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혈륜을 부리는 자와의 대결 (2)
주성진은 힘껏 검으로 혈륜을 쳐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음, 이상하다.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조금도 지치지 않아!’
분명 자신에게 말을 걸었으며, 동작도 절정의 고수 못지않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느낌은 상대가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 두고 보면 알겠지!’
“얍!”
주성진은 세차게 검을 휘둘렀다.
어느새 검신일체가 된 주성진의 막강한 검기가 사방을 꽉 채운다.
반경 10장에 이르는 범위 내에서 두 고수가 뿌리는 무형의 기운은 그 어떤 그 어떤 것의 접근조차 불허하고 있었다.
꽝!
꽈광……!
마치 천하를 오시하는 자들의 싸움 같았다.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힘의 충돌들이 세상을 집어삼킬 듯 강렬하게 펼쳐졌다.
챙, 챙, 챙!
주성진의 검이 상대 혈륜을 계속해서 밀어냈다.
하지만 지극히 일시적이다.
야핫!
상대가 나도 지를 수 있다는 듯 기합을 터트린다.
꽝……!
‘음, 혈륜! 강하다!’
주성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혈륜의 힘, 도대체 미치는 힘은 어디까지인가……?
주성진이 휘두른 황금색의 광휘를 무색하게 만들 만큼 온통 핏빛 광휘로 주변을 채워 간다.
유형화된 기운, 절대 무공의 경계를 아득히 넘어선 반격이었다.
‘이런, 제길…….’
쉬이익!
주성진은 재빨리 검력을 발산하면서 면밀한 방벽을 만들어 보았지만, 혈륜의 힘 앞에서는 위태위태했다.
찌이잉!
그리곤 결국 검이 가루가 되어 부스러져 나갔다.
상대의 파괴력과 이에 맞서는 주성진의 괴력에 평범한 검이 버티지를 못한 거였다.
‘이런 제기랄!’
순식간에 검을 날려 버렸으니 정면으로 맞서기는 늦었다.
주성진은 결국 후퇴하고 말았고, 상대는 기세를 모아 광폭하게 혈륜을 휘두른다.
‘아아, 이대로는 안 된다. 내 검을 들 수밖에!’
핑계라면 상대의 혈륜도 자신의 검에 비할 정도의 신병이기라는 점이었다.
어쨌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주성진은 내공을 잔뜩 끌어올린다.
“이제는 다를 것이다!”
“흥…….”
상대가 콧방귀를 낀다.
그 순간 상대의 귀신같이 창백한 얼굴에서 메마른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상대는 혈륜을 들어 올리며 미증유의 힘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한편, 주성진이 자신의 애검에 내기를 잔뜩 주입하자 마치 그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검이 우렁차게 검명을 토해 냈다.
우우웅……!
그리고 대결은 다시 펼쳐졌다.
파아아아!
싸움의 양상은 좀전의 싸움을 한 단계 넘어서는 대격돌이었다.
넓은 범위에서 공격력과 방어력을 겸비한 혈륜을 보고 있노라면 이를 능가할 수 있는 무공이 거의 없을 듯 보였다.
설사 이기어검을 펼친다고 해도 쉽사리 이기리라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것 같았다.
‘쉽지 않은 상대군.’
주성진이 자신 있게 검을 휘두르고 있음에도 상대의 혈륜은 그 막대한 충격을 모조리 흩어내고 오히려 역공을 시도하고 있었다.
‘허허, 참! 인정해야겠군……!’
주성진은 상대의 무위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사람 같아 보이지 않지만…….
바로 그때, 그의 뇌리에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사실 주성진의 사고는 조금 전까지 그가 사람같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지금 순간 생각을 확장하자 확연히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이런, 강시였구나! 무슨 강시인지는 모르겠지만, 혹 무극강시……?’
무극 강시는 역사상 최고의 강시를 일컫는 말이었다.
누구의 입에서 처음으로 무극강시라하는 이름이 퍼져 나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호사가들은 무극 강시를 최고의 강시로 평가하고 있었다.
파삭!
주성진의 소맷자락 일부가 경력에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야합!
터진 소맷자락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은 주성진은 또다시 낭랑한 기합성을 터트렸다.
하나 이전과 다른 점은 공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이었다.
상대가 전설의 무극강시임을 인정하고 제대로 승부를 보기 위한 마음가짐의 발로였다.
쉬이익!
쨍!
혈륜의 핏빛 광영이 한데 모여들며 주성지의 일검을 막아 냈다.
그 순간 부드럽게 주성진의 검이 휘돌아 오는 데 반해, 혈륜은 멈칫 멈칫거렸다.
주성진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하하. 드디어 한계를 보이는군. 내 힘에 밀리는 것이야!’
주성진은 상대의 한계를 확인한 후 더더욱 세차게 검을 펼쳐 나갔다.
지이이잉!
엄청난 공력이 깃든 주성진의 검에 상대의 혈륜이 큰 떨림을 보인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꽈아앙……!
강한 충돌은 엄청난 진동을 만들고, 그대로 폭발했다.
순간 몸을 휘청했던 상대는 곧바로 몸의 균형을 잡는다.
그리곤 눈빛이 금안으로 물들어 가는 순간.
상대의 혈륜에서 핏빛 광휘가 길쭉하게 늘어나며 주성진의 가슴을 꿰뚫어 버릴 듯 쏟아져 들어왔다.
쐐애액!
이에 질세라 주성진의 움직임 또한 그 어느 때보다 격해졌다.
살아있는 듯 요동치는 검에 상대의 혈륜은 사슬에 묶인 것처럼 그 움직임이 둔해져 간다.
안간힘을 써보지만 시간이 갈수록 혈륜은 힘을 잃어 가고 있었다.
퍼어억!
드디어 손에 전해지는 짜릿한 감촉.
주성진의 검신이 상대의 어깨에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크으……!”
비틀거리던 상대는 그만 혈륜을 놓아 버렸다.
팅!
주성진은 빠르게 검을 회수하곤 상대의 혈륜까지도 접수해 버렸다.
주성진이 강한 내기를 뿌리자 상대의 혈륜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한 색시가 돼 버렸다.
‘휴, 다 끝났군!’
털썩!
상대가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힘이 다한 것이지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사이 주성진은 자신들의 일행들에게 말을 걸었고 그들 모두는 스스로 반 가사 상태에서 깨어났다.
그렇지만 모두 어안이 벙벙한 상태다.
주변은 엄청난 격돌로 인해 온전한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성진은 일행들에게 간략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이야기가 끝날 무렵 상대가 다시 일어났다.
한데 상처가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이런 괴물이 따로 없는데!’
주성진은 다시 긴장 상태로 돌입했다.
하지만 더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상대는 힘이 다한 모습이었고 눈빛도 순해져 있었다.
‘휴……!’
“전설의 용자구나, 너는!”
주성진은 상대가 말을 걸자 순간 놀라고 있었다.
“내가, 용자라고?”
“그렇다.”
“음, 모든 말을 알아듣는 것이냐?”
상대가 고개를 흔든다.
“다는 아니다. 될 수 있으면 또박또박 천천히 말해라.”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이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음,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이구나, 이젠 더는 적대적 행동을 할 것 같지 않은데…….’
주성진은 상대의 정체를 확인하기로 했다.
“너… 혹시 강시냐……?”
“난, 원래 귀곡문의 문도였다. 이름은 용악진이라고 하지. 난 이곳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생강시가 되었다. 여기서 나의 직책은 수호대 대장이다. 아, 참고로 너와 너의 일행 모두는 5시 진 이내에 여길 완전히 떠나야 한다.
“…….”
“왜냐면 내가 패배했기 때문에, 이곳 규칙상 여기가 완벽히 봉쇄될 거기 때문이다. 일단 봉쇄진이 작동되면 향후 100년간, 진에 들어올 수도, 진 밖으로 나갈 수도 없을 것이다. 네가 들어온 생문도 모두 사문으로 바뀔 것이다…….”
한때 용악진으로 불리던 강시는 주성진이 묻지 않는 것까지 말해 버렸다.
“나보다 먼저 들어온 자들이 있었을 텐데…….”
“그들은 모두 나에게 패배해 강시가 될 것이다. 이곳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
“혹 그들을 풀어 줄 수는 없는 거냐?”
용악진은 손을 흔들었다.
“규칙상 불가능하다.”
“음. 과거에 여기에 들어온 자들은 없느냐?”
“아무것도 모른 채 들어온 자들이 더러 있었다. 원래는 진속에서 갇혀서 죽을 운명이었지만 특별히 내가 인심을 썼다. 내 권한이니까.”
주성진은 용악진을 바라보았다.
“인심을 썼다는 게, 그들을 살려 보내주었다는 말이냐?
“아니다. 그들 모두는 강시가 되었다.”
“뭐라… 허허.”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주성진은 하오문주가 쿡쿡 옆구리를 찌르자 그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눈빛에서 간절함이 읽힌다.
‘음, 저자는 여전히 비급을 포기하지 않았군.’
고개를 끄덕인 주성진이 다시 용악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실은 우리는 여기에 금은보화와 절세의 비급이 있다고 해서 들어왔다.”
“여기에 있는 건 돌 하나, 풀한 뿌리 하나도 밖으로 가져갈 수 없다. 내가 너에게 패배했다고 하지만 절대 그걸 용납할 수 없다. 만일 그리한다면 나의 수하들이 모두 너희들을 공격할 것이다.”
주성진은 금은보화는 물 건너갔다는 걸 깨달았다.
“알겠다. 그러면 금은보화와 비급이 여기에 있기는 한 거냐?”
“찾아보면 있겠지… 한데 솔직히 뭐가 비급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여기저기에 남겨진 책들이 있긴 있다. 보고 싶으면 봐도 좋다. 단 반출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럼, 이곳을 둘러봐도 되겠느냐?”
용악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 해라, 단 내 수하들이 너희들을 안내할 것이다. 그들 모두도 귀곡문 출신이다.”
“알겠다.”
“명심해라, 시간 내에 나가야 한다는 것을, 솔직히 난 너희가 나가든 말든 상관은 없다. 자, 그럼 난 피곤해서 쉬러 간다.”
용악진이 사라지자 순간 주성진은 용악진과의 대화를 반추해 봤다.
그러다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해 냈다.
‘맞아. 인간이라면 감정의 기복이 있을 텐데 그에게는 그 점을 찾을 수 없었어.’
잠시 후, 용악진과 유사하게 얼굴이 창백한 강시 2구가 나타났다.
그들은 살아생전에 가문호와 진구로 불리던 자들로 용악진처럼 의사소통이 가능한 강시였다.
주성진은 뭐니 뭐니 해도 자신들보다 먼저 진을 통과한 자들이 제일 궁금했다.
‘데려달라고 하자!’
주성진이 그들을 보기를 원하자 가문호와 진구는 군말 없이 그들을 잡아 놓은 곳으로 안내했다.
가문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모두 공력이 폐쇄된 상태였다.
사방이 밀폐된 방 안에는 총 10명이 붙잡혀 있었는데, 복장과 성별로 그들의 구분이 가능했다. 하지만 백강시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저들이 데리고 온 백강시는 모두 파괴되었나?’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나마 안면이 있는 천야홍에게 다가갔다.
천야홍은 주성진을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짓는다.
“헤헤헤!”
주성진은 그의 웃음과 표정을 보고, 순간 어리둥절해서 말문이 막혀 버렸다.
‘왜 저러는 것이야? 혹 실성했나?’
“음. 역시 그대였군, 올 줄 알았지…….”
천야홍은 주성진을 따라온 가문호와 진구를 잠시 바라보다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대는 수호대 대장을 만나지 않았소?”
“물론 만났소. 지금 그대를 만나는 것도 그의 협조를 받은 것이오.”
“뭐라? 혹 그를 이긴 것이오?”
미소 짓던 천야홍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방 안에 있던 모든 자들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주성진의 승리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주성진은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뭐, 그런 셈이오. 저쪽은 쌍사문의 사람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