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염미란 생포작전 (4)
그는 심호흡하고 재차 말을 이어나갔다.
“먼저 생문이라 여겨지는 곳에 산짐승을 들여 놓아 보는 거죠. 그리고 상황을 살핍니다. 생문이라면 진 밖에서 짐승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거든요.”
주성진은 그가 말한 방법이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잘은 모르지만, 그대의 말이 타당한 것 같소이다. 그러면 안으로 들어간 여인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소이까?”
“느낌에 그녀가 진을 좀 아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스스럼없이 진이 펼쳐진 것으로 들어갔거든요. 음…….”
그가 말을 주저하자 주성지이 다그친다.
“그래서 그녀가 살아 있다는 것이오?”
그는 주성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운 좋게 살아 있더라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음, 그런다면 어떡한다…….”
주성진은 심각한 고민에 휩싸였다.
아까부터 느껴진 불안감이 가속화된 느낌이다.
‘제길, 그녀를 데리고 나와야 하는 건가. 그렇다고 무작정 진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까지 낭패를 당하면…….’
순간 그는 눈빛을 반짝였다.
주성진의 표정에서 그녀를 걱정하는 모습을 본 탓이었다.
‘잘하면 살길이 열릴 수도…….’
그는 이미 주성진이 그를 살려두기로 한 걸 모르고 있었다.
“저, 심검을 완성하셨지요?”
주성진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떡였다.
‘어떻게 알았을까?’
“눈썰매가 대단한 것 같소이다. 혹 표시가 많이 나더이까.”
“그건 아닙니다. 제가 관련된 책을 운 좋게 읽었기 때문입니다. 천축의 대뢰음사에서 말이죠.”
“뭐요. 천축? 그러면 천축어를 안단 말이오?”
그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본 책은 오래전에 심검을 완성하고 득도한 인물이 남긴 수필집이었지요. 한데 말입니다. 제가 왜 심검을 완성했는지 여쭈어 봤는지 아십니까?”
주성진은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소.”
“심검을 완성한 자는 진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설이 있습니다. 진법을 연구하는 자들에게는 상식으로 통하는 말이지만, 어느 사람도 증명하지는 못했지요. 이유는 심검을 완성하는 자를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거 사실이오? 날조된 것은 아니고?”
주성진에게는 그 말의 진위가 대단히 중요했다.
잘 하면 염미란을 구할 수 있는 것이고 일이 잘못되면 진 안에서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가 손을 거세게 흔들었다.
“천지신명과 돌아가신 아버지를 걸고 맹세하건대 이는 사실입니다.”
“음 그렇소이까? 그러면 같이 들어갈 용의가 있소? 혹시 그대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사실 주성진의 말은 의향을 묻는 말 같았지만, 같이 가자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가겠습니다.”
주성진은 그가 한 치의 머뭇거림이 없이 말하자 살짝 고개를 숙였다.
“고맙소이다. 한데 그대의 이름과 소속은 어떻게 되오?”
“명세철입니다. 소속은 없고 지금껏 신강과 세외를 홀로 떠돌고 있었습니다.”
“하하, 그렇소이까. 난 주성진이라고 하외다. 혹 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소이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합니다. 처음 들어본 이름입니다.”
주성진은 살짝 실망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달리 생각하면 무림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자라서 오히려 좋았다.
“음, 저기 말이요. 혹 흑룡가는 잘 아시겠소?”
“잘 알다마다요. 제가 그놈들과는 상종도 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제가 천마곡에 들어가려는 이유는 무공을 익혀서 흑룡가에 복수하기 위합니다.”
주성진 그의 눈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거짓은 아니군, 진실의 눈빛이야.’
“흑룡가 전체를 상대하려는 건 아닐 것이고……?”
“뭐, 일단은요. 사실 제 손으로 꼭 죽이고 싶은 자가 있습니다. 그자는 어릴 적에 저의 부친을 비겁하게 해친 인물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흑룡가의 악행을 아는 이상 흑룡가의 인물을 만나면 절대로 관용을 베풀 생각이 없습니다.”
“음, 그런 일이 있었소이까… 만일 그대가 원하면 내가 그대에게 기회를 주겠소. 난, 솔직히 흑룡가를 지우려고 온 사람이거든…….”
“정말입니까?”
“하하. 그렇소, 물론 최우선적으로 진안에 들어갔다가 무사히 살아 나와야겠지만.”
명세철은 두 주먹을 꼭 지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기회를 주셔서요.”
주성진은 뜻하지 않는 장소에서 한 사람을 얻었다.
그가 비록 마인이라 주변에서 눈초리를 줄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것에 구애받을 주성진이 아니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진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무언가 싸늘한 기운이 주성진의 정수리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갔다.
그 즉시 주성진은 한 자루 검의 형상을 뇌리에 떠올리며 싸늘한 기운을 베어 갔다.
잠깐 사이에 기운이 엷어지더니 사라져 버렸다.
주성진은 여유를 찾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나 그저 보이는 건 희뿌연 안개뿐이었다.
‘온통 안개라, 눈속임일까, 아니면 진짜일까……?’
주성진은 명세철을 바라보았다.
그는 방금 자신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괜찮소이까?”
“네,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런데 진 속이 너무나 평온한 것 같습니다.”
진에 들어오기 전, 주성진은 명세철에게 위험이 닥치면 반드시 말하라고 일렀었다.
“음, 실은 좀 전에 싸늘한 기운이 내 정수리로 몰려왔었소. 한데 그대는 못 느낀 것 같소이다.”
“아, 그런가요? 저는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감각이 탁월하셔서 감지하신 것 같습니다. 한데 그러면 물리친 것이죠?”
“그렇소. 그대가 말한 덕에 심검으로 물리쳤소이다.”
“하하. 역시 설이 사실이었군요. 저, 주 단주님, 제가 힘들면 말씀드릴 테니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오로지 그녀를 찿는 데 매진해 주십시오. 부족하지만 저도 진법을 연구한 사람입니다.”
“하하, 알겠소이다.”
“저, 마음의 칼날로 상대에게 보여 줄 수 있다고 하던데요.”
“보고 싶소이까? 언제든 보여줄 용의가 있는데 말이요.”
“아아, 아닙니다. 저는 혹시나 해서 여쭤본 것이랍니다.”
이야기하는 사이에 또다시 무언가 범상치 않은 것이 몰려왔다.
주성진은 경계를 풀지 않은 채 다시 마음의 검을 떠올렸다.
‘응?’
이번에는 나지막한 진동이 발바닥을 울리고 있었다.
주성진은 버릇처럼 명세철을 힐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찡!
주성진은 마음의 검으로 발바닥으로 올라오려는 기운을 막아섰다.
그러자 미지의 기운이 요동쳤다.
동시에 마음속에 떠오른 검의 형상 또한 점점 뚜렷해졌다.
그리고 얼마 후, 진동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하하. 내가 이겼어!’
주성진은 기운이 사라지자 내심 환호를 질렀다.
그러다 명세철과 눈이 마주쳤다.
“저, 주 단주님, 확실한 건 아닌데 제가 이 진을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정말이오?”
“우선은 제 뒤를 따라오십시오. 가는 도중, 확실해지면 제가 생각한 진의 명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벅저벅!
한 걸음, 두 걸음…….
내딛는 발걸음이 백을 넘어섰다.
주성진은 발걸음을 세는 것을 포기하며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이거, 도대체 어디가 끝이야. 그렇다고 명세철을 다그칠 수도 없고, 딴에는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는데’
그 순간, 명세철이 속삭인다.
“하하.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제 계산법에 따르면 곧 여인을 보게 될 것 같습니다.”
“고맙소이다. 한데 미안하지만, 알기 쉽게 설명 좀 해주시오.”
“제 생각에 천마곡진은 전설의 환상안개진과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문이 없는 것이지요. 전형적인 진은 사문, 휴문, 생문이 있는데 환상안개진은 그런 게 없어요. 한마디도 말해, 진이 살아 움직인다고 할까요.”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그럼 어떻게 날 인도한 것이오?”
“살아 있는 진은 신체와 비슷하지요. 안개는 결국 수의 기운일 테고 그렇다면 상생상극의 원리에 따라 화의 기운이 안개에는 상극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계속 뜨거운 입김을 불었습니다. 진이 저의 입김을 싫어하면서 길을 터주고 있었는데, 이제 그 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주성진은 그저 그가 숨을 크게 내쉬는 줄만 알았다.
그 순간 그의 뇌리에 번쩍 스쳐 지나가는 게 있었다.
“그러니까. 무슨 법칙이 있어서 그걸 따라 걸은 게 아니라 그냥 단순히 입김을 불면서 걸었다는 것이오?”
“네, 그렇지만 분명 계산을 하고 있었지요. 음양오행이 한 바퀴 일주천하기를요. 그리고 곧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로 안개가 사라지는 순간 말입니다.”
“안개가 사라지는 순간이 영원할 것 같지 않은데, 어떻소이까?”
명세철은 고개를 끄떡였다.
“맞습니다. 대략 일각입니다. 그 안에 진을 빠져나가야겠지요. 물론 대인은 그런데 구애받지 않아도 됩니다. 심검의 소유자이니까요. 그냥 안개를 마음의 검으로 베어 버리고 빠져나오면 그만입니다. 하나 저나 그 여인은 그렇지 않지요.”
“그럼 본인이 잘못될 줄 알고도 진에 들어온 것이오?”
“명색이 진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자존심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진안에서 살아 보겠다는…….”
“음, 그렇구려.”
한데 그 순간이었다.
귓전을 때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숫제 귀를 먹게 할 정도로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윙윙!
‘진의 마지막 발악인가?’
“크으윽!”
주성진은 급히 명세철을 바라보았다.
그는 귀를 틀어막고 있었는데 다문 입술 사이로 거친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그러다 그것도 소용이 없는 듯,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이런 내가 한발 늦었군!’
사실 주성진은 기막을 펼쳐 소리를 차단한 상태였다.
이후 점차 기막을 넓혀 명세철을 보호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그가 먼저 기절해 버린 거였다.
‘다행이군, 그에게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라서.’
주성진은 기막으로 자신과 명세철을 보호하며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잠시 후 주성진의 눈이 돌연 번쩍였다.
‘안개가 걷혔다!’
주성진은 재빨리 명세철을 업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길 얼마 후 쓰러져 있는 염미란을 발견했다.
주성진은 그녀에게 다가가 팔목을 잡았다.
‘휴, 다행이다. 맥박은 정상이야. 그럼 기절한 게 굉음을 차단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명세철이 기절한 것도 동일한 이치겠군.’
* * *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을 둘러업고 진을 빠져나온 주성진은 숨을 골랐다.
‘휴, 빠져나왔구나, 다만 좀 아쉽기는 하군. 천마곡진 안의 비밀을 풀지 못했으니, 뭐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주성진은 두 사람이 깨어나길 기다렸다. 얼마 후.
끙!
끄응!
두 사람이 동시에 눈을 떴다.
한 사람의 얼굴에는 안심한 표정이 한 사람의 얼굴엔 얼굴 가득 당혹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주성진은 그들의 표정을 보며 빙그레 미소지었디.
“두 사람 다 무사해서 다행이오!”
명세철은 주성진의 말에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구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주성진은 손을 내저었다.
“뭐 별거 아니오. 아. 잠시만…….‘
주성진의 신형이 명세철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곤 몰래 도망가려던 염미란의 눈앞에 나타났다.
“하하. 소저, 어딜 그리 바삐 가시오?”
염미란은 고운 입술을 깨물었다.
‘제길… 진드기 같은 자!’
한편으론 가슴이 쿵닥쿵닥 뛰었다.
‘왜? 내 이상형도 아닌데…….’
염미란은 자신의 부친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긴 근육질의 남자를 선호했다.
하나 주성진에게는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주성진은 호리호리하면서 매끈하게 빠진 몸매의 소유자였다.
‘키가 큰 것 외는 내 취향이 아닌데.’
그런데도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매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주성진인데도.
“하아.”
염미란의 숨결이 하얗게 하늘로 피어오른다.
‘뭐에 홀린 거야!’
염미란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더니 멀뚱멀뚱 서 있는 명세철에게 쏜살같이 다가갔다.
‘저자를 인질 삼아서 탈출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