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염미란 생포작전 (2)
염미란은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언제부턴가 따라다니며 본인을 훼방하려는 자들의 꿍꿍이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틀 전의 일을 떠올렸다.
‘도대체 왜 나를 추적하다 말고 느닷없이 시비를 걸어 표국을 공격한 것일까? 물건을 빼앗기 위해서 아니면 혹 표국과 원수 사이……?’
이마에 주름살이 질 정도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지만, 답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상한 건 또 있었다.
그들은 표국에서 빼앗은 모든 것을 하나도 버리지 않은 채 자신을 추격하고 있었다.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저들의 추적을 뿌리치는 건 여반장이라고. 뭐 그럴 필요도 없이 간단하게 숲속으로만 이동한다고 해도 저들은 날 따라오지 못할 것이야. 표국에서 강탈한 것을 버리지 않는 한…….’
그녀는 관도를 벗어나 숲속으로 들어갈까 말까 고민했다.
그 순간 그녀의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혹, 저들이 나의 계획을 눈치채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노골적으로 흔적을 남기고 있으니 저들 중, 머리 좋은 자가 있다면 내가 저들을 어딘가로 유인하고 있다는 걸 간파했을지도 몰라.’
그녀는 자신의 추측이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말이야… 나의 행동이 미심쩍다는 걸 알면서도 나를 따라온다고? 음,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여긴 신강이지 정파의 안마당이 아니라고, 혹 무공에 자신이 있어서 저러는 걸까?’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오자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음, 지금쯤 보고가 들어갔겠지?’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분타주가 그녀의 부탁을 들어 주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을…….
‘할 수 없군. 그 일로 상부로부터 비웃음을 사더라도 처음 생각대로 하자고, 숲속으로 들어가서 저들을 떼어내 버리자.’
그녀는 경공으로 반 시진이면 천마곡에 도달한다는 걸 알지만, 중도에 자신의 계획을 철회하기로 한 거였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 이 도둑놈들아!’
그녀가 갑자기 진로를 바꾸더니 숲속으로 사라졌다.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그러길 얼마 후,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간 그녀가 나뭇가지를 밟으며 땀을 훔쳤다.
‘후후, 지금쯤 그들은 혼비백산해 있겠지. 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말이야.’
자신을 찾으려고 허둥지둥 당황할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고소한 생각까지 들었다.
‘호호호…….’
그녀는 방향을 정했다.
‘가자. 태양이 지는 방향으로…….’
그녀가 나뭇가지를 발끝으로 살짝 누르며 위로 도약했다.
그러곤 자신이 정한 방향으로 힘차게 나아간다.
쉬이잉!
한데 난데없이 피부가 얼얼할 정도로 바람이 불었다.
“웬 바람! 악!”
쒜애액!
지지직!’
그녀의 소매가 길게 찢어졌다.
염미란은 제대로 당황했다.
조금 전 의기양양한 모습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나 집힐 뻔했어! 빨리 도망가자. 아! 이럴 수가, 누군가가 지척에 다가왔는데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그 순간 그녀의 찢어진 소매를 붙잡고 있는 자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그녀가 달아난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바로 주성진이었다.
‘허허, 놓쳤다. 분명 다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실수를 저지른 건 아니었다.
그만큼 완벽했고 빨랐다.
하지만 그가 염미란의 완맥을 잡아채는 순간 그녀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그녀의 놀라운 경신술로…….
‘음, 그녀의 경공이 내 예상을 벗어날 만큼 뛰어났다는 거겠지, 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자칫 그녀를 영영 놓쳐 버리겠어!’
쌩…….
쫓고 쫓기는 자의 추적이 시작되었다.
하나 시간이 흘러도 주성진은 좀체 그녀와의 거리를 좁힐 수 없었다.
기껏 좁힌 거리가 반 척도 지나지 않는다.
처음엔 조바심에 안달이 났으나 상황을 받아들이니 조금은 느긋해진다.
‘설마하니 지구력에서는 내가 뒤지지 않겠지, 흐흐.’
주성진은 그렇게 편히 마음먹었다.
한데 그 순간 염미란이 돌연 방향을 틀었다.
‘이판사판이다. 천마곡으로 다시 가자.’
염미란은 조만간 자신의 내공이 바닥을 드러낼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괴물 같은 놈! 도대체 정체가 뭐야…….’
염미란은 달아나면서도 기가 막혔다.
그녀는 경공의 달인답게 장거리 경공도 끄떡없었다.
그녀의 놀라운 경신법은 몸을 언제나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어 주었으며, 힘들이지 않고 바람을 타고 나르게 해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자신이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곧바로 상대에게 붙잡힐 처지였다.
그러니 방법은 공력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려서 최대한의 가속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주성진은 그녀가 갑자기 천마곡 쪽으로 달아나자 인상을 찌푸렸다.
‘음, 영악하구나, 허허 참, 생포하기가 쉽지 않네…….’
사실 주성진이 마음만 먹으면 최소 경미한 부상, 최대 죽음에 이르게 할 순 있었다.
이기어검이나 더 나아가 심검으로… 하지만 그건 자존심이 허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전제가 그녀를 반드시 생포해야만 했다.
그래야 돌아가더라도 자신의 면이 서는 거였다.
쌩……!
멀리서 한 점이 나타나더니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 순간 천마곡에 진을 치고 있던 마인 중 하나가 소리친다.
“기악아, 저년 뭐야!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데…….”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자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용진아! 천마 조사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내리시는 모양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굶주린 걸 아시고 말이야.”
“그러게 말이다. 진법이 풀리지 않아서 답답했는데 오랜만에 히히.”
마인들은 저마다 침을 흘리며 정체 모를 여인을 바라본다.
바로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쉬익!
갑자기 그녀가 궁중으로 솟구치더니 마인들의 머리 위를 쏜살같이 지나쳐 버렸다.
“어어어…….”
마인들은 놀라 일제히 뒤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진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잠깐의 침묵을 깨고 처음에 입을 열었던 용진이 재차 말문을 열었다.
“기악아, 우리가 방금 허깨비를 본 거냐? 어쩜 저리 빠를 수가 있지……?”
“용진아. 그게 문제가 아니야. 미친년이 진안으로 들어갔다고. 오랜만에 욕정을 풀 수 있었는데 그게 허사가 된 것이라고. 너 그거 알지, 참았던 욕정이 폭발하면 어떻게 되는 거?”
“너, 이 녀석, 그건 안 돼! 할 수 없군, 당분간 여기를 떠날 수밖에…….”
기악은 고개를 끄떡이다가 갑자기 화를 낸다.
“미친년! 자살할 거면 몸이나 보시하고 갈 것이지…….”
“잠깐, 혹 미친년이 우리 뒤에 진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는 않았을까?”
“네 말은 그 미친년이 천마곡진을 잘 알고 있다는 거냐? 거기에 더해 우리의 존재까지도…….”
용진은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만약에 그녀가 진을 통과한다면?”
“우리의 노력이 수포가 되는 것이지…….”
둘은 서로를 바라보다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안 돼……!”
바로 그 순간 또 다른 자가 소리쳤다.
“수상한 놈이 나타났다.”
마인들은 일제히 앞을 바로 보았다.
그러자 그들의 시야에 빠르게 다가오는 자가 눈에 어른거린다.
방금까지 비명을 내지르던 용진과 기악을 서로를 바라본다.
용진이 빠르게 입을 놀렸다.
“저놈도 미친년과 한패가 아닐까?”
“음, 그럴 수도 있겠어, 다가오기만 해라, 내가 저놈을 죽여 버릴 테니까.”
“조심해라. 뭣 하면 내가 동료들을 데리고 도울 테니…….”
잠시 후 주성진은 자신이 한발 늦었음을 아쉬워하며 마인들 앞에 멈추어 섰다.
‘휴. 십중팔구 진 안으로 도망쳤을 거야. 뭐 그래도 형식적이지만 확인은 해 봐야겠지…….’
“안녕들 하시오, 혹 여인 하나를 보지 못했소?”
그러자 기악이 기다렸다는 듯 주성진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넌 누구냐? 제대로 말해야 한다. 안 그러면 골로 갈 수 있으니까.”
주성진은 살짝 인상을 썼다.
‘이자들 심성이 별로인 것 같은데. 뭐 좀 더 이야기를 섞어보면 알게 되겠지.’
“음, 난 여인을 뒤쫓아 온 사람이오. 한데 그대들은 누구요?”
주성진은 짐짓 모르는 척 되물었다.
“어린놈이 말귀를 몰라 처먹나! 지금 당장 관등성명을 되라고!”
“거! 말이 아주 짧소이다.”
“말이 짧으면 어떻게 할 건데? 넌 지금 상황 파악이 되지 않니, 주변을 둘러보라고!”
주성진은 비웃음을 흘렸다.
“당신, 쪽수 믿다가 큰코다칠 수 있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조심하시오.”
“뭐라! 어린 것이 주둥아리만 살았구나!”
기악은 돌연 몸을 번쩍 날리며 다짜고짜 쌍장을 후려 갈겼다.
쐐애액!
그는 잠시 살펴 본 봐, 주성진이 만만치 않다고 판단하여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 것이다.
갑자기 주변 대기가 급속도로 싸늘해진다.
주성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빙공 계열의 무공 같은데… 마인들 중에도 빙공을 구사하는 자가 있다니, 이거 뜻밖인데…….’
주성진은 조금 긴장한 상태로 상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공격하는 몸놀림과 손 씀씀이도 예사롭지 않았다.
‘일단은 저자의 빙공이 궁금하니까 수비에 치중하자.’
장력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자 주성진은 차가운 한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얼굴에 저도 모르게 당환한 모습이 그려진다.
‘뭐야. 저릿저릿 한데…….’
기악은 자신의 장력이 상대의 얼굴 앞에 거의 도달하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저, 저, 당황하는 꼬락서니 봐라. 생각보다 약골인데? 아무렴 나의 빙마장을 보고서 혼비백산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거야. 하하…….’
기악은 상대가 자신의 빙마장이 적중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촌각의 시간이 흐르고…….
팟……!
주성진의 신형이 순간 흐릿해지더니 급기야는 그 자리에서 꺼져 버렸다.
하나 기악은 자신의 빙마장이 주성진의 얼굴을 강타하는 것을 보았다.
다만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뿐이었다.
일순간 당황하던 그가 돌연 인상을 찡그렸다.
‘이런 제길. 내가 잔상을 보았구나! 그럼 녀석은 어디로?’
재빨리 허상을 쳤다는 것을 안 기악은 내기를 잔뜩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기감에 주성진의 기척이 잡힌다.
‘오른쪽이다!’
기악은 상대의 기운을 쫒아 몸을 오른쪽으로 틀며 연속해서 두 번의 빙백장을 내리갈겼다.
파박, 팍!
‘요놈! 이번엔 피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속도를 올렸거든…….’
쐐애액!
그의 빙마장이 대기를 얼려 버리며 급속도로 쏘아져 왔다.
한데…….
‘어어…….’
기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 자신의 장력이 빠른 속도로 날아갔음에도 손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똑같이 상대의 잔상을 친 것이다.
그제야 기악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놈은 고수다. 이형환위를 밥 먹듯이 하는 자야!’
“야합!”
기악은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 위해 커다랗게 기합을 넣으며 계속해서 빙마장을 뿌렸다.
한데 이전과 다른 게 목표가 주성징이 아니라 그의 주변이었다.
‘놈의 움직임을 둔화시킨다. 대기 중에 얼음이 떠돈다면 제아무리 이형환위라도 지장이 생길 것이야. 그리고 그 순간을 노려 놈을 끝장낸다.’
일면 그의 작전은 괜찮아 보였다.
허공에는 삽시간에 서리가 내리고, 공기는 냉기로 얼어붙었다.
팅팅!
대기 중에 떠돌던 얼음 조각이 힘없이 튕겨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