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확대된 싸움 (2)
강육교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이이!’
그의 시야에 생각하기도 싫은 광경이 연이어 들어왔다.
그의 수하들이 구슬픈 비명을 토하며 튕겨 나가 버렸다.
선두가 무너지고 뒤편에 있던 수하들이 허겁지겁 들고 물러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직속 부하인 부대주마저 간신히 역산도의 검기를 떨쳐 버리고는 정신없이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그들은 감히 역산도룰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아!’
이 모든 일이, 자신이 역산도의 환영에 헛손질하고 후퇴한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놈! 죽여 버리겠다.’
강육교는 발에 잔뜩 힘을 주었다.
더는 부하들이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순간, 살을 벨 듯한 날카로운 기세가 자신의 등 뒤에서 느껴졌다.
그는 도약하다 말고 급히 몸을 뒹굴었다.
쉬이익!
다행히 몸에 상처는 입지 않았다.
하나 그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무림에서 부끄럽게 인식되는 나려타곤으로 목숨을 살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는 누가 자신을 노렸는지 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니, 저놈은!’
자신과 상대하던 자의 옆에 있던 자였다.
그는 자신의 동료인 이병세와 명을동에게 암기를 던지며 공격하고 있었다.
이병세와 명을동이 기를 쓰며 간격을 좁히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때마다 날아든 암기 때문에 쩔쩔매고 있었다.
‘저놈이 나에게 암기를 던졌구나!’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혀를 쑥 내민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으으으, 저 새끼가!’
그사이 역산도는 무인지경으로 암혈대를 휘저었다.
크아악……!
사실 그는 자신의 친우이자 동료인 왕천유가 시간을 벌어준 것을 곁눈질로 보고 있었다.
‘빨리 끝내자!’
나아가던 역산도의 신형이 수 많은 잔상을 만들어 낸다.
순식간에 다섯이다.
한데 다섯에서 다시 다섯이 갈라진다.
뒷걸음치며 후퇴하던 무사들이 갈피를 못 잡고 자신도 모르게 멈춰서 버렸다.
그 순간 스르륵 안개가 스며들 듯 역산도의 환영이 대기를 파고 들었다.
“으악!”
“크아악……!”
순식간에 일곱 명의 무사가 무릎을 꿇으며 땅으로 엎어졌다.
그들은 바로 옆에 동료가 있는 상황이라 제대로 검을 휘두를 수도 없었다.
급급히 피하는 무사들 사이로 역산도의 환영이 빠르게 지나갔다.
‘한 놈도 남김없이…….’
한편 암혈단의 비명에 간도웅의 얼굴에 당황한 모습이 보였다.
한참 대결 중에 정신이 산만해지는 것만큼 아찔한 광경은 없었다.
‘아뿔사!’
급히 정신을 차린 간도웅은 명세철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명세철의 쌍권이 강력한 회오리를 일으키며 간도웅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눈을 부릅뜬 간도웅은 혼신의 힘을 다해 정면으로 일권을 내질렀다.
펑……!
쿵, 쿵!
주르륵 뒤로 다섯 걸음을 물러선 간도웅이 명세철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제길…….’
놀랄 사이도 없이 명세철의 신형이 재차 간도웅을 덮쳐간다.
간도웅은 거침없이 명세철이 다가오자 이를 악물고 내공을 끌어올리더니, 빠르게 검을 빼들었다.
“가랏!”
내공을 잔뜩 검에 주입하자 검신을 타고 내력이 폭발할 듯이 넘실거린다.
그러다 한순간, 검 끝에 파란 기운이 뭉치더니 한자가량을 죽 뻗어 나갔다.
지금껏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던 검강의 경지였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순간 명세철은 공격을 하다말고 뒤로 물러났다.
‘흥, 눈에는 눈이지! 나도 검강을 펼쳐야겠어.’
희미한 미소를 지은 명세철은 빠르게 검을 빼 들었다.
순간 간도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놈이 검을! 언제 검법을 배운 거야…….’
명세철이 검을 빼든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한번은 주성진과 대결에서였고 이번이 그다음이었다.
만일 간도웅의 검에서 검강이 펼쳐지지 않았으면 그는 검을 들지 않았을 거였다.
하지만 검강은 육장으로 펼치는 권강보다 위력적이었다.
검의 날카로은 예기가 검강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에 그랬다.
간도웅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놀라 당황하며 공격을 망설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 시각에 그의 직속 부하는 아니지만 아군들이 죽어 가고 있었다.
“야합!”
간도웅이 기합를 토해 내었다.
쒜애액!
번쩍!
붉은 유성이 극렬하게 부딪치듯 검강 대 검강이 정면으로 부닥쳤다.
꽈앙!
‘으음!’
비틀거리며 물러서는 간도웅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 버렸다.
‘아아, 이럴 수가, 저놈의 무공이 괄목상대하다니.’
주춤 멈춰 선 명세철의 눈빛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명세철은 간도웅을 한방에 처리하지 못한 짙은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음, 일시지간에 끌어올린 기운이 제대로 검에 실리지를 못했다. 그래선지 결정적 타격을 주지 못한 듯하군.’
명세철은 자신을 다시 책망했다.
‘은연중에 상대를 경시한 거야. 처음부터 검을 들고 싸워야 했어. 더구나 나 혼자만의 대결도 아닌 다음에야…….’
위잉!
명세철의 눈빛이 강하게 피어올랐다.
순간 검끝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아지랑이가 강력한 검강이 되어 뻗어 나갔다.
“받아랏!”
스윽…….
미끄러지며 다가간 명세철이 대기를 붉게 달구며 검강을 뿌렸다.
본능적으로 뒤로 주르륵 물러선 간도웅이 검을 중단으로 끌어 올렸다.
상대의 가공할 기운에 절로 눈이 부릅떠진다.
‘으음, 할 수 없다.’
뭔가 결심을 굳힌 듯, 이를 악문 간도웅의 눈이 검게 물들어 갔다.
그러더니 끝내는 흰자위조차 사라져 버렸다.
명세철은 변해가는 간도웅의 눈빛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놈이 암흑마공을 연성했구나! 위력은 강하다. 하지만 익히면 익힐수록 수명을 갉아 먹는다 하여 좀체 배우지 않는 것인데…….’
바로 그때, 간도웅의 검 끝에서 짙은 묵빛 기운이 실처럼 뻗어 나오더니, 짙은 어둠이 이빨을 들이대며 달려 나왔다.
명세철은 호흡을 가다듬으려 상대의 공격을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티끌만큼도 두려운 표정은 아니었다.
‘후후. 얼마 전에 깨달은 무공이 있지. 패배의 끝에서…….’
“만천일혼!”
우렁찬 기합과 함께 명세철의 검에서 생성된 붉은 검기가 태양보다 강렬하게 어둠을 양단했다.
커억!
이 장 밖으로 튕겨난 명세철은 머리가 풀어 헤쳐져 날리고, 입에서 가느다란 피가 흘려 내렸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그의 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동그래져 있었다.
‘뭐지?’
태양보다 강렬한 기운.
자신의 암흑마공을 한순간에 갈라 버린 무공이 궁금해졌다.
그는 내부가 흔들리는 것을 참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어느새 그의 눈에 있던 묵기는 사라지고 본연의 흰자위가 보이고 있었다.
“그거 마공인가?”
“마공이지, 나만의 마공. 하하.”
“음, 마공이라는 말이지…….”
간도웅은 그 말을 끝으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순식간에 그가 흘린 피로 땅이 붉게 변해 버렸다.
바로 그 시각!
왕천유가 허공에 수많은 꽃을 피워 냈다.
태양 빛을 가릴 만큼!
하늘에 꽃비가 내려오자 두 사람은 자신들의 최대 절초를 아낌없이 펼치기 시작했다.
일순 수많은 꽃들이 상대의 검세에 사그라졌다.
‘후후, 그러면 그렇지!’
‘놀랐잖아!’
하지만 그들은 더는 생각을 이어 갈 수가 없었다.
빠른 그림자가 파고들며 그들의 수급을 날려 버린 것이다.
스걱!
‘후후, 짝퉁 만천화우가 빛을 발할 줄이야…….’
왕천유는 만천화우를 모방한 암기술로 상대의 이목을 붙잡아 놓고 기습적으로 파고들어 두 사람을 격살한 거였다.
잠시 후, 흑룡가의 무인들을 물리치고 세 사람이 한곳으로 모였다.
그들은 도망치던 자를 잡아 심문했다.
왕천유가 무인을 보며 말문을 열었다.
“순순히 말하면 살려 주겠다.”
“그냥 깨끗이 죽여라, 말한다고 살려 주지 않을 것을 다 알고 있으니까.”
왕천유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왜 내 말을 믿지 않는 거지?”
“당신들은 비겁하게 먼저 기습해 모두를 죽였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아니지, 너는 살려 주었잖아, 그리고 말이야 기습하면 다 나쁜 것인가?”
포로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기습한다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악마의 눈빛을 보았다. 살인을 유희처럼 생각하는 그 눈빛은 마성이 골수까지 스며들지 않는 한 불가능하니까…….”
왕천유와 역산도는 충격에 멍하니 있다가 돌연 서로를 바라보았다.
”악마의 눈빛이라던데…….”
역산도가 말하자 왕천유가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살인을 유희처럼 생각한다는데…….”
“으음…….”
그 순간, 명세철이 빠르게 끼어들었다.
“어이 두 사람! 뭘 그거 가지고 놀라기는. 살기를 내뿜는 눈은 언제나 섬뜩하게 마련인거요. 그러니 경우에 따라 타인의 눈엔 악마의 눈으로 비춰지는 것이요.”
역산도가 우울한 표정으로 명세철을 바라보았다.
“선배, 살기를 내뿜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요?”
“두 가지 방법이 있소. 하나는 진짜 악마가 되는 것이고, 아니면 누구처럼 무위가 하늘에 닿아 있으면 되지…….”
누구라는 건 물어보지 않아도 주성진이었다.
그 순간 거짓말 같이 주성진이 나타났다.
주성진은 주변의 광경을 보고 한바탕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음, 보아하니 여기도 위험했군.’
주성진이 기척을 내자 세 사람은 심문을 중단하고 주성진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엔 반가움이 가득했다.
주성진은 손을 흔들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오.”
“다행입니다. 안에서는 별일 없었습니까?”
주성진은 왕천유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포로를 바라보았다.
“이야긴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복장을 보아하나 흑룡가의 무인 같은데.”
“네, 그렇습니다. 그를 심문하는 중이었습니다만, 한데 그게, 허허.”
주성진은 짐작한 듯 고개를 끄떡이더니 포로에게 다가갔다.
포로는 주성진의 얼굴을 보더니 경악한 표정을 짓는다.
주성진의 얼굴을 알아본 거였다.
“하하, 나를 알고 있나보오. 그렇소 난 정의단의 단주 주성진이오. 그대는 누구시오?”
“저는 흑룡가 암혈대의 부대주 나주태입니다.”
나주태는 주저 없이 자신의 신분을 불었다.
“음, 그렇소이까. 나의 동료들이 이미 말했을 건 같은데 사실대로 말하면 살려 주겠소. 터럭만큼도 그대의 몸을 건드리지 않고 몸 성히 보내 주리다.”
“정말입니까?”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정의단 단주직을 걸고 약속하겠소.”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전에 제가 목숨을 구걸하는 건 맞지만 제가 완강히 부인하더라도 주 단주님이라면 다른 방법으로 저에게서 사실을 알아낼게 분명합니다. 이를테면 심령금제의 방법 같은 것으로…….”
“후후, 맞소, 나는 심령금제의 방법을 잘 알고 있소. 그러니 정직하게 고하는 게 피차간에 좋을 것이오.”
주성진의 묵직한 저음에 그의 심혼이 흔들렸다.
‘으음…….’
“말씀드리겠습니다. 뭐든 물어 보십시오.”
주성진은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방법 보다는 나는 다른 방법을 선호하오. 먼저 그대가 여기에 온 목적을 설명하고 난 뒤, 나중에 추가적으로 질문하겠소이다. 뭐 중간에 질문 할 수도 있고. 나뿐만 아니라 우리 동료들도…….”
나주태는 주성진이 철저하고 빈틈없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