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상인-243화 (243/250)

243화 뜻하지 않는 일에 휘말리다 (1)

서안을 지나 낙양 인근에 도착한 네 사람은 말을 타고 천천히 황하 지류의 강가를 달리고 있었다.

마차는 이미 후한 가격을 쳐주는 자를 만나 서안에서 처분한 후였다.

“아아아악……!”

네 사람은 이야기하다 일제히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음, 몹시 처절한 비명이오…….”

“가까운 곳입니다. 상단주님. 한데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제 생각에는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명세철은 말고삐를 당기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러자 주성진은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고개를 끄떡였다.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진 않지만 처절한 비명을 듣고도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왕천유나 역산도는 육선문의 포쾌들이었다.

아무리 관할 지역이 틀리고 받은 명령이 없다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백성의 안위를 살펴야 하는 게 그들의 기본 의무였다.

그렇기에 주성진이 비명을 무시하고 떠나자고 해도 그들은 떠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잠시 후 그들은 강가의 모래톱에 네 구의 시체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데 의외로 그들은 하오문의 본부 문도들이었다.

보통 하오문 분타의 문도들은 특별한 표식이 없는 무복이나 일반인들이 입는 의복을 즐겨 입는 게 관례지만, 그들과 구별되게 하오문 본부의 문도들은 고유의 복식을 입고 있었다.

역산도가 가장 빨리 그들의 시신에 다가갔다가 신음성을 흘렸다.

“음…….”

역산도는 그들의 가슴에 똑같은 모양의 별 모양의 작은 표창이 박혀 있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죽은 자들이 수리검에 당했습니다.”

“수리검? 그게 무엇이오?”

“왜의 인자들이 즐겨 쓰는 단단하고 날카로운 표창입니다. 주로 원거리에서 적을 공격할 때 사용되며 숨기기 좋도록 작은 크기로 만들었죠. 하지만 무엇보다 무서운 건 독을 묻혀 적을 한 번에 제거하는데 이용되는 암기라는 점입니다.”

주성진은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여러 번 갸우뚱거렸다.

“왜의 표창이 왜 여기에? 설마 왜의 인자들이 중원에 진출한 거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그것보다는 중원의 살수들이 사용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수리검이 왜에서 대량으로 수입되었거든요.”

“혹, 어떤 살수 단체에서 주로 사용하는지 아시오?”

역산도가 고개를 저을 때 명세철이 끼어들었다.

“아마도 쌍사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즘 뜨고 있는 살수 단체입니다. 쌍사문은 원래 왜의 인자술을 도입해 중원의 자객술과 혼용해 쓰는 살수 단체인데 얼마 전 혈교에 편입되었다고 들었습니다.”

“…….”

“만일 기이 독랄한 혈교의 무공까지 쌍사문이 익히게 된다면 중원의 살수 계를 지배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봐야지요.”

주성진은 그를 다시 보았다.

사실 명세철을 만난 이후 주로 그와 진법에 관한 이야기만 나누었지 다른 이야기는 별반 하지 않았었다.

“하하, 그대가 이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소이다.”

“과찬이십니다. 중원을 오다가다 주워들은 이야기 중 하나이지요. 사실 이번 이야기는 천마곡진을 파훼하기 위해 모인 자 중 한 명에게 들었습니다. 그는 거액의 돈을 받고 자객단에 합벽진을 가르치던 자였지요.”

“아아. 그렇소이까? 자객단을 상대하는 것을 보니 심성이 좋지 않은 자였구려. 내가 그때 그들을 잘 처리했네…….”

명세철은 고개를 끄떡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자가 말하길 쌍사문의 문주는 여자랍니다.

무공이 상당히 강하다고 하는데 사파 출신이라고 알려져 있을 뿐 정확한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 순간 역산도가 표창을 천으로 감싸며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하오문도들을 죽인 범인들은 무공이 그렇게 고강한 것 같지 않습니다. 상처 부위가 일정히 않고 그 깊이도 각각 다릅니다.”

“음, 만일 쌍사문의 살수가 여기에 있었다면 내 손으로 해치워 버릴 기회가 되었을 텐데 아쉽소이다.”

역산도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살수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자는 아마 천하를 뒤져 봐도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역산도는 부러움 반, 질투 반의 심정으로 피식 웃었다.

“왜 그러지 말고 범인을 추격하시지요. 주 상단주님의 능력이라도 곧 따라잡을지도 모르는 데요.”

“아이, 그런 뜻이 아니지 않소이까. 아무튼 시신들을 묻어 주고 빨리 떠납시다.”

시신을 묻어 주고 4필의 말은 다시 달렸다.

석양이 떨어지고 사위에는 서서히 어둠에 잠기고 있었다.

밤하늘에는 별이 떠오르며 반쯤 잘린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얼마쯤 갔을까.

“뭐야?”

주성진의 눈썹이 꿈틀했다.

가느다란 신음이 관도 옆 숲속으로부터 들려온 것이다.

그 순간 주성진의 오른쪽에서 말을 몰던 왕천유가 앉은 자세 그대로 신형을 띄웠다.

사실 그도 미약한 신음을 들은 거였다.

휙!

왕천유는 허공에서 빙글 회전했다가 독수리가 병아리를 채는 듯한 신법으로 한 그루 나무를 향해 덮쳐 갔다.

막 나무에 떨어진 왕천유는 눈을 크게 떴다.

누군가 나뭇가지에 기댄 채 걸터앉아 있었다.

많이 봐주어도 스무 살 정도 될 법은 여인이었다.

여인은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했으며 가슴과 복부에 온통 피 칠갑을 하고 있었다.

‘상처가 깊어!’

왕천유는 급히 그녀를 옆구리에 낀 채 하강했다.

쿵!

역산도가 그녀를 힐끔 바라보더니 말문을 열었다.

“이봐. 여인의 상태가 어때?”

왕천유는 여인의 맥문을 잡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식이 엄엄해! 피도 많이 흘렸고 상처가 너무 깊어서 살아나기 힘들 것 같아.”

역산도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럴 때는 소림의 제자다웠다.

“음, 다시 한번 그녀의 상세를 살펴보자고…….”

“그래.”

왕천유는 두말없이 동의하며 관도 옆 잡풀이 우거진 곳에 여인을 눕혔다.

달빛에 드러난 여인의 용모는 아름다웠다.

눈썹이 붓으로 그린 듯 길게 뻗어 있었고 어딘가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왕천유는 주성진을 바라본다.

“옷을 좀 벗겨야 할 것 같은데요.”

“음…….”

주성진이 잠시 주저하는 사이 명세철이 나섰다.

“이보시오, 이런 일까지 상단주님에게 말하면 어찌 되오. 내가 하겠소이다.”

쉬익!

명세철은 거침없이 그녀의 상의를 벗겼다.

온통 선혈이 속옷에 엉겨 붙어 있었다.

하지만 검이나 도에 당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후 그녀의 상반신을 살핀 명세철은 혀를 차며 말한다.

“쯧쯧, 지독한 내가 장력에 당했군.”

명세철이 중얼거리자 왕천유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오장육부가 완전한 파열 되었군요. 아직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지경입니

다.”

이때 주성진이 그녀의 어깨에서 아주 작은 문신을 발견했다.

“문신이 있소이다. 뱀 두마리가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인데…….”

“아, 살무사 두 마리, 그럼 쌍사문입니다.”

명세철이 크게 외치는 순간 아쉽게도 곧바로 여인이 숨을 거두었다.

“음. 여인이 죽었습니다.”

역산도의 침중한 말에 주성진은 여인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혹 암기는 없었소?”

“암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 다 소진한 것 같습니다.”

“음, 알겠소이다. 여인을 빨리 묻어주고 떠납시다. 밤도 깊어 가는데, 어…….”

주성진은 말을 마치려다 인기척을 느꼈다.

잠시 후 나타난 인물들은 하오문 본부 소속의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주성진과 일행을 바라보더니 다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와중에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주성진을 보며 말문을 열었다.

“신강의 영웅, 주 상단주님을 뵈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하오문의 방일우라고 합니다.”

주성진은 자신을 가리켰다.

“내가 신강의 영웅이라고요?”

“그럼요, 흑룡가를 쓸어버렸지 않습니까?”

“음, 다소 이야기가 와전되고 과장된 것 같습니다만…….”

방일우는 손을 흔들었다,

“아닙니다. 백여 명의 무인들을 한 방에 쓸어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사람들은 주 상단주님을 고대 마교의 천마, 소림의 달마대사와 비교하며 고금 삼대 무인으로 칭하고 있습니다.”

주성진은 자신이 무당의 조사 장삼풍보다 높은 인물로 일컬어지고 있다는 점에 살짝 고무되었다.

‘하하. 이것 참, 그래서 총무련에서도 날 의식하는 거구나. 내가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받들어지고 있으니까.’

“아아, 이거 참 제 얼굴이 화끈거리는 이야기입니다. 한데 이 밤에 무슨 일로 여기에 오셨습니까?”

“다름이 아니고 죽은 여인을 저희에게 넘겨주었으면 합니다, 저희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서요.”

주성진은 낮에 죽은 하오문도들이 떠올랐다.

‘음, 하오문과 쌍사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구나.’

“실은 하오문 문도로 보이는 네 사람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습니다.”

주성진은 방일우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주었다.

“휴, 안 그래도 문도들이 실종되어 수색 중이었습니다만, 결국은 불귀의 객이 되었군요. 아 참 시신을 묻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 아닙니다. 괜히 묻어 주었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저희가 묻지 않았다면 빨리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주성진은 다음부터 우연히 발견한 시신이라면, 묻어 주기 전 한 번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누군가 찾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순간 왕천유가 방일우를 바라보았다.

“육선문의 왕천유요? 몇 가지 알고 싶은 게 있는데 대답해 줄 수 있소이까?”

“미안하지만 기밀 사항은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이점을 곡해하지 마시고 질문해 주십시오.”

“죽은 여인을 왜 데려가겠다는 것이오?”

그러자 곧바로 방일우가 고개를 흔든다.

“죄송합니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만일 제가 이 사실을 실토한다면 저나 가족이 모두 불명예스럽게 죽임을 당할 겁니다.”

“음, 그게 가장 궁금한 부분인데 이야기 못 한다고 하니…….”

상황을 살피던 주성진이 빠르게 나섰다.

“여기서 죽은 여인은 하오문에서 죽인 것이오?”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추적하고 있었지만, 그녀를 숨지게 한 건 다른 사람입니다.”

“그렇소이까? 한데 미지의 인물이 왜 자객을 죽였을까요?”

방일우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무림에서는 시비가 붙는 일이 다반사이니 그래서…….”

순간 왕천유의 전음이 흘러들어왔다.

―저자가 뭘 많이 숨기고 있는 것 같은데 시신을 선선히 내어 줄 필요가 있겠습니까?

주성진은 방일우와 마주하고 있는지라 전음을 펼치면 들킬 수가 있기에 전음의 최상위인 어의전성을 시전했다.

―전에 하오문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소이다. 나도 저자의 말에 살짝 기분 나쁘긴 하지만 어쩌겠소? 우리는 가던 길이나 갑시다.

―죽은 여인의 몸속 어딘가에 뭔가가 감춰져 있을 것 같은데요……?

―하하. 참 미련을 떨쳐 버리라니까. 한데 아까 다 뒤져 본 것 아니었소?

―명 선배가 인정사정없이 여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뒤졌지요.

―하면 그대는 명세철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오?

―그게 아니라 저희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제가 알기로는 특수 염료로 문신을 새기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물을 부으면 문신이 나타나는 게 있다고 합니다.

―오오, 그렇소? 하면 죽은 여인의 나신에 뭔가가 그려져 있다는 말인데…….

―단정은 아니고요,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

그 순간 방일우의 말이 주성진의 귓전을 스치고 지나갔다.

“상단주님, 시신을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