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상인-207화 (207/250)

207화 다가오는 위험 (2)

주성진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습니다. 대신 조심하십시오. 저는 이번 상행에 한 사람도 낙오 없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니 만일 우리 중 누군가가 죽거나 크게 다친다면 두고두고 마음이 아플 것 같습니다.”

“네. 염려하지 마십시오. 조심 또 조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 이야기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성진은 눈을 치켜떴다.

“무슨 이야기 말이죠?”

“객잔의 손님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오일장이 서면 꼭 가 봐야 한다고 하더군요. 심양의 오일장에서 진귀한 것들을 많이 판다 하면서요. 거기에다 무술 경연단이 와서 유료 공연까지 한다던데요…….”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술 경연단요? 그거 혹시 잘못 들은 거 아닌가요? 경극단의 공연을 무술 경연단으로…….”

“아닙니다. 경극단에서 펼치는 연극이 아니라 진짜 무술을 시연한다고 하더라고요. 가령 하늘을 붕붕 날아다닌다고 해요. 물론 제가 보기엔 조금 과장된 것 같지만, 일반인이 보기에는 저희가 조금이라도 하늘을 난다면 그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음, 그래요. 그렇지만 우리에겐 진귀한 공연이 아닐 것 같은데요. 일반인이라면 모를까…….”

이철용이 배시시 웃는다.

“하하, 주 상단주님, 하늘하늘, 보일락 말락, 야한 옷을 입은 여인들이 무술 시연을 한다면 어떨까요. 거기에다 신경통에 좋은 약까지 판다면…….”

“정말입니까?”

“그렇답니다. 시간이 되면 같이 가 보시지요. 제 생각에 꽤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하하.”

주성진은 무술 경연단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음,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가만, 공연료는?’

“공연료가 비싼가요?”

“아. 그건 미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악, 아악……!

말끔하게 차려입은 주성진은 이철용과 이도연은 데리고 객잔을 나섰다가 골목 어딘가에 들린 비명에 그만 자리에 멈추어 섰다.

“이거 비명 아닙니까?”

“네, 상단주님, 목소리로 보아 여인의 비명입니다.”

“여인이 둘인 것 같습니다.”

주성진은 말하면서 순간 염두를 굴렸다.

‘음… 우연인가, 아니면 함정인가?’

대낮에 길을 가는데 난데없는 비명이라니 너무나 공교로웠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엔 여인의 짧은 비명이 머릿속을 관통할 정도로 너무나 날카로웠다.

‘허허, 이것 참… 객잔을 나서자마자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주성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이철용을 바라보았다.

“혹 강도들일까요?”

이철용은 주성진의 의중을 이해했다.

“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요. 한데 행인들은 못 들은 척 그냥 갈 길을 가는군요.”

“뭐, 저들을 탓할 수는 없지요. 두려울 테니까.”

“주 상단주님 어떻게 하시렵니까?”

주성진은 골목길을 쳐다보았다.

“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사 함정일지라도.”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들 주의하십시오.”

주성진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대낮인데도 주변 건물이 햇볕은 가린 관계로 다소 어두웠다.

“흑흑, 살려 주세요!”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여인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순간 이철용과 이도연이 주성진의 옆쪽에서 앞으로 튀어나왔다.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주성진은 그들을 말리려다 관두었다.

그들도 다년간 무공을 수련한 고수이기도 하거니와 여차하면 자신이 도우면 된다고 판단했다.

“조심하십시오.”

“네, 인기척이 뚜렷이 느껴지는 걸 봐서는 그냥 단순 강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음…….”

주성진은 판단을 유보했다.

잠시 후 이철용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이놈들! 어서 여인들을 놓아 주지 못할까?!”

“흐흐, 죽으려고 환장한 놈들이군. 뭐해, 자식들아! 칼침 맛을 보여 주라고!”

“네, 두목!”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의 외침에 장한 둘이 빠른 속도로 튀어나왔다.

휘리릭!

“어어, 저 자식들이!”

이철용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별 볼 일 없을 것 같은 자들의 무위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이철용과 이도연은 몸을 훌쩍 날려 상대방들의 공격을 피하며 소리쳤다.

“도연아, 조심해라!”

“네, 단주님!”

이도연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대방의 공격이 이어졌다.

특히나 상대방의 번들거리는 눈빛이 몹시 거슬린다.

순간 상대의 검 하나가 기이한 변화를 일으키며 이도연의 허리께를 노리고 따라붙었다.

‘저 자식, 날 뭐로 보고!’

이도연은 상대의 첫수에 당황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전열을 정비한 이도연의 실력은 다소 놀라운 데가 있어서 어느새 상대의 예봉을 피하고 손가락으로 견정혈을 찔러가고 있었다.

상대는 황급히 몸을 뒤로 돌리며 날카롭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검은 그대로 이도연의 손에 잡혔다.

이도연이 손에 힘을 주자 쨍강 소리와 더불어 상대의 검은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처음으로 상대의 얼굴에 표정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허억!

상대는 놀람과 경악이 깃들인 얼굴을 하고서는 반토막이 난 검을 뿌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이도연은 상대의 놀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달라붙으면서 상대를 핍박해 갔다.

‘어휴, 냄새!’

상대의 악취가 코를 찌른다.

상대는 오랫동안 머리를 감지도 않고, 수염도 텁수룩하게 자란 상태였다.

그 순간 상대의 두목이 소리 지른다.

“광염아. 염무를 도와라! 딴 놈은 내가 상대하겠다.”

이철용을 상대하다 뒤로 물러난 광염은 급히 이도연의 발목을 겨냥해 몸을 날렸다.

광염의 호리호리한 체구가 바닥에 착 붙어서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흥, 어딜!”

이도연은 가볍게 소리를 지르면서 그대로 광염의 대도를 걷어찼다.

팍……!

이도연의 발길질에 대도를 걷어차이는 순간, 광염은 자신의 손아귀가 파열되는 듯한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손바닥이 찢어져 피가 흐르는 와중에서도 그는 대도를 놓치지 않고 더욱 힘을 주며 후려쳤다.

‘오, 저놈 봐라?’

이도연의 눈빛이 변했다.

자신의 발길질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오히려 더욱 힘차게 도를 휘두르는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이도연은 몸을 날려 광염의 대도를 피해야만 했다.

그 덕분에 염무는 겨우겨우 한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휴…….’

잠시 그들은 품자로 대치한 채, 서로의 시선을 마주 보고 있었다.

한편 그 시각, 이철용은 두목이라는 자와 마주 섰다.

먼저 입이 연 건 이철용이었다.

그는 형형한 눈빛으로 상대 두목을 예리하게 훑어보며 말했다.

“네놈들은 누구냐?”

두목은 이철용을 노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돌연 이철용의 기세가 무섭게 변하자, 호흡을 가다듬으며 몸 안의 기를 최대한 끌어올리느라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단순히 저잣거리의 흑도 패들은 아닌 듯하고…….”

“…….”

“음, 그렇다고 살수 같지도 않고…….”

두목은 이철용이 왜 자신을 보고 살수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눈깔이 삐었나 보군. 우리를 살수라고 하다니…….”

마침내 공력을 잔뜩 끌어올린 두목이 이철용을 보며 비아냥거렸다.

“살수가 아니다?”

“그래, 자식아!”

순간, 그의 몸에서 발산되는 살기는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팽팽하고 날카롭게 서 있었다.

“죽엇!”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그의 몸이 유령처럼 자리에서 퍽 꺼졌다.

‘후, 제법이군!’

이철용이 배어 물은 미소가 조금은 짙어졌다.

그 순간이었다.

쐐애액!

공간을 축약한 듯, 상대 두목의 검이 빗살같이 이철용의 심장을 찔러 갔다.

그 빠르기는 실로 놀라워, 웬만하면 방어하기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이철용은 여전히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두 팔을 앞으로 밀어냈다.

그러자 막강한 강기가 그의 손에서 발출되었다.

마치 단단한 얼음 조각이 그의 손에서 쏟아져 나오는 듯한 광경이었다.

‘헉! 저건 강기!’

공격하던 두목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말로만 듣던 강기를 처음 본 것이었다.

‘음, 재수 옴 붙었다.’

펑……!

강기에 부닥친 그의 검이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크윽!”

쿵쿵쿵쿵!”

강기와 부딪힌 충격에 상대 두목의 입에서 선혈이 쏟아졌다.

그는 비틀비틀 거리며 골목의 담벼락까지 밀려 나갔다.

‘제기랄! 귀중한 격발단을 소모해야 하다니, 할 수 없다. 도망쳐 사는 게 먼저니까!’

두목은 급히 품속을 뒤져 밀랍에 싸인 뭔가를 통째로 입속에 집어넣었다.

그가 말한 격발단은 몸속 잠력을 격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억지로 잠력을 격발하면 그 휴유증으로 자칫 폐인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복용한 격발단은 과거 약선이라고 불리던 명의가 개발한 엄청난 단약이었다.

귀한 약재로 배합해서 만든 단약은 일각 동안 일순 본인이 가지고 있는 공력을 두 배 이상 증가시켜 주었다.

반면에 부작용은 전혀 없었고…….

이철용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내상약을 먹은 것인가, 하긴 그럴 수도 있겠지…….’

이철용은 공격을 늦추었다.

잠깐이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였다.

두목은 한계 이상으로 내공이 가득 차오름을 느끼며 중얼거린다.

‘바보 같은 놈이군. 뭐 계속 날 밀어붙인다고 해도 이젠 소용없어, 늦었다고…….’

그가 복용한 격발단은 녹는 즉시 효력을 발휘하는 명약이었다.

돌연 두목이 휘파람을 불었다.

휘익!

휘파람과 동시에 신형을 박찬 그가 하늘 높이 떠오르더니 나비 모양의 암기를 집어 던졌다.

“추혼비접이닷!”

순간 갈피를 잡지 못한 이철용은 뒤늦게 상대 두목이 도망치고 있음을 알았다.

‘저놈이 도망칠 줄이야!’

그러고 보니 이도연과 상대하던 그의 부하들도 꽁지 빠지게 도망치고 있었다.

이철용은 나비 모양의 암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여 암기를 피하기는커녕 급히 신형을 띄워 상대를 추적하려 했다.

그런 이철용의 반응은 상대 두목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쐐애액!

한데 그 순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신형이 있었으니 바로 주성진이었다.

“여인들을 보호하세요, 암기는 내가 처리할 터이니…….”

주성진은 그 말을 끝으로 하늘로 날아올라 암기에 손을 뻗었다.

‘분리하기 전에 잡아채야 해!’

주성진이 아는 추혼비접은 사천 당가의 절기로 꼽히는 독문암기 중의 하나였다.

손가락만 한 나비 모양의 암기가 처음엔 느릿느릿 활공하며 날아다니다가, 갑자기 12개로 쪼개져 다수를 벌집처럼 만드는 무서운 암기였다.

암기에는 극독이 발라져 있어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이었다.

또한, 회수해서 재활용할 수 있었다.

아무나 사용할 수는 없고 최소한 초일류고수 이상의 공력소유자만이 추혼비접을 다를 수 있었다.

주성진은 강한 흡입력으로 암기를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순간 안도의 눈빛이 그에게서 흐른다.

‘되었어, 한데 이게 정말 사천당가가 애지중지하는 추혼비접일까? 만일 그렇다면 횡재한 것인데…….’

주성진은 손에서 부들부들 떠는 추혼비접을 내공으로 누르며 달랬다.

‘가만 있어 자식아, 한데 너를 왜 강도 놈들이 가지고 있던 거냐?’

주성진은 추혼비접의 날카로운 감촉을 느끼며 자신이 쥐고 있는 암기가 거의 진짜일 것이라 확신했다.

‘뭐, 나중에 시험해 보면 되지. 한데 독은 없는 것 같은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