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다.
궁중 연회가 끝나고 주성진은 곧바로 황제의 호출을 받았다.
주성진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황제에게 향했다.
‘그냥 보내 주지, 왜 또 부르는 거야. 더군다나 단독 면담은 부담스럽다고. 하루속히 북경을 떠나야지, 원…….”
마음과 달리 옷매무시를 단정히 한 주성진이 황제에게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하하, 자네와 공주가 잘 어울리더군. 아주 완벽히 보기 좋은 한 쌍이야.”
“과찬이십니다, 폐하.”
황제는 주성진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음, 새로 개발했다는 물감이 무척 좋아 보이더군. 내 용포가 오늘따라 유난히 빛났어. 하하.”
“그리 봐주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폐하.”
“돈벌이가 쏠쏠하겠는데? 그래. 앞으로의 계획은?”
주성진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가 입을 열었다.
“중원 전역으로 새로운 제품을 확대하려 합니다. 그에 따라 수출도 고려해 볼 것이고요.”
“음, 그런가. 그래, 휘주에 내려간다지?”
“네, 폐하.”
황제는 주성진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주성진은 황제의 그런 표정을 보며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음, 느낌이 싸한데…….’
“중원 5대 상가 중 2개 상단을 휘하에 넣었군. 그래, 기분은 어떤가……?”
“기분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폐하. 또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하,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자네 말 한번 잘 했군. 난 오래전부터 상단에 무림의 세력을 개입하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했어. 이유는 자네도 잘 알 것이라 믿네. 음, 그래서 나는 그 일로 자네처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지…….”
“…….”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나의 어깨를 좀 가볍게 해주어야겠어. 받아들이기 억울하다면 자네와 나와의 거래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네. 내가 용인하지 않았다면 자네는 휘주 상단의 상단주가 되지 못했을 것이야. 뭐 일단 될 수는 있겠지. 하지만 내가 그만두라고 압력을 가한다면? 하하.”
“…….”
“내가 싫어하는데 굳이 두 개 상단을 끌고 간다면, 관과의 거래는 모두 끊길 것이고 그러면 자네는 막대한 타격을 입겠지. 안 그런가?”
주성진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미처 그 점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폐하.”
“자네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부류가 의외로 많더군. 그들은 중원의 부가 한쪽에 편중되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는 논리를 펴며 나를 설득하려 했지. 뭐 나도 그들의 의견에 일부 동조하는 편이야. 만약 자네의 부가 황제인 나를 능가한다면 내 권위가 추락하지 않겠나?”
“폐하,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모은 재물의 반은 때가 되면 나라에 기부하도록 할 테니까요.”
황제가 주성진의 어깨를 짚었다.
“이봐, 그 이야기 공주가 들으면 무척 배 아파할 이야기로군. 내게 다른 방법이 있는데 들어보겠나?”
“말씀하십시오. 폐하.”
“신광상단을 뒤에서 움직이는 흑룡가를 총무련과 연합해서 지우도록 하게. 그들은 무림 질서뿐만 아니라 나라 질서까지 어지럽히려 하고 있으니 말이야. 총무련과는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되었다네. 그들도 자네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더군.”
주성진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폐하. 명을 받들겠습니다.”
“하하. 이거 너무 쉽게 응낙하는 거 아닌가? 휘주 상단에 내려간다며…….”
“네, 휘주 상단에 갔다가 총무련으로 가면 될 듯싶습니다만. 실은 휘주상단에서 조촐한 취임식이 예정되어 있거든요…….”
황제는 손을 흔들었다.
“미안하지만 곧바로 다른 곳으로 가주어야겠어. 육선문에 자네와 친한 무인 둘이 있지 않은가, 그들이 위치를 알고 있네.”
주성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기가 어디인가요?”
“감숙성이야. 일단 거기 가서 총무련의 인물들과 조우하면 될 것이네.”
“폐하, 외람되지만 한마디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황제가 고개를 끄떡였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게. 우리 사이에 허물이 있어서야 하겠나. 하하.”
“저도 무림의 소식을 듣곤 있지만, 최근에 급박한 일이 터졌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어제 총무련에서 연락이 왔어. 그들이 3개 부대로 나뉘어 작전을 개시했다고 하더군. 그중에 한곳이 자네가 갈 곳이야.”
주성진은 총무련이 왜 3개 부대로 쪼겠는지 훤히 알 것 같았다.
‘음… 흑룡가, 옛 무림맹 세력, 그리고 옛 사도련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서 부대를 나누었군.’
“알겠습니다.”
“이번 일이 잘되면 보상으로 금호상단을 합병할 기회를 주지. 그들 뒤에 세외 무림 녀석들이 도사리고 있거든,”
주성진은 깜짝 놀랐다.
“세외 무림이 뒤에 있다고요?”
“그래. 예전에 보고를 받았는데 내버려 두고 있었지. 자네도 알다시피 몽골 잔당 문제가 내게 제일 신경 쓰이는 일이라서 말이야.”
“네, 그렇군요…….”
황제는 또다시 주성진의 어깨를 말없이 두드렸다.
‘미안하네. 내가 상단 뒤에 달라붙은 거머리들을 일찍부터 신경 써야 했는데, 내가 너무 등한시했어. 뭐 변명하자면 힘이 없어서 그랬어. 지금은 그럭저럭 나아졌지만 한번 훼손된 황권을 회복하려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군. 아마 죽기 전까지도 온전히 황권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야. 얽히고설킨 게 너무 많아서…….’
“부디 몸조심하게. 공주를 생각해서라도… 그리고 위험에 빠지면 도망치게나. 난 자네가 비겁하게 줄행랑을 쳤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그대를 책할 생각이 전혀 없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네. 절대로 허망하게 죽지 않겠습니다.”
황제는 고개를 끄떡이며 주성진을 바라본다.
“그래. 그래야지… 자, 그럼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자고.”
“네, 폐하. 폐하도 부디 강녕하시기 바랍니다.”
* * *
감숙성 끝자락에 자리 잡은 건물 주위로 삼엄한 경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건물이 자리를 잡은 곳은 신강이 눈앞에 보이는 지역이었다.
건물은 중원의 전형적인 양식이라기보다는 사막의 모래 폭풍을 견디기 위해 벽돌로 만든 2층 건물이었다.
원래는 객잔이었는데 6개월 전부터 총무련이 임시지휘소로 쓰기 위해 통째로 빌린 상태였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건물 1층 회의실에는 원탁에 둘러앉은 사내들이 무언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내가 직접 가 보겠습니다.”
그러자 도사 복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손을 흔드는 것도 모자라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안됩니다. 주 단주님, 그러지 말고 며칠 더 기다려보시지요. 정의단 1대대로 충분히 생포할 수 있습니다.”
“윤 부단주님, 확실하게 마무리 짓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제가 나서서…….”
“정의단 1대를 믿어 보시지요. 저는 정의단이 잘 해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주성진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이거 말이 정의단 단주지, 실질적인 지휘권은 저자가 다 가지고 있으니…….’
정의단은 총무련에서 흑룡가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단체였다.
내부 인원은 정파에서 차출한 무인으로 짜여 있었는데, 이유는 총무련의 복잡한 구성과 관계가 있었다.
총무련은 정사마가 모여 만든 단체라, 아무래도 섞어서 연합군을 만들면 효율이 떨어질 염려가 있었다.
하여 예전부터 마교의 대척점에 있던 정파가 흑룡가를 상대하는 것으로 낙점되었던 거였다.
한숨을 내쉰 주성진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머릿속으로 5개월 전이 상황이 스쳐 지나갔다.
한 달에 걸친 여정으로 감숙성에 도착해보니,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총무련의 련주였다.
련주는 주성진을 정의단의 단주로 임명하고는 몇 가지 당부를 건넨 후, 바쁜 일정을 이유로 곧바로 떠나갔다.
자세한 건 윤 부단주에게 물어보라고 하며…….
곧바로 윤 부단주에게 상황을 설명받은 주성진은 자신은 명분상 우두머리지만 실질 권한은 별로 없다는 걸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왜냐면 윤 부단주가 휘하 전투부대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지난 5개월을 대장 노릇 하며 꿋꿋이 버텨온 것은 자신의 무시할 수 없는 높은 무공이 크게 일조하고 있었다.
하여 오늘의 모임도 권한상 주성진이 주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윤 부단주 휘하 그의 참모들은 주성진의 회의 요구를 냉정하게 뿌리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게 주성진의 높은 무공 때문이었다.
또 흑룡가 최고 고수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주성진이 꼭 있어야 할 존재였다.
사실 총무련의 련주가 생각하는 주성진의 쓰임은 흑룡가의 최고고수를 상대하는 것이었다.
주성진을 단주로 예우한 것 역시, 그가 황제의 사위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주성진은 상념을 끝내고 윤 부단주를 바라보았다.
윤 부단주는 무당파 제일 고수로서 차기 장문인으로 내정된 자였다.
주성진이 그에 대해 들은 소문은 그의 야심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다.
‘뭐, 지켜보면 알겠지. 만에 하나 나에게 해코지하려 든다면 묵과하지 않을 거야.’
주성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 왜 아군의 희생을 무릅쓰며 염미란을 생포하려는 것입니까? 죽이면 간단하지 않습니까? 저는 단주로서 그녀의 목숨보다 아군의 목숨이 더 중요합니다.”
윤 부단주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가 풀었다.
‘그래. 어느 정도 사실대로 말해 주자고.’
“그녀가 잘못되면 우리는 또 하나의 강적을 만들게 됩니다. 그녀의 부친은 흑룡가 출신이지만 대외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지요. 털끝 하나 흠집 없이 생포하려는 이유는 여차하면 그녀를 인질로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성진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미 그 사실은 비선을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속마음과 다르게 짐짓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오, 그래요? 한데 아무리 그녀의 부친이 고수라고 해도 그의 발을 묶기 위해 그녀를 인질로 잡으려는 건 정파답지 못한 생각 같습니다만.”
“주 단주님, 지금은 전쟁과 같은 상황입니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주성진은 그의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진다.
‘황제에게 배운 걸 써먹어야겠군.’
“말씀 한번 잘 하셨습니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승리해야 한다면 왜 내가 참전하는 걸 부득불 막는 것이죠? 그녀의 인질로서의 가치가 대단한데도 말이죠.”
“모든 일을 주 단주님에게 의지하게 된다면 조직은 전투력이 떨어집니다. 전투력이 떨어진 조직은 오합지졸이니까요.”
주성진은 그의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음, 윤 부단주님. 뭔가 설명을 해주셔야겠습니다. 저에게 밝히지 않은 게 있지요? 그녀에 대해…….”
윤 부단주는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 저자가 왜 자꾸 물고 늘어지는 것이야. 당신이 설치는 건 나나 련주님이 절대 바라지 않는 것이라고. 제발 가만히 있어 주면 안 되냐고? 필요할 때, 그때만 나서 달라고!’
“죄송합니다만 그건 밝힐 순 없습니다. 뭣하면 련주님께 직접 물어보시지요.”
주성진은 더는 그의 입을 열 수 없음을 알고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작전이 성공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