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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241화 (241/250)

241화 돌아가는 길 (1)

신강을 떠난 주성진과 일행이 탄 마차는 거침없이 관도를 내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채 비단길의 출발지인 서안에 도착하기도 전에 마차를 몰던 역산도는 마차의 속도를 떨어뜨려야 했다.

누군가가 달리는 마차를 가로막고 마차를 세우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멈추세요!”

“미친 계집…….”

역산도는 급히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워, 워……!”

푸르르륵…….

거친 숨을 내뿜으며 질주하던 말들이 목을 이리저리 비틀며 숨을 고른다.

역산도는 다시 고삐를 풀어 말을 진정시킨 후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았다.

뒤를 돌아보니 주성진이 이미 마차 문을 열고 마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탁!

주성진의 관도에 발을 내디딘다.

“누구시지요, 댁들은?”

주성진의 목소리에 날이 서 있다.

이는 마차를 막는 행동이 불쾌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이면에는 주성진이 꿀잠을 청하다가 말이 급정거하는 바람에 마차 한쪽 편 모서리에 이마를 찧은 게 크게 작용했다.

주성진의 시야에는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 있었다.

아름다운 여인과 범상치 않게 생긴 중년인이었다.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하려고 마차를 멈추라고 했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줏빛이 감도는 비단옷을, 마치 날아갈 듯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인이었다.

화사한 얼굴에 빛나는 눈동자.

그러나 윤기 흐르는 그녀의 붉은 입술에서 나오는 음성은 절대 부드럽지 않았다.

“이보시오, 소저. 먼저 소속과 이름을 밝히는 게 예의인 것 같소만…….”

“전대 정의단의 단주가 저와 아버님을 모른다니 이거 많이 실망이군요.”

주성진은 신강에서 일이 마무리되고 난 뒤 재빠르게 정의단 단주 직을 그만두었다.

더 있을 이유가 없었고 하루빨리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의외의 성과라면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

주성진은 다시 한번 그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허허, 실망이라… 소저, 피차간에 불편한 감정 소비는 그만하고 그만 정체를 밝히시오.”

여인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성진을 노려보았다.

‘음, 정말 저자는 우리 부녀를 진짜 모르는군. 할 수 없지…….’

“저는 총무련 대외정보전 소속 윤혜련이에요. 그리고 저희 아버님은 윤승철 대외정보전 전주님이시고요.”

주성진은 내심 놀라며 얼른 그들에게 포권했다.

“하하. 주성진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실 주성진은 윤혜련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녀의 등 뒤에 서 있는 인물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뒷짐을 지고 여유롭게 서 있는 그의 풍모가 주성진을 움찔거리게 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이때 이제껏 말이 없던 윤승철이 앞으로 나와 포권했다.

“윤승철이오. 서안에서 만날까 했는데 보는 눈이 많아서 부득이하게 실례를 범하게 되었소이다. 이점 양해 부탁하오이다.”

“아, 그러시군요. 하면 저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무림에 대한 그대의 생각을 알고 싶소이다. 그전에 나에게 질문 받을 자격이 있는지 확인부터 해야겠지만…….”

주성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 질문 받을 자격? 그럼 날 시험하겠다는 건가……?’

“혹, 비무를 하자는 말씀인가요?”

“비무가 아니요. 난 내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자 할 뿐이오!”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그러니까 간접적으로 들은 정보가 아닌 내 몸소 체험한 걸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싶은 것이오.”

“도대체 무슨 보고서를 쓴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몸소 체험한 걸 토대로라뇨?”

윤승철은 탐스럽게 자란 수염을 매만지며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보고서는 그대에 대한 보고서요. 련주님의 재가를 득하면 대외정보전 명의로 전 무림에 배포될 것이오.”

“나에 대한 보고서라고요? 이것 참…….”

“그리고 내 몸소 체험하려는 건 그대의 무위요.”

주성진은 한동안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뭐야, 결국 비무하자는 거잖아.’

그 순간 명세철이 히죽 웃으며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젊었을 적 얼굴을 그대로 간직하고 계시군요.”

“…….”

“금련가 전대 소가주님! 25년 전 소가주 직을 때려치우고 가문을 떠났다고 알고 있는데 총무련에 투신했는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헤헤.”

금련가의 뿌리는 고대 마교였고, 과거 총무련 태동에 찬성한 마교의 유력가문이었다.

“넌 누구냐?”

윤승철이 눈알을 부라렸다.

그러자 명세철은 윤승철의 딸을 힐끔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선배님, 그 당시 소 가주직을 포기한 게 정파의 여인과 정분이 났다는 소문이 자자했는데 따님을 보니 그 말이 사실이었나 봅니다. 아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명세철이라고 합니다. 저의 사촌형 명옥강을 잘 아시지요? 늘 비무에서 선배에게 졌던…….”

윤승철을 기억을 더듬었다.

‘가만 저 녀석이 명옥강이 자주 데리고 다녔던 꼬마인가?’

“그럼 그때 그 울보 꼬마?”

“하하, 기억하시는군요. 당시 늘 형님이 얻어터져서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래서 네 녀석의 말에 가시가 돋쳐 있었군…….”

한데 그때였다.

윤혜련이 발끈한 표정으로 명세철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뭔데 주절주절 입방아를 놀리는 거야?”

주성진은 윤혜련이 화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명세철이 정분 운운하니까 화가 날 수밖에…….’

“무슨 입방아? 사실이잖아, 그래서 당신이 태어난 거고…….”

순간 윤혜련의 손이 자신의 품속을 더듬는다.

“이런 몰상식한 놈! 이거나 받아!”

쉬익!

순간 주성진의 눈이 번뜩거렸다.

‘뭐야 암기잖아! 음… 아무리 화가 나더라고 저건 아니지. 비록 치명적인 부위로 암기를 날린 건 아니지만…….’

스르릉!

명세철의 검이 검집에서 재빠르게 뽑혀 나오며 날을 번득였다.

그러곤 마치 바람을 가르기라도 하듯 그의 검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위로, 그리고 아래로 갈랐다.

팅…….

명세철이 떨쳐낸 검에 암기가 튕겨 나갔다.

윤혜련이 기습적으로 날린 암기는 명세철에게 채 닿지도 못한 것이다.

“이것이!”

곧바로 화가 난 명세철이 윤혜련에게 다가서려고 하자 어디선가에서 일진광풍이 분다.

쉬이익!

바람은 명세철과 윤혜련 사이를 가로막고서야 잠잠해졌다.

‘음, 대단히 빠른 보법이군.’

바람을 일으킨 윤승철을 보며 명세철이 중얼거린다.

그 순간 동시에 윤승철은 노한 표정으로 명세철을 노려보고 있었다.

“네놈이 감히 내 딸을…….”

“절 먼저 공격한 건 선배의 딸입니다.”

“그래서 감히 내 딸을 욕뵈겠다고!”

주성진은 상황이 이상하게 흐르자 난처해졌다.

‘이런 참. 개입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비단 주성진뿐만 아니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왕천유와 역산도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그 순간 명세철의 말이 이어진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역시…….”

“뭐라고?”

화가 난 윤승철이 기세를 돋구자, 돌연 엄청난 기파가 명세철에게 몰려왔다.

명세철은 이를 앙다물고 자신도 기세를 돋구었다.

‘흥, 얼마나 대단한지 볼까!’

웅, 웅!

기세 대 기세가 한동안 대치했다.

하나 여유로운 윤승철과 달리 명세철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간다.

연이어 검을 쥔 그의 손에 땀이 배어나기 시작했다.

‘제길!’

바로 그때 윤승철이 손을 활짝 펴더니 그대로 앞으로 내뻗었다.

‘요놈. 당해 봐라!’

순간 그의 장심에서 아지랑이가 일렁이더니 섬뜩한 기운이 명세철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쐐애액!

명세철은 윤승철이 장법을 펼친 것을 알고 주저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야합!”

꽝……!

명세철의 기합 소리와 함께 강렬한 충격이 관도를 휩쓸었다.

충격파에 일어난 흙먼지가 관도에 가득했다.

짧지만 강렬한 격돌의 결과는 곧바로 드러났다.

조금 전 윤승철의 공격을 막아 낸 명세철은 멀쩡한 모습이라 할 수 없었다.

머리카락은 마치 산발한 듯 제멋대로 휘날리고 있었고, 깨끗했던 그의 옷은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지켜보던 주성진은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다. 명세철이 한 수 정도는 막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들어맞았어. 하지만 지금부터는 아니지. 상대가 봐주지 않을 것 같으니까.’

주성진은 이젠 자신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주님. 저와 무예를 겨루셔야죠. 안 그래요?”

윤승철은 명세철을 잔뜩 노려보다가 주성진을 향해 몸을 틀었다.

바로 이때, 윤승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음, 저자는 진짜야!’

주성진이 허허롭게 서 있는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가 않았다.

주성진이 발산한 기파가 알게 모르게 그에게 묵직하게 다가온 거였다.

윤승철은 잔뜩 내공을 끌어올리고 주성진과 마주 섰다.

윤승철의 손은 아래로 늘어진 상태였고 주성진의 검도 검집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주성진은 윤승철이 암기의 고수일 것이라 짐작했다.

물론 명세철을 패퇴시킨 건 그의 장풍이지만, 딸이 펼친 암기술을 떠올리며 암기의 대가라는 것에 좀 더 무게를 두었다.

‘나도 암기술을 펼칠까? 아니야 나의 주 무기는 검으로 알려져 있으니 그것으로 해야겠다. 그래야 그가 날 제대로 평가하지.’

시간이 흘러가는 데도 검의 손잡이 위에 가볍게 얹혀있는 주성진의 손은 여전히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나 윤승철은 결코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정면에 보이는 주성진의 모습은 마치 구름이 흘러가듯 유유자적한 모습이지만, 언제 천둥 벼락이 내려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승부는 길게 가지 않을 것이야. 좋아 그렇다면 내가 단박에 승부를 건다!’

순간, 윤승철의 양 소맷부리가 마치 바람을 받은 것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주성진은 윤승철이 지금 펼쳐내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대단히 위험하다는 건 깨달았다.

‘집중!’

스르릉!

주성진은 검을 빼 드는 순간 윤승철의 두 손이 마치 춤을 추듯 가볍게 공중에서 흔들렸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쐐애액!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것은 대기를 찢어발기며 주성진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가로막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없애 버릴 듯한 압도적인 기세였다.

주성진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내 짐작이 맞는다면 저건 무형암기다!’

무형암기는 본인의 진기로 만든 암기를 뜻했다.

심후한 내공과 고난도의 암기술에 정통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한 절기였다.

‘웬만하면 상승 검도는 펼치지 않으려 했는데 할 수 없군. 그가 이기어검을 펼치라고 유도하고 있으니까. 뭐 그만큼 그의 암기술이 대단한 거지…….’

사실 주성진은 지난번 심검으로 100여 명의 용병을 한꺼번에 격살한 후 충격을 받아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물론 그가 생각한 상승 검도에는 이기어검도 포함되어 있었다.

쉬익!

주성진의 손에서 벗어난 검이 창공을 날더니 곧장 무형 암기가 날아오고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순간 윤숭철은 화들짝 놀라 무형암기를 조정했다.

‘제길, 경지에 오른 이기어검이다. 충돌하면 안 돼!’

무형암기가 위치를 바꾸자 추격하던 검이 땅을 향하더니 다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연이어 큰 원을 그리더니 또다시 땅을 향했다.

그러길 여러 차례…….

검이 주성진의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숲속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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