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밀염상을 처리하다 (1)
바로 그 순간, 상대의 눈이 번들거렸다.
공격 준비를 마친 것이다.
“너 이 새끼. 죽엇!”
부 분타주가 왕천유의 미간을 노리며 검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러자 검 끝에서 아지랑이 같은 것이 맺혔다.
그런데 왕천유의 눈동자가 한 치의 흔들림이 없이 고요하자, 그의 전신이 미미하게 떨렸다.
그건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본능에 의한 떨림이었다.
그는 불안을 억누르며 핏빛 검기를 빠르게 내뻗었다.
쉭……!
언제 뽑았는진 모르게 왕천유의 검 끝에서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정확히는 그가 쏜 검기를 타고 검으로 흘러내린 것이다.
순간 상대의 핏빛 검기는 왕천유의 미간 세 치 앞에서 그 모습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큭!”
‘으으으…….’
한편 집무실에 앉아 있는 분타주는 두려운 얼굴로 주성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그의 귀에는 수하들의 비명이 이명처럼 들려왔다.
‘아아,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꿈이었으면 좋으련만…….’
그는 강력한 무형의 압력으로 인해 검을 쥐는 것은 고사하고 숨조차 쉽게 내쉴 수가 없었다.
“헉헉…….”
아무리 공력을 올려도 별 소용이 없다.
바로 이때, 주성진은 피가 묻는 칼날을 흔들어서 흩뿌리며 입을 열었다.
한데 그의 목소리는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지옥에서 온 사자 같았다.
“당신이 여기 분타주라지……?”
“그, 그렇습니다만…….”
주성진의 음성에는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그 증거로 분타주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높임말이 흘러나왔다.
주성진은 강한 눈빛을 내뿜으며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소. 하나는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고 깨끗이 죽는 것이고. 또 하나는 거부하다 심령금제를 당해서 모든 사실을 불고 비참하게 죽는 것이오. 어떤 것을 선택하겠소?”
분타주는 눈을 감았다.
‘아아. 저자는 내가 어쩔 수 있는 자가 아니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자가 나타났다는 말인가…….’
“정녕 살길은 없습니까?”
“당신에게 살길이 있긴 있소? 어차피 돌아가도 분파를 잃은 죄로 처형될 텐데…….”
주성진의 말은 사실이었다.
“음, 알겠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조금 전 여기에 있었던 그녀가 어디로 간 것이오?”
분타주는 사실대로 말했다. 아울러 위치까지도…….”
주성진은 그의 말을 듣고 내심 놀랐다.
‘천마곡이라고? 그런 곳이 있었다니…….’
“왜 그리 간 것이오?
“음…….”
분타주는 한동안 주저하며 대답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한 것 같은 데…….”
“네, 그랬는데…….”
“말하지 않으면 심령금제를 당하오. 그러면 당신은 더욱 비참하게 될 것이오.”
그러자 분타주가 결심한 듯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말하겠습니다. 그전에 당신은 누구십니까? 죽더라도 이름을 알고 죽고 싶습니다.”
“나는 주성진이오, 그러는 그대의 이름은 어떻게 되오?”
“경포승입니다. 그대의 이름을 들으니 죽더라도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허허.”
경포숭은 모든 사실을 토하고 조용히 세상과 이별했다.
쉬리릭…….
분타에서 나온 주성진, 왕천유, 역삼도가 빠르게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 경물이 휙휙 스쳐 지나갔다.
사실 그들은 천마곡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편 주성진과 그 일행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을 모르는 염미란은 그녀의 행적을 노골적으로 노출하며 세 사람이 잘 따라오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예로 그녀의 발자국이 땅바닥에 선명하게 그려진 상태였다.
한데 그녀는 분타를 떠나고 한참 후에야 세 사람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야…….’
뒤늦게 그 사실은 안 이유는 주성진과 그 일행이 늘 그녀를 추적할 때 한참의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세 사람은 좀체 그녀를 가까이서 추격하지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 전까지는…….
‘멈추자!’
세 사람이 따라오지 않는 걸 안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애타게 세 사람을 기다렸다.
그래도 오지 않았다.
‘아아, 왜 안 오는 것이야! 돌아가 볼까…….’
그리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는 순간, 그녀의 감각에 세 사람이 걸려들었다.
‘그러면 그렇지. 뭐 화장실을 들렸던 모양이야…….’
하지만 얼마 안 가서 그녀는 또다시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뭐 하는 거야. 지나가는 표국을 건드려서 뭐 어쩌려고!’
얼마 전 반대 방향에서 그녀를 지나가는 표국의 행렬이 있었다.
표물이 그다지 많이 실려 있지는 않았지만…….
* * *
그녀가 푸념하기 조금 전.
굽어진 길을 돌아 표물이 다가오자 길을 가던 두 사람이 동시에 멈추었다.
그들은 바로 역삼도와 왕천유였다.
주성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아니, 왜 그러시오? 빨리 갈 길 갑시다.”
주성진의 재촉에 왕천유가 조용히 속삭였다.
“주 단주님. 표국의 행렬이 수상합니다. 멈추게 해서 반드시 저들을 조사해야 합니다.”
왕천유의 말에 주성진은 빙그레 웃는다.
‘이런. 이들의 직업병이 도진 모양이군. 하긴 육선문의 뛰어난 포쾌들이니 뭔가 알아낸 모양이야…….’
그 생각이 미치자 돌연 주성진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딱!
‘아야, 제길! 난 저들을 본받아야 했어. 여태 난 내 본분을 망각하고 있었다고! 피 튀기는 전장에서도 장사꾼들이 있는 법인데 말이야…….’
이른바 전쟁상인은 생명의 위협을 감수할 만큼 이윤이 엄청났다.
보통 파는 품목의 5할이 무기이지만. 무기 외에 팔 것은 무궁무진했다.
죽고 죽이는 전장에서는 흥정도 별로 필요 없었다.
부르는 게 값이었으니까…….
다만 재수 나쁘면 물건을 팔 상대가 도적으로 돌변하는 수가 있으니, 이점은 충분히 감안해야 했다.
주성진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며 틈틈이 장사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곤 그들을 바라보았다.
“뭐가 수상하오? 내 눈엔 단순한 표국의 행렬로 보이는 데 말이요. 아, 혹 수배 중인 인물이라도 있소이까?”
왕천유가 대표로 말을 받았다.
“저자들은 십중팔구 밀염상입니다. 표국으로 위장한 것이죠. 아, 신강에는 규모가 큰 소금 광산이 여럿 있지요. 아마도 신강 지역이 옛날에는 바다였나 봅니다.”
“음. 저자들이 염상이란 말이오? 미안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하오. 나도 이참에 한 수 배우고 싶소이다.”
왕천유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저들은 보통의 표사들과 다른 모습입니다. 일례로 보통의 표사들은 방립을 저렇게 깊게 눌러쓰지 않지요, 한데 저들의 반수 이상이 불편하게 방립을 깊게 눌러쓰고 있어요. 그건 전형적인 얼굴을 가리려는 행위입니다.”
“…….”
“그리고 끄는 말이 표국의 말과 다릅니다. 저 말들은 몽고 말과 서역 말을 교배한 것으로 상당히 비싸지요. 왜냐면 두 품종의 장점만 받아서 힘과 지구력이 좋기 때문입니다. 저런 비싼 말은 아무리 표국이 대단하더라도 사는 건 무리이지요.”
“…….”
“음, 마지막으로 마차가 수상합니다. 뭐. 가끔 표물을 운송하면서 동시에 사람을 태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밀염꾼들 중에 종종 높은 지위를 가진 자들이 마차에 타는 경우가 있거든요. 뭐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죠.”
“…….”
“아, 그 말을 깜빡하고 하지 않았군요. 밀염꾼들의 우두머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거리낌 없이 저런 말을 구매하는 것이죠.”
주성진은 팔짱을 끼며 왕천유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래도 만에 하나…….’
“그대의 말을 믿소이다. 하지만 만약에 말이오. 그게 아니라면?”
“그러면 깨끗이 사과하면 되지요. 그리고 나중에 편의를 봐주겠다는 말을 꼭 덧붙여야 합니다. 저들도 육선문의 힘을 잘 알고 있거든요.”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날 무렵 표국의 행렬이 주성진과 일행들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표국의 행렬은 사람을 태운 듯한 마차 1대와 짐마차 2대 그리고 말을 타고 이를 호위하는 듯한 표사 10명이 전부였다.
특이한 건 쟁자수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표국의 행렬치고는 다소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순간 왕천유가 손을 들었다,
“멈추시오!”
왕천유는 외침과 동시에 대로변의 길을 막아섰다.
순간 주성진의 눈에 그들의 표기가 눈에 띄었다.
‘음, 신행표국이라! 들어보긴 한 것 같은데…….’
그러자 무위가 제법 강해 보이는 자가 왕천유를 뚫어지게 노려봤다.
그는 말에서 내리며 입을 열었다.
동시에 표사들이 말에서 내렸다.
“신행표국의 표두 황충우라고 하는데, 댁들은 뉘시오?”
“우리는 육선문의 포쾌요. 쫓는 인물이 있어 멀리 신강까지 왔소이다.”
황충우는 놀란 가슴을 달래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그럼 갈 길이나 갈 것이지, 왜 선량한 우리를 가로막는 것이오? 우리에게 시간은 금이요. 일정대로 표물을 운송해야 한단 말이오!”
왕천유는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하하. 미안하지만 수색을 좀 해야겠소이다. 아주 잠깐이면 되오.”
“우리를 의심하다니 그 무슨 망발이요? 신향표국을 뭐로 알고!”
왕천유는 황충우를 보며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공무를 수행 중인 사람보고 망발이라니, 그대는 목이 여러 개인가 보오. 아니 그렇소?”
황충우는 그런데도 지지 않고 대꾸한다.
“신강은 대명의 국법이 미치지 않는 곳이오. 그러니 그대들이 우리를 수샛할 수 없소이다.”
“허허, 엄연히 대명의 영토거늘, 무슨 헛소리요?”
“관례가 그렇지 않소이까?”
한편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사이가 역삼도가 마차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주성진은 한쪽 편으로 이동하여 방관하는 자세를 취했다.
물론 여차하면 두 사람을 도울 것이다.
역삼도가 다가오자 표사들이 우르르 역삼도를 막아섰다.
“뭐 하는 겁니까?”
“보면 모르겠소? 마차 안을 좀 보려 하오, 저 안에 사람들이 타고 있는 것 같아서…….”
표사는 얼굴을 찌푸린다.
그 순간 마차 안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표사 나리! 저분을 이리 모시고 오시구려, 뭐 우리의 얼굴을 보자 하니 제대로 보여 줄 수밖에 없을 것 같소. 아니 그렇소?”
“하하. 그렇긴 한데 거동이 불편하신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소이다. 오늘따라 힘이 넘치는군요. 하하.”
그 순간 표국의 표사들의 눈에서 희미한 살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들 중 하나가 검에 손을 가져가며 중얼거린다.
‘쯧쯧, 그냥 갈 길이나 갈 것이지 감히 우리를 건드려! 네 놈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지만, 방금 두목께서 공격하라고 했다고!’
실은 표사와 마차 안의 인물과의 대화 속에서 그들만이 아는 은어가 포함되어 있었던 거였다.
한편 역삼도는 주변의 공기가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묘하고 싸늘한 냉기 같은 것이 주변에 흐르고 있었다.
‘이놈들 봐라. 감히 내게 살기를 품어! 쪽수를 믿는 가 본데, 어림없다 이 녀석들아…….’
역삼도는 마차를 살펴보는 걸 잠시 보류하고 위장한 표사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저놈에게 말을 걸어 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