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밀염상을 처리하다 (2)
순간 역삼도의 시선이 방립을 깊숙히 쓴 표사에게 향했다.
“이보시오, 얼굴 좀 봅시다. 수배 중인 인물인지 아닌지 확인하려 하오.”
지목을 받은 자가 입을 열었다.
‘쯧쯧 저놈 봐라! 뭘 모르고 있군, 곧 뒈질 놈이!’
“얼굴에 흉터가 많아서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호오, 표사라면 영광의 상처일 터. 굳이 얼굴을 가릴 이유가 있겠소? 아니 그렇소?”
그가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이보시오. 포쾌 나리! 개인적인 사정이란 것이 있는데, 그걸 가지고 뭐라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해 보시죠…….”
역삼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놈 참. 주둥아리가 살아 있군.’
“내가 알기로는 표사들은 당당히 얼굴을 내보인다고 들었소. 안 그렇소?”
“그건 표국 나름입니다. 일률적으로 말하는 건 어폐가 있습니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하니, 내가 반드시 얼굴을 좀 봐야겠소이다.”
그러면서 역삼도는 표사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명령조로 말했다.
“방립을 벗으시오! 아니면 내 손이 무정타 탓하지 마시오.”
표사는 뒤로 물러나며 소리친다.
“꼭 그리해야만 하겠습니까? 저는 싫습니다만…….”
“그렇소. 나는 반드시 봐야겠소이다.”
돌연 역삼도는 손을 뻗어 표사의 방립을 잡아갔다.
순간 표사의 손이 위로 올라가며 방립을 잡으려던 역삼도의 손목을 잡았다.
순간적으로 역삼도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이야 빠른데? 어쩐지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더니만, 믿는 구석이 있었군.’
“이 손 당장 치우지 못하겠소! 어디서 감히…….”
“싫은데 새끼야…….”
역삼도의 얼굴이 벌게졌다.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어?!”
쉭!
순간 날카로운 검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역삼도는 발로 자신의 손목을 잡은 자를 걷어차며 뒤로 물러났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서슬 퍼런 검이 자신 앞으로 지나간 것이다.
만약 역삼도가 물러나지 않았다면 또 다른 자의 기습으로 옆쪽 옆구리에 구멍이 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놈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무공 수위로 보아 보통의 밀염꾼 들은 아니야. 잘만하면 대어를 잡겠는데, 살려서 데려가면 좋겠지만 여기서는 곤란하고 증표 같은 게 있을 것이야…….’
바로 그때였다.
“죽어라!”
표사들이 우르르 살기를 피우며 일제히 역삼도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방립을 놓고 실랑이를 벌였던 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역삼도는 얼굴에 미미한 웃음을 띠었다.
‘그래. 차라리 잘되었다. 한꺼번에 덤빈다면 나로서는 환영이다. 시간도 절약하고…….’
순간 가장 먼저 달려든 밀염꾼이 허공을 차오르며 역삼도를 향해 검날을 찔러 갔다.
쉬익!
이에 질세라 역삼도의 오른손이 허공을 날아오는 무사를 향해 뻗어 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피어난 황금색의 빛무리…….
퍽!
빛무리가 먼저 밀염꾼의 허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크악!”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역삼도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소리쳤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모조리 가랏!”
역삼도의 신형이 대붕처럼 허공을 날아 달려드는 무사들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챙챙!
요란한 병장기 소리가 아우성치듯 난무하는 가운데 또다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악!”
역삼도는 비명을 지른 자를 쳐다보지 않고 연이어 검을 앞으로 뻗었다.
새로운 먹잇감을 향해서였다.
“아아악!”
피어난 섬광에 복부가 갈린 자가 피를 뿌렸다.
“으아악…….”
연이어 계속되는 비명이었다.
삽시간에 제대로 지면을 밝고 서 있는 자가 별로 없어졌다.
바로 그때였다.
“이 새끼!”
순간 마차 안에서 한 인영이 튀어나와 역삼도를 향해 날아들었다.
쉬이익!
* * *
한편, 조금 전 최초의 격돌이 일어나는 순간, 왕천유의 검도 불을 뿜기 시작했다.
크아악!
먼저 달려든 상대의 목을 단칼에 그어 버린 그는 연이어 달려드는 상대에게 검을 휘둘렀다.
왕천유의 검이 상대의 미간에 스치자 상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컥……!”
그 순간 날카로운 검이 한광을 뿌리며 왕천유에게 날아들었다.
아주 쾌속한 움직임이었다.
“뒈져라!”
소리천 자는 바로 자신을 표두 황충우라고 밝힌 자였다.
팍!
검이 왕천유 검에 부닥치자, 황충우의 눈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나름 회심의 일 검으로 자신했는데 너무 어이없게 막힌 것이다.
“흥!”
왕천유의 차가운 눈동자가 황충우를 바라보았다.
그 틈을 이용해 황충우의 팔이 빠르게 움직이며 자신의 검을 회수하려 들었다.
“후후, 그건 곤란하지…….”
순간 왕천유의 검이 황충우의 복부를 찔러 갔다.
위기를 감지한 황충우의 신형이 원을 그리며 옆으로 틀어졌다.
순간 왕천유의 신형이 황천우를 따라잡듯 옆으로 틀어지며 검날이 위로 쳐 올라갔다.
가슴부터 목을 자를 듯 올라가는 검날의 백색 선이 황충의 시야에 잡혔다.
‘제기랄… 무위가 대단한 놈이군.’
이를 악문 황충우의 오른손이 아래로 향했다.
깡!
‘으윽!’
간신히 왕천유의 검을 저지한 황충우가 신음을 삼키며 정신없이 뒤로 물러섰다.
여전히 왕천유의 검날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냉소를 띤 왕천유가 황충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후후, 항복해라!”
상대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리자 황충우는 전신을 미미하게 떨면서도 충혈된 눈으로 왕천유를 죽일 듯이 쏘아봤다.
“죽, 죽여 버릴 거야!”
그는 입속에서 뭔가를 깨물어 물었다.
그건 독약은 아니고 비상시를 대비한 공력증폭환이었다.
‘제길 요행이 이 위기를 벗어나도 한 달 동안 거동을 못 할 텐데, 할 수 없지. 밀염의 운송이 중요하다 해도 내 목숨이 먼저니까!’
순식간에 사지백배에 힘이 차오른다.
그러자 황충우의 손에 강한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슈아악!
양발로 땅을 차며 강렬한 일 검이 왕천유에게 날아들었다.
‘뭐야. 좀 세진 것 같은데…….’
왕천유는 그저 비웃듯 검날을 옆으로 돌리며 하나의 원을 그렸다.
‘그래 봤자지…….’
쾅!
상대의 검날에 부딪힌 검을 왕천유는 계속해서 원을 그리듯 돌리면서 앞으로 밀었다.
‘어어, 도저히 당할 수가 없구나!’
너무도 힘없이 검이 밀리자 황충우의 표정이 파리해졌다.
그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잘 가라!”
순간 왕천유 검이 그런 황충우의 얼굴을 향했다.
황충우는 죽음을 직감한 듯 눈을 감았다.
한데 뭐가 그리 아쉬운지 입술을 꿈틀거렸다.
‘아아, 내가 피땀 흘려 모은 돈!’
* * *
삽시간에 주변으로 짙은 피비린내가 퍼지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역삼도는 검을 아래로 내리며 마차에서 뛰쳐나온 자를 바라보았다.
뚝! 뚝!
그의 검 끝에서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풀을 밝고 있는 바짓가랑이의 끝부분은 붉은 얼룩이 그려져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사박!
그곳으로 발걸음 소리가 조용하게 울렸다.
하지만 역삼도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저 상대의 얼굴을 응시하는 그의 눈동자만이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순간 상대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하였다.
그리고 날아드는 검날이 좌우에서 얼굴을 노렸다.
‘음, 환각을 일으킬 정도로 빠르군. 역시 짐작대로 대단한 고수였어!’
역삼도는 빠르게 염두를 굴리며 보법을 펼쳤다.
어느 순간 그의 신형은 상대의 예봉을 피하고 상대의 뒤로 이동해 있었다.
상대는 급히 신형을 뒤로 틀었다.
‘음 분명 이형환휘였어! 그렇다면 강자구나…….’
상대의 투명한 눈동자가 역삼도를 노려보았다.
오히려 역삼도의 강함이 그의 투쟁심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그리곤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너! 지옥으로 꺼져!”
순간 상대의 신형이 가볍게 흔들리며 상대의 신형이 일자로 쭉 늘어난다.
‘헉!’
송백의 눈동자가 굳어졌다.
이형환위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어느새 자신의 목젖에 닿고 있는 검날 때문이다.
역삼도는 재빠르게 검을 들었다.
검날이 부딪치며 멈추었다.
하나 그것은 순간.
핑!
회전하는 소리가 울리며 상대의 신형이 재빠르게 돌아 역삼도의 반대쪽의 얼굴을 잘라왔다.
역삼도는 빠르게 검을 자신의 얼굴 옆으로 올렸다.
땅!
금속음이 울리며 검날이 멈춰졌다.
상대의 눈동자가 흐릿하게 빛난다.
‘후후후…….’
순간 검이 떨어지며, 반대로 회전한 상대의 검이 두 개의 그림자를 만들며 찔러왔다.
역삼도는 굳은 얼굴로 검을 들어 막았다.
따땅!
금속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하지만 상대 검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역삼도의 전신을 향해 검을 찔러왔다.
물론 사실 그건 착시지만 그만큼 상대의 검이 빠르게 움직인다는 증거였다.
따다다당!
금속음이 요란하게 울리는 순간 역삼도의 신형이 뒤로 물러섰다.
맹렬하게 자신에게 날아드는 검 끝은 허수가 없이 모두 진짜로 보인다.
그렇기에 더더욱 일시에 반격할 수가 없었다.
반격하려는 순간 상대의 검날이 급속도로 흔들리며 찔러왔기 때문이었다.
슈아악!
바람 소리와 함께 흔들리던 검 끝이 수십 개로 변했다.
다음 찰나의 순간 역삼도의 모든 시야에 다 들어왔다.
수백의 검 끝이 모든 사물을 가린 것이다.
‘뭐야 저건! 혹시?’
순간적으로 전설의 검법에 대한 것이 뇌리를 스쳤다.
역삼도는 급히 내공을 끌어 올렸다.
‘승부다!’
그 순간 주성진의 손이 검을 잡아갔다.
여차하면 도울 태세였다.
하나 그의 얼굴에는 급박한 긴장감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역삼도를 믿어, 반드시 잘 해낼 것이야.’
역삼도의 오른손이 힘차게 검을 잡아 뽑았다.
그리고 피어난 십여 줄기의 황금색 섬광이 앞으로 무시무시하게 뻗어 나갔다.
파파팟!
그가 정말 자신 있게 선보이는 절초였다.
십여 개의 섬광이 주변을 휘젓자 순식간에 상대의 검날들이 사라지며 마치 허공에서 분해가 된 듯 보였다.
상대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곧바로 상대는 뭔가를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그러자 위축되었던 상대의 기세가 빠르게 되살아난다.
역삼도의 표정이 굳어졌다.
‘저건 공력증폭환이다. 놈이 선천진기까지 모두 끌어다 쓰고 있어.’
바로 그 순간, 상대의 신형이 늘어나며 십여 줄기의 검기가 사방을 가렸다.
그 상황에 역삼도의 신형이 뒤로 일자로 늘어나며 관도를 벗어나 숲에 이르렀다.
파파팟!
주변 십여 개의 나무들이 잘려 나가며 쓰러져 갔다.
역삼도의 신형이 멈춰 서며 늘어난 그림자가 하나로 합쳐질 때, 상대의 늘어난 그림자는 여전히 기세를 멈추지 않고 역삼도를 찔러오고 있었다.
이를 악문 역삼도가 검을 강하게 쥐었다.
강렬한 내기가 손을 타고 검으로 전해졌다.
‘제길. 그것만은 선보이지 않으려 했는데…….’
쉭, 쉭……!
늘어난 상대의 신형이 역삼도를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다.
반면 역삼도는 멈춘 상태로 검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만들듯 역삼도의 전신에서 거대한 살기가 퍼지고 있었다.
동시에 그 살기가 상대의 피부를 따갑게 만들고 있었다.
‘으으…….’
그리고 일순간 구슬픈 비명이 대지를 울린다.
“으아악!”
이마에 작은 구멍이 생겨나며 순식간에 그의 신형이 무너져 내렸다.
쿵!
지켜보던 주성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방금 뭐였지……?”
주성진은 처음 보는 역삼도의 수법에 어리둥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