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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9화 (9/293)

9화. 최후의 패 ― 입 조심해 (2)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치고 들어온 단엽의 주먹이 천무진을 향해 날아들었다.

천무진은 치고 들어오는 그의 주먹을 검집으로 받아 냈다.

콰앙!

쇠로 된 권갑을 끼고 휘두른 단엽의 주먹은 파괴적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간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강렬한 일격!

당연히 그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 내는 검집은 박살이 나고, 천무진 또한 피를 뿌리며 날아가 처박혀야 정상이었지만…….

휘리릭.

예상대로 천무진이 뒤로 날아가긴 했지만 그건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주먹을 휘두른 단엽이 누구보다 잘 알았다.

마치 실체가 없는 허공을 가른 것만 같은 느낌.

지금 천무진은 충격에 밀려난 게 아니다.

오히려 그 힘을 이용해 뒤편으로 몸을 움직인 것이다. 뒤편으로 밀려나던 천무진의 몸이 곧바로 객잔의 창문을 박살 내며 바깥으로 사라졌다.

단엽이 이를 갈며 부서진 창 쪽으로 몸을 던졌다.

"어딜 도망쳐!"

밖으로 나온 그는 반대편으로 달리고 있는 천무진을 발견하고는 버럭 소리쳤다.

천무진이 슬쩍 고개를 돌려 분하다는 듯 곧바로 자신을 뒤쫓는 단엽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피식 웃었다.

단엽의 일격을 받는 순간부터 천무진은 지금의 이 모든 상황을 계획하고 있었다.

저 객잔은 둘이서 싸우기에는 너무도 좁았으니까.

‘도망치긴. 네놈의 무식한 주먹과 그냥 싸우다간 이 마을이 박살이 날까 봐서다.’

어제 이 마을에 들어서며 이미 단엽과 싸울 만한 근처의 장소까지 봐 둔 천무진이다.

그리고 천무진은 단엽을 그곳으로 유인하고 있었다.

아주 잠깐의 시간을 내달렸지만 둘은 순식간에 마을에서 꽤나 먼 곳까지 이동했다. 두 사람 모두 뛰어난 무공을 지닌 이들답게 경공 또한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자신이 봐 뒀던 장소에 도착하자 천무진은 그제야 발을 멈췄다.

바짝 뒤를 쫓아오던 단엽 또한 걸음을 멈추고는 도발적인 언사를 날렸다.

"왜? 꽁지가 빠져라 도망쳐도 결국 잡힐 거라는 걸 안 모양이지? 용이 아니라 쥐새끼인가 본데."

천룡성을 비하하는 듯한 말에 천무진이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자꾸 까불지 마. 마음이 막 바뀌려고 하니까."

"뭔 마음?"

물어 오는 단엽을 향해 천무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적당하게 손만 봐 주고 길들이려 했는데, 자꾸 까부니까…… 죽이고 싶어지잖아."

웃는 얼굴로 내뱉는 그 말에서는 살기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주변의 공기 또한 묘하게 차가워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그와 마주한 단엽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언제나 그래 왔다.

쏟아져 나오는 강렬한 기운을 마주하는 이 순간 단엽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제야 재밌어지겠네."

"곧 그 생각이 쏙 사라질 거야. 기대해."

말을 마친 천무진이 검을 뽑아들었다.

스르릉.

그저 가볍게 검을 뽑아 들었을 뿐이거늘 단엽은 그 모습만으로 상대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흥분으로 씰룩였다.

‘진짜 센 놈인데.’

천룡성의 인물이라는 말에 얼마나 기대를 해 왔던가. 그런데 상대가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젊은 사내라는 걸 알고 큰 실망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오히려 자신과 동년배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기운을 뿜어 대는 상대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주먹을 꽉 쥔 채로 단엽이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뭐냐?"

"싸우려다가 그건 왜?"

"혹시 내가 널 죽여 버리면 이젠 영영 이름도 모를 거 아냐. 그래도 이름 정도는 알아 두고 싶어서."

"천무진. 그게 내 이름이다."

말을 마친 천무진이 검을 든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는 이내 마주하고 있는 단엽을 향해 말을 이었다.

"똑똑히 기억해 둬. 네게 죽을 그 누군가의 이름이 아닌, 네 주인의 이름이니까."

"개소리하고 있네."

말과 함께 단엽의 몸 주변으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마주한 천무진 또한 검에 기를 불어넣었다.

쉼 없이 싸워 왔던 인생이다.

그렇지만 검을 쥐고 서 있는 지금 기분이 묘했다.

과거로 돌아온 후 누군가와 이렇게 실전을 벌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거기에 상대가 훗날 권왕이 될 단엽이라니…… 실로 재미있지 않은가.

‘이번으로 다섯 번째 싸움인가.’

과거의 삶에서 천무진은 단엽과 네 번을 싸웠다.

결과는 사전전승(四戰全勝).

단 한 번도 그에게 패하지 않았다.

허나 그 네 번의 대결 중 쉬웠던 적은 결단코 단 한 번도 없었다. 매번 그와 싸우고 나면 한동안 몸져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단엽은 천무진에게조차 어려운 적수였다.

지독한 싸움 귀신인 단엽은 패하고도 계속해서 천무진에게 도전해 왔다.

천하제일인이라는 그 호칭을 자신이 가지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사파 최고수만으로는 모자라다며 귀찮을 정도로 천무진에게 도전해 왔던 그다.

대홍련(大紅聯)의 련주이자, 사파를 일통하는 괴물 같은 사내.

천무진은 지금 그런 그의 젊은 시절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도 먼저 달려든 쪽은 단엽이었다.

그가 땅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움직이는 주먹에서 순식간에 권기가 쏟아져 나왔다.

콰콰쾅!

주변의 땅이 터져 나가는 것과 동시에 천무진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쩌엉!

날아드는 주먹을 검으로 막아 낸 후, 두 사람의 간격이 더욱 좁혀졌다.

‘내 간격이다!’

거리가 좁혀졌으니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는 주먹의 움직임이 더욱 용이한 상황, 기회라는 듯 단엽의 주먹이 빈틈을 노리며 치고 들어갔다.

쒜에엑!

주먹이 옆구리를 치고 들어가는 그 순간 천무진 또한 검을 쥔 손을 아래로 빠르게 움직였다.

카앙!

아래쪽으로 파고드는 주먹을 검의 손잡이로 쳐 낸 천무진은 곧바로 팔꿈치를 위쪽으로 움직였다.

주먹이 쳐 내려지며 순간 균형이 앞으로 쏠렸던 단엽의 얼굴로 천무진의 팔꿈치가 날아들었다.

놀란 단엽이 황급히 몸을 뒤로 젖혔고, 아슬아슬하게 팔꿈치가 스치고 지나갔다.

"큭!"

놀란 듯 고개를 치켜드는 그 순간 비어 있는 그의 가슴으로 천무진의 손바닥이 움직였다.

파앙!

가까스로 팔을 써 날아드는 공격을 받아 낸 단엽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그의 입술이 밀려드는 고통으로 미묘하게 비틀렸다.

아까 멱살을 잡았던 손을 풀 때부터 느꼈던 건데 겉보기와 달리 힘이 보통이 아니다.

얼얼한 팔뚝을 슬쩍 내려다보는 단엽의 시선을 느낀 천무진이 말했다.

"뭐야. 벌써 겁먹은 거 같은데."

"그럴 리가. 막 잔뜩 달아오르고 있거든? 기다려 박살을 내 줄 테니."

가볍게 손목을 푼 단엽은 천무진을 향해 재차 거리를 좁혀 왔다.

팍팍!

그의 주먹이 날아들자 천무진은 고개를 비틀며 연신 그 공격을 피해 냈다. 그냥 가벼운 주먹질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피해 내는 입장에선 결코 그렇지 않았다.

부웅! 붕!

고개 옆으로 주먹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허공이 찢어지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일격 일격이 집채만 한 바위를 가루로 만들 정도의 힘이 담긴 공격. 결코 가볍게 볼 상황이 아니었다.

몇 번이고 휘둘러지던 주먹을 피해 내던 그때 고개를 막 스쳐 지나갔던 공격이 방향을 틀었다.

미세한 변화를 감지한 천무진 또한 그에 맞춰 반응했지만 권갑이 껴져 있는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천무진이 움찔하며 움츠러드는 순간이었다.

추켜올려진 주먹이 강하게 아래로 향했다.

콰앙!

주먹이 휘둘러지는 방향을 따라 무지막지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땅이 터져 나가며 주변으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이미 그 자리에 천무진은 없었다.

허공으로 솟구친 그의 검이 움직이고 있었다.

휘리릭!

재빠르게 움직이는 검이 흙먼지 속에 서 있는 단엽에게 다가갔다.

단엽 또한 가만있지 않고 천무진의 검을 권갑으로 받아 냈다.

카카카캉!

쇠끼리 긁히는 소리가 나며 천무진이 바닥에 착지했다.

하지만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재빠르게 발을 휘둘러 단엽을 한 걸음 뒤로 물러나게 하는 것과 동시에 팽이처럼 회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파라라락!

손에 들린 검이 무섭게 몰아쳤다.

단엽은 양손을 황급히 움직이며 연신 위아래로 변화무쌍하게 치고 들어오는 천무진의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팡팡팡팡!

뒷걸음질 치던 단엽의 얼굴로 천무진의 발이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갔다.

빠악!

정확하게 얼굴에 한 방 얻어맞은 단엽의 고개가 픽 돌아가는 그 찰나였다. 주춤할 수도 있는 그 상황에서 단엽은 오히려 그 반동을 이용했다.

얼굴을 맞아서 몸이 비틀리는 상황에 도리어 그대로 몸을 회전시킨 것이다.

한 바퀴 돌며 내뻗은 주먹이 곧바로 천무진을 향해 다가왔다.

순식간에 단엽의 생각을 읽고 방비를 한 천무진이었지만 그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검까지 이용해서 힘을 받아 냈거늘, 그의 몸이 허공으로 붕 날아 뒤로 밀려 나갔다.

바닥에 착지하는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멀찍이 서 있던 단엽의 주먹에서 권기가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날아든 권기를 피하기 위해 천무진은 허공으로 몸을 띄우며 회전했다.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간 권기로 인해 옆구리 부분의 옷이 찢겨져 나감과 동시에, 피가 터져 나왔다.

허나 천무진도 그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회전하는 중 그의 손에 들린 검에서 검기가 터져 나온 것이다.

천무진의 재빠른 임기응변에 재차 달려들려던 단엽이 멈칫하며 황급히 양손을 교차시켰다.

쾅!

황급히 막아 내긴 했지만 갈라지듯 퍼져 나간 검기로 인해 그의 어깻죽지가 베어져 나갔다.

단엽이 표정을 찡그리며 상처를 살피는 사이 천무진 또한 회전시켰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천무진은 불만스럽다는 듯 표정을 찡그리고 있는 단엽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설마 이게 전부는 아니지?"

전생에서 단엽을 상대해 봤던 천무진이다.

그런 천무진이 상대의 실력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말을 꺼내는 건, 단엽을 도발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도발을 통해 그가 진짜 실력을 드러내는 것, 천무진은 그걸 원하고 있었다.

계속 이 정도 상태로 싸워 대다가는 싸움이 꽤나 길어질 것은 자명한 사실.

그랬기에 천무진은 함정을 파고 있는 것이다.

단 한 번에 단엽을 제압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도록.

과거의 삶에 있었던 네 번의 싸움.

그 덕분에 천무진은 단엽의 무공을 어느 정도 꿰뚫고 있었다.

상대의 무공을 안다는 것, 그것은 종이 한 장 차이로도 생사를 오고 가는 무인들의 세계에서 승패에 너무도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천무진의 도발이 통해서일까, 아니면 단엽 또한 지금 같은 싸움이 답답해서였을까?

그가 대답했다.

"원한다면…… 제대로 보여 주지."

말을 마친 단엽의 권갑에 갑자기 붉은 기운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본 천무진은 슬쩍 검을 고쳐 잡았다.

‘먹혀들었군.’

지금 그의 권갑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 붉은 권기를 천무진은 계속해서 기다려 왔다.

단엽이 오른 주먹을 들어 올렸다. 넘실거리는 권기가 사방으로 요동쳤다.

그리고 이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붉은 권기가 커다란 구체가 되어 주먹을 감싸 안았다.

이것은 단순한 권기가 아니다.

뜨거운 열기가 주변을 뒤덮었다.

동시에 모든 것들이 떨려 오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흙과 바람들이 미친 듯이 휘몰아치며 그 중심에 서 있는 단엽의 몸을 흔들었다.

쾅!

그가 강하게 땅에 버티고 섰다.

세상의 모든 걸 태울 것 같은 붉은 권기에 휩싸인 주먹을 눈앞으로 치켜세운 그가 입을 열었다.

"어디 한번 받아 보라고. 전설의 무인."

말과 함께 단엽의 주먹이 앞으로 내뻗어졌다.

콰콰콰쾅!

땅이 박살이 나며 터져 나갔다.

동시에 수십 개의 권기가 천무진을 뒤덮어 오고 있었다.

그 권기가 지척으로 다가오는 걸 바라보는 천무진의 얼굴에 놀랍다는 듯 이채가 피어올랐다.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벌써 열화신공(熱火神功)이 이 정도의 경지까지 올랐을 줄은 몰랐군. 하지만…….’

천무진이 검을 수평으로 세웠다.

그의 손에 들려 앞으로 쭉 뻗어진 검 끝에서 새하얀 빛이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그 빛이 붉은 권기와 마주하는 그 순간.

찰나에 보이는 빈틈!

천무진의 눈이 번뜩였다.

‘아직 멀었어.’

파앙!

허공에서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밀려들던 불꽃이 천무진의 주변으로 일순 밀려 나갔다. 마치 그의 주변으로 범접할 수 없는 무형의 힘이 있는 것처럼.

그 모습에 자신만만하게 바라보고 있던 단엽의 눈동자가 커졌을 때였다.

검 끝에서 쏘아졌던 기운이 그대로 단엽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단 하나의 빛으로 보였지만 충격은 결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의 가슴에 연달아 쇠망치로 두드리는 듯한 충격이 퍼져 나갔다.

쿠쿠쿠쿵!

수십 번 가슴에 타격을 입은 그의 몸이 허공으로 붕 뜨더니 사정없이 뒤로 밀려 나갔다. 그리고 이내 단엽은 그대로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나가떨어졌다.

"쿨럭."

단엽은 드러누운 상태로 한 사발은 족히 될 법한 피를 토해 냈다. 그가 쓰러지자 주변을 뒤덮고 있던 열기가 확 하고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천무진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하나의 점으로 쏘아져 나간 검기.

아주 간단한 공격 같았지만 이 또한 보통의 무공이 아니었다. 천룡성에 내려오는 독문무공.

천룡비공(天龍飛功) 일점(一點).

지금 천무진이 쏘아 낸 그 하나의 공격이 완전치 못한 단엽의 열화신공을 찢어발기며 치명타를 가한 상황이다.

싸움이 시작되고 천무진은 줄곧 단엽이 열화신공을 사용하기를 기다려 왔었다. 이 무공의 특징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과거와는 달리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황.

천무진의 능력 또한 예전에 비해 한참은 부족하다지만 열화신공이라는 무공과 셀 수도 없이 많이 부딪쳐 본 그의 입장에서는 질 수가 없는 격돌이었다.

천무진은 검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어이, 죽을 정도로 힘을 주지는 않았으니 몇 시진 정도만 있으면 움직일 정도는 될 거야. 그러니까 대화는 그때 일어나면 하지."

말을 마친 그가 검을 막 검집에 집어넣으려는 그때였다.

멀리서 느껴지는 움직임에 천무진이 놀란 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부들부들 떨리는 양팔로 몸을 일으켜 세우는 단엽이 있었다.

"크아아아!"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 그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입 주변은 방금 전 흘린 피로 엉망이었고, 억지로 버티고 선 다리는 후들거린다.

그렇지만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맹수처럼 사납게 빛나고 있었다.

목숨을 건 싸움도 아닌 그저 대결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투기는 꺼질 줄을 몰랐다.

열린 입 사이로 피를 잔뜩 쏟아 내면서도 눈을 부라리는 단엽의 모습에 천무진은 검을 넣으려던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가 주먹을 꽉 쥔 채로 소리쳤다.

"어이! 누구 마음대로 끝이냐. 아직…… 안 끝났다!"

고함과 함께 거칠게 소매로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내는 단엽의 모습에 천무진은 문득 과거의 삶에서 보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권왕 단엽.

그렇다.

호랑이는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맹수다.

그렇게 쉽게 꺾일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단엽의 투기에 반응이라도 하려는 듯이 천무진 또한 반쯤 넣었던 검을 다시금 뽑아냈다.

스르릉.

아까보다 더욱 진지해진 얼굴로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잠깐 잊고 있었네. 이 정도로…… 포기할 사내가 아니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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