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상인-245화 (245/250)

245화 뜻하지 않는 일에 휘말리다 (3)

왕천유는 고개를 끄떡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실은 저희는 신강의 일을 끝내고 복귀하는 길입니다. 아 참, 제가 소개를 깜빡했네요. 이쪽은 주성진 상단주님이고. 저쪽은 명세철 선배입니다.”

“반갑습니다. 단리평입니다.”

“반갑습니다. 주성진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명세철입니다.”

단리평은 주성진을 재차 바라본다.

“소문의 주인공을 이리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단리평은 환하게 미소지었다.

사실 단리평은 직업과 어울리지 않게 능글능글하며 낙천적인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지독한 술 귀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 사건이 터지면 그는 완전히 달라진다.

술기운에 찌든 두뇌는 무섭게 돌아가고, 충혈되어 탁한 눈빛도 바늘처럼 예리해진다.

때마침 주성진과 일행들이 우연히 목도한 모습도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단리평은 인사가 끝나자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실은 식사를 하러 여기에 들렀다가 관병을 만났소이다. 내가 신분을 밝히자 그들은 간밤에 여기서 살인 사건이 났다는 이야기를 하였소이다. 그래서 막 식사를 마치고 관병들이 말해 준 현장으로 가려던 참이었소.”

주성진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끄러워했다.

‘휴, 기척을 느꼈어야 했어. 분명 신음이나 비명이 들렸을 텐데 말이야. 뭐 핑계거리로 간밤에 술도 많이 마셨고 별관에서 머물렀다고는 하지만…….’

잠시 후 주성진과 일행이 식사를 마치자 단리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갑시다. 아 참고로 그 방에는 두 명이 투숙했다고 하더이다. 한데 시체는 하나뿐이고.”

주성진과 일행은 그 즉시 단리평을 따라 사건 현장에 갔다.

사건 현장은 객잔의 보통 방이었는데 그곳에는 관병들이 죽은 시신을 지키고 있었다.

순간 왕천유가 단리평 뒤에서 시신을 살피며 혀를 찼다.

“쯧! 처참하게 죽었군. 목이 반쯤 끊어졌어.”

그러자 옆에 있던 역산도가 왕천유의 말을 받았다.

“언뜻 보니 예리한 칼로 한 번에 내려친 것 같군. 상처가 매끈한 거로 보니 말이야. 내 생각에는 원한 관계에 의한 살인 같아 보이는데…….”

“음…….”

한편 단리평은 방안 구석구석을 본격적으로 살피고 있었다.

그의 눈은 더는 흐릿하지 않았다.

날카로운 안광을 뿌리며 그는 방안 구석구석을 면밀히 조사했다.

그는 먼저 시신에 나 있는 상처 부위를 조사했다.

과연 목이 반쯤 베어져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칼에 당한 게 아니다. 날카롭고 가느다란 철사에 베인 것이다. 그것도 무공이 아주 뛰어난 자의 짓이다.’

그는 창가로 걸어갔다.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그의 예리한 눈에는 창문틀에 미세한 흔적이 포착되었다.

그는 소매 속에서 작은 주머니칼을 꺼내 그곳을 파 보았다.

“뭐하는 거지?”

순간 주성진은 의아한 눈으로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어 왕천유에게 전음을 펼쳤다.

―단 선배는 원래 조사할 때 혼자 하는 편이오?

―네, 어떤 일에 몰입하면 주위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답니다. 가끔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도 하고 턱을 괴며 괴로운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상하게 보지 마시고 조사를 끝낼 때까지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전음을 하지 않아도 우리가 하는 말은 신경 쓰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대화해도 됩니다.

―아, 그래도 일단은 조사에 방해를 주고 싶지는 않소이다.

―하하, 안 그래도 되는데…….

주성진과 왕천유가 전음을 주고받는 사이 단리평은 창틀에서 무엇인가를 파냈다.

그것은 손가락 길이의 가느다란 암기였다.

정확히는 소매 속에 감춘 채 발사하는 작은 화살이었다.

전체적으로 일반 화살처럼 생겼으나 극히 가늘고 섬세한 모양이었다.

그것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살피던 단리평의 눈빛이 반짝였다.

‘음, 이렇게 작은 활을 쓰는 문파는 흔치 않다. 어쨌든 죽은 자가 작은 활을 발사하며 나름 반항을 했군.’

작은 활은 자세히 살펴보던 그는 미세한 글씨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오문!'

단리평의 안색이 급변했다.

‘죽은 자가 하오문 문도였구나, 그것도 고수다.’

그의 안색이 더없이 침중해졌다.

‘경험상 하오문 소속의 고수가 죽은 사건치고 작은 사건은 없었지…….’

그는 탁자로 걸어가더니 손가락으로 탁자 면을 훑은 후 냄새를 맡아 보았다.

‘음…….’

단리평의 안면이 가볍게 일그러졌다.

그는 냄새의 정체를 알아 챈 것이다.

‘이건 나락미혼향이다. 상대의 기력을 서서히 빠지게 만드는…….’

그는 잠시 생각했다.

머릿속에서 대충 사건의 개요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고도의 자객 수업을 거친 살수가 출현했구나, 왜냐면 나락미혼향은 워낙에 구하기 힘들어 일반인들이 구할 수는 없지…….’

쉭!

갑자기 단리평은 신형을 날려 창문틀에 내려앉았다.

군더더기 없는 신법만 봐도 그가 상당한 고수임을 알 수 있었다.

창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음, 죽은 저자가 죽기 전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단리평은 창문에 올라앉은 채 예리한 시선으로 창문 주위를 살펴보았다.

문득 추녀 끝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추녀 끝에 미량의 진흙이 묻어 있는 것이 보였다.

‘역시 내 추측이 들어맞았어!’

그는 다시 방안으로 뛰어내린 후 여전히 영문도 모른 채 서 있는 관병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시체를 관부로 이송해라. 그리고 가서 전해라. 이번 사건은 내가 해결하겠다고…….”

관병들은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일제히 대답했다.

“네! 분부 받잡겠습니다.”

단리평은 더는 볼 것 없다는 듯 방안을 빠져나왔다.

그 뒤를 주성진과 일행들이 따른다.

객잔의 후원으로 걸어 나온 단리평은 찌푸린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빗물이 금세 얼굴을 적셨다.

‘살인자는 여자다. 그것도 대단한 고수다. 죽은 자와 일대일로 자웅을 겨룰만한…….’

그가 범인을 여자로 단정한 것은 그만이 지닌 직감이었다.

또한, 그의 직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범인은 추녀 끝에서 박쥐처럼 매달린 후 창문 틈으로 나락미혼향을 흘려 넣었다. 무색무취한 미혼향을 맡고 하오문도 들은 현기증을 느꼈을 것이다.’

단리평의 눈이 매섭게 번들거렸다.

‘범인은 그들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자 철사를 날려 한 명의 목을 감고 방으로 날아 들어왔다. 단숨에 한 명을 해치운 후 나락미혼향에 취한 다른 한 명을 납치해 갔다.’

그의 추리는 계속되었다.

‘하오문의 한 인물은 동료가 죽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범인을 향해 작은 화살을 발사했다.’

단리평은 왠지 이 사건에 흥미가 당기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번 사건이 일반 사건이 아님을 감지하고 있었다.

‘내 생각에 투숙한 하오문의 고수는 보통 인물이 아니다. 그런데도 흉수는 절정 무공을 지닌 데다가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 암습했다. 그리고 창틀에 활이 박힌 깊이가 세 푼이나 되는 것은 활을 날린 인물이 심후한 내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단리평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어렸다.

‘좋다. 한번 조사해보자. 흉수가 누군지 몰라도 날 만난 것은 불행한 일이다. 단지 걸리는 게 있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거지. 그래서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

그 순간 그의 뇌리에 들어온 것은 주성진, 왕천유, 역산도, 명세철의 얼굴들이었다.

‘후후, 그들과 합동 작전을 해보자고!’

그 이후로도 단리평의 머리는 비상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미리부터 계획된 살인이었다면 오히려 쉬운 일이다. 분명 목적이 있기 때문이니까. 우발적인 사건이 때로는 해결하기 힘 드는 법이고, 범인의 범행 동기를 파악하기 어렵 기에 초동수사에 혼선을 주거든.’

그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여긴 번화한 곳이므로 여인의 몸으로 실신한 사람을 운반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그러다 돌연 단리평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맞다. 이 사건이 하오문과 전문 자객이 개입된 사건이었지.’

이상하게도 그는 이번 사건에 강한 흥미를 느꼈다.

처음에는 단순한 살인 사건인 줄 알았으나, 추리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중요한 사건임을 느끼게 되었다.

비는 소리 없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 순간 왕천유가 단리평에게 소리친다.

“선배님,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건져낸 듯합니다. 비는 그만 맞으시고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역시 왕천유야. 너는 옛날부터 눈치 하나는 일품이었지.”

잠시 후 음식점에서 차를 시킨 후 단리평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조용히 경청하던 주성진이 단리평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천장을 바라본다.

‘결국, 이렇게 엮어 버렸구나. 뭐 기왕에 이렇게 된 것 제대로 파헤쳐 보자고.’

주성진은 일행들에게 무언의 눈치를 준 후 단리평을 바라보았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단 선배에게 저희가 겪었던 일을 말해 주어야겠군요. 일단 놀라지 마십시오.”

주성진이 그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단리평의 벌어진 입은 닫히지 않는다.

“…이상입니다. 저희가 겪었던 일이.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이젠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단 선배님이 저를 많이 지도 편달해 주십시오.”

“하하. 이 사람, 내가 오히려 자네에게 도움을 받았으면 하네. 일단 이 일은 무림의 기보와 연관이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아. 내 생각에 하오문에서 뭔가를 발견한 건 분명한 것 같은데 그게 어떤 이유로 새어 나간 것 같아…….”

“…….”

“그리고 진법연구회는 내가 좀 더 생각해 보겠네. 예전 오래된 기억이 날 듯 말 듯한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분명 진법연구회도 이번 사건의 핵심인데 말이야. 자, 그러면 내일부터 본격 수사에 착수하자고. 당분간 술들은 가급적 마시지 말게. 머리가 맑아야 추리를 할 수 있으니 말이야.”

주성진은 빙그레 웃었다.

“조심해야 할 분은 단 선배로 알고 있는데요…….”

“주 상단주. 나는 수사할 때는 절대 술 안 마셔. 걱정 붙들어 매라고.”

“알겠습니다. 그래도 술은 끊는다는 것은 좀 그렇고 많이 마시지는 않겠습니다.”

단리평이 주성진을 바라본다.

“알아서 하게, 그런데 말이야, 이번 사건이 해결이라는 게 있을까? 내 말은 해결했다고 해도 해결이라고 볼 수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무림의 일이라서 그럴 겁니다. 제 생각에 최우선으로 쌍사문의 자객 중 하나를 붙잡아야겠는데 좋은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당장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데 혹 방법이 있나?”

주성진은 좌중을 둘러보았다.

“뭐 저도 획기적인 방법은 생각나지 않지만, 우선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려고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하오문에 쳐들어가 보는 거죠, 하하.”

“음, 그 방법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하오문이 자신들이 꼭꼭 숨겨 놓은 비밀은 털어놓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쌍사문의 위치와 흔적은 알고 있을지 모르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