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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244화 (244/250)

244화 뜻하지 않는 일에 휘말리다 (2)

한데 그때였다.

“누가 시신을 가져간다는 말이오? 아니 될 말이오.”

쉬익!

어디선가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허공으로부터 한 인영이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정체불명인이 나타나자마자 삼 인은 전광석화처럼 움직여 주성진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이때 아무도 주성진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 걸 본 사람이 없었다.

사실 주성진은 불청객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후후, 나타났군.’

새로이 나타난 자는 특이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비록 군데군데 먼지가 묻긴 했으나 비싼 하늘빛 비단으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또한, 중년인의 얼굴은 대다수 사람이 별 고민 없이 인정할만한 미남이었다.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그의 두 눈이 길고 가늘게 뻗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눈을 가진 자는 심기가 깊고 지혜로운 법이었다.

달리 나쁘게 표현한다면 계략에 능하고 음흉할 수 있었고.

중년인은 특이하게 오른손에 강철로 만든 섭선을 쥐고 있었는데, 섭선에서 날카로운 기세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자는 강철 섭선을 흔들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귀하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이 여인의 시신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소이다.”

방일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가볍게 냉소하며 말했다.

“이 여인이 그대의 소유라도 된단 말이오?”

“그러면 그대의 소유라도 된다는 말이오?”

방일우가 재차 입을 열려는 순간 왕천유가 먼저 새로운 인물에게 말을 걸었다.

“댁은 뉘시오? 소속과 신분을 밝히면 우리도 소속과 신분을 밝히겠소.”

“하하. 아마 나는 그대보다 훨씬 미미한 존재일 거요. 그러니 감히 밝히지 못하겠소이다.”

왕천유의 안색이 굳어졌다.

“신분을 밝힐 수 없다는 말이오?”

“그냥 무명소졸로 봐주면 안 되겠소? 뭐, 그럼 이름만 밝히겠소. 천야홍이오.”

“난 왕천유요…….”

순간 주성진의 전음이 왕천유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한번 붙어 보시오, 뒤는 걱정하지 말고.

―네…….

왕천유는 고개를 살짝 끄떡이더니 검을 꺼내 들었다.

스릉!

“그대가 과연 무명소졸인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해야 갰소.”

다분히 빈정거리는 말투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왕천유는 검을 앞으로 뻗었다.

쉬익!

갑작스레 공격을 받은 천야홍의 얼굴에 분노가 피어올랐다.

“이런 추잡한 자 같으니라고!”

차르륵!

순간 강철 섭선이 활짝 펴졌다.

얍!

기합을 내지련 효과가 있는지 금빛 광채가 부챗살처럼 뻗어 나갔다.

실로 전광석화와 같은 빠르기였다.

한편 왕천유 눈에서 야수와 같은 빛이 번뜩였다.

마친 먹이를 눈앞에 둔 듯했다.

그는 섭선의 휘오리를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쳤다.

땅!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퉁겼다.

왕천유의 안색이 변했다.

‘역시 강하구나!’

왕천유는 이후 네 차례나 연속해서 검을 휘둘렀지만, 여전히 섭선의 칼바람을 해소하진 못했다.

다음 순간 섭선의 휘오리가 또다시 왕천유에게 몰려오고 있었다.

쐐애액!

무시무시한 기운이 왕천유의 세력권으로 파고든다.

상대의 부채는 겉으로 보이기엔 작은 섭선이지만 기운의 날카로움은 검이나 도에 결코 못지않았다.

오히려 그 이상이었다.

섭선에서 내뿜는 기운이 물밑 듯이 쇄도하자 왕천유의 가슴이 철렁거렸다.

‘이이…….’

입술을 앙 다문 왕천유는 급히 검을 휘둘렀다.

‘할 수 있다!’

죽기 살기로 펼친 검이라 그런지. 왕천유의 검에서 눈부신 광채가 뻗어 나온다.

그리고 맹렬한 부딪힘.

땅, 땅, 땅……!

왕천유는 연속해서 칠팔 초를 펼쳐내, 간신히 섭선의 공격을 막아 내고는 뒤로 훌쩍 뛰어 물러났다.

‘휴, 가까스로 섭선의 세력권에서 벗어났다.’

왕천유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상대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바람 한 점 없는데 그의 옷깃이 펄럭이는 것으로 미루어, 그는 매우 놀라고 긴장한 듯했다.

잠시 후 왕천유가 말문을 열었다.

“섭선을 이리 잘 쓰는 사람을 여태 본 적이 없소이다.”

방일우는 여인의 시신을 바라보며 음울하게 말한다.

“과찬이오. 음 여기서 죽은 여인은 진법연구회 소속 호위무사 다섯을 살해범 중 하나요. 나는 그곳의 위임을 받아 살해범을 추적하고 있었고, 여기 근처에서 거의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대들이 있었소. 아쉽게도 살해범은 죽어 있었고…….”

“…….”

“이보시오, 그러니 저 여인의 시신을 본인에게 넘겨줄 수 없겠소이까?”

천야홍이 정중하게 부탁하자 난감해진 왕천유가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순간 천야홍의 눈에 이채가 발한다.

‘그간 저자가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어서 잘 몰랐는데 이자야 말로 진짜 고수구나.’

사실 주성진이 갈무리한 기운을 푼 건 아니었다.

반대로 천야홍이 주성진이 숨긴 기운을 알아챌 만큼 고수라는 뜻이었다.

주성진은 그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어느 정도 눈치를 챘다.

상대가 자신을 알아본다고.

‘음, 누구지? 나를 모르는 것으로 봐서는 무림에서 활동하는 자는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주성진이라 하외다. 시신을 반드시 가져가야 하는 이유라도 있소이까?”

“죽은 자의 원혼을 달래려 하는 것이오.”

“음, 산자도 아닌데 죽은 자로 죽은 자의 원혼을 달랜다. 이것 참 이상하구려.”

천야홍은 노한 표정으로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나더러 어쩌란 말이요, 분풀이할게, 그것밖에 없는데…….”

순간 주성진이 빙그레 웃었다.

한데 입은 움직이지 않는데 천야홍의 귓속으로 주성진의 음성이 파고들었다.

어의전성이었다.

―그녀의 동료가 근처에 숨어 있는데 한번 잡아 보는 건 어떻겠소?

사실 천야홍은 주성진의 어의전성에 매우 놀란 상태였다.

또한, 자신과 주성진과의 무위 차이가 본인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간극이 크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 감각에는 들어오지 않소만, 그게 사실이오?

―만일 수락한다면 그녀의 위치를 알려주겠소. 대신 죽은 여인은 댁과 처음 말다툼을 벌인 자에게 넘기는 것이오. 아시겠소?

―음 왜 시신을 하오문에 넘기는 것이오?

―그들도 피해자요. 그대와 동일 소속 살수들에게 하오문도 여러 명이 비명에 갔소이다.

―아아, 그렇소이까.

천야홍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 하겠소. 한데 중재하는 그대에게는 아무 이득이 없는 것 같은데…….

―이득을 보겠다고. 이런 제안을 하는 게 아니오. 나와 내 일행들은 하루속히 여기를 떠나, 가던 길을 계속 가고 싶소이다. 아 그전에 물어볼 게 있는데 진법연구회라는 게 어떤 곳이오?

―주로 고대 귀곡문의 진법을 연구하는 모임이오. 회원은 각계각층이 망라되어 있소이다.

―고대 귀곡문? 음 그렇구려, 한데 살수가 호위무사를 살해한 이유는 무엇이오?

―살수들과 시비가 붙은 모양이오.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겠소. 한참 회원들끼리 토론을 하고 있는데 비명이 들려 밖에 나가 보니 호위무사 다섯이 죽어 있었소이다.

―아, 알겠소이다. 그럼 위치를 알려 주겠소.

주성진이 위치를 알려 주자 천야홍의 눈에서 검날처럼 예리한 안광이 번쩍인다.

그와 동시에 그의 하늘빛 소매가 펼쳐졌다.

슉……!

파공성과 함께 무엇인가가 숲속의 나무 사이로 빠르게 뻗어 나갔다.

실로 전광석화와 같은 빠르기였다.

한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놀라운 것은 그가 던진 무엇인가가 아주 큰 나무 위를 지나가더니, 돌연 거꾸로 완전히 방향을 튼 것이었다.

“아악!”

나무 위에서 비명과 함께 한 인영이 떨어졌다.

급히 달려간 천야홍은 여인을 바라본다.

‘음, 닮았군,’

바닥에 떨어진 인영은 죽은 여인과 흡사한 모습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천야홍을 멍하니 바라보다 돌연 전신을 바르르 떨더니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기절한 여인의 양손에는 사슴 가죽 장갑이 끼워져 있었고. 한쪽 손에 표창이 쥐어져 있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천야홍은 기절한 여인을 데리고 숲속에서 나왔다.

한데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작은 원반이었다.

지켜보던 왕천유는 천야홍의 품속에서 날아간 그 무언가가 원반임을 알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나보다 한 단계 위의 고수구나. 원반으로 이토록 정확하고 신속한 수법을 전개하다니, 이는 진기의 수발이 자유롭다는 것…….”

왕천유도 원반을 암기처럼 쓰는 자가 있다는 건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한데 눈으로 본건 처음이었다.

사실 정확하게는 눈으로 본 건 맞지만 그게 원반이었다는 건 몰랐지만.

*     *     *

저녁 늦게 객잔에 도착한 주성진과 일행들은 객잔에 부속된 음식점에서 식사와 반주를 들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성진이 천야홍과 전음으로 이야기한 내용을 말하자 그 즉시 왕천유가 물었다.

“천야홍의 말을 믿으십니까?”

“3할 정도는 사실인 것 같고 7할은 거짓이 아닐까 싶소.”

“주 상단주님은 오늘 벌어진 일에 전혀 관심이 없으신 거죠?”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하하. 그렇소,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거기에 시간을 지체하긴 싫소이다.”

“솔직히 저뿐만 아니라 다들 이번 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다만 주 상단주님이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나서지 않았을 뿐이지요.”

“그렇소이까. 그럼 심심풀이로 오늘 미심쩍었던 것에 관해 잠깐 이야기해봅시다.”

주성진의 제안에 명세철이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말해보시오.”

“저는 하오문에서 죽은 살수를 왜 데리고 가는지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혹시 죽은 여인이 뭔가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를테면 비급 같은 것 말이오?”

명세철이 세차게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말이오. 자객들이라면 응당 의뢰받은 자를 죽이는 게 목적일 텐데…….”

“주 단주님, 요즘 살수들은 단순히 사람 죽이는 일만 하는 게 아닙니다. 예전에 비해 하는 일이 광범위하답니다. 가령 물건을 훔치는 것도 해당이 되고요.”

주성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 그렇소이까? 그들이 도둑질까지 할지는 몰랐소이다.”

“비단 도둑질뿐이겠습니까. 돈만 많이 주면 뭐든 할 것입니다. 아주 고약한 족속들이에요.”

“음, 그러면 비급연구회는 어떻소? 그곳도 비밀이 많은 것 같은데…….”

순간 왕천유가 손을 들었다.

“그곳도 뭔가 구린 냄새가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그들의 대화는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의문만 증폭되었을 뿐 명쾌한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다음날 늦잠을 잔 일행들은 늦은 식사를 하기 위해 음식점에 들렀다가 육선문의 여러 부문주 중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중원에서 널리 알려진 유명한 포쾌였는데, 주성진은 한 번도 그를 본 적이 없었다.

하나 왕천유와 역산도는 그를 보는 순간 가슴속의 피가 격탕함을 금치 못했다.

왜냐면 그들이 육선문 내에서 가장 존경하는 선배였기 때문이었다.

순간 왕천유가 반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단 부문주님, 여기는 어인 일입니까?”

“이거 중원 땅이 좁구먼, 자네와 역산도를 여기서 만나다니. 네가 언뜻 듣기로는 신강에 갔다고 들었는데… 아 그냥 여기선 선배라고 해, 부문주라는 말이 거슬리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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