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염미란 생포작전 (3)
주성진은 기악을 쳐다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그깟 잔수에 내가 놀아날까 보냐?’
기악은 자신의 수가 통하지 않자 동료의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제기랄 창피하게…….’
쉬익!
한데 막 기악이 입을 벌리려는 순간.
예리한 살기가 느껴졌다.
기악은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
‘검이다!’
하나 상대의 검은 눈이 달렸는지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녔다.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보법을 펼쳐도…….
간신히 말할 기회를 포착한 기악이 외쳤다.
“도와줘!”
안 그래도 도우려고 힘을 모으고 있던 용진과 또 다른 자가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용진의 위압적인 도가 주성진의 등을 노렸고 또 다른 자의 쌍권이 주성진의 검을 가로막고
나섰다.
팟!
한데 이번에도 주성진의 신형이 꺼져 버렸다.
허공을 때린 그들은 재빨리 위를 바라보았다.
주성진의 신형이 위로 솟구치더니 빠르게 지상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아니 벌써, 저기까지…….’
용진의 눈이 급격히 커지고 있었다.
* * *
잠시 후, 마인 열 명이 천천히 간격을 넓히며 주성진을 에워싸듯 자리 잡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도를 들고 있었는데, 주성진이 움직이지 않았기에 쉽게 주성진을 가둘 수 있었다.
그리고 진에 참여하지 않은 나머지 두 명은 자신들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사실 주성진이 그들이 하는 양을 묵묵히 지켜보는 건, 어찌 보면 지극히 오만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주성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 자신을 믿는 거야, 까짓것 해보자고!’
주성진은 자신을 포위한 열 명의 마인을 바라보며 자신의 보검에 힘을 주었다.
한편, 10명의 마인과 대치중인 주성진을 바라보며 기악은 무엇이 억울한지 이를 악물고 있었다.
‘제길. 내 손으로 죽여야 하는 건데…….’
사실 기악은 자신의 절친인 용진에게 기회가 돌아가자 배가 아팠다.
‘일대일로 붙으면 내가 최고인데… 뭐 할 수 없지. 저놈의 시체에 분풀이하자고. 빙마장으로 저놈을 얼려 산산조각이 나게 만들면 그나마 이 더러운 기분이 풀릴 거야.’
어쨌거나 기악은 추호도 주성진이 살아남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설마 저놈의 몸이 십마진 아래서 천참만륙되지는 않겠지…….’
기악은 부정하려 해도 십마진에 당해 주성진의 몸이 여러 동강으로 베어 참혹하게 죽는 모습이 떠올렸다.
‘놈! 분발해라. 그래야 내가 면이 서지. 그래 좋아, 멋을 부리며 검을 치켜든 채 여유로운 표정 일단 좋다고, 그거 변하지 마라.’
순간 검을 뽑아 든 열 명의 마인이 십마진의 요결에 따라 천천히 움직이며 주성진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열 명이 내뿜는 살기가 진득하니, 공기를 물들이고 그 기세가 관전하는 이조차 숨쉬기 힘들 정도로 대단했다.
우웅!
열 명의 마인이 본격적으로 십마진을 운용하자 그들의 도에서 하나같이 검붉은 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십마진 속 한가운데 놓인 주성진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심후한 공력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이정도 쯤이야.’
다만 속마음과 달리 표정은 처음의 여유로운 표정이 사라지고 다소 굳어져 있었다.
그게 좋게 본다면 마치 검을 든 것조차 잊은 구도자의 모습이고, 안 좋게 보자면 자포자기한 모습처럼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주성진을 응원하던 기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휴, 내가 저놈을 너무 믿었나. 시작부터 저 꼬락서니라니. 에이…….’
기악은 주성진이 생을 포기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때였다.
용진이 진 속에서 외쳤다.
“공격!”
용진의 외침이 들리자마자 그를 포함한 열 명의 마인이 공격대형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간 주성진의 눈이 반짝였다.
잔뜩 기대 어린 눈빛이다.
‘후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인가? 뭘 보여줄지 궁금하군. 기왕에 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걸 보여 주면 좋겠는데 말이야.’
주성진이 바라는 건 새로운 합벽진의 형태였다.
쉭!
세 자루의 도가 주성진을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진다.
‘챙, 챙…….’
주성진이 상대의 검을 쳐내자 그들이 물러나고, 이번엔 네 자루의 검이 주성진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음, 처음엔 삼재 소진, 그러면 이번엔 사방 소진인가…….’
주성진이 처음 세 사람의 공격을 진 속의 진이라 표현한 건 그들의 힘이 개개인의 합을 능가했기 때문이었다. 어디까지 추정이지만…….
한데 주성진은 몰랐지만, 뒤로 물러난 세 명의 안색은 똥 빛이었다.
도를 잡은 그들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경악한 건 주성진의 엄청난 괴력 때문이었다.
3인이 단순히 합동해서 공격해도 위압적일 텐데, 그들은 진법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놀라움이 더 했다.
사실 주성진이 생각한 것처럼 그들 3인의 공격은 뒤를 받치는 7명의 호응을 받고 있었다.
내공 전이의 방법으로…….
챙, 챙, 챙, 챙…….
주성진의 예상대로 네 자루의 검이 주성진의 검에 튕겨 나가자 이번엔 다섯 자루의 검이 주성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 일종의 차륜전이군, 톱니바퀴처럼 촘촘히 얽힌…….’
주성진은 상대의 십마진을 높이 평가했다.
‘역시 명불허전, 마교의 진법답구나.’
십마진은 진 속의 작은 소진이 공격에 실패하더라도 끊임없이 몰아쳐 상대를 지치게끔 하는 효용이 내재되어 있었다.
혹자는 진법을 펼치는 자도 동일하게 지칠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진 속에서 그들 개개인의 내기는 어느 선까지 자연진기를 흡수할 수 있었다.
바로 그것이 또 다른 진법의 효용이었다.
한편 주성진은 그들을 상대하며 곰곰이 생각했다.
‘이 자들은 처음부터 나를 죽이려 했어. 천마를 동경하며 무의 극을 이루려고 하는 자들이라면 살려줄 용의가 있었지만, 이들의 인성은 악에 가까워…….’
한동안 공격이 계속 이어지고, 지켜보던 기악은 주성진이 분전한다고 생각하여 엄지를 치켜 올렸다.
‘음, 저 정도면 내 면이 설 것 같군. 내가 약한 게 아니라 저놈이 강하다는 걸…….
하지만 그런 기악도 주성진이 승리할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곧 승부가 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의 눈에 보이는 주성진은 지쳐서 방어에만 급급할 뿐, 이렇다 할 반격은 꿈도 꾸지 못하는 모습으로 비추어졌기 때문이었다.
한데 다음 순간 기악은 주성진의 모습을 놓쳐 버렸다.
‘어어, 어떻게 된 것이지?’
순간 강력한 바람이 주성진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위이잉…….
주성진을 향에 짓쳐 들어가던 세 사람은 그들의 얼굴을 때리는 강한 바람을 느꼈다.
위기라고 판단한 그들은 이심전심, 동시에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들이 느낀 바람은 단순히 바람이 아니었다.
“으아악, 으아악…….”
마지막으로 그들이 느낀 것은 강한 통증과 함께 세상이 거꾸로 도는 것이었다.
쿵, 쿵…….
바람은 세 사람을 잠재우고 계속 뻗어 나갔다.
“크아악, 컥…….”
일곱 명의 입에서 동시에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들의 몸이 허공을 날아 떠올랐다가 급속히 땅에 내동댕이쳐졌다.
몸 따로, 목 따로…….
쿵, 쿵…….
기악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좀 전까지 위풍당당했단 십마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자욱한 혈향만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이 주성진을 향했다.
주성진은 처음 서 있던 그 자리 그곳에 그대로 선 채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변한 것은 높이 들려 있던 그의 검이 검집에 들어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도망쳐야 한다!’
강렬한 삶의 욕구가 그의 뇌리를 감싸며 그는 지면을 박차고 위로 떠올랐다.
자신의 동료가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삶이 먼저였다.
한데 그때였다.
가슴 부위에서 통증이 느껴지자 그는 가슴을 어루만졌다.
처음엔 그저 가벼운 통증이 생각했다.
하지만 가슴을 감싼 손에서 축축한 물기가 느껴진다.
‘어억, 이건 피…….’
그는 반사적으로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주성진은 처음 그 자리에서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한데 그 순간 시야가 흐릿해진다.
그리고 자꾸만 눈이 감겨온다.
‘내가 죽는 것인가…….’
쿵!
“휴우!”
주성진은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마지막 남은 마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전신을 벌벌 떨며 주성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쌍권을 펼치는 자였군. 저자를 어떻게 한다? 아무리 적이라고 하지만 전의를 상실한 모습인데 죽이기가 좀 그런데…….’
그 순간 그가 무릎을 꿇었다.
‘저자는 심검을 완성한 자야. 나는 절대 도망칠 수 없어.’
“살려주십시오.”
“난, 나를 공격한 자를 용서하지 않는 좌우명을 가지고 있소만…….”
“그때는 동료가 위험에 처해서 부득이하게 도왔을 뿐입니다.”
주성진은 살의를 거두었다.
일단은 그를 통해 그들이 왜 여기에 머무는 이유를 물어보기로 했다.
어느 정도 들은 바가 있었기에 만약 거짓을 말한다면 그를 저승으로 보낼 작정이었다.
“당신들은 왜 여기에 있었던 거요?”
“그것은 바로 천마곡진을 파훼하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섭니다. 저흰 모두 소싯적에 진법을 공부했기 때문에 열두 명이 뭉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지요.”
주성진의 의외의 사실에 살짝 놀랐다.
“그래요? 이거 모두 의기투합했다는 말이군요. 음, 한데 그건 그렇고. 당신은 천마를 숭상하오이까……?”
“솔직히 저는 그의 순수한 힘을 숭상하지만, 다른 이들도 저와 같은 생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순수한 힘을 숭상한다는 건 어떤 의미요?”
그는 눈에 힘을 주고 또박또박 말하려고 노력했다.
말 한마디에 생사가 오가는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순수한 힘입니다. 무도의 정신으로 약한 자를 돕는…….”
“초창기 천마의 모습을 동경하는 모양인데, 맞소이까?”
“네, 그렇습니다. 세상을 발아래 두려고 살육을 일삼는 천마의 모습은 동경하지 않습니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좋소이다. 한데 말이요. 안에 들어가려는 목적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맞을지 모르겠소이다.”
“네, 아마 맞을 겁니다. 저는 천마의 비급이 안에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 그림의 떡일 뿐이지요.”
“그 말은 진을 파훼하기 힘들다는 이야기이오?”
그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네. 저희는 이심전심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누가 먼저 나서서 포기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자존심 문제라…….”
주성진은 얼굴을 찡그렸다.
‘이거 큰일인데, 염미란은 어떻게 하지? 그녀는 괜찮은 것인가?’
주성진은 천마곡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진에 대해 아는 것을 소상히 말해 보시오!”
“별로 파악한 게 없습니다. 생문이라 생각한 곳은 모두 사문이었지요.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생문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머리가 쥐가 날 만큼 숙고했거든요.”
“음, 그렇소이까? 한데 생문이 사문이라는 건 어떻게 안 것이요? 안에 들어가 보았소이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사실 진법을 조금이라도 아는 자라면 그런 무모한 시도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