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연이은 싸움 (1)
주성진은 그의 거도를 무시하고 안쪽으로 파고 들었다.
주성진은 공간을 횡으로 가르는 상대 거도 위쪽으로 몸을 붕 띄웠다.
그 순간 용호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죽을 자리를 일부러 찾아오는 놈이군.’
용호는 거도를 거두고 뒤로 살짝 물러섰다.
그러고는 몸을 좌우로 비틀었다.
그러자 그의 우람한 허리를 중심으로 돌던 거도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주성진의 다리를 자르려 했다.
‘흥!’
주성진은 상대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래로 도를 내밀어 상대의 거도를 내리 찍었다.
쩡!
순간 주성진이 쥔 도의 도신이 부러질 듯, 휘어졌다가 다가 펴졌다.
주성진은 급히 신형이 위로 말아 올렸다.
‘뭐야, 저놈의 거도가 보통의 것이 아니구나. 하마터면 내가 쥔 도가 부러질 뻔했어. 내력으로 보호하지 않았다면…….’
위로 솟구친 주성진은 땅으로 안착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바로 앞으로 쇄도했다.
상대는 그제야 주성진이 보통내기가 아님을 깨달았다.
‘만만히 볼 놈이 아니었군. 여차하면 합공을 시도해야겠어.’
용호는 갈지자로 몸을 흔들며 앞으로 나왔다.
‘저놈이 보법을…….’
주성진은 한눈에 상대가 제법 고명한 보법을 펼치고 있음을 알아챘다.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이놈들이 뭘 훔치려고 조선 땅까지 내려온 거야.’
주성진은 천뇌자의 미완성 무공에 수록된 도법을 시전했다.
붕, 붕붕붕붕!
파천풍파도라는 거창한 무공 명칭처럼 주성진의 도는 무서운 속도로 휘돌았다.
거기에 연이어 십자를 그리며 허공을 갈랐다.
주변에 살갗을 벨 듯한 바람이 불고 땅바닥에서는 먼지가 흩날렸다.
용호는 상대의 도법이 변하자 경악했다.
그 즉시 거도를 휘둘러 맞서기 시작했다.
동시에 현란하게 다리를 움직여 주성진의 공격을 피했다.
주성진의 도가 자신의 얼굴을 비켜나가자 용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끝났다! 네놈은!’
그는 그 즉시 거도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 찍었다.
그 순간 주성진의 신형이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치 물처럼 줄줄이 이어지는 잔영을 남기고 말이다.
용호의 눈이 놀라 퉁방울만 해졌다.
‘뭐야, 저건! 혹 이형환위? 아니야 내가 잘못 본 거야…….’
다음 순간 어느 사이 나타난 주성진이 용호의 거도를 후려쳤다.
꽝!
크으윽!
자신의 거도가 튕겨 나갔다.
느껴지는 통증을 보면 거도를 잡고 있던 팔목이 부러진 듯했다.
그리고 곧바로 주성진의 도가 그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아악, 안 돼!’
그 순간 푸른빛이 그의 얼굴을 두 조각내는가 싶더니, 다시 그 빛이 휘돌아 목을 지나쳤다.
‘음, 파천풍파도! 좋은데 너무 잔인한 면이 있군.’
주성진이 급히 초식을 바꾼 이유였다.
스걱!
용호는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다 머리와 몸이 천천히 분리되었다.
쿵!
“도망치자!”
“흥!”
주성진은 코웃음을 폈다.
‘이기어도!’
도가 주성진을 손을 떠났다.
그리고 하늘을 가르며 비행했다.
쉐에에에에엥!
아아악……!
크아악……!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다.
하지만 그 비명도 오래가지 않았다.
주성진의 도가 도적들의 목을 모조리 베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가자, 저 능선 위로…….’
주성진은 산 위에 인기척이 있음을 알고 신형을 띄웠다.
쉬이익!
수직으로 높게 도약한 주성진은 중간 중간 나무 꼭대기를 밟고 산 위로 향했다.
그리고 산 정상이 보인 순간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산꼭대기에 산채라니, 게다가 우물도 있어!’
이름 모를 산은 원래부터 산적이 있던 모양이었다.
주성진은 도를 쥐었다.
‘도망치기 전에 모조리 때려잡자.’
주성진은 산채의 문으로 돌진했다.
경계를 보던 자가 놀라 급히 소리친다.
“침입자다!”
주성진은 빠르게 쇄도했다.
쉬익!
미처 대응도 못 하고 경계를 보던 자의 머리가 떨어졌다.
하나 그건 시발점에 불과했다.
주성진은 외치는 소리에 튀어나오는 자들을 모조리 저승으로 보냈다.
“윽, 큭…….”
모두 하나같이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하나, 둘, 셋…….’
주성진은 눈에 보이는 자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자에게 다가갔다.
그자는 산채의 높은 곳에 있었는데, 방금 무슨 일을 치른 듯 머리가 산만하고 땀으로 얼굴이 번들거렸다.
주성진은 짐작이 갔다.
‘저 새끼, 방사를 치렀군. 그렇다면 안에 누군가가 있다는 소리인데…….’
주성진이 강하게 노려보자 상대는 올 것이 왔다는 심정으로 도의 손잡이로 손을 옮겨 갔다.
‘제길…….’
상대는 두려움을 떨쳐버리려는 듯, 주성진이 산채 높은 곳에 올라오자 먼저 선공했다.
위이잉잉!
주성진은 귀청 찢어지는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호곡성이라니…….’
자세히 보니 상대의 도신에 수십 개의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었다.
‘오라, 저것이었군! 범인은 구멍이었어. 아, 좋은 수가 생각났다.’
주성진은 얼른 산채의 바닥을 내리찍었다.
우드드드드득!
산채의 바닥에 깔려있던 나무판자들이 뜯겨나가고 주성진은 나무판자들을 차례로 발로 찼다.
쐐애액!
예상치 못했던 공격에 상대는 당황하여 뒤로 급히 물러섰다.
그의 엉덩이가 산채의 문이 닿는 순간 그는 어쩔 수 없이 도를 휘둘렀다.
“야합!”
전신을 노리고 날아온 다섯 개의 판자 조각들이 단번에 반으로 갈라졌다.
그는 긴장한 눈으로 시야를 가리고 있는 판자의 틈새를 주시했다.
순간 시커먼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그는 이미 갈라 놓은 판자 사이에 시야를 확보하고 다시 도를 내질렀다.
퍼버버벅!
하나 칼끝에 걸리는 느낌이 없어 급히 도를 회수하는 순간, 묘한 충돌음이 들려왔다.
그는 아픔에 겨워 비명을 내질렀다.
“크윽!”
묘한 충돌음은 다름 아닌 상대의 도가 자신의 가슴뼈를 가르는 소리였다.
그는 주성진을 잠시 쳐다보다 숨을 거두었다.
‘휴, 다 끝났군!’
주성진은 쉴 틈도 없이 산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여인 하나가 바닥에 나체로 쓰러져 있었다.
하나 미동이 없었다.
급히 손가락으로 여인의 코에 가져갔지만, 이내 주성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음, 죽었구나!”
순간 조금 전 그자를 너무 쉽게 죽인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었다.
주성진은 혹시나 해서 산채 곳곳을 뒤졌으나 인적은 없었다.
단지 산채의 후미진 곳에서 사람 뼈로 추정되는 다수의 시커먼 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음, 놈들이 여기 있던 산적들을 모조리 죽이고 산채를 접수했던 모양이구나.’
주성진은 미련 없이 산채를 떠나려 했다.
하지만 뭔가 개운하지 않고 찜찜한 기분이었다.
다시 발길을 돌린 주성진은 산채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죽은 자들의 옷까지 살펴보았다.
‘뭔가 있어. 죽은 자들이 산채에 상당 기간 머문 흔적이 있거든… 그렇다면 왜 여기에 머물렀는지 그걸 알아내야 해. 사실 죽은 놈들이 이동하지 않고 머문 덕에 내가 놈들의 흔적을 수소문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거야.’
시간이 흐르고 주성진은 땀을 훔쳤다.
‘제길, 한 놈 정도는 살려 둘 것 그랬나…….’
소득은 있었으나 결정적인 것은 없었다.
소득이란 은덩이가 자그마한 상자 안에 놓여 있었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것이 원래 산채의 산적들이 가지고 있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죽인 자들의 가지고 있던 것인지는 불분명했다.
‘에이, 마지막으로 저곳만 살펴보고 떠나자.’
주성진은 대장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보통 큰 산채에는 무기들을 수리할 수 있는 대장간이 있었기에 주성진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안을 살핀 순간, 자신의 생각이 빗나갔음을 알았다.
‘금이로구나! 그러면 그렇지.’
대장간에는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 말은 최근까지도 대장간을 이용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금괴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었다.
‘놈들이 노략질한 것은 주로 금붙이였던 거였어. 하긴 가지고 다니기 편리한 건 예로부터 금이 최고지.’
* * *
뜻하지 않은 단 한 번의 출행으로 혁혁한 공을 세운 주성진은 조선에서 칙사 대접을 받았다.
그도 그럴 만도 한 게 주성진은 도적들에게 빼앗은 금괴와 은덩이까지 조선 국왕에게 전해 준 것이었다.
국경을 넘어 북경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주성진은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협박성 서신을 받은 직후 그의 미소는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서신의 내용은 홀로 지정된 장소로 오라는 것이었다.
주성진이 서신을 일소에 부치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가 오지 않으면 사신단과 뒤로 따르는 상인들을 괴롭히겠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제길. 또 시작인가…….’
주성진은 사신단 단주와 자신의 일행들에게 사정을 말하고 먼저 그들을 떠나보냈다.
서신에서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주성진은 직감적으로 서신을 보낸 자가 자신에게 결투를 신청한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주성진은 요녕성 오녀산성이라는 곳으로 떠났다.
오녀산성은 과거 고구려 때의 산성이었다.
길을 물으려고 해도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아 어려움을 겪은 주성진은 어렵게 오녀산성에 당도할 수 있었다.
‘휴, 저기인가…….’
성은 인적이 끈긴지 오래되어 방치되어 있었다.
군데군데 성벽이 무너져 있었지만, 규모로 보아 과거에는 상당히 큰 성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주성진은 오녀산성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 순간 낡은 성안 쪽에서 기이한 무리가 나타났다.
주성진은 새로운 사람들의 등장하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저들은 누구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쭈글쭈글한 노인을 제외하고는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주성진은 직감적으로 이들이 강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성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누구요 당신은?”
“어린놈이 싸가지가 없구나?”
“당신이 내게 서신을 보냈소?”
노인은 고개를 흔든다.
“흐흐, 내가 아니라 주군이 보낸 것이다. 난 주군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물었지.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을 필요가 있느냐고. 주군은 빙그레 웃으면서 만류하셨다. 하지만 주군도 내 고집을 꺾을 수 없었지, 결국 자신 있으면 해보라고 허락하셨지, 하하.”
“그러니까 내가 닭이란 말이요?”
“그렇다. 네놈은 오늘 반드시 18층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혹시 요행을 바란다면 애당초 포기하도록 해라. 네놈 앞에 있는 내 아이들은 단순한 강시가 아니라 금혼강시이니라.”
“금혼강시라고?”
“그래 금혼강시가 펼치는 금혼강시대진은 여태껏 깨진 바가 없는 무적의 진법이지. 하하하.”
주성진은 천뇌자가 남긴 서책을 읽은 까닭에 금혼강시에 대한 지식이 고스란히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음, 금혼강시라, 생강시 다음으로 무서운 강시라고 했지.’
금혼강시는 하나하나가 여타 강시보다 강한 게 아니라 전문적으로 진법을 구사하기 위해 만들었기에 더 무서운 강시였다.
하여 제련 방법이 시일이 걸리고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었다.
거기에 이들이 펼치는 금혼강시대진은 마교의 무서운 합벽진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다.
주성진은 눈앞에 보이는 노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금혼강시를 이끄는 자는 대대로 금혼전주로 불리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몇 대째 금혼전주요?”
금혼전주는 주성진이 자신의 신분을 알자 깜짝 놀랐다.
“어린놈이 제법 많은 것을 알고 있구나.”
“말끝마다 어린놈이라고 하는데 그러는 당신은 뭐가 두려워서 강시까지 대동하고 나타난 게요? 혹 내가 두려운 것이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