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다가오는 위험 (4)
원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할 수 없지. 돈이 많이 들더라도 당장 급한 불을 꺼야 하니까…….’
“알았어요. 비용은 얼마든지 들어도 상관없으니까 그녀들을 데려오세요. 단 정말로 화제의 그 여인들인지는 반드시 총관께서 확인해 주세요.”
“그럼요. 반드시 확인하겠습니다.”
얼마 후 여인 셋이 주성진과 그 일행이 있는 기방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총관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돈이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총관을 보며 원주가 입을 열었다.
“수고하셨어요. 제가 봐도 미색이 뛰어나더군요. 그런데 상당히 빨리 오셨네요. 저는 은인들이 무료할까 봐 전전긍긍했다고요.”
“아. 그럴 수 있었겠네요.”
“다행히 은인들이 보채지는 않았답니다. 휴…….”
순간 총관은 주인 여인에게 자신의 공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원주님, 아휴 말도 마십시오. 돈을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안 된다고 해서 제 입술이 바짝 탔지 뭡니까!”
원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나요? 한데 어떻게 된 일이에요. 혹 다른 기원에 예약이 잡혀 있었나요?”
총관은 손을 내저었다.
“예약은 없었습니다. 다만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당분간은 손님맞이를 못한다는 통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지부장에게 매달렸지요. 제발 부탁한다고요. 지부장은 제 하소연을 듣고는 손님들이 도대체 누구냐고 묻더라고요.”
“…….”
“그래서 그들의 인상착의와 원주님이 낮에 겪었던 일을 말해 주었지요. 그랬는데 갑자기 그림이 내걸린 벽이 열리면서 세 여인인 나타나지 뭡니까?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원주가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그러니까 하오문 지부장의 접견실에 비밀방이 있었다는 말인가요?”
“네. 지부장의 접견실에 비밀방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원주님, 저는 그녀들이 비밀방에 있을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한데 그녀들이 왜 비밀방에 있었던 거죠?”
총관은 눈을 동그랗게 뜬 원주의 모습이 참 귀엽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실은 그녀들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 하오문 지부장과 이야기 중에 제가 들이닥친 거죠. 알고 봤더니 그녀들과 지부장은 상부상조하는 관계였더라고요. 저는 단순히 지부장이 그녀들을 기원에 알선하고 수수료를 취하는 뭐 그런 단순한 관계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
“지부장은 그녀들이 원하는 갖가지 정보를 제공하고, 그녀들은 지부장이 부탁하는 일을 처리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바로 그 일 중 하나가 그녀들이 기원에 나가는 것이었어요. 접객하러 말입니다.”
원주는 고개를 끄떡이다 입을 열었다.
“한데 접객 일 빼고 그녀들이 무슨 일을 처리하고 다닌 건가요?”
총관은 아차 싶었다.
미처 물어보지 못한 것이다.
“죄송합니다. 그것까지는…….”
“알겠어요. 그러면 그녀들이 하오문에 정보를 얻기 위해 와 있었다는 말이군요, 한데 왜 갑자기 나타난 거죠?”
“그게… 저의 이야기에 흥미가 동한 거죠. 저는 그녀들의 요청에 따라 용모파기를 그려 주었답니다. 제가 아시다시피 용모파기를 잘 그리잖습니까. 음음.”
원주는 총관의 말을 듣고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꼈다.
‘음, 이거 왠지 찜찜한데…….’
“저, 한데… 옆방에 그녀들이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나요?”
원주의 말에 총관은 돌연 자신의 머리를 짚었다.
‘이런…….’
“아.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렇습니다. 제가 좀 귀가 밝은 편인데 말이죠.”
“그래요…? 하면 왜 용모파기를 그려준 거죠?”
“그야 그녀들이 바쁘긴 한데 혹시나 손님들의 얼굴이 미남이면 한번 재고해 보겠다고 해서요.”
원주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음, 한 분만이 군계일학이고 다른 두 분은 평범에서 좀 나은 수준인데, 세 여인이 모두 수락했단 말인가? 이거 좀 이상하군.’
원주의 미간이 좁혀지자 총관도 덩달아 불안해졌다.
‘음. 마치 뒷간에 갔다가 닦지 않고 그냥 나온 기분이다. 제기랄 그때 좀 미심쩍은 데가 없는지 살폈어야 했는데. 그냥 그녀들을 데려가는 데 급급했으니…….’
그 순간 원주의 말이 이어졌다.
“일단 알았어요.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총관님은 다른 일 하지 마시고 계속 기방만 살펴 봐주세요. 총관님의 일은 저나 부원주가 대신 할 테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제가 자청해서 그 일을 하려고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렇군요. 제발 아무 일 없길, 바래야 하겠네요.”
한편, 그 시각 기방 안은 간단한 상견례를 마치고 서서히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주성진은 틈만 나면 자신을 훔쳐보는 세 여인의 눈빛을 피해 기방 안을 다시 둘러보았다.
천향이화원의 특급 방답게 방의 구조나 크기 못지않게 장식물들도 평범하지 않았다.
방안에는 그림을 모르는 이가 봐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산수화가 사방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으며, 이백의 유명한 시가 적힌 아름다운 병풍이 한쪽 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넓은 탁자 위에는 백주와 진귀한 음식들이 한가득 올려져 있었다.
주성진은 이 음식들을 마련하기 위해서 열심히 땀을 흘렸을 요리사들의 손놀림이 눈에 어른거리자, 배가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남김없이 음식을 먹기로 다짐했다.
순간 주성진은 연신 코를 킁킁거렸다.
‘음, 이 향긋한 고기 냄새!’
주성진은 급히 젓가락을 집어 들어 향긋한 냄새가 나는 요리를 집어 갔다.
한데 그 순간, 옆의 여인이 주성진의 옷깃을 잡아당겨 젓가락질을 방해했다.
그 여인의 이름은 가향이었다.
주성진이 고개를 돌리자 고개를 흔든 그녀가 붉디붉은 입술을 열었다.
“어머, 소녀가 해야 할 일을 직접 하시려고 하면 안 되죠?”
“무슨 일이요?”
“말 그대로입니다. 원하는 음식을 말씀해 주세요. 제가 집어드릴 테니까요.”
그러면서 그녀는 주성진의 손에 쥐어진 젓가락을 살그머니 빼앗았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그의 손에 닿는 순간, 짜릿한 전율이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생전 처음 겪어 보는 일에 당황했는지 주성진의 반응이 잠시 느려졌다.
그틈을 타서, 젓가락을 뺏어 든 여인은 주성진의 젓가락을 탁자 저편으로 치우고 자신의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이제부터 손님의 젓가락은 없는 거예요, 호호.”
그녀는 그리 말하며 고기 한 점을 집어 얼른 그의 입으로 가져갔다.
“호호. 아… 하세요.”
마치 어머니가 어린아이에게 밥을 먹여 주는 것처럼, 그녀의 행동은 다정다감했다.
얼떨결에 고기 한 점을 입에 넓은 주성진은 고기가 입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자 내심 감탄을 토해 냈다.
‘음, 맛있구나!’
하나, 속마음과 달리 주성진은 여인을 보며 단호하게 말한다.
“다음부터는 내가 음식을 집어 먹겠소. 솔직히 기원 출입이 처음은 아니지만, 입으로 떠먹여 주는 경우는 없었소.”
“어머 그러셔요? 그간 형편없는 기원만 다니셨나 봐요. 호호.”
주성진이 뭐라 반박하려는 찰나, 그녀가 의자를 들어 주성진에게 바짝 다가온다.
주성진은 처음으로 집중해서 그녀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지금껏 건성건성 본 용모와는 천양지차이다.
‘음, 상당히 아름다운 여인이군. 거기에 박속같은 치아에 육감적인 몸매까지…….’
그녀의 용모는 사내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남을 지경이었다.
주성진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이거야 원…….’
주성진은 자신의 태도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다 탁자 맞은 편 광경이 눈에 들어오자 그만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허허, 이거 못 봐주겠군.’
탁자 맞은편에는 이철용과 이도연이 앉아 있었는데, 둘은 각기 옆의 여인들과 밀착한 채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주성진이 잠시 쳐다보았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하. 어디 눈을 둘 데도 없고, 천장이나 쳐다봐야 하나…….’
아직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벌써 분위기가 이상야릇하게 흐른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탁!”
“어머! 이를 어째!”
주성진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자신의 발밑으로 젓가락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죄송해요. 젓가락을 떨어뜨렸어요. 제가 아끼는 젓가락인데…….”
주성진은 그녀가 전용 젓가락을 가져왔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아니요, 내가 주워드리리다.”
주성진은 한 손으로는 탁자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든 젓가락을 잡으려 팔을 길게 뻗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허리는 잔뜩 숙인 상태가 되었고 그의 하얀 목덜미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호호. 내가 대어를 낚았다! 서둘러 꼼짝 못 하게 하자!’
그녀는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한데 다은 순간, 가향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한다.
‘지금이다…….’
지금 주성진은 두 손이 공격과 수비를 제대로 펼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 완벽하게 드러난 그의 목덜미는 누군가가 악독한 마음만 먹는다면, 그러니까 목덜미를 향해 빛살처럼 빠른 속도로 무언가를 내리친다면 무척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었다.
쉬익!
예리한 바람 소리와 더불어, 그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방 안의 공기가 반으로 갈라지면서 섬광보다 빠른 속도로 내리꽂히는 막대기가 있었다.
한데 자세히 보니 모양이 젓가락이었다.
위기일발의 순간, 갑자기 주성진의 몸이 회전하면서 그대로 방바닥을 굴렀다.
우당탕탕!
의지가 뒤집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순간 바닥을 한 번 더 구른 주성진은 빠르게 몸을 일으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성진의 표정에는 놀람과 당혹감, 그리고 분노가 동시에 어울려져 있었다.
사실 주성진은 가까스로 낌새를 느끼고 탈출할 수 있었던 거였다.
일종의 예지력 비슷한 게 발동한 덕분이었다.
한데 그녀는 본인의 기습이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무심한 눈빛으로 주성진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어떻게 빠져나올 수가 있었지, 어떻게…….’
그녀의 기습으로 방안의 흥취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거기에 더해 주성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은 탁자 건너편의 모습이었다.
‘음, 철저히 당했구나.’
이철용과 이도연은 탁자에 엎어져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기습을 당하는 동안 그들도 당한 모양이었다.
‘제길, 점혈 당했어,’
불행 중 다행이라면 죽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주성진은 잠시 눈을 감았다.
조금 전 상황이 떠오른 거였다.
‘뭐였지, 내 의지는 아니었어. 마치 누군가가 나를 이끈 느낌이야.’
주성진은 자신을 위기에서 구한 건 본인의 또 다른 자아가 아닐까 추측했다.
또 다른 자아가 제3의 눈으로 완벽했던 기습을 모면하게 해 준 것이라고…….
주성진이 다시 눈을 떴다.
한데 그 순간 현기증이 느껴지며 다리가 휘청거렸다.
‘어어!’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눈까풀이 자꾸 감기려고 했다.
‘뭐야…….’
가향의 눈빛이 다시 싸늘하게 바뀌었다.
‘이제야 수면 독이 작동하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한 번 더!’
쒜애액!
그녀의 열 손가락이 새하얗게 물드는 것과 동시에 하얀빛 섬광이 공간을 갈랐다.
주성진은 급히 신형을 뒤로 물렸다.
무릎을 굽히지 않은 채 마치 지면을 미끄러지듯…….
간신히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주성진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사갈 같은 계집! 넌 누구냐?!”
두 번씩이나 공격에 실패는 가향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존심이 어마어마하게 상한 것이다.
순간 가향이 바득바득 주성진을 노려보고 있을 때 건너편의 여인이 입을 열었다.
“호호. 누굴까요? 맞혀 보세요.”
그녀는 이도연의 접객을 맡았던 연우라는 기녀였다.
“너희들 살수냐?”
“호호, 뭐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다만 저희 직업은 다양하답니다.”
연우는 사실상 자신이 살수임을 자인한 거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