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기문진법 몽혼천리행 (2)
하오문주는 자기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아, 그걸 말하지 않았군요. 비밀문서는 기문진법인 몽혼천리행을 파훼하는 방법서입니다. 오랫동안 진법연구회에서 연구한 산물이지요.”
주성진은 기문 진법이라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슬그머니 미소 짓는다.
‘허허, 또 기문 진법이야, 이거야 원 끈질긴 인연이네, 나와 진법은…….’
급히 미소를 지운 주성진이 되물었다.
“저, 방금 진을 파훼하는 방법서 말인데요. 그게 혹 생문을 뜻하는 겁니까?”
하오문주가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렇습니다. 혹 몽혼천리행을 아십니까?”
“모릅니다. 다만 얼마 전에도 기문진법을 경험한 터라 이게 웬일인가 싶습니다만, 하하.”
“아, 그러셨군요. 그럼 마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비밀문서 중 절반을 손에 넣은 지, 얼마 후에 쌍사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서로 반쪽씩 가지고 있던 비밀문서를 교환하자고요. 아 참고로 교환 대상은 진본은 아니고, 필사본입니다.”
“…….”
“사실 저도 그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 소식에 반색했지요. 그 후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들을 만났는데, 아무래도 암계는 쌍사문이 한 수위였나 봅니다. 쌍방의 기습에 저희 측에서 희생자가 더 많이 나고 말았지요.”
주성진은 재차 손을 들었다.
“쌍방의 기습이라는 건 하오문에서도 기습을 감행했다는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신사적으로 물건을 교환한다는 건 저는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먼저 기습하지 못해 희생자가 더 많이 난 것이지요. 그게 다 제가 독하지 못한 탓입니다.”
“문주님, 상대를 완전히 죽이겠다고 기습한 겁니까? 제 생각에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하오문주는 고개를 끄떡였다.
“예리한 지적이시군요. 솔직히 그런 기대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 점은 쌍사문의 문주도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다만 그런데도 서로 기습한 건은 혹시나 해서입니다. 재수 좋으면 상대를 모두 죽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주성진은 하오문주의 말을 들으며 새삼 비정한 무림의 생리를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이거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고 하더니 바로 그 짝이구나, 정신 차리자 주성진! 무림은 정글이야. 한눈팔았다간 바로 먹히는 세계라고!’
하오문주는 주성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짐작했다.
그는 씩 웃으며 동전을 꺼내 들더니 주성진에게 보여 주었다.
주성진은 순간 못 보던 동전에 눈길이 간 나머지 그가 왜 갑자기 동전을 꺼내 들었는지 생각하지 못했다.
“이건 처음 보는 동전이군요…….”
“네, 서역에서 온 동전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동전의 양면에 음각된 것이 완전히 틀리지요?”
“아, 그렇네요.”
하오문주는 동전을 주성진에게 주며 말했다.
“기념으로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주 상단주님,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건 동전의 양면성이자, 세상의 양면성입니다.”
주성진이 하오문주가 왜 난데없이 동전을 꺼내 들었는지 곧바로 깨달았다.
‘하오문주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나에게 설파하려는 모양이군.’
“하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제가 뼛속 깊이 새기고 있는 게 저의 사부님의 말씀입니다. 잠시 들어보시렵니까?”
“아, 네 기꺼이.”
하오문주는 천장을 바라보더니 회상에 잠겼다.
주성진에게 말하기 전에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녀석아, 서역에서 온 동전을 보았지? ”
“네, 사부님. 양면이 틀리더군요.”
“동전과 같이 사물을 한쪽으로만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사고가 굳은 사람은 결코 대성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고수가 너를 향해 이와 같은 초식을 쳐왔다고 하자.”
문주의 사부는 말과 함께 우수를 곧추세워 내뻗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것은 하오문의 절기인 금나수였다.
“녀석아, 이 수법 속에는 다시 또 다른 일식이 숨어 있다. 자 보거라!”
문주의 사부는 제자에게 보여 주지 않았던 초식을 시전했다.
“저런 수법이 숨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사부님.”
“후후, 눈을 현혹하는 초식이란 수도 없이 많다. 고수끼리의 대결에서 이런 것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음이다. 무엇을 보는 시각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
“자, 그럼 이번에는 달리 똑같은 사물인데도 왜 틀려 보이는지 예를 들어 설명해 보마, 저잣거리의 장국과 고급 반점의 산화탕이 똑같은 음식인데도 사람들은 고급 반점의 산화탕에 엄지를 치켜들지, 마찬가지로 저잣거리에서 파는 검과 고급 골동품 가게의 검이 같은데도 사람들은 골동품 가게의 검에 칭찬을 늘어놓겠지, 안 그러냐?”
“네, 그렇습니다. 사부님.”
“좋은 장소에 있는 물건이 좋아 보이는 맹점은 무공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외모나 복장이 하찮아 보여도 상대를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없으니 말이다.”
그는 사부의 말에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참으로 간단하지만 사실 사부님의 말씀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생존의 도리가 아닌가? 변화하는 것… 장소, 시간, 또는 위치에 따라 쉴 새 없이 변화하는 것이 세상의 기본적인 정석이야. 고정된 초식만으로 싸울 수 있는가? 천만에!’
잠시 후, 하오문주가 말을 끝내자 주성진은 일시 끊긴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음, 잘 들었습니다.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자,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제가 발견한 하오문의 시신들이 그때 이루어진 겁니까?”
하오문주는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렇습니다. 다만 원래의 교환 장소는 아니고 좀 떨어진 곳에서입니다. 죽은 이들은 쌍사문을 추격하다가 역으로 당한 거지요. 만일 제가 거기에 있었더라면 그리 허무하게 당하지 않았을 겁니다. 휴…….”
“그랬었군요. 저 문주님, 제가 두 번째로 발견한 시신 말인데요. 그때 방일우 조사관이 시신을 달라고 요청하였거든요. 그 상황이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 여인이 바로 물물교환 대상이었지요. 정확히는 그녀의 등 뒤에 진의 파훼 방법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냥은 보이지 않고 물을 끼얹을 때 보이게끔요. 그때, 방 조사관이 주 상단주님께 부탁해서 시신을 회수하고자 한 건 제삼자가 알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주성진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재차 입을 열었다.
“저기, 한데, 쌍방에서 내놓은 파훼 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확인한 것입니까?”
“아, 그거요? 그건 확인할 방법이 있습니다. 물물교환 장소가 바로 몽혼천리행이 있는 장소거든요.”
주성진은 눈을 깜박거렸다.
“아, 그건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군요.”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진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죠. 저와 쌍사문의 문주가 함께 말입니다. 미리 약속한 위치까지 말입니다…….”
“음, 그럼 양측에서 지금이라도 당장 몽혼천리행을 파훼할 수 있겠네요?”
하오문주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지금 당장은 어렵습니다. 준비해야 할 것이 있거든요. 사실 그래서 저와 쌍사문의 문주는 파훼 방법서의 진위를 파악할 수 있는 위치까지만 진 안에 들어가 본 것입니다. 더 들어가면 매우 위험하니까요.”
“그래요. 그럼 뭘 준비해야 하는 건가요?”
“그건 바로 이십여 구의 강시가 있어야 합니다. 그걸 준비하지 않으면 더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주성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가만 단 선배가 추정한 범인이 쌍사문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난 범인이 여자라고 해서 쌍사문의 자객인 줄 알았는데…….’
“저, 이야기가 벗어났는데, 그럼 객잔에서 죽은 문도들은 쌍사문의 짓이 아닐 수도 있겠군요.”
“네, 제 생각에는 몽혼천리행을 알아보려고 누군가가 벌인 짓 같습니다.”
“음, 그런데 제삼자가 몽혼천리행의 파훼법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하오문주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쌍사문이나 비급연구회 아니면 저희 내부의 누군가가 돈을 받고 누출했겠지요. 어쨌든 확실한 건 파훼법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중원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는 점이죠.”
“문주님, 비급연구회의 인물들이 쌍사문을 추적하고 있는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적의 불행은 나의 행복 아니겠습니까? 음, 농담이고요. 비급연구회에서는 오랫동안 연구한 파훼법을 쌍사문의 자객에게 탈취당했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분하겠습니까. 그러니 복수하려 드는 거죠. 아 그리고 제 생각에 그들이 문서를 도둑맞았다고 해도 지금은 복원하였을 겁니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겠네요. 음, 문주님 말씀마따나 꽤 복잡한 이야기였군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비밀이 새어 나간 이상, 누가 물어본다면 공개는 해야겠는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습니다. 바로 진법연구회죠. 진법연구회가 저희에게도 앙심을 품는다면 죽어 나가는 건 저희 문도들이니까요.”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아시면 알려 주시지요. 제가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몽혼천리행 안에 무엇이 있는지 반드시 알아야겠습니다.”
하오문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몽혼천리행 안에 무엇이 있다는 소문을 들어보지 못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한데 무엇이 들어 있나요. 소문에는?”
“엄청난 금은보화와 절세비급 3가지가 남겨져 있다고 하더군요.”
주성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금은보화요?”
“그렇습니다. 저 그런데 말입니다. 주 상단주님은 절세비급에 관심이 있으신지……?”
“만일 택일하라고 한다면 저는 금은보화를 택하겠습니다. 하하.”
하오문주의 표정이 돌연 진지해졌다.
“약속하실 수 있겠습니까?”
“합작하자는 약속을요?”
“네, 약속한다면 저희가 있는 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나중에 뭐든지…….”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약조하겠습니다만 문서로 남기시지요.”
“그럼요. 당연한 말씀을…….”
“아, 한데 강시가 필요하건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하하, 제가 뜬금없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주성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진을 완벽히 파훼하는데 어째서 강시가 필요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건 말이죠, 몽혼천리행에 답이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부분이지요.”
“몽혼천리행에 답이 있다고요?
“네, 원래 몽혼천리행은 강시만이 통과할 수 있는 진입니다. 몽혼천리행의 말뜻을 찬찬히 음미해보십시오.”
주성진은 돌연 손뼉을 쳤다.
짝!
“하하 그렇네요. 이지를 상실한 상태에서 천 리 길을 간다는 뜻이었군요.”
“네, 그렇습니다. 한데 만일 저희가 파훼법을 안다면 맨정신으로 진의 절반까지는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는 강시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지요. 그때부터 천릿길은 강시에게 매달려 가야 합니다. 반 가사 상태로 말입니다.”
주성진은 그의 말에 경악하며 동시에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다.
“강시들이 똑바로 길을 갈 수 있습니까?”
“그야 외길이니 갈 수 있지요. 하지만 몽혼천리행에는 마지막 관문이 존재합니다.”
주성진은 얼굴을 찡그렸다.
“마지막 관문이 있다고요?”
“네, 그건 바로 거대한 철문입니다. 강시 이십구가 합쳐야 겨우 열 수 있는 철문이랍니다. 만일 강시가 도중에 하나라도 이탈한다면 문제가 발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