천무진도 알 거라 스스로에게 위안 삼으며 굴욕적이었던 그 모든 걸 억지로 납득하려 했다.

하지만 하나뿐인 동생에겐 아니었다.

항상 멋진 오라버니, 자랑스러운 무인으로 보이고 싶었다.

훌륭한 무인이냐는 동생의 질문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방건의 모습이 창 너머로 보였다. 천무진이 잠시 그를 바라보다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럼, 네 오라버니는 훌륭한 무인이란다. 나도 참 많이 도와주고 계시고."

벽에 기댄 채로 창문 안을 힐끔거리던 방건이 천무진의 그 말에 놀란 듯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는 이내 주먹을 꽉 쥔 채로 고개를 숙였다.

처음으로 부끄러웠다.

또 고마웠다.

자신을 위해 거짓말을 해 주는 천무진에게.

훌륭한 무인이라는 천무진의 대답을 들은 방소청이 환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소협은 참 좋은 분이신 것 같아요. 앞으로도 우리 오라버니 잘 부탁할게요. 사실 매일 강한 척하지만 나이에 안 맞게 마음이 많이 여리거든요."

"어린 꼬마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나이는 어려도 제가 저희 오라버니보다 철은 더 들었을걸요?"

장난스럽게 말하는 방소청의 말이 막 끝날 무렵 바깥에서 억지로 눈물을 삼켜 낸 방건이 일부러 소란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아고, 왜 이리 힘드냐."

요란한 말과 함께 객잔 안에 방건이 들어섰고, 천무진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건이 물었다.

"왜? 벌써 가려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일이 좀 있어서요. 식사 맛있게 잘 했습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말을 마친 천무진은 방건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대우를 해 주는 듯이 구는 이 모든 건 사실 옆에 있는 여동생인 방소청을 위해서였다.

인사를 끝마친 천무진은 곧바로 객잔을 빠져 나와 무림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무림맹에 있을 금호를 비밀리에 감시하기 위해서.

그렇지만 얼마 가기도 전에 뒤편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진!"

목소리의 주인공은 방건이었고, 고개를 돌린 천무진의 시선에 급히 이쪽으로 달려오는 그가 보였다.

왜 그러냐는 듯한 시선에 지척까지 다가온 방건이 들고 있던 자그마한 봇짐 하나를 내밀었다.

천무진이 물었다.

"이게 뭡니까?"

"우리 동네에서만 나오는 특산 차야. 저 녀석이 가지고 왔는데 나 혼자 먹기엔 너무 많아서. 맛이 꽤 괜찮으니까 가져다 놓고 먹으라고."

"그러죠."

말을 끝내며 천무진이 봇짐을 건네받는 그때였다.

슬쩍 눈치를 살피던 방건이 괜히 발로 땅을 툭툭 차며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고맙다."

"뭘 말입니까?"

"알면서 왜 그래 인마. 쑥스럽게."

방건은 천무진의 어깨를 툭 치며 괜스레 더 목소리를 높였다.

입구로 들어서려던 그 찰나 아주 짧게 천무진과 시선이 마주쳤다는 걸 방건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천무진이 자신이 뒤편에 숨어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미 짐작한 상황이다.

방건이 코를 스윽 훔치며 말했다.

"네 덕분에…… 내 동생에게 계속 자랑스러운 오라비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는 쑥스러워하는 빛이 역력했지만, 그 한편에는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기색 또한 느껴졌다.

천무진이 말했다.

"아예 거짓말은 아닙니다. 제가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니까요."

정말로 천무진은 방건에게 도움을 받았다.

물론 대부분이 크게 필요 없는 것들이긴 했지만 그를 통해 이곳 홍천관에서 벌어졌던 소소한 일들에 대해 전해 들었다.

그 정보들을 토대로 적화신루에 또 다른 의뢰들을 던졌고, 개중에 이번 금호와 관련된 단서를 찾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준 것도 있었다.

천무진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한 말씀 드리자면 동생분은 오라버니가 무림맹에 들어올 정도의 무인이라 자랑스러워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응?"

"아마도 자신을 아끼는 오라버니의 마음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더군요. 그러니 지금처럼 동생분께 자랑스러운 오라버니로 남고 싶다는 그 마음, 그것만 잊지 않으시면 아마도 평생 그리될 걸로 보입니다."

천무진의 말에 방건은 가만히 서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처음 만났을 때 기강을 잡겠다는 이유로 천무진에게 함부로 대했던 그다.

그런 일을 당한 대상이 자신을 위해 해 주는 이런 말들을 듣고 있자니, 그때 했던 행동들이 갑작스레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방건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진심 어린 말이 흘러나왔다.

"고맙다."

스스로 고맙다는 말을 내뱉고도 놀랐는지 방건은 서둘러 뒷걸음질 치며 말을 이었다.

"야! 무진 너 진짜 앞으로 나만 믿어라. 내가 네 뒷배가 돼서 맹 생활 완전 편하게 해 줄 테니. 알겠냐?"

말과 함께 방건은 서둘러 동생이 있는 객잔 쪽으로 멀어져 갔다.

‘자기도 말단인 주제에 누가 누굴 편하게 해 준다는 거야.’

피식.

천무진은 멀리 달려가는 방건의 뒷모습을 보며 기가 막힌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 * *

며칠째 연달아 홍천관의 부관주 여청과 술자리를 이어가던 한천이 장원으로 돌아왔다.

거나하게 취해 보이긴 했지만 거처에서 일행들과 마주하자 그는 곧바로 내공으로 술기운을 날려 버렸다.

평소의 능글맞은 웃음을 머금은 한천이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다들 이 밤에 모여서 뭣들 하십니까?"

"뭐하긴. 오늘 있었던 일들 이야기 좀 하고 있었어. 매일 술값은 엄청 쏟아부으면서 오늘은 뭐 얻어 낸 거 좀 없어?"

백아린의 말에 한천이 기다렸다는 듯 양 손바닥을 짝 소리 나게 쳤다.

그리고는 말했다.

"어휴 있지요. 있고말고요, 대장."

"있다고?"

백아린의 화색이 돼서 되묻자, 한천이 오늘 술자리에서 들었던 걸 토대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정확하게 말하지는 않아서 모르겠는데 뭔가 관주에게 큰 불만이 있어 보였습니다."

"관주에게 불만? 겨우 그거면 너무 광범위하잖아. 상사한테 불만을 가지는 건 대부분에게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

"물론 그래서 조금 더 캐 봤죠. 그랬더니 자신에게 뭔가를 시켜 놓고 제대로 된 대우도 안 해 준다, 뭐하다 하면서 떠들어 대더군요.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그 이상은 아무리 단서를 찾아내려 해도 넘어오질 않더군요. 너무 과하면 일이 틀어질 것 같아 오늘은 그 정도에서 멈췄습니다."

"잘했어. 의심을 사면 곤란하니까."

말을 마친 백아린이 시선을 돌려 천무진을 바라봤다. 한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그를 향해 백아린이 물었다.

"여청이 말하는 뭔가가 그때 얻은 돌과 관련된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어. 만약 그렇다면 관주와 부관주 둘 다 그 의심스러운 돌과 관련이 있다는 건데……."

창고에서 가지고 나온 정체 모를 돌.

돌의 정체만 밝혀낸다면 보다 정확한 뭔가를 알아낼 수도 있을 터인데 그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가 금호에 대해 물었다.

"계속 관주의 뒤를 캐고 계신데 뭐 특별한 건 없고요?"

"아직은."

"아무래도 제일 악취가 풍기는 건 관주 쪽인 거 같긴 한데…… 답답하게 단서가 안 나오네요."

사실 백아린은 천무진이 정확하게 무엇을 찾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허나 지금 흘러가는 정황만 봐도 가장 의심스러운 부분이 뭔지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쉽사리 뒤를 잡히지 않는 그들에 다소 답답함이 느껴지는 상황.

길게 대화들이 이어졌지만 유독 단엽만이 홀로 구석에 있는 탁자에 앉은 채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이들의 대화에는 전혀 관심 없다는 듯 탁자에 엎드린 채로 눈앞에 있는 치치를 응시했다.

언제나처럼 옥수수 알갱이 하나를 먹고 있는 치치에게서 시선도 못 뗀 채로 단엽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실실 웃고만 있었다.

그때 곰곰이 턱을 괸 채로 생각에 잠겨 있던 백아린이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이건 어떨까요?"

갑작스러운 백아린의 목소리에 천무진과 한천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둘의 주목을 받으며 백아린이 말을 이었다.

"둘 사이를 틀어지게 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한 쪽에서 정보가 새어 나오거나, 아니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일 수도 있잖아요."

"생각은 괜찮아. 하지만 그게 가능하겠어?"

"그럼요. 저한테 막 떠오른 방법이 하나 있거든요."

"그게 뭔데?"

천무진이 되묻자 백아린의 의미심장한 얼굴로 답했다.

"이간질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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