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주성진 움직이다 (2)
염미란은 그들에게 간략하게 자초자종을 이야기하였다.
다시 안색을 되찾은 송정호가 염미란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궁금한 게 많았다.
“한데 누구냐? 너를 쫓는 인물이?”
말하다 보니 뭔가 빠진 게 있었다.
송정호는 짜증 난 모습으로 염미란을 바라보았다.
“설마 놈들이 여기 분타까지 쫓아왔느냐?”
“네. 아마 여기 근처에 있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들은 저만 쫓지 이곳 분타를 공격하지는 않을 거예요.”
분타주 경포숭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끼어든다.
“뭐 이곳이 알려지지 않는 장소는 아니지만 그래도…….”
“분타주님 제가 여기에 들린 건 저의 계획을 알려드리기 위함이에요. 아까 간단하게 말씀드렸던 그 계획 말입니다.”
“음, 그러면 나더러 너의 계획을 본부에 전달해 달라는 거구나?”
염미란이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렇습니다. 분타주님 제가 지천조령술을 익히고 있는 건 아시죠?”
“알다마다… 전서구들이 너를 기가 막히게 잘 찾는다는 것을 흑룡가에서 모르는 이가 누가 있겠느냐. 아,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사실 전서구는 훈련을 통해 지정된 장소에서 장소로만 왕복 이동이 가능했다.
해서 그녀가 움직이지 않으면 모르되 이동한다면 전서구가 그녀를 찾아오는 건 원칙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녀가 익히는 지천조령술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해 준 거였다.
“전서구들이 예전과 같지 않아요. 공포에 휩싸여 있다니까요. 해서 제가 전서구를 달래느라 심력을 많이 소모하게 돼요.”
“음,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저를 추적하는 자의 고의적인 짓이겠죠. 그래서 그들을 혼내 주러 천마곡에 가는 거예요.”
경포승이 그제야 내막을 알고 씩 웃는다.
“천마곡에 수상한 자들이 있다던데…….”
“네. 그들 때문에 제가 천마곡에 가는 거예요. 저를 뒤쫓는 자들과 양패구상시키려고요.”
“만약에 실패하면?”
염미란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면 천마곡진으로 유인하면 되죠.”
“너, 혹시 파훼법을 아는 거냐?”
“다는 아니고 극히 일부만 알아요. 들어갔다가 저는 곧바로 생문으로 빠져나올 거예요. 안에는 대낮에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피어오른다고 하더라고요. 호호.”
경포승은 더는 묻지 않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염미란에게 진의 파훼법을 알려 주었으리라 확신했다.
그 순간 송정호가 입을 열었다.
“너를 따르는 그자들이 정말로 누구인지는 모르는 거냐?”
염미란이 고개를 끄떡였다.
“네,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그들이 3명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저를 본 것은 같은데, 저는 그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음, 그나저나 큰일이구나. 네가 구해 준 아군이 한두 명이 아닌데. 네가 당분간 그 일을 못 하게 생겼으니…….”
순간 염마란의 뇌리에 숱한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까진 깊이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 문제에 몰두하니 이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저. 왜 본부에서는 예하 부대에 마병십군을 파견하지 않는 것이죠?”
송정호는 염미란 모르게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뭐야, 모르고 있는 건가? 주성진에게 각개격파 당할까 봐 피하고 있는 거지. 너야 꽃놀이패고. 살아서 도움을 주어도 좋고, 죽으면 더 좋지. 너의 아버지가 전선에 뛰어들 것이니까. 물론 너 같은 미인이 사라져서 안타깝지만, 그 얼굴이 평생 갈 것도 아니고. 흐흐.’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그들이 너처럼 경공에 뛰어난 것도 아니고…….”
염미란은 송정호의 말에서 뭔가 미심쩍은 것을 발견했다.
‘뭐야 나도 마병십군 중 한 명인데… 때가 아니라면서 난 왜 파견한 거야. 정말 경공에 뛰어나서? 아니면 뭔가 꿍꿍이가…….’
비록 본인이 경공에 발군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는 하나, 어딘지 모르게 주요 정책 결정 사항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을 그녀는 새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섭섭한데. 내 신분 때문인가…….’
염미란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쾌한 기분 때문에 더는 분파에 있기 싫어진 것이다.
“그럼 저는 일어나 보겠습니다. 순회 사자님 살펴 가시고요. 분타주님은 제 부탁 차질 없게 해 주세요.”
“아니 벌써가게? 밥이라도 먹고 가지…….”
분타주의 말에 그녀가 억지 미소를 지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죠. 호호.”
염미란이 분타를 떠나고 연이어 송정호가 반대 방향으로 떠났다.
그 순간 역산도가 주성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성진이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 보여서였다.
“단주님? 왜 그녀를 따라가지 않는 것입니까? 전에 같으면 저희를 독촉하며 먼저 움직였을 텐데 말입니다.”
주성진의 얼굴에 흐릿한 미소가 흘렸다.
평소에 다른 모습에 역삼도의 가슴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음,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이야, 살기를 끌어올리는 것 같은데, 설마?’
“여기가 분타인가 본데 손을 좀 보고 갈려고…….”
역삼도는 본인의 생각이 적중했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사라진 그녀가 떠오른다.
“알겠습니다만 그러다 그녀를 놓치면요?”
순간 왕천유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야 이, 넌 어째 하루가 다르게 머리가 퇴보하는 것 같냐? 좀 생각이라는 걸 해보라고.”
“이 자식이, 아침에 뭘 잘못 처먹었나. 엉뚱한 소리 하면 넌 오늘 나한테 복날에 개 맞듯이 맞을 줄 알아.”
왕천유가 답답한지 본인의 가슴을 친다.
탕탕!
“이봐. 자 보라고, 그녀가 여길 왜 들렀겠어? 뭔가 보고하려고 들린 거 아니겠어? 그러니 여기 책임자를 족쳐도 그녀가 어디에 가려 하는지 답이 나온다고. 그리고 그녀는 우리의 추적을 이미 눈치챘잖아. 그런데도 좀 전에 전력으로 경공을 펼치지 않았어.”
“…….”
“한마디로 우리의 추적을 따돌리는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지. 그리고 방금 떠날 때 보았지. 마차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듯이 눈을 찡긋거렸다고!”
역삼도는 그녀가 눈을 찡긋거리는 걸 보지 못했다.
“난 보지 못 했는데, 어디서 구라를 쳐!”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냐!”
그 순간 주성진의 대화에 참여했다.
“자자 그만하고 내가 하나 덧붙이겠소이다.”
“주 단주님, 왕천유의 말이 사실입니까? 정말로 그녀가 눈을 찡그렸냐고요?”
주성진은 그녀가 눈을 살짝 깜빡이는 것을 보았지만,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보았었다.
“뭐, 눈을 깜빡이기는 했소이다. 자, 그건 그렇고 내가 왕 호법의 말에 하나를 더 덧붙이겠소.”
역삼도는 귀를 활짝 열었다.
“네, 말씀하십시오.”
“내 생각에 그녀는 눈치가 빠른 것 같소. 그녀는 우리가 그녀만을 따라다니며 훼방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소. 그래서 그들 분타에 안심하고 들어간 것이지… 다시 말해 그녀는 우리가 분타를 공격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한 거요. 난 그것을 역이용하려는 것이고.”
역산도는 주성진을 뚫어지기 바라보았다.
“잘 알겠습니다만, 저의 미천한 소견으로는 그래도 그녀를 추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주님이나 왕천유가 말한 건 모두 가정일뿐이지 뚜렷한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뭐, 그러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녀를 따라가시오. 나와 왕천유는 분타를 공격할 테니까…….”
역삼도는 급히 손을 내저었다.
“주 단주님이 안 가신다는데 제 혼자 갈 수는 없지요. 그런데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여기가 적들의 분타라는 건 어찌 아셨습니까? 솔직히 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주성진은 역산도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내가 아무리 허수아비 단주라고 하더라도 단주는 단주요. 그 정도 정보는 없을까. 안 그렇소?”
“아, 죄송합니다.”
“자, 그대의 우려도 있으니 신속하게 여기를 폐허로 만듭시다.”
역산도는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습니다. 한데 주 단주님 많이 변하신 것 같습니다. 단호해지고 또…….”
“뭐 잔인해졌다는 말이겠지. 역 호법, 지금은 전시상황과 같은 상황이오. 하루에도 많은 아군이 죽어 나가고 있소이다. 그리고 난 하루속히 여기를 벗어나 상단으로 복귀하고 싶소이다.”
“아, 네. 저도 그러면 살계를 크게 열겠습니다.”
* * *
“크아악…….”
난데없이 긴 비명 성이 허공에 메아리쳤다.
여기저기 죽은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으며, 저 멀리 보이는 건물 뒤쪽에서도 비명 성이 터져 나왔다.
시신들은 건물 뒤의 작은 연무장에도 널려 있었다.
순간 내실에서 또 한 번의 비명 성이 터져 나왔다.
“으아악……!”
쫙!
핏물이 창호지를 적셨다.
죽은 시신의 얼굴이 문에 부딪히며 손이 문틈으로 사라졌다.
‘음…….’
문을 열고 뛰어든 왕천유는 마지막으로 살아 있는 자를 바라보았다.
“부 분타주, 여긴 당신이 마지막이군…….”
부 분타주는 바깥에 죽어 있는 자신들의 부하를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었으나 오래가지 않았다.
이네 평상심을 찾은 듯한 차분한 얼굴이었다.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왕천유를 찬찬히 살펴봤다.
미끈한 몸매에 잘 생겼다.
거리에서 우연히 스쳐 지나가다 보았다면 공부깨나 한 유생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손에 든 검에서 핏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의 무복에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그것이 부 분타주를 더욱더 두렵게 만들었다.
부 분타주는 검을 잡으며 이를 악물었다.
‘두려워 마라, 나는 위대한 마교의 후예다!’
빠르게 내기를 돌리자 그의 몸에서 뭉클뭉클 마기가 솟구친다.
왕천유는 부 분타주가 각오를 다지자 미간을 좁혔다.
‘음, 저자가 죽기를 각오하였군. 선천진기까지 끌어내다니…….’
왕천유는 육선문에서 촉망받는 인재답게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그의 두 눈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과거 주성진을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의 그는 천양지차였다.
과히 괄목상대라는 말이 어울리게 그의 무공은 급진전을 이루었다.
7할은 그의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의 산물이었지만, 나머지 3할은 주성진의 도움에 힘입은 바가 컸다.
주성진이 그의 몸을 금침 대법으로 어루만져 주고 영약까지 제공해 주었다.
게다가 실전을 방불케 하는 비무까지 해 준 것이다.
그 순간 상대가 입을 열었다.
그는 좀 더 마기를 끌어 모으려 시간 연장책을 시도하고 있었다.
“정의단에서 왔느냐?”
“알면서 묻는 건 좀 이상한데. 왜 그걸 물을까…….”
“흥, 정파가 언제부터 그리 잔인해졌느냐? 거기에다 기습 공격은 뭐란 말이냐?!”
왕천유는 기가 막힌 듯 콧방귀를 꼈다.
“뭐라, 기습 공격에 잔인한 건 너희들만의 전유물이다. 뭐 그런 건가?”
“잘난 정파 놈들이 늘 자랑하면서 떠들고 다니니 하는 말이다. 앞으로 그런 잘난 척은 하지 못하겠군…….”
“난 그런 소리를 떠들고 다닌 적이 없어. 그리고 하나를 덧붙이지. 난 정파가 아니야. 하하.”
그 순간 상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파가 아니면? 그러면 뭐란 말이냐?”
“흐흐흐, 난 말이야 바로 포쾌다! 그리고 공력을 끌어모으려는 네 꿍꿍이를 아니까, 어서 빨리 덤벼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