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탐문 조사 (2)
명세철은 주성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주성진은 그의 표정을 보자 나이를 거꾸로 먹은 소년이 게걸스럽게 음식을 탐하는 모습이 연상이 되었다.
“헤헤. 반반으로 하시지요? 혹 돈 되는 게 발견된다면 말입니다…….”
주성진은 그의 말을 예상한 듯 미리 준비한 말을 꺼냈다.
“음, 그러면 왕 호법과 역 호법이 기분 나빠할 것 같소만. 그들도 염연히 우리의 일행 아니오. 그리고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그들을 꼭 끼워 넣어야 하오. 그들이 육선문의 포쾌라는 걸 설마하니 잊지 않은 거요?”
명세철은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주먹으로 쳤다.
‘맞아, 그들이 있어야 검문을 쉽게 통과할 수 있지. 역시 주성진은 상인이라 주도면밀하구나.’
“아, 그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두 사람도 지하 탐색에 동참하는 거로 하고 각각 2할을 주도록 하지요. 그러면 저와 주 단주님은 각 3할을 차지하는 게 되는 것이죠.”
주성진은 씩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은 동의하시오?”
“네, 그럼요. 큰돈이 생기는 건데요. 하하.”
“저도 동의합니다. 나중에 소림에 돌아갈 때 맛있는 걸 잔뜩 사 들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성진이 농담을 걸었다.
“역 호볍, 육식하지 않는 소림에 뭘 맛있는 걸 잔뜩 사갈 것이오? 설마하니 고기를?”
“에이,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전 인삼을 잔뜩 사 갈 것입니다.”
“인삼을? 그게 맛있소?”
“주 단주님이 인삼 절편을 먹어보지 못한 모양이군요. 얼마나 맛있는데, 하하.”
“…….”
그렇게 수익 배분 문제는 별다른 잡음 없이 마무리되었다.
이후 네 사람은 죽은 흑룡단의 무사들이 가지고 온 술을 마시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하하하…….”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주성진이 기다리던 매가 나타났다.
‘왔구나, 저 친구가.’
주성진은 심상을 열어 대화를 시작한다.
한데 주성진이 시도하려는 대화는 불문의 혜광심어와 같은 일반적인 어의전성과는 다른 것이었다.
무엇보다 크게 다른 점은 인간의 언어가 아닌 본인의 생각을 통째로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보통의 무사들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며 심검지도에 도달한 자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원리는 상대를 죽이겠다는 의지로 심검을 휘두르는 것과 유사하게 마음의 언어로 상대의 심령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후후, 잘 될 거야.’
주성진은 확신하는 눈빛으로 매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십니까? 하하,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돌연 매가 하늘에서 울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누가 들어도 슬픈 울음은 아니었다.
꾸르륵!
주성진은 매가 반응하자 기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다른 이들은 그저 새가 우는 소리만이 들리겠지만 주성진은 아니었다.
매가 울음을 그치고 눈빛을 반짝였다.
주성진은 매의 눈 속에서 누군가를 보았다.
당연히 시각으로 본 것은 아니고 마음의 울림으로 본 것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주성진. 기다리고 있었소. 사실 그대가 방법을 찾아낼지 긴가민가했소이다. 만일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내 눈이 삔 것이고.
―하하, 그렇습니까? 이런 말하기 뭣하지만, 어르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네요. 한데 그때 그분이 맞으시죠, 참관인을 자처하신…….
―맞소, 하여간 그대는 참 대단하오. 환생한 인물이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궁구해도 도달하지 못한 심검지도에 도달했으니 말이오. 솔직히 정말 부럽소.
주성진은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환생을 했기 때문에 제가 심검지도에 도달했다는 말씀인가요?
―그건 아니고, 환생한 덕을 보았기에 그대가 빠르게 심검지도에 도달했다는 의미요. 설마하니 환생을 해야 심검지도에 도달한다고 믿은 건 아니겠지?
―그럼요. 무림에 대단한 비기가 얼마나 많은데요. 그건 그렇고 제가 여기에 도착할 즈음부터 저를 쭉 보고 있었습니까?
―그렇소이다. 다만 심력이 엄청나게 소모되기에 온종일 볼 수는 없었소. 하루에 한 시진 정도가 한계요. 그대와 지금 나누는 대화도 똑같이 적용되오이다.
주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곧바로 이해가 되었다.
‘그럼, 절대 쉬운 일이 아니지. 한 시진이면 대단한 것이야. 가령 이기어검만 펼쳐도 얼마나 피곤한데. 아무튼 육체적인 피곤함보다 정신적인 피곤함이 더하지.’
―잘 알겠습니다. 그럼 빠르게 여쭈어보겠습니다. 저와 동료의 존재를 서역인에게 알려주었습니까?
―그렇소. 그대만이 그놈들은 없애버릴 수 있기 때문이오. 솔직히 그놈들이 진 속으로 숨어들면 나로서도 그놈들을 어찌할 수가 없소. 나는 그대처럼 심검지도를 완성하진 못했기에…….
주성진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음, 내가 심검지도를 완성한 걸 어떻게 알았을까?’
―제가 심검을 익힌 걸 알고 있었군요.
―내 정도의 무위에 오르면 그런 권능이 생긴다오. 일종의 육감같은 것이지. 하지만 단순한 육감이 아니라 확신 같은 것. 사실 내 후배들이 그대를 상대하려고 나를 찾는 걸 잘 알고 있었소. 하지만 질 것이 뻔한 싸움에 내가 나서는 건 좀 그렇지 않소이까. 그리고 그대가 별로 실권이 없는 단주라는 것을 알고 있었소. 그래서 아이들 싸움은 아이들에게 맡기자고 생각했지. 만일 그대가 나선다고 해도 무자비한 살인은 하지 않았을 것 같고.
주성진은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내가 무자비한 살인을 하지 않는다고? 나도 장담 못 하는데. 아무튼, 결과론적으로 잘된 일이야.’
―아, 그렇군요. 그러면 제가 도착하기 전에 줄곧 여기에 계셨습니까?
―그건 아니오. 천산으로 가는 길에 옛 추억을 되돌아보려고 거기에 잠시 머문 것이오. 한데 그놈들이 있을 줄은 몰랐지. 예전에 서역으로 모두 떠났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들 중 일부가 다시 돌아왔을 줄이야.
―그렇군요. 혹 천산으로 떠나시는 건 흑룡가를 더는 돌보지 않겠다는 뜻인가요?
―맞소. 좀 전에 언급했지만 가주의 그릇된 속셈을 알고 나니 내가 흑룡가를 돌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감이 들더이다. 좋은 일이라면 모를까… 더구나 난 그대와 대결하면 이길 수도 없는데 말이요. 하하.
―아, 그렇군요.
―이런 바람이 세게 부는 군. 대화는 그만해야겠소. 시간 되면 천산에 한번 찾아오시오. 금수통령술을 가르쳐 줄 테니.
―하하, 알겠습니다. 반드시 찾아가겠습니다.
―기다리겠소…….
주성진은 매가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손을 흔들다가 뒤돌아섰다.
왕천유가 궁금한 눈빛으로 다가온다.
“대화하셨습니까? 사실 저희는 귀를 막고 있었습니다. 매가 어찌 극악하게 울어대는지, 아침에 먹었던 음식을 다 토할 뻔했습니다.”
주성진은 전혀 그런 기미를 느끼지 못했다.
“호, 그랬소이까? 난 전혀 못 느꼈는데. 하여간 유의미한 대화를 하였소. 얼추 우리가 예상했던 그대로였소. 아무튼 그가 천산으로 떠났으니 이 지긋지긋한 전쟁도 곧 끝날 것 같소이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제가 이 소식을 널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방법이 있소?”
왕천유는 고개를 끄떡였다.
“특별한 방법이 있겠습니까? 발품을 팔아야지요. 반나절 거리에 군사기지가 있으니 제가 직접 거기에 갔다가 오겠습니다.”
“난 또 획기적인 방법이 있는 줄 알았소이다. 그러면 그와 대화한 내용을 알려주겠소이다.”
* * *
“하하, 드디어 입구를 찾았습니다.”
명세철이 일주일 만에 진의 생문을 발견하고 기쁨에 겨워 소리쳤다.
주성진은 눈을 반짝이며 그에게 다가갔다.
“여기가 생문이 확실하오? 정말로?”
“네, 확실합니다. 주 단주님, 진짜 생문입니다.”
“그럼, 모두 안으로 들어가면 되오?”
명세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이번엔 아예 진을 해체하는 게 좋겠습니다. 주 단주님이 먼저 진 안으로 들어가셔서 이기어검으로 걸리는 거리는 걸 모두 베어버리십시오. 아마 곳곳에 툭 튀어나온 것들이 땅에 박혀 있을 겁니다. 그것들이 진을 조작하는 것들이니까요.”
“꼭 그래야만 하는 거요? 생문이라고 하지 않았소? 그러니 그걸 제거하지 않더라고 문제없을 것 같은데.”
“그게, 만에 하나 생문이 아닐 수도 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주 단주님이야 만일 생문이 아니더라도 탈출하실 수는 있지만, 저희는 어렵습니다.”
주성진은 그만 웃고 말았다.
“이보시오. 그럴 거면 나더러 그냥 진안으로 들어가 보라고 하지 그랬소? 생문 찾는다고 일주일이나 허비했소이다.”
“그건 안 됩니다. 만일 생문이 아닌 곳으로 주 단주님이 들어가시면 주 단주님이야 어떡하던 탈출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생문을 찾기 더 힘들어질 겁니다. 보통의 진들이 다 그렇습니다. 조금이라도 외부의 영향이 있으면 진은 한동안 모두 죽음의 절진으로 바뀌거든요.”
“그래도 나는 괜찮지 않소이까? 안 그렇소?”
명세철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맞습니다. 주 단주님이야 괜찮으시겠지요. 그렇다고 해도 주 단주님이 진을 파훼할 수는 없지요. 그러면 수색은 어렵고요.”
“지난번 그대가 말한 천마곡진, 그러니까 환생안개진과 이곳의 진이 큰 차이는 없다면? 내 말은 아예 생문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소?”
명세철은 손을 흔들었다.
“제가 능력이 없어서 찾지 못하는 것과 별개로 부분환상진은 생문이 없을 수 없습니다. 경험하셨다면서요? 주 단주님에게 죽임을 당한 자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났다면서요?”
“그건 그렇소이다.”
“그게 그들이 생문을 통해 들락날락했다는 중가지요. 이제 좀 의문이 가시는가요?”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어느 정도는 그렇소이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그럽시다. 생문이길 빌어야지. 아니라면 다시 생문을 찾느라고 개고생해야 하니까.”
잠시 후 주성진은 생문이길 기원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생문이다.’
주성진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자신의 몸에 위해를 가하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주변 풍경도 일그러지는 것 없이 또렷이 보인다.
‘명세철 말대로 뭔가 많이 꽂혀있군. 그럼 시작해볼까.’
주성진의 손에서 벗어난 검이 주성진의 의지대로 공간을 돌아다녔다.
삭, 삭, 삭…….
주성진은 주변에 돌출해 있는 것은 모조리 잘라버렸다.
그러자 진 밖의 새 사람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도 주성진의 얼굴을 보며 감격스러워했다.
“진이 해체되었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주 단주님.”
“뭐, 별거 아니었소.”
그 순간, 왕천유가 손가락을 가리켰다.
“우물이다!”
주성진은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미처 보지 않은 곳에 우물이 있었다.
진이 해체되면서 우물이 드러난 거였다.
하지만 잠시 후 네 사람의 얼굴엔 실망한 빛이 역력히 드러났다.
우물은 우물인데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이었다.
물이 없을 수도 있었다.
“음, 안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깊이를 알 수 없으니 뭘 떨어뜨려 봅시다.”
“돌을 던질까요?”
주성진이 왕천유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내가 나무에 불을 붙여 아래로 떨어뜨려 보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