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조선으로 향하다 (2)
우달극은 놀라 찢어진 눈을 부릅뜨며 노상달을 바라보았다.
―이봐,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아니야, 진짜라니까!
―그자는 말이야. 변황제일독인으로 불리는 자야. 그자가 설립한 문파가 만독문이고…….
노상달은 고개를 끄떡였다.
―음, 그렇구나. 그럼 뭐 볼 것도 없네. 저놈들은 여기를 철수해서 원래의 길로 되돌아갈 것이고 그때, 매복한 우리 군대에 몰살을 당하겠지. 하하.
―그렇겠지. 하여간 부족장님은 너무 대단하신 분이야. 어떻게 저들이 돌아갈 때 기습할 생각을 하셨을까? 그런 생각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고. 안 그러냐?
―네 말이 맞는데 그거 말고도 이유가 더 있어…….
우달극의 눈썹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너! 또, 상관이 모르는 걸 알고 있는 거냐? 어떡해 나보다 많이 알고 있을 수 있지?
―이봐, 고정하라고! 실은 내가 자주 가는 술집에 부족장님도 자주 오신단 말이야…….
―음, 그래…? 좋아. 일단은 알겠고. 이번에는 뭘 엿들은 거냐?
노상달은 우달극을 째려본다.
―야! 자꾸 날 도둑놈 취급하지 말라고. 옆방의 소리가 자연스럽게 들리는데 나더러 어떡하라는 거야!
―흥. 네 녀석의 귀가 밝은 건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지. 그 뭐냐 청력을 돋우는 무공, 이름을 까먹었네…….
노상달은 살짝 당황했다.
‘저 녀석이 어떻게 알고 있지?’
―그딴 거 몰라도 되고 내가 들은 걸 말해 주지. 사신단을 돌아오게 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 그건 변방의 고수들을 데려올 시간을 벌려고 한 거라 하더라고. 아무래도 사신단의 무공 고수들을 상대하기에는 우리 쪽의 힘이 부족하다고 했어. 그 뭐냐 주성진인가 뭔가 하는 놈 때문에.
사실 우달극은 주성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들 부족의 정보력은 꽤 높았는데, 중원에 간자들이 많이 침투해 있기 때문이었다.
황궁과 무림 그리고 상단에도…….
직접 파견한 자도 있고 미인계나 돈으로 회유한 자들도 있었다.
―음, 알겠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주성진 그자는 엄청난 고수라 하더라… 그리고 말이야. 사실 부족장님이 요즘 부쩍 신경 쓰는 건 조선과 명의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 것이야. 설사 벌어지지 않더라도 친하게는 지내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하는 거지.
노상달은 우달극의 말에 회의적이었다.
‘어이구, 어느 천년에… 조선과 붙어도 상대가 안 되는구먼.’
그 순간 우달극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 사신단이 몰살하면 당분간 명과 조선의 공식적인 교류 관계가 끊기는 거고 우리는 그만큼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는 거라고.
노상달은 입으로만 맞장구쳤다.
―야, 잘은 모르겠지만 엄청난 계획이구나, 하하.
―그럼! 다시 중원을 정벌하는 일인데…….
노상달은 고개를 끄떡이더니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듯했다.
―이봐. 내가 언뜻 누군가에게 들었는데, 그 뭐냐, 음… 아, 그러니까 우리 부족장님의 성씨가 옛 신라의 왕족과 관계가 있는 거냐?
―그렇다고 들었어. 과거 금나라의 금이 바로 김의 다른 말이래…….
―음, 그렇구나…….
한편 시간이 흐르고 주성진은 금탄호와 옥소소를 데리고 작은 숲속에서 나왔다.
금탄호와 옥소소의 눈빛은 전보다 맑고 그윽한 것이 어딘가 달라 보았다.
주성진은 보부상단의 단원들이 생풀을 잔뜩 베어 버린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이런 시키지도 않는 일을 했네…….’
주성진은 곧바로 일행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자, 여러분! 내 말이 끝나면 모두 뒤로 물러나세요. 대략 100장 정도.”
“100장을요?”
이철용은 반문했다. 말이 100장이지 따지고 보면 꽤 긴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맞습니다. 100장입니다.”
“아. 그래요.”
이철용은 확신에 찬 주성진의 모습에 반색했다.
‘역시 주 상단주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군.’
“하하. 좋은 계획이라도 있으신가 봅니다.”
이철용이 물음에 주성진은 미소지었다.
“금탄호, 옥소소 두 분이 음공으로 독충들을 한곳으로 유인할 거예요. 그러고 나면, 제가 나서서 독충들을 싹 태워버릴 겁니다.”
“음, 계획은 훌륭합니다만, 횃불 하나로는 그 많은 독충을 모두 태우기 힘들 텐데요. 저희를 생각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저희 모두가 횃불을 들고 나서겠습니다. 까짓것 음공이 위험하다면 솜으로 귀를 막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철용은 주성진이 100장씩이나 떨어지라고 한 게 음공 때문이라 생각했다.
주성진은 손을 흔들었다.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을게요, 실은 제가 양강 지력을 펼칠 줄 안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양강 지력을요? 음, 그건 특수한 내공을 익혀야 펼칠 수 있는 거로 아는데요?”
“하하, 물론 맞는 말이지만, 제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음양오행의 원리를 이용해 내공을 변화시킬 수 있거든요.”
“오오, 그런 신박한 방법이 있었습니까?”
주성진이 고개를 끄떡였다.
“네. 자, 그럼 뒤로 물러나서 힘을 좀 비축해 놓으세요. 일이 마무리되면 저 작은 숲을 모조리 밀어 버려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이철용은 주성진이 하려는 의도를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럼 늪지대를 매울 생각입니까?”
“그렇습니다. 대부분 일은 병사들에게 맡기겠지만 우리도 돕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럼요. 알겠습니다.”
보부상단의 단원들이 뒤로 물러나자, 주성진은 가운데에 남고 금탄호와 옥소소는 양옆으로 갈라섰다.
금탄호와 옥소소가 양옆으로 갈라선 이유는 독충들을 한자리로 유인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은 바로 두 음공이 부딪히며 공명하는 곳으로, 주성진이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반경 오장 내외의 공간이었다.
사실 그 공간은 사람에게 해당 사항이 없지만, 벌레들에겐 음공으로 인한 충격을 줄일 수 있는 일종의 피난처 같은 곳이었다.
주성진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자. 그럼 시작합시다.”
순간 옥소소가 걱정스러운 듯 고운 입을 열었다.
“괜찮겠어요? 저희 음공이 좀 듣기 거북할 텐데요.”
“아, 조심하겠습니다.”
주성진은 말은 그리 했지만, 그다지 대비하진 않았다.
‘뭐 별일 있으려고…….’
잠시 후, 두 사람은 각기 금을 타고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딩딩딩당…….
삐리리리…….
주성진은 순간 귀를 막고 싶었다.
아무리 음공이라 해도 악기로 내는 소리일진대, 어처구니없게 듣기 싫은 소리가 난 것이었다.
‘아이코.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야…….’
주성진은 속으로 펄쩍 뛰었지만, 음공에 굴복해 청력을 폐쇄하고 싶지는 않았다.
‘제길. 버텨 보자고!’
주성진은 공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곧바로, 어느 정도 공력을 끌어올리고 나니 듣기 싫은 건 매한가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해진다.
‘음, 음공이 왜 무서운 줄 알겠어… 비록 벌레들을 유인하기 위해 펼쳤다곤 하지만 그 자체로 위험해.’
주성진은 음공에 장시간 노출된다면 웬만한 고수라 할지라도 강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물론 본인은 제외하고…….
딩딩딩당…….
삐리리리…….
주성진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지는 것과 반대로 음률은 점점 고조되어 간다.
위이잉!
순간 벌레들의 날갯짓이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밤하늘 가득, 날아올랐다.
그러곤 곧바로 주성진이 있는 근처로 새까맣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허허, 장관이군…….’
벌레들이 거대한 군집을 이루며 나르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야조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주성진은 심호흡했다.
‘잘해 보자고!’
삽시간에 주성진의 머리 위에 벌레들이 잔뜩 모였다.
“야합!”
주성진은 우렁찬 기합을 내지르며 두 손을 하늘 높이 뻗었다.
그러자 곧장 강렬한 빛이 두 손을 타고 밤하늘에 가득 솟구친다.
쉬이익!
그야말로 일대 장관이었다.
한데 바로 그 순간, 붉은색 강렬한 빛은 이내 파란색을 띠며 부채꼴로 펴져 나갔고, 빛이 지나간 주변은 순식간에 뜨겁게 달궈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마침내 시퍼런 빛은 독충들이 모여 있는 곳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치지지직……!
살이 타는 내음과 함께 화염에 휩싸인 독충들이 끝도 없이 타들어 갔다.
주성진은 그런데도 꾸역꾸역 몰려드는 독충들을 보며 나중에는 본인이 먼저 질려 버렸다.
‘하, 뭐가 이리 많아…….’
타닥타닥!
일각 여가 지나서야 그 많던 독충들이 사라지고 마지막까지 화염에 저항하던 일부 녀석들이 끝내 불길을 이기지 못하고 타들어 간다.
주성진은 불에 강한 저항력을 보인 벌레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뭐지, 저것들은? 생긴 것은 꼭 지네 같은데…….’
모양은 지네인데 몸에 얇은 피막 같은 날개가 양쪽에 붙어 있었다.
‘오라, 비천독오공이구나…….’
주성진은 확신했다.
하지만 비천독오공이 불에 강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주성진의 눈이 한쪽으로 향했다.
좀 전 본인이 음공으로 괴로워하는 순간 가느다란 비명을 들은 방향이었다.
‘저놈들에게 물어봐야겠군. 필시 감시자가 분명해!’
주성진은 늪지대의 독충들이 자연적으로 생긴 게 아니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갔다.
만일 감시하는 자가 없었다면 의심은 하겠지만, 흐지부지 넘어갔을지도 몰랐다.
‘그래. 십중팔구 내 생각이 맞을 거야.’
주성진은 마지막 비천독오강이 재로 화하자마자 신형을 날렸다.
잠시 후 주성진은 그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쥐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다.
‘뭐야. 기절한 건가?’
쓰러진 자들은 땅속에 숨어 있었는데, 주변을 수목으로 위장했기에 겉으로 보기엔 감쪽같았다.
‘음, 일부러 땅을 팠군.’
주성진은 비록 상당한 거리가 있었지만, 처음 늪지대 근처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한 일을 떠올렸다.
‘음, 내가 몰랐다는 건 그만큼 그들의 은신술이 대단하다는 증거야. 보통 이런 자들은 잡아서 심문한다 해도 쉽게 불지 않는다고 하던데…….’
주성진은 적진에 침투해서 정찰이나 감시하는 자들은 고문을 견디는 특수 훈련을 받는다고 알고 있었다.
왜냐면 자칫 붙잡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주성진은 생각을 접고 기절한 자들의 몸을 만져 봤다.
혹시나 해서였다.
‘역시 얼음장처럼 차갑구나. 그렇다는 건 호흡을 멈추고 스스로 가사 상태에 빠진 것이다.’
주성진은 그들이 귀식대법을 시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원래 귀식대법은 적에게 동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쓰는 방법이었다.
고도의 기술이 없으면 죽은 척하다가 자칫 진짜 죽을 수도 있었다.
왜냐면 혈류량이 줄고 심장의 박동이 거의 정지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스스로 살기 위해 귀식대법을 펼쳤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음공에 대항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겠지. 도저히 견딜 수 없자 귀식대법을 펼친 거야. 만일 이자들이 가느다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면 난 모르고 지나쳤을 거고…….’
주성진은 상대의 귀식대법을 풀기 위해 골똘히 기억을 더듬었다.
잠시 후 그의 눈이 빛을 발한다.
‘오라… 그 방법이라면!’
주성진은 천뇌자가 남긴 책자의 부록 편에서 방법을 찾아냈다.
천뇌자의 부록 편에는 무공이 아니라 생존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망라되어 있었다.
주성진은 갑작스레 심장이 멈춘 자에게 펼치는 수법을 그들에게 펼치기로 했다.
‘잘해 보자고!’
주성진은 왼손과 오른손을 각기 그들의 심장에 얹었다.
원래는 양손을 깍지 끼는 게 원칙이지만, 내공을 익힌 자는 한 손으로도 충분하다고 부록 편에 나와 있었다.
“흡, 후우…….”
크게 심호흡 한 주성진은 규칙적으로 그들의 심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쿵쿵, 쿵쿵, 쿵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