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다가오는 위험 (1)
좌시랑은 비무에서 이겨 보겠다는 승부욕이 자신도 모르게 발동되었음을 알고 씁쓸해했다.
‘난 그저 승부에 집착한 평범한 소인배에 불과했어.’
지금 후회한들 이미 늦었다.
지더라도 의연하게 지려고 했는데 이미 물 건너간 것이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주성진이 봐주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음…….’
한데 그가 짧은 생각을 정리하고 빠져나오는 순간, 손목이 얼얼하게 아파 온다.
공력을 최대한 올려 보지만, 찻잔 속의 미풍처럼 전혀 해결될 기미가 없었다.
‘휴, 그가 힘으로 변화를 깨려 하고 있구나! 어쨌든 최선을 다해 보자! 어차피 이리된 것, 질 때 지더라고 허무하게 지고 싶지는 않아!’
붕붕!
좌시랑은 수세로 전환하여, 있는 힘껏 손목을 돌렸다.
그러자 빽빽한 창의 그림자가 막을 이룬다.
이른바 검막도 아닌 창막이라는 생소한 묘기가 펼쳐진 순간이었다.
주성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허, 창막까지, 뭐 그렇다고 해도…….’
주성진은 좀 더 공력을 끌어올려 강하고 빠르게 끊어 쳤다.
꽝!
순간 창막을 깨고 들어가는 주성진의 검은 이 순간 검이라기보다는 마치 한 자루의 도끼와도 같았다.
‘으으윽!’
좌시랑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갔다.
여전히 상대는 창에 대해 검의 단점만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본인은 상대적으로 창의 장점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압도적인 상대의 힘에 하염없이 밀리고 있었다.
좌시랑의 창은 지금 가장 효과적인 거리에서 강력한 방어막을 발휘해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힘에 여지없이 뚫리고 있는 거였다.
한편 주성진은 서두르지 않았다.
‘뭐. 무리할 것 없지. 자칫 다치면 큰일이니까.’
상대의 창은 방어의 범위를 좁히면서 새로운 방어벽을 만들려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으나 주성진은 느긋한 파괴자가 되어 있었다.
주성진의 검은 이미 공간의 지배자가 되어 좌시랑의 창이 일으켜 내는 그 어떤 변화도 부질없는 날갯짓에 불과하게 만들 뿐이었다.
따당!
띵……!
어는 순간, 격한 격돌 음에 이어 명쾌한 쇳소리가 나며, 부러진 창극이 공중으로 높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좌시랑의 움직임도 정지되었다.
그의 눈길은 멍하니 허공으로 솟아오르고 있는 자신의 창극을 뒤쫓고 있었다.
잠시 후 원래 비무 자리로 돌아간 주성진이 입을 열었다.
“잘 배웠습니다. 좌시랑님!”
“내가 할 소리, 이거 부끄럽게 되었소이다.”
주성진은 주변을 돌아보다 전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전음을 펼친 건 주면 남들의 귀를 의식해서였다.
―좌시랑님, 곰곰이 생각해 보았거든요. 그 팔이 늘어나는 것 말이죠. 혹시 그거 천축 유가공에서 유래한 것인가요? 어때요. 제 말이 맞죠?
―하하, 그렇소이다, 위급한 순간 구명 절초로 쓸려고 한 것인데,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와 버렸소이다. 아마 나의 내면에서 그대를 한번 이겨보려는 충동이 강했던 모양이오. 허허.
주성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뭐 그때는 좀 당황하고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사람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소이다. 한데 아까 펼쳐 된 것이 혹, 호신강기요? 내가 보기에는 전설의 호신강기가 맞는 거 같은데…….
―전설의 호신강기라뇨? 너무 치켜세워 주시는 것 같습니다. 하하. 뭐, 위기가 발동되면 자연스레 나타나지요.
좌시랑이 고개를 끄떡였다.
―도대체 내공이 어느 정도면 호신강기를 펼칠 수 있는지 모르겠소. 내가 알기로는 호신강기는 깨달음보다는 내공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들었소만…….
―아, 그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 되더라고요, 정말입니다.
좌시랑이 살짝 주성진을 째려보았다.
그렇다고 화가 난 건 아니었다.
―허허, 그대는 이상한 재주가 있는 것 같소. 절대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그리 평범하게 말하니 말이오.
―아, 뭐 제가 좀 기연을 얻었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사실 제가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려는 이유는 다 경험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말입니다. 방금 좌시랑님이 하신 질문을 수없이 받았는데 사람들이 제가 기연을 얻었다고 하면 처음엔 부러운 눈빛으로 절 바라보다가 끝내는 배가 아파 미치려고 하더니만, 곧장 하늘을 원망하더라고요.
좌시랑은 주성진의 말에 빙그레 웃었다.
―하하, 나도 하늘을 원망할지 모르겠소, 나중에…….
―한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깨달음보다는 내공 제일주의자입니다. 내공을 늘릴 수만 있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니까요. 저는 작금의 내공이 많고 적음이 생각하지 않고 항상 배고픈 마음으로 어떡하면 좀 더 내공을 늘릴 수 있을까를 궁구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기연이 찾아오더라고요.
―후후,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소. 기연은 갈구하는 자에게 찾아온다. 뭐 그 말 같소이다.
주성진은 빙그레 웃었다.
―맞는 말씀인데 그것에 한술 더 떠서 반드시 내공을 늘리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와 확신이 중요합니다. 의지는 미지의 행운과 만나는 가교라면, 확신은 행운을 유혹하는 매개체랍니다. 하하.
―잘 알겠소. 온몸에 땀이 차오르지 않았지만, 뭐 약속은 지키겠소이다.
주성진은 비무하는 순간부터 그 일을 까먹고 있었다.
‘아차차 그가 무예를 겨루기 전에 그 말을 했었는데… 하마터면 봉술이 담긴 비급을 놓칠 뻔했었구나…….’
요녕성 심양에 도착한 주성진은 객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똑똑!
“주 상단주님 계십니까, 이철용입니다.”
“들어오십시오.”
이철용이 들어오자 주성진이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타 상단의 움직임이 몹시 분주한 것 같아서요.”
주성진은 빙그레 웃었다.
“아, 그 일이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심양이 조선과 국경 무역이 활발한 곳이라 아마 그들은 조선 상인을 만나러 갔을 겁니다. 저희 쪽도 송명철 대상인이 휘하 상인을 이끌고 나갔습니다. 뭐 그들과 당장 거래를 한다기보다는 서로 간의 정보 교류와 신뢰 관계 구축을 위해 간 것이지요.”
이철용은 주성진이 모든 걸 다 알고 있자 조금은 뻘쭘해졌다.
“제가 괜히 상단주님의 휴식을 방해했나 봅니다.”
“아닙니다. 사신단이 빨라야 모레 오후나 출발할 듯하니 단원들과 바람이나 씌고 오시지요.”
“저, 내일 출발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주성진은 고개를 저었다.
“심양의 지방 관리와 지역 유지들이 마련한 환영회가 내일로 잡혀 있어요. 그러니 내일 출발하기는 무리지요.”
“아, 그렇군요. 주 상단주님은 외출하지 않으실 건가요?”
“글쎄요… 나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태 고민하고 있었는데 지금껏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걸 결정 장애하고 한다지요? 하하.”
이철용이 웃으며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왔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저희와 같이 나가시지요, 심양하면 그래도 요녕에서 제일 큰 도시인데 볼만한 게 얼마나 많겠습니까? 더구나 북방 도시는 남쪽의 도시와 달라 눈에 새롭게 들어오는 게 많을 것 같습니다. 하하.”
주성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손을 흔들었다.
“음, 먼저 나가시지요, 저는 혹 나가더라도 따로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 주 상단주님, 혹시 숨겨 둔 처자라도 있습니까. 홀로 움직이시게…….”
이철용의 반 농담에 주성진은 싱긋 웃었다.
“숨겨 둔 처자는 무슨… 그게 아니라 저와 같이 있다 보면 안 좋은 일에 휩싸일 것 같아서 그러는 거죠, 사실 송 대행수도 그런 점이 우려되어 동석하지 않은 겁니다.”
“그러니까 주변에 피해를 끼칠까 봐 혼자 움직인다는 거군요.”
“뭐, 그런 셈이죠, 하하.”
이철용은 뭐가 주성진을 괴롭히는지 궁금해졌다.
“어디 집히는 데라도?”
“살수들이 제일감으로 떠오르는군요.”
“살수라고요?”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실은 얼마 전부터 제 주변을 염탐하는 자들이 생겨났어요, 저를 의식해서인지 가까이는 다가오지 않고 먼 데서 기웃거리더라고요. 당장 저에게 위해가 없고 조선 사신단 행렬에 지장이 생길까 봐 대응은 자제하고 있었답니다.”
이철용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괜찮습니다. 저야 대비하고 있으니까 그들을 포착한 거지, 안 그랬으면 저도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그들의 행적이 은밀했습니까?”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이다가 이내 가로저었다.
“그게 조금 애매하네요. 그들이 저에게 가까이 접근하지 않아서…….”
“음, 그렇군요. 하면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걸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 혼자라면 간단한데 그게 아니니깐.”
이철용은 주성진의 고민을 이해했다.
“사신단의 행렬에 지장을 주기 싫은 마음은 알겠지만, 계속 이대로 지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들을 신경 쓰느라 피곤이 누적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다른 일을 하는데도 지장이 생길 텐데요.”
“그래서 요즘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크게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만…….”
“그게 뭔가요?”
주성진은 순간 이도연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그의 특수한 능력인 염력이…….
‘뭐, 사실은 그게 아니지만. 그걸로 하자. 연관은 있으니까.’
“염력을 익히고 있습니다.”
“네에? 염력을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자, 그건 그렇고 까짓것 바람이나 씌러 나가 보지요, 하하.”
이철용은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주성진이 외출한다고 해서였다.
‘왜 갑자기 나간다고 결심했을까? 이거 염력애 관해 좀 더 물어보려 했는데 분위기상 더는 질문을 못 하겠구나…….’
“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단주님 말마따나 이대로 있는 것도 그렇고, 한번 부딪쳐 봐야겠습니다. 혹사 압니까. 실전을 치르다 보면 제가 익히고 있는 무공이 늘지…….”
“음, 그렇군요, 제가 이도연을 데리고 따라가도 될까요?”
주성진은 손을 흔들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단원들과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단원들이야 제가 없으면 더 잘 놀 테고 저는 주 상단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도연이 그 녀석의 의사는 물어보나 마나이겠지만 그래도 확인해 볼게요.”
“음. 한데 왜 따라오려는 겁니까?”
“주 상단주님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고 싶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멀리서 지켜볼 테니까요. 그리고 제 옆에 도연이가 있으니까 위험이 닥친다면 그전에 빠져나겠습니다.”
주성진은 난감했다.
‘허허, 참,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내 대응을 본다는 건 핑계고.’
“솔직히 말해 보십시오. 왜 따라오려는 거죠?”
속마음을 들킨 이철용은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실은 주 상단주님의 무공을 보며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게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도연이 녀석의 염력을 키워 주고 싶습니다. 그 녀석도 본인이 매우 급한 상황에 부닥쳐 보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거든요.”
“…….”
“마지막으로는 주 상단주님의 염력을 보고 싶습니다. 과연 타고난 재능이 아닌 후천적으로도 염력을 펼칠 수 있는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