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탐문 조사 (1)
“저희는 두 가지 목적으로 여기에 왔습니다. 하나는 수호 사자님의 행방을 알아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여기가 쓸 만한지 보기 위해섭니다. 수호 사자님은 저희 흑룡가의 최고수 분이신데 전황이 불리함에도 나타나지 않으셔서 만약 여기에 계신다면 정중히 모시려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이곳은 흑룡가의 옛터입니다. 그동안 관리를 하지 않아 상태가 어떠한지 점검하려 했습니다. 만약에 상태가 좋다면 여길 다시 본부로 쓰면 어떨까 하는 게, 가주님의 생각이셨습니다.”
주성진은 그의 말에서 허점을 찾았다.
“상태가 좋다는 게 진정 무슨 뜻이오? 오랫동안 방치한 곳이라 전각들이 모래에 파묻혔을 거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예측할 수 있는 일인데, 설마하니 흑룡가의 가주께서 그걸 확인하려고 사람을 보냈을 것 같지는 않소이다.”
“네, 그렇습니다. 사실 여기에는 진법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해서 가주님께서 진법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그걸 확인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훼손되었다면 그 정도가 어떤지를 고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대는 진법에 대해 잘 아오?”
나주태는 고개를 여러 번 흔들었다.
“모릅니다. 저는 진법의 이름조차 알지 못합니다, 다만 진법에 정통한 자는 있었는데 그만 여기서 죽어 버렸습니다.”
주성진은 나주태의 답변을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다.
이미 본인이 건물 안에서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포로의 말을 듣고 보니 진이 하나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쉽지만 이 문제는 넘어가자고. 그렇다고 일행들을 원망할 일도 아니야, 생사가 오가는 치열한 싸움 중에 상대를 생포한다는 건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래도 우리에겐 진을 잘 아는 명세철이 있으니까 그의 활약을 믿어 보자고.’
“잘 알겠소. 그대들은 여기에 최고수가 있을 것이라, 어느 정도 확신하고 온 것이오?”
“솔직히 7할 이상의 확률로 확신하였습니다. 혹여나 안 계실 수도 있기에 저희보다 수는 적지만 산을 잘 타는 인원들을 다른 곳으로 보냈습니다.”
주성진의 눈이 반짝였다.
“그곳이 어디요?”
“곤륜과 천산입니다. 다만 곤륜이나 천산에 계신다면 세상과 담을 쌌다는 의미인지라 그분을 모시고 오는 걸 포기하려 했습니다.”
“혹 정확한 위치를 아오?”
나주태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는 모릅니다. 다만 곤륜이나 천산은 높은 산들이 끝없이 이어진 곳이라 정확한 장소를 모른다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만큼 어려운 일이지요.”
“으음, 알겠소. 지금 전황은 어떻소? 난 흑룡가에서 보는 관점을 알고 싶소.”
“처음부터 저희에게 불리한 싸움이었습니다. 거기에다 설상가상으로 정의단의 인원이 대폭 증강되었기에 시기가 문제일 뿐 저희의 패배는 자명합니다.”
주성진의 고개가 갸우뚱했다.
순간 나주태의 입이 급히 열렸다.
“주 단주님, 아직 제 이야기가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패배는 분명하지만, 저희 모두를 쫓아서 발본색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뭐, 주 단주님을 위시하여 정의단의 정예가 십 년 동안 계속 신강에 머물면 모를까 말입니다.”
“역시 내 짐작이 맞았소.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이 넓은 신강에서 자취를 감춘다면 쉽게 찾을 수가 없겠지… 아, 그대는 내가 살려 준다면 다시 복귀할 것이오?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갈 것이오?”
나주태는 잠시 머뭇거렸다,
“음, 저는 곤륜으로 갈까 합니다. 다시 돌아가면 제 목을 부지하기 힘들 것 같아서 말이죠.”
“알았소. 그러면 살펴 가시오. 다만 어딜 가더라도 힘없는 자들을 괴롭히지는 말아 주시오. 부탁이오.”
그가 고개를 끄떡일 때 주성진이 그에게 전표를 건네주었다.
“은자 백 냥이오, 여비로 쓰시오.”
“감사합니다…….”
나주태는 주성진에게 여러 번 고개를 숙이며 돌아갔다.
한데 무슨 일인지 갑자기 뒤돌아봤다.
“저, 죽은 간도웅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곳에 흑룡가에서 설치하지 않은 진이 있을지 모른다고요. 아, 간도웅이 누군지 모르시겠군요. 그가 바로 진법 전문가입니다. 그럼 이만,”
나주태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지자 주성진은 일행 중에 표정이 제일 좋지 않은 역산도를 바라보았다.
“어디 몸에 이상이 있소이까?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그게 말입니다. 방금 떠난 자가 저에게 악마의 눈빛을 하고 있다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좀 우울합니다.”
“자초지종을 말해 보시오.”
역산도가 좀 전에 있었던 일을 주성진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비단 그 말은 역호법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었구려. 너무 가슴에 담지는 마시오, 사실 무공이라는 게, 그 시발점은 몸을 튼튼히 하고 자신을 보호한다고는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상대를 거꾸러뜨리는 게 필연이오.”
“…….”
“게다가 지금의 상황은 내가 전에도 말했다시피 전쟁 상황이오. 그러니 살생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란 말이오. 정 뭣하면 나중에 죽은 이들을 위해 극락왕생이나 빌어 주시구려.”
역산도의 얼굴이 별안간 밝아졌다.
“하하. 이제야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바보같이 제가 그 방법을 미처 생각 못 했네요. 무공을 펼칠 때마다 금안공을 시전하면 되는 것을요.”
주성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금안공이 무엇이오?”
“눈빛을 금빛으로 만드는 무공입니다. 명왕이 제도하기 어려운 중생에 대하여 무서운 모습으로 가르침을 주는 데서 착안한 무공이지요.”
“그러니까 눈빛을 황금색으로 물들인다. 뭐 그런 것이오?”
역산도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습니다. 하하. 명왕의 눈빛이 어찌 악마의 눈빛이겠습니까. 제 말은 그런 뜻입니다.”
“음, 그대는 내가 기껏 한 말을 하나도 귀담아듣지 않았나 보오. 해결책으로 금안공을 떠올린 걸 보니.”
“아, 그런가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주 단주님의 말씀이 없었더라면 제가 금안공을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주성진은 얼굴을 찡그렸다.
“흥. 알겠고. 그러면 여기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그대들이 다 말하고 나면 내가 안에서 벌어졌던 일을 말해 주겠소, 아, 그전에 주변부터 정리합시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해가 기울었다.
그들은 시신을 땅에 묻다가 모래에 파묻힌 죽은 나무를 발견하고 땔감으로 썼다.
모닥불이 활활 타올라 훈훈하게 몸을 녹여 준다.
사실 그들이 떠나지 않고 불을 피운 이유는 날이 밝는 대로 주변을 좀 더 조사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주성진이 명세철을 바라보았다.
“조사가 끝나면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이오?”
“저는 당분간 여기에 남아서 제가 배운 진을 연구해 볼 작정입니다. 흑룡가를 찾아가 원수를 갚으면 좋은데 그러지 못하니까요.”
“정의단에서 그대의 원수를 죽이지 못하면?”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는 죽더라도 도망칠 위인이 아니니까요.”
“누구요?”
“흑룡가의 부가주입니다. 제가 천마곡에 들어가려 했던 이유도 무공을 익혀서 그에게 복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이 센 모양이구려.”
“뭐, 그렇다고 주 단주님에게 비하겠습니까. 저, 주 단주님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당분간 그대처럼 여기에 머물 생각이오. 혹시 아오? 흑룡가의 최고수가 나타날지. 하하.”
주성진은 잠시 웃다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실은 돌아가도 할 일이 없기는 매한가지이니 전쟁이 끝나면 그때 떠나려고 하오, 그동안 그대를 따라다니면서 진법 공부나 하지 뭐, 하하.”
“주 단주님. 진법을 가르쳐 드릴 수는 있지만, 공짜는 아닙니다. 저도 주 단주님께 요청할 게 있으니까요.”
“그게 뭐요?”
명세철은 돌연 진지한 표정으로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주 단주님, 제가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습니다. 주 단주님이 말씀하신 부분환상진에 대해서 말입니다.”
주성진의 눈이 커졌다.
“어서 말해 보시오.”
“부분환상진은 천마곡진만큼이나 난해한 진입니다. 거기에 더해 중원인이 만든 진이 아니고요.”
“오, 그렇소이까. 어쩐지 서역인이 거기에 있더라니…….”
주성진이 고개를 끄떡인 순간, 명세철의 말이 이어졌다.
“주 단주님, 전 건물 안에 들어가 조사를 좀 해보려 합니다. 제가 부탁드리려는 건 혹 위험할 수 있으니 저를 보호해 주십사 하는 거랍니다.”
“혹시 모를 진 때문에 위험하다는 말이오?”
“네. 제 생각에 건물에 저희가 모르는 비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주성진은 그의 말에 동감했다.
‘나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다짜고짜 날 공격한 걸 보면.’
“무슨 비밀이 있을 것 같소?”
“헤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주 상단주님에게 죽임을 당한 자들이 뭔가를 획책하고 있다는 것이죠. 다짜고짜 주 단주님을 공격한 걸 보면…….”
“나도 그 점을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소. 대화로 풀면 될 것 같은데 나를 보자마자 철천지원수처럼 공격한 게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소.”
그 순간 왕천유가 끼어들었다.
“주 단주님, 그것보다는 차도살인 계가 아닐까요?”
“차도살인이라, 그대의 말은 흑룡가의 최고수가 나에게 죽임을 당한 자들을 부추겼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러자 역산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화에 참여했다.
“야, 왕천유. 그럼 너 말은 흑룡가의 최고수가 우리가 여기에 올 줄 미리 알았다는 말 아니냐? 한데 그게 가능할까?”
“뭐.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반로환동한 고수정도 되면 우리가 상상도 못 할 비기를 가지고 있다고.”
그 순간 주성진의 뇌리에 번쩍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래. 수상한 새가 한 마리 있었어. 아마 매 종류인 것 같았는데.’
주성진은 급히 말문을 열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위를 배회하던 새가 한 마리 있었소. 날이 밝은 데로 내가 그 새와 대화를 시도해 보겠소.”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멀리 떨어져 있었소. 처음엔 서신을 전달하는 매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소.”
왕천유가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새와 대화를 한다고요?”
“음, 느낌에 가능할 것 같소만, 허허.”
“그럼 혹시 그 새가 흑룡가의 최고수가 부리는 새라는 말입니까?”
왕천유의 말에 주성진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렇소. 난 단순히 새를 조정하는 게 아니라 새와 한 몸이 아닐지 생각하고 있소, 심령으로 연결되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오.”
“그럼 그 새가 보는 것을 흑룡가의 최고수도 다 볼 수 있다는 말이네요. 그래서 이 사실을 서역인에게 알려 주어서 서로 상잔하게 했다는 거군요.”
“뭐, 어느 정도는 하하.”
그 순간 명세철이 손을 들었다.
“아, 생각났습니다. 고대 마교에 그런 류의 무공이 있었습니다. 금수통령술이라고 하지요.”
“금수통령술?”
“네. 지금은 사라졌다고 알려졌는데 말씀을 들어보니 사라진 게 아닌가 봅니다. 저, 제가 하던 말을 계속 이어 나갈까요?”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계속해 보시오, 나도 궁금하니까.”
“저는 건물에 지하가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래서 지하를 중점적으로 조사해 보려는 것이죠.”
“알겠소, 나도 조사에 동참하겠소. 이상한 것보다는 돈 되는 게 있으면 좋을 텐데,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