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다가오는 위험 (3)
주성진이 땅에 착지한 순간 두 사람이 다가왔다.
주성진은 그들을 바라보며 소리친다.
“여인들은 괜찮나요?”
“네, 많이 놀라긴 했는데 지금은 괜찮아 보입니다. 장사하는 여인들이 그런지 강단이 있더라고요.”
“아. 장사하는 분들이었군요. 그래도 아까 비명은 몹시 날카로웠는데요, 마치 폐부가 예리한 칼에 찔린 것처럼…….”
그러자 이철용은 말없이 주성진의 옷깃을 잡았다.
“직접 보셔야 합니다. 여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 보시지요.”
“알겠습니다.”
잠시 후, 주성진은 여인들에게 다가갔다.
거리상 주성진이 있는 곳에서 스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여인들이 서 있었는데, 그녀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주변에서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주성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냄새입니까? 아주 역겨운 냄새인데요.”
“화골산 냄새입니다.”
주성진은 놀라 되물었다.
“화골산이라고요? 그 뭐냐, 시신을 녹여 버린다는…….”
“시신뿐이겠습니까? 산사람도 녹여 버릴 수 있지요. 아주 고약한 물건입니다.”
순간 주성진은 이철용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 입을 다물었다.
그의 시선이 가리킨 곳에서 역겨운 냄새가 풍겨왔기 때문이었다.
그곳에는 신발 다섯 쌍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는데 주성진을 더욱 놀라게 한 건 신발이 그냥 덩그러니 놓인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헉, 뭐야! 저건 사람의 발 아니야!’
발목 위는 녹아서 사라지고 없고 발목 아래 부문만 남아 있었다.
주성진은 달아난 세 명을 그냥 놓아 준 게 후회가 되었다.
‘악독한 놈들이었어…….’
주성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두 명의 중년 여인들을 바라보았다.
아주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돈깨나 만지는 여인들인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어찌 된 연유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그러자 두 여인 중 왼쪽에 있는 여인이 입을 열었다.
“고맙습니다. 구해 주셔서요.”
“아닙니다. 험한 일을 당하셨군요.”
“저희 둘은 호위무사들과 함께 대륙 전장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다 놈들을 만났고요.”
여인은 그때의 일이 떠올랐는지 얼굴을 부들부들 떨었다.
주성진은 얼핏 그 상황이 상상이 갔다.
다만 놈들이 호위무사를 무슨 이유로 화골산으로 처리했는지가 이해가 되지 않을 뿐…….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주성진의 상상과 달랐다.
물론 결과야 대동소이했지만.
순간 여인이 재차 입을 열었다.
“놈들은 조직을 배신한 자들을 처리하러 왔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들을 죽이고 발목만 남은 시신들을 가져가려 했답니다.”
“음… 그러니까 호위무사들이 그들 조직을 배신한 자들이라 이거군요.”
“네. 돌아가서 배신한 자들의 말로가 어떤지 조직원에게 똑똑히 보여 줄 것이라고 했어요.”
주성진은 그녀가 언급한 조직이 어떤 곳인지 몹시 궁금했다.
“혹시 그들이 어디 소속인지 아십니까?”
“모르겠어요. 하지만 알 방법이 있을 것 같긴 해요. 죽은 호위무사들의 숙소를 뒤져 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요……?”
“아, 그렇군요. 하면 다른 건 잃어버린 건 없습니까?”
그녀가 고개를 끄떡였다.
“네, 다행히. 하나 만일 세분이 오지 않았다면 전장에 맡길 돈도 사라졌겠지요. 그리고 저희 목숨도요. 제가 시신이 녹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 비명을 내질렀는데, 그 순간 그들의 표정에서 강한 살의를 느꼈어요.”
“강한 살의를 느꼈다고요?”
“네. 저희가 다년간 술장사를 하다 보니 사람들의 얼굴만 보면 대강 그 사람의 마음이 읽어지거든요.”
“아. 많은 사람을 상대하시는군요. 알겠습니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이며 이야기를 끝내려 했다.
“저, 구해 주신 은혜를 갚고 싶은데요.”
주성진은 급히 손을 흔들었다.
“아. 아닙니다. 놀라셨을 텐데 댁에 가서 푹 쉬십시오…….”
“별 것 아니니 사양하지 말아 주십시오. 단지 저희 가게에서 대접하고 싶은 것뿐이니까요.”
주성진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진실한 눈빛이다.
“음,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간 김에 죽은 호위무사들의 숙소를 살펴 봐도 될까요?”
“그럼요, 놈들이 누군지 저희도 알고 싶답니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들과 동행하게 된 주성진과 일행은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으로 들어섰다. 대문 위 커다란 현판에는 천향이화원이라는 글자가 용비봉무의 글씨체로 쓰여 있었다.
주성진은 글씨체를 보고 대단히 감탄했다.
‘대단하군. 어떤 명인이 썼을까? 용이 날고 봉황이 춤추는 기세라면 아무래도 무림인인 쓴 것 같기도 한데…….’
현판에 시선을 뺏긴 주성진의 귓속으로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풍악 소리가 들려왔다.
“호호호…….”
“삐리리리…….”
그제야 주성진은 여기가 기원인 걸 알았다.
‘허허, 이것 참, 물장사한다고 하더니만 그녀가 기원의 주인일 줄 몰랐군… 대낮부터 손님이 많은 걸 보니 장사가 잘 되나 보네.’
주성진과 말을 나눈 여인이 천향이화원의 원주였고, 그 옆의 여인이 부원주였다.
주성진은 겸연쩍은 모습으로 그녀들을 뒤로 따랐다.
그녀들은 총관과 잠깐 이야기를 나눈 후, 곧장 기방을 지나 무사들이 묵는 숙소로 향했다.
“여기에요. 그들이 묵었던 곳이…….”
“아, 그렇습니까. 그나저나 새로운 호위를 뽑아야겠군요.”
“그야, 어려운 문제는 아닙니다. 하오문이나 낭인회 지부에 부탁하면 되니까요. 안 그래도 조금 전 총관에게 그 일을 지시하였답니다. 제 생각에 총관이 내일이나 모레쯤 낭인회 지부로 갈 것 같아요.”
“…….”
“왜냐면 총관도 한때는 알아주는 낭인이었으니까요. 저, 왜 그런 말 있잖아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요. 호호.”
주성진은 그녀의 웃음소리가 몹시 정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들어가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성진과 이철용 그리고 이도연은 죽은 자들이 기거했던 곳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주성진이 단서를 찾아냈다.
그건 바로 호랑이 이빨로 만든 귀걸이였는데, 죽은 자들이 몰래 감춘 듯 천장에서 발견되었다.
“단주님, 좀 아시겠습니까?”
주성진의 물음에 순간 이철용은 망연자실,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우리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었던 그 사람이 지니고 있던 물건인데…….’
“음, 주 상단주님. 왜 전에 저희가 구해 준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기억하시지요.”
“네. 기억하고말고요. 그분이 무공을 가르쳐 주었다면서요.”
“그게 말입니다. 그가 지니고 있던 것이 이와 똑같은 귀걸이입니다.”
순간 주성진의 몸속에 묘한 전율이 흘렀다.
‘뭐라?! 음, 단순한 조직이 아닌 것 같아… 도대체 그들은 누구란 말인가?’
한동안 주성진의 머릿속엔 의문으로 가득 찼다.
잠시 후 아름답게 치장된 기방으로 안내된 주성진과 그 일행은 방이 덥지 않아서 일단 놀랐다.
“방이 시원하군요, 더울 줄 알았는데요.”
그러자 안내한 어여쁜 여인이 입을 열었다.
“사시사철 바닥에 차가운 냉기가 흐르는 방입니다. 그래서 더운 여름철에만 이용하는 방이지요.”
“아, 그렇군요. 이거 저희가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아니에요. 각별히 모시라고 하였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여인이 나가고 주성진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기원에는 가끔 들라는 편인가요?”
이철용이 멋쩍게 고개를 끄떡였다.
“네… 단원들이 보채서 일 년에 서너 번 정도, 하지만 여기와 같은 곳은 아니지요. 아무래도 이런 곳은 화대 값이 비싸니까요. 그리고 저는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이철용이 왜 그러는지는 주성진이 훤히 알고 있었다.
그에겐 비록 아직 정식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부인과 딸이 이번 조선 사신단에 합류해 있었다.
“그렇군요. 저는 저녁이 되면 자리를 뜰 터이니 두 분은 알아서 하십시오. 혹 추가로 돈이 필요하다면 제가 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주 상단주님.”
주성진은 이도연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하하, 한 번 정도는 사양할 줄 알았는데…….”
“아이코 이런 일로 사양하면 안 되지요.”
이철용은 이도연을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녀석이… 그리고 나도 주 상단주님을 따라 일어날 거다. 너 혼자 잘해 봐라, 하하.”
* * *
한편 그 시각 주성진이 구해 준 두 여인은 총관의 보고에 울상이 되어 있었다.
주성진과 주로 말을 섞었던 원주가 입을 열었다.
“아아,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에요? 하필이면 오늘 관에서 호출하다니…….”
총관의 보고에 의하면 조선 사신단의 환영회가 관에서 있을 예정이었다.
한데 관에도 관기가 있음에도 그녀들이 운영하는 기원에서 기녀들을 모조리 차출한 것이었다.
총관은 여인들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워낙 높으신 분들이 심양을 방문한지라, 어쩔 수 없답니다.”
“휴, 알겠어요. 그래도 그렇지. 내가 알기로는 관기 중에는 미색이 뛰어난 여인이 몇 있다고 들었는데…….”
“다들 몸이 안 좋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여인이 얼굴을 찡그렸다.
“휴, 이거 은인들에게 제대로 대접을 못 하게 생겼으니 어떡하죠?”
“저, 그럼 오늘 말고 내일 오라고 하면 어떨까요?”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초대한 사람보고 내일 다시 오라고 하면 나라도 기분이 안 좋을 것 같아요.”
순간 총관의 뇌리에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래. 하오문에 손을 벌리자고, 내가 평소에 하오문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번 일은 어쩔 수 없구나,’
“저, 원주님, 제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하오문에 부탁을 하죠, 미색 고운 여인 셋을 구해 달라고요.”
원주는 그의 말에 반신반의했다.
“아무리 하오문이라 할지라도 지금 당장 그런 여인을 구할 수 있을까요?”
“돈이면 다 해결될 것입니다. 하오문 심양 지부장이 저와 가끔 만나 술을 마시면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희 특급 기녀보다 더 뛰어난 여인 셋을 언제든 구해 올 수 있다고요.”
“음, 그래도 접객을 하려면 기본 소양을 갖추어야 하는데요. 가령 어느 정도의 주량은 기본이고 시 짓기와 연주에도 일가견이 있어야 하지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상대를 만족시키는 능력일 거고요…….”
총관은 그녀의 말을 예상한 듯 곧바로 말을 이었다.
“물론입니다. 심양 지부장의 말로는 악기를 두 가지씩이나 다룰 수 있고 애교가 철철 넘친다고 합니다. 거기에 재치 있고 기발한 말솜씨로 상대를 늘 웃음 짓게 한다 합니다. 거기에 뛰어난 상상력과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장력을 겸비했다고 합니다.”
주인 여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말 그런 여인들이 있다고요?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요.”
“제 생각에 1년 전부터 소문이 자자한 세 명의 특급 기녀들이 있지 않습니까, 저희 경쟁 기원에 번갈아 나타난다는… 물론 자주는 아니지만.”
“아, 그 이야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소문에 그녀들이 똑같은 여인들이란 말이 있었지요. 혹 그 특급 기녀들이 하오문 지부장이 말한 그 여인들이란 말인가요?”
총관은 고개를 끄떡였다.
“네, 저는 그렇게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