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염미란 생포작전 (6)
주성진은 늙은 거지를 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상당히 부적절한 행위 시군요. 지금 당장 해명을 요구합니다.”
늙은 거지는 주성진의 표정과 어투에서 더는 장난을 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읽었다.
“하하. 주 단주, 진정하시게. 아 참, 내 소개를 깜빡했군. 나는 개방 대장로 유홍개일세. 그대에 대해서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네만, 그래도 백문이 불여일견 아니겠나. 그래서 늙은 노구를 이끌고 이렇게 그대를 보러 온 것이라네.”
주성진은 그의 말에 어폐가 있다고 생각했다.
‘뭐야. 날 보기 위해 여기까지 찾으러 왔다고? 저 말을 믿어야 해, 말아야 해, 그래 일단은 좀 더 대화를 진행해 보자고.’
주성진은 늙은 거지를 바라보며 포권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지요. 저는 주성진입니다. 정의단의 단주역을 맡고 있으나 그저 대외용일 뿐, 실권은 쥐뿔도 없습니다.”
늙은 거지는 주성진의 말에 쉽사리 표정을 들어 낼 수가 없었다.
주성진이 총무련의 처사에 불만이 있다는 것을 그의 말을 통해 알 수 있긴 했다.
하지만 생면부지인 자신에게 불만을 토로한다는 건 자신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여기에 왔다는 것을 주성진이 이미 알고 있다는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음, 저 친구가 노련한 상인이라고 하더니 확실히…….’
바로 그 순간 유홍개의 제자가 주성진에게 다가왔다.
“해명은 내가 하겠소이다.”
늙은 거지는 얼굴을 찡그렸다.
‘저 녀석이 낄 때가 있고 안 낄 때가 있는데 무턱대고 나서는구나. 내 불찰이다. 교육을 잘못시켜서…….’
그렇다고 자신의 제자를 제지하지는 않았다.
이미 주성진에게 말은 건 상태라 본인이 나서서 제지한다면 모양이 우스꽝스러울 것이라고 여긴 거였다.
한편 주성진은 좀 전 그의 무례한 태도에 화가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다.
“이보시오. 먼저 자기소개부터 하는 게 순서 같소만…….”
“아이코 미안하외다. 난 개방 소방주 황소용이요. 극독에 중독되어 자그마치 3년간 생사를 헤매다 병마를 떨쳐 낸 지 채 6개월이 안 되었소이다. 사부님의 말씀이 원래의 무공을 회복하려면 실전이 최고라 하여 그대에게 비무를 신청한 것이오.”
“…….”
“하하 그게 말이요. 솔직히 내게 피치 못 할 사정이 있소이다. 남들은 개방의 소방주이니 차기 방주는 떼놓은 당상이라 여기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소이다. 방주가 되려면 방주님과 장로님들이 보는 앞에서 최종 무공 인증을 거쳐야만 하외다.”
“…….”
“한데 시간이 그리 많지 않소이다. 바로 최종 관문이 6개월 후요. 그래서 그대 같은 고수에게 비무를 신청한 거요. 좀 더 빨리 전투 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말이요.”
주성진은 대강의 사정을 이해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차근차근 알아 가자고.’
“그러니까 실전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나에게 비무를 요구했다는 말이오?”
“그렇소이다. 불쾌했다면 이해하시오. 다만 개방 특유의 해학과 익살을 그대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섭섭하외다.”
주성진은 비웃음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뭐라는 거야, 웃기는 인간일세…….’
“허허. 개방 특유의 해학과 익살이라… 뭐 좋소. 다만 남을 불편하게 하는 행위나 모습은 피하는 게 좋지 않겠소이까?”
“그대의 행적을 쫓느라 사부님과 내가 이 모양이 되었소. 이번처럼 바쁘지 않다면 가끔은 옷도 빨아 입고 목욕도 하고 그런다오. 이거 그대에 대한 세간의 평이 많이 잘못된 같소이다.”
“세간의 평은 어떻고,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이오?”
황소용은 빙그레 웃는다.
“하하, 궁금하긴 한 모양이오? 그리 날 다그치는 걸 보니.”
“허허, 이거 큰일 낼 사람일세, 내가 언제 다그쳤다는 말이오? 궁금해서 물어본 거지…….”
“뭐, 좋소, 말해 주리다. 세간의 평은 그대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이오. 무공뿐만 아니라 인품도 훌륭해 사람들로 하여금 그대를 절로 따르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하더이다. 다만 저돌적이지 못하다는 평도 있소이다.”
주성진은 자신이 저돌적이지 못하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내가 그렇다고?’
그 순간 뇌리에 떠오르는 뭔가가 있었다.
‘그렇군, 철저히 무림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 보일 수도 있겠어.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젊은 나이에 절대자의 반열에 오른 인물치고 무림을 휘어잡으려는 욕심이 없는 사람은 드물지. 아마도 이런 이야기는 내부에서 흘러나갔을 것이야. 내가 무림에 대고 큰소리를 치지 않으니까 답답한 거야. 만일 내가 무림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내부의 인원들도 기세가 오를 테지…….’
주성진은 자신의 그런 성향이 상대가 자신을 만만하게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로 눈앞의 황소용처럼.
“하하. 잘 들었소. 한데 세간의 평이 잘못되었다는 건 무엇이오?”
“인품이 훌륭하다는 건 동의 못 하겠소. 내가 보기에 그대는 포용력이 부족해 보이오.”
주성진은 화를 내기보다는 잔잔한 미소를 띠며 황소용을 바라보았다.
‘쓴맛을 보여 주어야겠군, 세상 위의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어야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할 거야. 이게 다 무림의 방식이지, 암 그렇고말고.’
주성진은 천천히 자신의 기세를 개방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순간 황소용은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거대한 검이 자신을 향해 날아 노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 것이다.
‘으윽!’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른 그는 술 취한 듯 정신없이 뒷걸음을 쳤다.
개방의 장기인 취팔선보를 선보인 것이다.
주변의 이들이 모두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시선이 주성진에게 옮겨갔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보린 주성진은 그저 뒷짐을 지며 미소 짓고 있었다.
순간 황소용의 사부, 유홍개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저자가 무슨 짓을 한 것 같은데, 도대체 뭐지? 설마?’
황소용은 주변의 시야가 흐릿해지고 오직 주성진만 눈에 들어왔다.
그는 사부의 지도하에 뼈를 깎는 수련을 쌓았건만, 거대한 검이 다가오자 단 찰나의 순간도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저 마음속의 공포가 점점 더 크게 자신을 옥죄고 있었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잘 들어!
그는 안간힘을 다해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주성진의 존재감이 워낙에 강렬했기에…….
―사람들이 말이야. 나더러 개방과 엮이지 말라고 하더라고, 엮이면 엮일수록 손해라고… 그간 내가 그걸 잊고 있었는데 너를 보니 알겠어, 너! 앞으로 내게 까불지 마라, 자칫 골로 갈 수 있으니까, 알겠어!
황소용의 고개가 절로 끄떡여졌다.
“네, 알겠습니다!”
잠깐의 시간이 억겁 같았다.
황소용은 자신도 모르게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사부 뒤로 숨어들었다.
유홍개는 일련의 사태의 주범이 주성진인 건 짐작하고 있지만 차마 입을 벌려 따질 수 없었다.
지금의 주성진은 좀 전 그가 보았던 주성진이 아니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당당한 모습이었다.
‘사람이 저렇게 달라 보일 수 있다니, 이젠 가벼운 농담조차 건네기 어렵겠어.’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주성진에게 그다지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자신의 엄청난 착각이었다.
주성진이 그에게 한발 다가갔다.
유홍개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발 물러나고 말았다.
‘제기랄, 저 녀석에게 공포를 느끼다니…….’
바로 이때 주성진의 말이 그의 귓전을 스쳐 지나갔다.
“대장로님! 이제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저를 찾아온 목적을 사실대로 말씀해 주시지요.”
“음… 그게 말이오. 실은 주 단주를 만나러 가는 중이었소. 한데 도중에 주 단주를 발견하고는 호기심에 뒤따라온 것이오.”
유홍개의 말투가 달라져 있었다.
“호기심에 뒤따라 왔다고요?”
“그렇소, 내가 그대를 처음 봤을 때, 그대는 누군가를 정신없이 추적하고 있었소이다. 보아하니 저 여인 같소만…….”
유홍개는 염미란을 가리켰다.
주성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 무슨 일로 저를 만나려고 한 것입니까?”
“난 총무련 련주의 명을 받고 그대에게 신고하러 온 것이오. 내가 정의단의 또 다른 부단주로 임명되었거든.”
“부단주로 임명되었다고요?”
그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소. 서찰도 가지고 왔으니 읽어 보시오.”
주성진은 유홍개가 건넨 서찰을 보지도 않고 품속에 집어넣었다.
“왜 보지 않는 것이오?”
“방금 말씀 다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굳이 볼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요.”
유홍개는 주성진의 불쾌한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불쾌한 모양이오?”
“불쾌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지요. 아무튼 새로운 부단주님도 오셨으니 이번 전쟁은 빨리 끝나겠군요. 제 예상이 맞는다면 추가 전력이 보충되겠지요?”
“그렇소이다. 추가 전력은 내가 지휘하게 되어 있소이다.”
주성진은 돌연 유홍개를 뚫어지기 바라보기 시작했다.
“조만간 저는 흑룡가를 상대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움직일 겁니다.”
“음, 나와 내 제자 때문에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이오?”
“뭐. 그런 면도 없지 않지만, 이전부터도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유홍개의 주름살이 깊어졌다.
“음, 그전에 련주님의 재가를 받아야 하지 않겠소?”
“정의단 단주에게 그 정도의 권한은 있을 것 같은데요. 아니면 저를 내치던가.”
“아아 알겠소. 하지만 일단 회의라도 한번 합시다. 서로 간에 중복되는 일은 피해야 하지 않겠소.”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본단에 돌아가면 회의 통보를 하겠습니다. 자, 그건 일단락된 것 같고, 염 소저의 신병을 넘기라고 한 건 농담입니까? 진담입니까?”
“아. 그건 반 농담, 반 진심이오. 그녀의 모친을 내가 잘 알기에.”
“모친이 누구죠? 말해줄 수 없는 건가요?”
유홍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말해 주겠소. 그녀의 모친은 혜정 사태요. 아미파의 장문인인…….”
주성진은 그녀의 모친이 상당한 인물일 것이라 짐작했지만 아피마의 현 장문인일지는 몰랐다.
‘맞아. 그러고 보니 아미파의 장문인인 바뀐 게 채 2년이 되지 않았구나…….’
“그래서 말인데 주 단주, 내가 그녀와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 허락해 줄 수 있소? 아, 그 전에 그녀의 용모파기는 사전에 숙지하고 있었소이다.”
“네, 그러십시오.”
잠시 후 자리가 마련되고 유홍개는 염미란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아련해진다.
“내가 그대의 어머니를 잘 아는데…….”
“말씀 낮추십시오.”
“그래, 그렇게 하지. 너의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잘 따랐지, 지금은 아미파의 장문인이 되셨단다.”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장문인이라고요? 예전 아버지로부터 어머니가 남궁세가을 떠나 불문에 귀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지만 그렇게 높은 자리에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얼굴이 너의 어머니를 빼다 닮았구나. 그래, 어머니를 원망하느냐? 너를 버렸다고…….”
염미란은 처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어릴 때야 그런 생각을 많이 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게 다 시대가 나은 불행한 일이잖아요. 정파 출신과 마교 출신의 만남.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