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상인-248화 (248/250)

248화 혈륜을 부리는 자와의 대결 (1)

순간 또 다른 의문이 머릿속을 깊숙이 파고든다.

“그럼 스스로 반 가사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언제 깨어날 수 있는 거죠?”

“그야, 자신의 의지로 깨어나야지요. 그렇지 못하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겠지요. 하하.”

“음, 저기, 강시도 여러 종류일 텐데 어떤 강시를 말하는 거죠?”

“아, 그건 백강시입니다. 젊은 남자의 3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주 상단주님, 강시를 구하는 비용은 반반씩 부담하기로 하는 겁니다. 사실 비용 문제 때문이라도 주 상단주님에 합작을 제안한 것이죠.”

주성진은 하오문주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눈빛이었다.

“얼마죠, 비용이?”

“대략 은자 2만 냥일 것 같으니, 1만 냥씩 나누면 되겠네요. 하하.”

“음, 비싼데…….”

주성진은 잠시 눈을 감으며 본인이라면 몽혼천리행의 돌파가 가능할까 자문해봤다.

‘정신이 가물가물해진다는 몽혼진 속에서 천 리를 간다? 그것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그리고 설사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마지막 관문으로 장정 60명이 합친 힘을 내야 한다는 건데, 이건 음…….’

주성진은 힘들 거로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존심이라는 괴물이 뇌리를 파고든다.

‘나더러 고금 삼대 무인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말이야. 한데 그깟 진을 통과하지 못할 거라, 지레 겁먹는 거야!’

주성진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해보자, 하는 거다! 심검을 완성한 나에게 어떠한 진도 무용지물이라고. 강시 사는 비용을 절대 낼 수 없어, 목에 칼이 들어오는 한이 있더라도!’

돌연 주성진의 눈빛이 반짝 빛나는 것을 본 하오문주가 입을 열었다.

“주 상단주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요? 눈빛이 샛별처럼 빛나는데요.”

“아, 그게 말입니다. 방금 몽혼천리행에 들어가기로 결심을 굳혔습니다. 지금 당장 말이죠.”

하오문주는 아무리 주성진이 엄청난 고수라 할지라도 몽혼천리행을 통과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에이. 그 말씀 농담이시죠?”

“농담 아닌데요. 정말로 가 보렵니다.”

하오문주의 안색이 변한다.

“정말입니까?”

“네, 빨리 지필묵을 가져오라고 하시지요. 우리의 약속을 문서로 남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음, 알겠습니다. 일단 그렇게 하지요.”

하오문주가 수하에게 지필묵을 가져오라고 시키고 난 뒤, 주성진의 말이 이어졌다.

“결심을 굳히고 나니 제가 손해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남아일언 중천금입니다.”

“하하, 농담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설마 절 따라오시려고요?”

하오문주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백강시를 사들인다는 건 엄청나게 돈이 드는 일입니다. 저희가 백강시를 제조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죠. 그래서 저는 주 상단주님을 따라가렵니다!”

하오문주의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자신이 따라가지 않아도 주성진이 약속을 지킬 텐데 굳이 같이 가겠다고 한 건 주성진을 믿지 못해서였다.

‘저 말은 나를 못 믿는다는 뜻이겠지, 뭐 이해는 간다…….’

그 순간 하오문주의 말이 이어졌다.

“주 상단주님에게 저의 목숨을 맡길 테니 아무쪼록 무탈하게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제발요!”

“하하, 최선을 다해보죠, 그럼 언제 출발하실까요?”

“주 상단주님, 내일 가시는 게 어떻게 습니까?”

“…….”

다음날 몽혼천리행이 설치된 곳에 도착한 주성진은 따라온 자신들의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왕천유와 역산도 그리고 명세철과 단리평이었다.

이들은 한사코 동행하기를 고집하는 바람에 주성진은 그들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세 사람은 그렇다 쳐도 단리평까지 진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의외의 일이었다.

‘휴…….’

어깨가 무거워진 주성진은 먼저 와있던 하오문주에게 다가갔다.

“혼자 오셨습니까?”

“네, 혹 일이 잘못되더라도 하오문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지요. 저 근데 수상한 것이 있습니다.”

주성진은 하오문주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 말입니까?”

“여기 땅바닥에 찍힌 발자국 들을 보십시오. 이건 최근에 찍힌 발자국입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먼저 진안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음, 그런 것 같군요. 참 많이도 찍혔네요.”

주성진은 진안으로 들어간 인물이 누군지 추리해봤다.

‘음, 쌍사문이 아니면 진법연구회의 인물들. 아니면 둘 다…….’

그 순간 하오문주의 말이 이어졌다.

“음, 강시들을 대동하지 않는 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돌연 하오문주가 입술을 깨물었다.

“놈들이 발 빠르게 백강시를 구한 모양입니다. 제길.”

“그렇군요. 자 여기서 우리끼리 갑론을박해봤자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 안으러 들어가시지요.”

“네, 그럼 제가 진을 파훼할 수 있는 곳까지 안내하겠습니다. 한데 일행분들이 짊어진 것은 무엇입니까?”

주성진은 단리평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순간 단리평은 주성진이 자신을 쳐다보자 빙그레 웃는다.

“네 사람이 간단하게 탈 수 있도록 만든 조립식 수레입니다.”

“조립식 수레라고요? 누구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침 획기적인 것 같습니다만 누군가가 수레를 끌어야 할 텐데… 설마하니?”

“네, 그렇습니다. 제가 끌 것입니다. 단주님 포함 네 분은 수레에서 스스로 반 가사 상태에 빠지면 되겠습니다.”

사실 일류 무인이라도 반 가사 상태에 빠지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반 가사 상태에 빠지려면 은신법인 귀식대법을 반드시 익혀야 했다.

그러니 귀식대법을 모르는 무인이 반 가사 상태에 빠지는 건 꿈도 꾸지 못 할 일이었다.

***

“통과했다. 드디어! 기나긴 시간이었다.”

주성진이 철문을 빠져나오자 양쪽으로 높게 선 절벽이 보이고, 그사이 푸른 하늘이 창창히 빛나고 있었다.

‘음, 협곡이군, 설마 진 안에 협곡이 있을 줄이야, 신기하군.’

순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주성진이 시선을 한쪽으로 고정했다.

‘빠르다!’

그리고 바로 그때 전광석화같이 주성진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한데 아무리 봐도 현대의 복식은 아니었다.

‘음, 고대 복식이군, 틀림없어.’

돌연 나타난 자는 온통 검은색의 전포를 걸치고 있었는데, 위로는 창백한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데 번갈아 가며 황금색에서 은백색으로 번뜩이는 눈동자가 사람의 눈 같지 않았다.

‘뭐야, 저 무기는?’

특이하게 나타난 자는 핏빛의 륜을 들고 있었다.

아마도 사람의 피를 머금어서 색이 그리 변한 것 같았다.

‘혈륜이다. 음. 그나저나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대단하구나. 가슴이 저릿저릿하다고!’

주성진은 자신이 강적을 만났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주성진은 그의 무시무시한 기운을 뚫고 그와 허공에서 눈이 마주쳤다.

한데 뭐라 말이라고 붙이려다 말고 그가 빠르게 움직이자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시끄러워!”

그의 탁한 목소리가 주성진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그 탓에 즉시 빠르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길…….’

쉭……!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짓쳐 드는 그들이었다.

우우웅…….

곧바로 자신만의 시간 속으로 진입하는 주성진이다.

그러자 시야가 느려지고 사방을 채운 힘의 흐름이 알알이 느껴진다.

주성진은 상대가 혈륜을 휘두르는 것을 보자마자 손을 길게 뻗었다.

그리고 곧바로 두 힘이 부딪쳐 폭발했다.

꽝!

‘음…….’

사실 제삼자가 보았다면 동체시력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빠르기였다.

하지만 심안의 영역으로 들어온 주성진이기에 모든 게 느려지고, 소용돌이치는 힘이 느껴지는 거였다.

주성진은 상대도 자신과 비슷한 심득을 얻었으리라 생각했다.

상대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번들거렸다.

‘이 자! 강한 자다!’

그는 자신의 혈륜을 맞아 수를 나누는 주성진의 무공이 그야말로 눈이 부실 정도라고 느껴졌다.

사실 일행들의 안전 때문에, 공간의 제약이 있었다.

그렇기에 주성진이 초반에 약간 밀라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나 그렇지만 상대의 무시무시한 공격하에서 주성진은 하나하나 새로운 진전을 이뤄내고 있었다.

‘음, 이제, 좀 익숙해지는군!, 륜이라는 무기가 좀 생소하기는 했어. 자주 상대하는 무기는 아니어서.’

순간 주성진은 검의 손잡이를 만지다 말고 다시 풀어 버렸다.

‘여기 상황을 알아야 해, 저자를 죽여서는 안 된다. 내 검을 휘두르면 자칫 저자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해!’

“야합!”

기합과 동시에 주성진의 손이 가슴 앞에서 십자로 교차하더니 일직선으로 뻗어 갔다.

쐐애액…….

비단 폭처럼 뻗어 나가는 장풍이다.

손바닥으로 내친 주성진의 경력이 파도와 같은 강하고 억센 힘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쩌저저정!

혈륜과 주성진의 장풍이 세차게 부닥쳤다.

‘이런…….’

답답한 건 주성진이었다.

상대가 자신의 장풍을 어렵지 않게 흩어낸 것이다.

본인이 강한 공격을 했음에도…….

주성진이 움찔하는 사이 공격의 주도권은 완전히 상대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키이이잉!

쇠 긁는 소리와 함께 혈륜이 주성진의 주위를 빙빙 돌며 위협적으로 핏빛 궤적을 만들고 있었다.

조금씩 물러서는 주성진은 다시금 진기를 모아 장풍을 쳐냈다.

꽝!

‘음, 도저히 안 되겠다. 인제 보니 저놈의 륜이 심상치 않아. 필시 신병이기가 틀림없어…….’

더는 장풍으로 맞받기가 힘들 것 같았다.

손목 얼얼한 가운데, 위기를 느낀 주성진은 힘껏 땅을 박찼다.

피하려는 것이다.

콰아아앙!

혈륜이 휩쓸고 지나간 땅거죽이 움푹 터져 나갔다.

바로 좀 전 자신이 있던 자리였다.

‘휴, 혈륜의 힘이 너무 강하군!’

장풍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하니, 심적으로 더욱 위축되고 만다.

최근에 크게 낭패를 본 경험이 없어서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주성진은 장풍을 계속 고수하기로 했다.

그건 자존심의 문제였다.

‘할 때까지 해보자고!’

콰쾅!

콰콰쾅!

경천동지의 싸움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얍……!”

또다시 울리는 주성진의 기합성, 주변 공기를 온통 끌어 올릴 정도로 큰 기세를 품었지만, 상대는 주성진의 장풍을 완벽히 파악했다는 듯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였다.

몇 합을 더 교환한 후, 예의 그의 입에서 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쓰러져라!”

우우웅!

혈륜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빛 광휘가 새빨간 궤적을 만든다.

마치 하늘에서 온통 핏빛이 쏟아지기라고 하는 것처럼…….

‘음. 아까와 강도가 다르다!’

상대 혈륜의 위세가 강해지자 주성진은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제길, 더는 안 되겠다.’

주성진은 재빠르게 땅에 떨어져 있는 검을 집어 들었다.

사실 좀 전까지 싸움에 열중하느라 주변을 돌아볼 틈이 없어 발견하지 못한 검이었다.

주성진이 차마 자신의 애검을 들지 않은 건 상대를 죽이면 안 된다는 생각과 신병이기로 상대를 이기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 뭉친 결과였다.

재빠르게 검을 휘두른 주성진.

확실히 검을 집어 드니 장풍을 펼칠 때와는 심적으로 완전하게 다르다.

챙, 챙……!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