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돌아가는 길 (2)
‘휴…….’
진기로 무형암기를 조정하던 윤승철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좀처럼 볼 수 없는 난감한 모습과 함께…….
‘아아, 더는 안 돼, 암기가 너무 멀리 떨어졌어!’
그리고 얼마 후, 제어되지 않은 무형암기가 숲속의 나무들과 부딪히기 시작했다.
가가가각…….
주성진은 추격을 멈추고 이기어검을 회수했다.
‘끝났군… 이거 상대의 무형암기 때문에 숲이 폐허가 되겠는데…….’
그는 암기가 통제 불능 상태에 들어간 것을 간파한 것이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숲이 갈가리 찢기어졌다.
부서진 나뭇조각과 돌들이 날아오르고 충격으로 땅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지켜보던 명세철의 눈동자는 경악으로 물들었다.
‘뭐야, 갑자기 웬 폭발!’
주성진의 이기어검에 밀린 무형암기는 분풀이라도 하듯 숲을 상대로 자신의 파괴력을 무차별적으로 행사했다.
하나 그것은 이미 목표를 잃은 발버둥일 뿐이었다.
폭음과 폭발은 윤승철이 숲속으로 달려가고 난 후에야 겨우 멈추었다.
‘뭐야, 그쳤네.’
잠시 후 명세철은 관도로 다시 돌아오는 윤승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비단 그만 그런 게 아니었다.
대결의 당사자를 제외한 모두가 그랬다.
심지어 윤승철의 친딸인 윤혜련까지도.
잠시 후 윤승철이 주성진에게 다가왔다.
다소 파리했던 얼굴색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래 색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음, 대단히 훌륭한 이기어검이었소. 그저 명불허전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소이다.”
주성진은 손사래를 쳤다.
“하하, 과찬의 말씀입니다. 그래, 제가 시험에 통관한 겁니까?”
“시험이라니 당치도 않소이다. 그저 직접 경험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이 문제인데, 부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구려.”
윤승철이 비무에 지고 난 뒤 주성진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달랐다.
주성진도 그의 태도 변화를 실감하고 있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저에게 확인할 것이 있다고 한 것 같은데…….”
“그렇소이다. 다만 내 질문이 듣기에 따라서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을 것이오. 해서 말하기 거북하다면 대답하지 않아도 되오.”
주성진은 그가 무슨 질문을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는지 궁금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하시지요,”
“음,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이다.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이시오?”
“저의 계획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당연히 저의 본분으로 돌아가야지요. 아시다시피 저는 상단을 운영하고 있으니까요.”
윤승철은 주성진을 표정을 살피며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럼 무림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오? 내가 알기로는 형산파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주성진은 그제야 그가 질문한 의도를 알아차렸다.
‘오라, 저거였구먼. 저자의 말처럼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구나. 결국은 나더러 무림에 나서지 말라는 말 같은데…….’
“제가 무림에 관여한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윤승철은 빙빙 말을 돌리지 않고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그래야 주성진의 진심을 엿볼 수 있기에…….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대가 기존 질서를 뒤엎으려 한다면 한바탕 크게 평지풍파가 일어날 것이오.”
“평지풍파라… 모르겠습니다. 만일 나에게 피해가 온다면 평지풍파를 일으킬지도…….”
윤승철은 침착하게 되물었다.
하지만 속마음까지도 그런 건 아니었다.
주성진이 만일 무림에서 새로운 세력을 구축한다면 기존 총무련의 체제가 제대로 굴러갈지 심히 의문이 들었다.
“피해라 하면 구체적으로?”
“뭐 일단 제가 상인이니 저의 사업을 방해한다면 가만있지 못하겠죠. 그리고 조용히 지내는 저희 사문을 건드린다든지 아니면 저희 식솔들에게 피해가 간다면 제가 나설 수도 있을 겁니다.”
“…….”
“물론 제가 충분히 사안을 살피고 난 다음 행동에 옮길 겁니다. 우발적으로 욱하지는 않을 거라는 뜻이겠지요.”
듣기에 따라서 상당히 두루뭉술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윤승철은 주성진에게서 저 정도의 답변을 끌어낸 것만 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생각했다.
‘다행이야. 그래도 확실히 매듭을 지으려면 주성진이 총무련을 방문토록 유도해야 할 것 같은데, 돌아가서 련주님과 잘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잘 알겠소이다, 말해 주어서 다시 한번 고맙소이다. 시간이 되면 총무련을 방문해 주시오. 내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환영할 테니.”
“알겠습니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주성진은 그와 그의 딸에게 작별을 고했다.
한데 윤승철의 딸 윤혜련이 자꾸 뒤돌아보자 윤승철이 딸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이 녀석, 처음 본 사내에게 얼이 빠져서는 쯧쯧.”
“실물이 용모파기보다 훨씬 뛰어나요. 어떻게 얼굴이 저리 눈부실 수가 있는 것인지…….”
윤승철은 신법을 발휘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그도 그렇고 그녀의 딸로 신법을 전개하면서 대화하고 있었다.
이는 그만큼 공력이 높고 무공 경지가 일정 수준에 다다랐다는 뜻이리라.
“야, 넌 자존심도 없냐? 사내에게 눈이 부시다니, 여자라면 모를까…….”
“눈이 부시는데 남녀 구별이 어디 있나요? 다음에 만나면 그와 깊은 대화를 해봐야겠어요.”
윤승철이 옆의 딸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넌 그 소문도 못 들었냐. 그가 황제의 사위가 된다는, 그리고 말야. 원래 그가 좋아하는 여인도 있다고.”
“참, 아버지도, 제가 그와 사귀겠다는 게 아니에요, 그와 친구처럼 잘 지내보겠다는 것인지.”
“…….”
그들이 사라지고 다시 마차에 오른 주성진은 역산도와 왕천유을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마부 자리에는 명세철로 교체되었고.
“왕 호법, 아니지 이젠 전쟁도 끝났으니 다시 왕 형으로 호칭하겠소이다.”
“하하,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주 상단주님.”
왕천유는 맞장구를 치면서도 예전처럼 주성진에게 하오체로 말하지는 않았다.
비록 직속 상관은 아니지만 어쨌든 주성진을 상관으로 인정한 거였다.
“음, 윤승철이 나에게 이야기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왕천유는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순간 왕천유는 주성진이 자신의 의견을 들으려 하는 것보단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뭐, 견제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 상단주님이 무림을 도모할 생각을 한다면 당장 피해를 보이는 건 총무련일 테니까…….”
“뭐, 그렇겠지, 한데 왜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소. 엄연히 나는 상인으로서 내 본업이 있는데…….”
“하하, 저는 그들의 생각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무림사를 둘러봐도 뛰어난 무공을 가진 사람치고 야망이 없는 자가 거의 없었지요. 무림 제일 세력, 무림 제일인 얼마나 가슴 뛰는 말들입니까!”
주성진은 빙그레 웃었다.
“하하. 가슴이 뛴다고? 난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그건 모르지요… 아, 그러고 보니 드릴 말이 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상단주님을 앞세워 호가호위하려는 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날지 모릅니다. 그러니 잘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주성진은 콧잔등을 찡그렸다.
“그러니까 나를 무림에 끌어들이는 자들이 있을 거라는 말이구려…….”
왕천유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습니다. 아주 그럴듯한 이유와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기에 주 상단주님도 잘 생각하지 않으면 깜빡 속아 넘어갈지 모릅니다.”
주성진은 그의 말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순간 왕천유의 말을 들고나니 애써 눌러 왔던 생각이 돌연 뇌리에 떠올랐다.
‘음, 황제와 공주… 그래, 앞으로는 두 사람에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겠어. 그들이 나의 무위를 이용해 계속해서 이득을 보려 할 테니까.’
순간 역산도도 할 말이 있는지 입술을 움직인다.
“저. 주 상단주님. 이 문제로 소림 장문인을 만나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역산도는 주성진의 자존심을 생각해 의견을 구해 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치가 빠른 주성진이 그의 말뜻을 못 알아들을 리가 없다.
“아아. 고맙소이다. 내가 그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소이다. 장문인님을 뵙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겠소. 한데 설마하니 나더러 중이 되라고 하진 않겠지……?
“에이 설마요.”
“하하, 농담이요. 한데 두 사람은 지금의 총무련 체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러자 왕천유가 곧바로 말문을 연다.
“저희 육선문에서 총무련 체제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지요. 한데 결론이 뭔지 아십니까? 아무리 완벽하고 뛰어난 체제라고 할지라도 세월의 녹은 묻기 마련이라는 것이지요. 하여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음, 솔직히 나도 그 점을 우려하고 있소이다. 지금이야 총무련이 자리 잡은 지 그다지 오랜 세월이 흐르지 않았기에 망정이지만, 만일 세월이 흐르면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흐트러지기 십상일 것이오, 누군가가 총무련을 힘을 사유화할지 모르고…….”
“만일 총무련이 나쁜 쪽으로 변질된다면 주 상단주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주성진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왕천유를 바라보았다.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무림에 관여해야겠지. 그전에 소림의 장문인이나 그 외 명사들에게 자문할 것이고.”
“알겠습니다. 어쨌든 총무련에서 주 상단주님을 신경 쓰고 있으니까 섣불리 삿된 마음을 품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하. 이거 무림의 안녕을 위해서는 내가 장수해야겠소이다.”
왕천유는 주성진의 웃는 모습을 보며 순간 빙그레 웃었다.
‘지금이 딱 좋은 시점인 것 같아.’
“저. 주 상단주님, 윤승철 그분의 무위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지요.”
“무시 못 할 강자요, 나로 하여금 이기어검을 펼치게 만들었으니까.”
“그건 알겠는데 좀 더 자세히 말해 주십시오, 저희에게 도움 되는 쪽으로 말입니다. 헤헤.”
주성진은 귀찮은 기색 없이 곧바로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소, 나의 주장은 일관되고 간단하오, 내공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지. 그에 필적하려면 말이오. 물론 무공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 하겠고…….”
“또 내공인가요?”
“그렇소, 그도 모르긴 몰라도 영약을 엄청 많이 복용했을 것이오.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영약을 복용하시오.”
왕천유는 돌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주성진이 용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려준게 생각난 것이다.
“휴, 상단주님을 탓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용의 내단을 먹었다면 어쨌을까 하는 생각이 아직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음, 그 점은 나도 아쉽게 생각하는 바이오, 하지만 기회가 있을 것이요, 용이 내뿜은 독이 사그라들 때, 난 그 지하 동굴을 다시 방문할 것이오. 그때 그대들에게 기별하겠소.”
왕천유의 얼굴에 기쁨이 넘쳤다.
옆에 듣고 있던 역산도도 마찬가지다.
“혹 용 말고 다른 영초나 영물이 있었습니까?”
“그건 잘 모르겠소. 하지만 용이 그냥 용이 되지는 않았을 터, 분명 지하 동굴 어딘가에서 몸에 좋은 것들이 있을 것이오. 그건 분명하오.”
“대략 언제 정도 재방문할 예정입니까?”
주성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독이 완전히 사라질지는 모르지만 3년 후에 가도록 합시다. 내가 그때쯤에 비단길로 서역에 교역에 나설 것이니까…….”
“하하. 그때를 손꼽아 기다려야겠네요, 주 상단주님 감사합니다. 저희를 생각해 주셔서…….”
주성진이 손사래를 친다.
“아니요. 나도 그대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소이다. 그나저나 북경으로 가는 길에 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에이, 무슨 일이 생긴다 한들 뭐 어떻습니까… 주 상단주님과 저희 둘이 있는데 말입니다.”
“황제께 보고하고 난 뒤 내가 좀 쉬고 싶어서 그렇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