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연이은 싸움 (2)
금혼전주는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이이…….”
“그리고 말이요. 당신은 도대체 누구의 부하요. 마교는 뿔뿔이 흩어졌는데…….”
금혼전주는 차갑게 대꾸했다.
“알 것 없다. 확실한 건 내가 네놈의 잘난 척하는 혓바닥을 뽑아 버릴 거라는 것이다.”
“뭐, 그러시던지… 한데 말이요. 혹 그 주군이라는 자도 금혼강시대진을 못 깨는 것이오?”
“뭐라?”
“그렇지 않소. 당신의 말대로 무적의 진법이라면 주군이라는 자도 깨지 못할 것 아니겠소.”
금혼전주는 한동안 말없이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정곡을 찔린 것이다.
“이 새끼가! 지금 나와 말장난 하자는 것이냐?!”
“아니 당신이 먼저 말장난을 해놓고 어째서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것이오. 그리고 우리는 어떤 악연도 없었소. 그런데도 나를 죽이고 혓바닥까지 뽑아 버리겠다니, 당신이 정말 사람인 건 맞소이까. 혹 사람의 탈을 쓴 악마는 아니오?”
금혼전주는 주성진이 약을 올리자 버럭 성질을 냈다.
“죽여버리겠다!”
“흥, 말본새하고는… 당신이 먼저 오겠소? 아니면 내가 먼저 갈까?”
“와라, 건방진 자식아!”
주성진은 금혼전주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너무 자만하지 마시구려!”
주성진은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금혼전주를 향해 검을 휘둘러 갔다.
길게 쭉 뻗어나는 검기가 단숨에 5장의 거리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그 일격의 쾌속함은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가공했다.
쒜애액!
주성진의 공격에 금혼전주는 당황했다.
단 일합부터 주성진이 검기를 떨쳐 낼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탓이었다.
막, 주성진의 검이 그의 심장에 꽂힐 찰나였다.
순간 금혼전주의 몸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 팽이처럼 핑그르르 돌더니 다섯 가닥의 지풍이 각기 주성진의 사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쉬이익!
그와 동시에 금혼전주는 재빨리 뒤 기이한 휘파람을 불었다.
삐이익!
일련의 연속 동작은 주성진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저자, 강시를 부리지 않아도 실력이 대단하군…….’
주성진은 신속하게 검을 거두고 금혼전주가 내지른 지풍을 튕겨 냈다.
펑, 펑…….
이때 휘파람 소리에 자극받은 금혼강시들이 무서운 기세로 밀려들고 있었다.
주성진은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그래, 양껏 덤벼 봐라! 난 너희 몸뚱어리가 얼마나 딴딴한지 시험해 볼 테니까.’
주성진은 현란하게 검법을 펼치며 금혼강시들은 휩쓸어 갔다.
깡깡…….
주성진의 검이 튕겨져 나온다.
‘오라, 생각보다 몸이 단단한 놈이군. 가만 아직 저놈들이 진법을 펼치지 않았지…….’
주성진은 상대 전력을 짐작이라 한 듯이 공력을 끌어올렸다.
‘놈들의 몸을 베어 내려면 검강이 아니면 안 되겠다.’
곧바로 주성진의 검이 파란빛을 뿌리며 금혼강시들에게 날아들었다.
금혼전주는 주성진이 검강을 펼치자 얼굴을 찌푸렸다.
‘저놈, 소문에 듣던 대로 대단한 놈이군. 이렇다 할 준비도 없이 검강을 뿜어 내다니 말이야.’
하지만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인지 금혼전주의 얼굴엥서 더는 흔들리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꽝!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검강이 금혼강시대진과 정면으로 충돌하였다.
‘역시 진식이 발동되었어! 대단한데 금혼강시대진!’
주성진은 자신의 검강이 사그라짐을 느끼고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났다.
충돌과 함께 돌아온 엄청난 반탄진기에 하마터면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
‘내 예상보다 세군. 공력을 좀 더 끌어올려야겠어.’
주성진은 찬찬히 상대의 진을 살펴보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지 육안으로 보이는 건 아니지만 기의 흐름이 포착되었다.
‘음, 64구의 강시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자신들의 기를 한데 모으고 있구나. 끊임없이 진을 감싸는 기의 소용돌이로 인해 그만 검강이 흐트러진 것이야.’
주성진은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갈까? 아니면 다른 방법을 쓸까?’
순간 나타나지 않은 상대의 주군이 떠올랐다.
‘그래! 싸움은 즐기되. 질질 끌지는 말자. 주군인지 뭔지 그놈을 대비해야지.’
주성진은 순간 생각난 검법으로 허공에 검을 떨쳤다.
싹싹!
‘좋았어. 이 검법으로 각개 각파를 하자고! 진식이든 뭐든 힘과 기교 그리고 나의 보검으로 무너뜨린다!’
“야합!”
웅혼한 기합과 함께 주성진은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실낱같은 검강이 마치 화살처럼 발사되었다.
한데 발사된 검강은 하나가 아니었다.
주성진은 연달아 검강을 떨쳐 내고 있었다.
퍽. 퍽!
주성진의 전면에 있던 금혼강시가 비틀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목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목이 떨어져 나갔다.
쿵, 쿵!
‘아아, 어찌 저럴 수가!’
일찌감치 강시 뒤로 물러나 있던 금혼전주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못했다.
금혼강시 한 구를 만들려면 꼬박 4년의 제련 과정이 필요했다.
물론 강시를 만들기 위한 재료와 약품은 완벽히 구비되어 있었기에 그에 따른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4년 동안 강시와 함께한 세월은 강시가 그에게 자식처럼 느껴지게 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니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음, 주군의 말을 들었어야 했나, 포기하라고.’
금혼전주는 아무리 주성진이 이기어검의 고수라고 할지라도 금강불괴에 가까운 몸에다 진식까지 가미된 금혼강시를 어쩌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오판이었다.
‘휴, 어쩔 수 없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역시 저놈은 난놈이 분명하군. 왜 주군이 긴장하는지 이제야 알겠어. 난 내생에 통틀어 검강을 화살처럼 쏘는 건 처음 봤어. 게다가 그 강력함이란…….’
하나 금혼전주는 여전히 두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끝이 보이지 않는 주성진의 내공과 그가 가진 보검의 위력이었다.
혹자는 강기를 구사하는 고수에게 검은 단지 매개체에 불과하다가 평가절하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강력한 검기를 구사하려면 검 또한 강하고 날카로워야 했다.
이후 주성진과 금혼강시 사이의 사투는 갈수록 치열해졌다.
주성진의 일명 화살 검법에 힘입어 벌써 10여 구의 강시를 동작 불능으로 만들었지만, 그들의 진식은 여전했다.
적어도 64구의 강시 중 50여 구의 이상을 회생불능으로 만들어야만 무너뜨릴 수 있는 진식이었다.
‘후후, 그래도 놈은 지쳐갈 것이다.’
금혼전주는 주성진이 진기의 소모가 많은 검강을 앞으로 계속 펼쳐 내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다.
주성진은 자신을 지켜보는 금혼전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내가 지치기를 바라는 모양인데, 그건 착각이야.’
사실 주성진은 지치지도 초조하지도 않았다.
‘괜찮은 진법이군. 이걸 사람이 펼칠 수도 있지 않을까?’
주성진은 진 속에 갇혀서도 상대의 진식을 배우기 여념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또다시 열 구의 목이 잘려나가자 급기야 금혼전주의 안색이 탈색되기 시작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저놈은 강시보다 더한 괴물이구나, 도무지 지치지를 않으니…….’
말로만 듣던 주성진의 실체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애초에 자신만만하게 나섰을 때만 해도 금혼전주는 자신의 주군을 제외하곤 무림에서 금혼강시대진을 버틸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라 단언했었다.
한편 주성진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얼추 진식을 배운 것 같아. 기의 흐름과 움직임을 다 파악했으니 말이야.’
바로 그때였다.
금혼전주가 갑자기 강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키이익!
그러자 주성진을 포위하며 회전하던 강시들이 일제히 멈추어 섰다.
그러곤 대열을 정비해 일렬횡대로 나란히 선 후에 주성진을 향해 일제히 장력을 퍼붓기 시작했다.
‘어라. 또 다른 공격법이 있었군…….’
주성진은 눈을 반짝이며 그들의 공력을 살폈다.
자세히 보니 강시들이 장력을 발출하는 몸의 위치가 제각기 다 달랐다.
가령 어떤 자는 살짝 공중에 몸을 띄우고 있고, 또 다른 자는 옆으로 비스듬히 몸을 뉜 채였다.
하지만 그들의 손바닥은 주성진의 한곳.
심장에 집중되어 있었다.
‘음, 내 심장에 자석이 달린 것도 아닌데 저들이 하나같이 내 심장을 노리는군.’
순간 주성진은 금혼강시가 지능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아니야, 그건… 생강시라면 모를까. 저건 훈련의 결과야.’
주성진은 생각의 나래를 펼치면서도 안색은 평온했다.
코앞에 한 점으로 모이는 장력을 맞이하면서도…….
그러던 주성진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에이 이건 좋은 방법이 아니야. 물론 저 공격도 진식이라 할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합동 공격으로 보는 게 좋겠어… 차리리 원래의 진식을 고수하면서 변화를 꾀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주성진의 얼굴에 돌연 엷은 미소가 번진다.
‘후후, 이제야 초고수가 대결을 거듭할수록, 점점 강해지는지 알겠어. 그건 대결을 하면서도 생각을 하기 때문이야. 지금의 나처럼… 물론 생사의 고비에 서면 어떻게 변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성진은 좌에서 우로 빠르게 검을 그어 갔다.
단순한 검격이지만, 그 속에는 강력한 힘이 도사리고 있었다.
꽝, 꽈르릉!
귀청을 울리는 소리가 연이어 터지더니 강시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이내 대오를 형성했지만, 승자와 패자는 명확해졌다.
주성진이 승자요.
강시들은 패자였다.
자욱한 흙먼지가 가라앉은 자리에 주성진의 모습이 나타났다.
단정했던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고 옷이 더러워져 있었다.
그것이 변화라면 변화이었다.
그것을 보자 금혼전주는 전율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금혼강시대진의 최고 절초를 주성진이 정면으로 맞받아치고도 건재했기 때문이었다.
‘어어, 안 돼!’
금혼전주는 다급히 휘파람을 불어댔다.
피이익!
그건 바로 퇴각 신호였다.
비록 강시들이 대오를 형성하였지만, 재차 진식을 구성하기에는 시간이 걸렸다.
한데 이를 간파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주성진은 무서운 속도로 달려 나와 검을 휘둘렀다.
스걱, 스걱…….
기묘한 파공성과 함께 남은 금혼강시들이 모조리 베어졌다.
순식간에 더는 움직이는 금혼강시가 존재하지 않았다.
금혼전주는 재빨리 뒤로 신형을 띄웠다.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크윽!
하지만 그의 양 종아리에 길게 자상이 생기며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그의 눈앞에 주성진이 나타났다.
“지혈하시오. 안 그러면 죽을 테니까.”
금혼전주는 도망치기를 포기하고 피가 줄줄 흐르는 허벅지를 감싸 안았다.
공력으로 빠르게 출혈을 멈추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좀체 피가 멈추지 않았다.
간신히 피를 멈추었을 때는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고 피를 많이 흘린 상태였다.
주성진은 주변을 살폈다.
‘음, 근처에 인기척이 없군. 아직 서신을 보낸 자가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야. 설마 도둑고양이처럼 기척을 숨기고 있지는 않겠지…….’
“내가 당신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주성진의 물음에 금혼전주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주성진을 바라본다.
“살려 주십시오, 다시는 무림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허허, 난 또 깨끗하게 죽여 달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이거 실망이군.”
“제발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주성진은 곰곰이 생각하다 그를 살려 두기로 했다.
‘뭐. 죽일 것까지 있나, 내 수족으로 만들면 되지.’
“자, 내 눈을 보시오.”
금혼전주가 주성진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타는 듯한 안광이 그에게 몰아쳤다.
금혼전주는 그만 정신을 잃었다.
‘후후, 좀 있다 깨어나면 당신은 내 부하가 되어 있을 것이오. 내가 심령금제를 펼쳤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