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하오문 지부장과의 대화
주성진은 송명철 대행수와 휘하 상인들에게 손을 흔들고는 유유히 객잔을 빠져나왔다.
“자자, 빨리 가자고!”
하오문 지부에는 어제 기원의 총관에게 위치를 물어봤었다.
객잔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라 빠르게 도착한 주성진은 곧바로 하오문 지부에 당당히 걸어갔다.
밖에서 경계를 서던 하오문 문도가 잔뜩 경계했다.
그럴수록 주성진은 강렬한 기세를 드러내며 다가갔고, 하오문 문도의 얼굴은 점차 사색이 되어 가고 있었다.
‘헉, 주성진이다. 틀림없어!’
그는 용모파기에서 본 주성진의 얼굴을 떠올린 것이다.
그 순간 주성진의 입을 열었다.
“사천상단의 주성진이라고 하오. 하오문 지부장을 만나러 왔소이다.”
주성진의 목소리에는 상대를 주눅 들게 하는 힘이 있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지금 바로 연락할 하겠습니다.”
잠시 후 하오문 지부장이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안녕하십니까. 변방의 누추한 곳까지 어인 일로 왕림하셨습니까? 소인 왕렵이 인사드립니다.”
“만나서 반갑소이다. 주성진이오. 내 긴히 물어볼 말이 있어서 왔소이다.”
“아, 그렇습니까? 뭐든 물어보십시오, 제 권한 한도 내에서 답변드리겠습니다.”
주성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권한 한도 내에서라는 게 무슨 뜻이오?”
“음, 문규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말씀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보의 경중에 따라 소정의 정보 사용료가 청구될 수 있습니다.”
“일단 알겠소이다. 그나저나 날 여기 세워 둘 것이오?”
왕렵은 곧바로 주성진은 안으로 안내했다.
“아이코 제가 경황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어서 들어오시지요.”
잠시 후 하오문 지부장과 대면한 주성진이 말문을 열었다.
“내가 말이오. 하마터면 큰일을 당할 뻔했소이다.”
주성진은 하오문 지부장에게 어제 벌어졌던 일을 간략히 말하기 시작했다.
“…이상이오.”
“어찌 그런 일이…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왕렵은 주성진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았다.
그녀들과 여러 관계로 얽혀 있었고 아직 완료되지 않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주성진에게 절대 공개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목이 칼에 들어와도…….
“그녀들과는 어찌 만난 것이오?”
“어느 날 우리 지부에 그녀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곤 다짜고짜 정보를 알려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신분을 밝히고 정보 사용료를 준다면 뭐든 알려 준다고요. 그랬더니 정보 사용료를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주성진은 그의 말에서 꼬투리를 잡았다.
“아니 신분을 알려주면 정보를 알려 준다는 게 말이 되오? 만약에 그가 죄인이나 현상 수배범이면 어떻게 할 것이오?”
“신분을 알려 달라는 이면에는 떳떳하지 못한 신분이면 알려줄 수 없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주 상단주님이 서두르는 것 같아 생략했는데 사실 바로 알려 주는 건 아니고 중요한 정보에 한해서는 저희가 내부 절차를 거치고 있습니다.”
“…….”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정보는 제 재량으로 판단을 합니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실수가 있을 수는 있지만요… 음, 그리고 말입니다. 제삼자가 보기에 하오문의 지부장이 아무렇지 않게 보일 수 있지만, 저희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재원임을 알려드립니다.
말은 천상유수다.
‘저자는 무공보다 혓바닥 신공을 익힌 게로군. 뭐 나름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니 보기에 나쁘진 않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이며 왕렵을 바라보았다.
“그녀들이 어떤 정보를 알려 달라고 한 거요? 말해 줄 수 있소이까?”
왕렵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제 권한 밖이라서…….”
사실 하오문이 정사마를 오고 가며 그럭저럭 신뢰 관계를 유지 할 수 있는 건 정보 의뢰자에 대한 철저한 비밀 엄수 덕이었다.
그렇다고 그 정보가 특정 정보 의뢰자에게 국한된 건 아니었다.
가령 제삼자가 우연히 동일한 정보를 묻는다면, 하오문은 기꺼이 그 정보에 대해 알려 줄 것이었다.
“그럼 그녀들이 어디 출신인지는 알려줄 수 있소이까?”
“죄송합니다. 그것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주성진은 염두를 굴려야 했다.
‘음,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물어 본 모양이군, 달리 질문하자.’
“그럼 천라수면독은 아시오? 사실 내가 위험했던 건 무엇보다도 천라수면독 때문이 아닐까 싶소이다.”
하오문 지부장은 놀라 되물었다.
“천라수면독이라고요? 그 말씀 정말입니까?”
“그렇소이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빨리 말해 주시오. 궁금해서 미칠 것 같소이다.”
왕렵은 심중의 격동을 억누르고 본연의 자세로 주성진을 바라본다.
돈에 걸린 문제라면 여느 상인 못지않게 진지해지는 게 하오문의 생리였다.
“저, 말씀드릴 수는 있는데 먼저 정보사용료를 내셔야 합니다. 아, 죄송합니다. 깜빡할 뻔했군요. 이번 건은 은자 한 냥입니다. 헤헤.”
왕렵은 그 와중에도 당당히 은자를 요구했다.
그러자 주성진이 화를 벌컥 내고 말았다.
“이보시오. 당신이 소개한 여인들 때문에 나와 내 동료가 크게 화를 입을 뻔했소이다. 그 점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없다면, 난 하오문 본단에 이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하겠소이다. 그렇게 하길 원하시오?!”
왕렵을 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하하. 주 상단주님, 그만 자중하시지요. 특별히 이번만큼은 제 잘못도 있고 하니, 저의 자비로 부담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보시오, 지부장. 잘못도 있고 라니… 그게 무슨 망발이요! 그럼, 우리가 잘못이라도 했다는 뜻이오?”
“죄송합니다만, 그런 자리에서는 으레 그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가령 거부하는데도 심하게 추근거릴 수도 있으니까요…….”
주성진은 인상을 찌뿌렸다.
‘저자 봐라, 하긴 증거가 남아 있지 않으니 입증할 수가 없구나.’
“알겠소. 다만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소. 오늘 내가 묻는 것에 답을 해 주어야 하오문 본단에 이의제기를 하지 않을 것이오.”
왕렵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습니다. 다만 재 권한 밖의 질문은 절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좋소. 그러면 먼저 내 질문에 답해 주시오,”
“천라수면독은 고대 마교가 개발한 수면독입니다. 그게 현재에도 존재한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만들기가 워낙 까다로워 고대 마교에서도 소량만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주성진은 콧잔등을 찡그렸다.
‘음, 또 마교라…….’
“그렇소이까? 하면 흡성대법은 어떻소? 그것도 마교의 대법이 맞소이까?”
“혹, 그녀들이 흡성대법을 익히고 있었습니까?”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소이다.”
처음으로 지부장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음… 그녀들이 흡성대법을 익히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만일 주 상단주님의 말이 맞는다면 이는 무림의 크나큰 대사건입니다. 흡성대법 또한 고대 마교의 사악한 수법으로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거든요.”
“사실이요. 그녀들 중 하나가 자기 입으로 마교의 흡성대법이라 말하였소이다. 뭐 단순히 입이 심심해서 내뱉은 말은 아니고 내가 죽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말했겠지만…….”
왕렵은 주성진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그러니까 천라수면독과 흡성대법을 모조리 이겨내 셨다는 말인데…….”
“그렇소. 내가 운이 좋았던 모양이오. 하하.”
“그럼 그녀들은 죽었습니까?”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내게 흡성대법을 걸었다가 역으로 당했소…….”
왕렵은 본인 앞에 있는 주성진이 괴물로 보였다.
‘믿을 수가 없구나…….’
“저, 제가 그녀들의 사체를 볼 수 있을까요.”
주성진은 그의 말을 듣고 자신이 너무 서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화장하지 않았을 거야.’
“음, 기원에 있소. 미안하지만 사람을 시켜 가지고 오는 게 좋겠소이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후 하오문에서 그 시체를 관리해도 되겠습니까?”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 하시오.”
잠시 대화가 끊겼다.
하오문 지부장이 부하를 불러 즉시 시체를 가져오라고 명했기 때문이었다.
부하를 보낸 후 하오문 지부장은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음, 사실을 말하면 또 나를 책망할 텐데, 그래도 할 수 없지…….’
마음에 결정한 왕렵은 주성진에게 진실을 말해 주기로 했다.
무림 공적으로 치부되는 일은 정보 의뢰자를 보호할 필요가 없는 게 하오문의 문규였다.
사실 그건 최소한의 안전책이었다.
자칫 하오문까지 무림 공적으로 몰리 수가 있으니까.
“저, 주 상단주님. 그녀들은 정사 중간으로 알려진 월향문 출신입니다. 여인으로만 이루어진 문파는 아니지만, 여인이 대부분인 문파이지요. 제 생각에 월향문이 지금껏 비밀을 감추고 정사 중간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월향문이 고대 마교의 진전을 이은 마교 문파라고 보는 것이오?”
“네, 현재까지는 그렇습니다. 자세한 건, 좀 더 조사를 해봐야 하겠지만요.”
주성진은 순간 왕렵을 강하게 노려보았다.
“이보시오. 무공을 가진 여인들을 기녀로 보냈다는 말이오?”
왕렵은 눈을 찔끔 감았다가 떴다.
‘이런,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건… 어떤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절대로 무공을 쓰지 않겠다고 맹세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어제를 제외하고는 여태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하여간 죄송합니다.”
“하오문에서 월백문을 조사할 것이오?”
하오문 지부장을 곧바로 고개를 끄떡였다.
“네. 제가 연락하면 본단에서 즉사 조사에 착수할 것입니다. 이는 무엇보다 하오문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아마 본단에서는 이 일을 총무련에도 통보할 것 같습니다.”
“알았소, 나중에 내게 조사 결과를 알려 주면 고맙겠소이다.”
“네, 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그리해야지요.”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이며 하오문 지부장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소. 도대체 당신과 그녀들이 무슨 계약을 맺은 것이오? 만일 그 일이 좋지 않은 일이라면 나중에 그 책임이 그대와 나아가 하오문에 돌아갈 것임을 유념하시오.”
협박성 발언이지만, 주성진으로서는 꼭 알고 싶은 사항이었다.
애초 그녀들의 존재를 몰랐으면 모를까…….
지부장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입을 열었다.
“음… 사람을 찾아 달라는 건이 여러 건 있었습니다. 이는 아직도 진행 중인 사항이고, 그 외 변방의 세력 구조와 노른자 땅에 대한 질문이 있었지요. 그건 바로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죄인이 수감된 감옥의 위치를 알려 달라고 해서 알려 주었습니다.”
주성진은 손을 들었다.
“음, 중죄인이 수감된 위치를 알려 주어도 되는 것이오?”
“뭐, 그거야 저희가 아니어도 알아 낼 수 있는 정보니까요.”
돌연 지부장이 자신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아이코, 얼마 전에 중죄인들이 모두 피골이 상접해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습니다. 다만 바로 죽지는 않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혹 흡성대법?”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중죄인이라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테니까요.”
주성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그런 일이 있었군, 그러면 달리 하오문이 부탁한 것은 무엇이오?”
“하나는 기녀가 되어 달라고 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그건 개인 일이라 차마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왜 밤일이라도 해달라고 한 것이오?”
지부장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떡였다.
“네. 다만 그게 저의 일방적인 요구는 아니었고 그녀들이 그런 분위기를 먼저 연출했습니다.”
“알겠소. 이 일은 덮도록 하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