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조선으로 향하다 (1)
“뭐라, 독충? 그러면 큰일 아닌가.”
“거기에다가 비가 이렇게 자주 내리면 곳곳에 물웅덩이가 우리의 전진을 방해할 거예요.”
순간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주성진이 끼어들었다.
“이 행수, 혹 늪지대가 있는 건 아니겠죠?”
“음,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기후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하여간 제 예감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주 상단주님.”
주성진은 이야기를 듣고 이번 조선행이 예상보다 훨씬 길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휴, 추위를 피해서 가장 좋은 날씨에 출발했는데 이 모양이라니. 곧 진짜 여름이 몰려올 텐데.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 하더니 일이 이루어지는 건 결국 하늘에 달려 있나 보다…….’
주성진은 한숨을 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데 내리쬐는 태양이 자신을 비웃는 것 같다.
‘그래. 아무리 그렇다고 의기소침할 수 없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느냐 말이야.’
주성진은 걱정을 털어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지 않아 어떤 단원의 투덜거리는 말에 또다시 휩쓸려 간다.
“야, 기범아. 더워서 미치겠다. 벌레도 많고 세상이 온통 흐느적거리는 것 같아. 젠장, 주변에 계곡 없냐…….”
“어휴 일동이 이 녀석! 너 짐마차로 가라. 네놈의 지겨운 주둥아리에 온종일 시달리다가 귀가 먹을 지경이란 말이야.”
이철용이 주성진의 눈치를 보더니 끼어들었다.
“일동아 조금만 참아라. 이제 곧 요동 땅에 접어들면 한결 나아질 것이다. 그나저나 독충한테 물린 건 좀 어떠냐?
“어떻냐고요? 상처 부위가 얼마나 간지러운지 아세요? 그런데도 이놈의 이상한 연고는 어찌나 냄새가 지독한지, 아예 파리들이 집을 짓게 생겼다니까요.”
일동은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나머지 단원들은 그를 어르고 달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주성진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휴, 정신 사납네. 저 녀석 때문에.’
그때였다.
앞을 정찰 나갔던 기병 2기가 돌아왔다.
“그래 길은 좀 나아지던가?”
“아닙니다. 장군. 오히려 더는 나아가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앞에 커다란 늪이 있는데 썩은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오장 안으로는 가까이 갈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뭐라고? 이거 큰일이군. 차라리 원래대로 좀 돌아갈 것을 그랬어…….”
장군은 사신단 단주인 정2품 행서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는 황제의 칙명으로 이번 사신단을 이끌고 있는데, 원래 그는 육부 중 으뜸인 이조를 꿰차고 있는 자였다.
그가 지름길을 고집해서 예정에 없던 길로 접어든 거였다.
“혹, 늪을 우회해서 갈 길은 없던가?”
“마차를 버린다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만…….”
“음, 좁은 길은 있다는 말이군…….”
장군은 인상을 쓰더니, 말머리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려 했다.
“상서 대인을 만나고 올 테니 전원 이 자리에서 멈추어 있도록…….”
그러면서 그는 주 상단주를 바라보았다.
“주 상단주, 다녀오겠소.”
“네, 여기는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그러던 그가 무슨 생각인지 말을 정지시켰다.
“주 상단주, 미안하지만 그대가 한 번 더 보고 올 수 없겠소? 만일 늪지대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크지 않다면 달리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늪을 흙으로 메우시려고요?”
“병사들이 있으니 가능하지 않을까 싶소. 더구나 여긴 남만도 아니고 원래부터 늪지대가 있는 지역이 아니지 않소이까?”
주성진은 그의 말을 반박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늪지대가 더운 지방에만 있다는 건 고정관념이야. 뭐 하긴 그의 말처럼 이번 비로 갑자기 생긴 늪지대라면 깊이가 깊지 않을 테니까 흙과 바위로 메울 수 있을 것 같기는 해.’
그 순간 뇌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게 있었다.
‘잠깐,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고 했잖아. 그렇다면 늪지대가 오래되었다는 거 아닌가? 에이 모르겠다. 가 보면 알겠지.’
그 순간 모기 같은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주성진은 금탄호의 전음을 들으면서 재차 장군을 바라보았다.
“섭 장군님. 확인하는데 시간이 걸릴지 모릅니다. 혹 밤이 되도 돌아오지 않으면 기다리지 마십시오.”
“알겠소. 이거 정말 미안하오.”
주성진은 자신들의 일행을 보며 손을 들었다.
“가 봅시다.”
“이랴!”
뚜두두둑!
주성진과 일행들이 탄 말이 우르르 앞으로 몰려 나갔다.
한데, 일동이라는 자는 선두에서 조금 뒤처져서 또다시 혼자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돌아 버리겠네, 밤을 새울 수도 있다고…….’
일동은 다른 단원들과 달리 남만의 늪지대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크게 식겁한 적이 있기에 유달리 다른 이들보다 까탈스러웠다.
게다가 그가 가진 특이한 신체 탓인지 모르지만, 독충들이 유독 그에게 많이 몰려들었다.
‘어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이라 말은 못 했지만, 밤의 늪지대는 낮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사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낮엔 햇빛의 영향으로 야행성의 독충들이 많이 누그러들기 때문에 그런대로 다닐 만하지만, 밤이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독충들이 맹렬히 활동하면 늪지 전체가 거대한 독기 저장고같이 되어 버려서 상당히 위험해지곤 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주성진이 밤을 새울 수 있다고 한 건 금탄호의 전음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주성진은 그와 주고받던 말을 상기했다.
―금탄호입니다. 빠르게 말할게요.
―네, 그러세요.
―저와 옥소소가 합작하면 독충들을 유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데 낮보다는 밤이 유리할 것 같아요. 독충들이 대부분 야행성이기 때문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잘되었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문제는 저희 내공이 좀 부족한듯하여 내공증진단이 있으면 확실할 텐데…….
주성진은 금탄호와 옥소소가 내공증진단의 존재를 알고 있자 헛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보부상단의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조건이 맞으면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는 걸 드리지요. 아예 이참에 금침 대법까지 해드리겠습니다. 그 이야기도 들었을 테니…….
―헤헤, 감사합니다. 대신 앞으로 쭉 견마지로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건 당연한 말씀. 그리고 기초라도 좋으니 저에게 음공에 대해 알려 주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주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는 법이지요.
―자, 그럼 독충들을 불러내 한곳으로 몰아주세요, 제가 다 태워 죽일 테니까…….
―횃불로 말입니까?
―아니요. 나중에 보면 압니다. 하하.
잠시 후 늪지대 근처에 다다른 주성진이 이철용을 바라보았다.
“여기 잠시 대기하십시오. 내가 저 두 사람을 데리고 볼일 좀 보고 올 테니…….”
이철용의 눈이 주성진의 손가락을 따라가고 있었다.
‘아니, 저 두 사람은 왜?’
“무슨 일이신지……?”
주성진이 전음을 펼쳤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보부상단의 대단하신 분이 소문을 냈더라고요. 비밀로 해달라고 했는데…….
이철용은 주성진의 말을 음미했다.
‘비밀? 무슨 비밀? 아!’
그제야 무슨 말인지 깨달은 이철용이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입단속을 단단히 시켜 놓겠습니다.
―농담이 아니고 부탁입니다. 앞으로 그런 일이 또 새나가면 제가 감당하기 힘듭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네, 네. 알다마다요.
주성진이 금탄호와 옥소소를 데리고 작은 숲속으로 사라지자, 이철용이 본인의 단원들을 보며 한 인상 그린다.
“누구요? 내공증진단을 발설한 사람이?”
그제야 상황 파악한 단원들이 서로를 쳐다본다.
모두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나서는 이가 없자 이철용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앞으로 무의식적이라도 발설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상단에서 영원히 추방할 겁니다. 알겠습니까?”
“네……!”
이철용이 간만에 화를 내자 단원들은 바짝 얼어붙었다.
원래 평소에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 한번 화가 나면 무서운 법이었다.
이철용을 화를 누그러뜨리며 재차 입을 열었다.
“자자. 이제 곧 해가 질 것 같으니 만반의 준비를 합시다. 독충들이 연기를 싫어하니까 생풀을 잔뜩 베어 오세요.”
이철용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일동이 기어이 비명을 내질렀다.
“안돼요, 여기서 어떻게 밤을 보낸단 말입니까? 전 죽어도 못하니까 저를 여기서 내보내 주던지, 아니면 여기서 죽이든지 맘대로 하십시오.”
“정말로 죽여줄까?”
“아이고, 단주님! 이 일동 한번 살리는 셈 치시고 제발 이 끔찍한 곳에서 저를 좀 내보내 주십시오. 아, 아니지 단주님이 끽소리 못하고 우리를 이리로 데리고 들어왔으니까 책임지고 빠져나가게 해 주십시오.”
아예 협박이다.
난처해진 이철용은 손으로 머리를 집었다.
‘아휴, 저 녀석을 데려오는 게 아니었는데… 과거 일 때문에 발작을 일으키는구나.’
이철용은 일동이 남만에서 죽을 뻔하다가 간신히 살아난 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 돌아가라. 단 이것만 알아두어라. 주 상단주는 그렇게 무모한 사람이 아니다. 다 계산이 섰을 것이다.”
“저, 정말일까요?”
“넌 그가 사천상단의 상단주라는 걸 잊었냐? 그 자리는 개나 소나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란 말이다. 나는 한시도 그가 대상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니 잘 판단해라. 네가 없어진 걸 알면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일동은 급히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알겠습니다. 그의 능력을 믿어보겠습니다.”
“…….”
일동의 발작을 잠재운 이철용은 자신이 먼저 풀을 베러 나섰다.
그러자 다른 이들이 우르르 따라나선다.
얼마 후 우거진 풀 속에서 몇 번인가 검빛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군집을 이룬 풀들이 무더기로 잘려 나갔다.
한편 보보상단의 단원들이 부산하게 풀을 베는 동안 제법 떨어진 곳에서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왼편에 있는 자가 전음을 펼친다.
―이봐, 우달극 저들이 여기서 무슨 짓을 하려나 본데…….
―노상달 너! 아까부터 점점 말이 짧아지더라. 내가 너의 상관인 걸 잊지 말라고.”
―이 자식이, 우리 동기 아니냐? 게다가 여긴 우리 둘인데 좀 어때…….
우달극은 노상달을 한껏 째려보더니 재차 전음을 펼쳤다.
―돌아가서도 내게 하대해 봐라. 모가지를 비틀어 버릴 것이다.
―하하. 알았다고. 그나저나 이제 어떡할 건데?
―저놈들이 생풀로 독충들을 쫓아내려고 하는데 어림도 없지. 여긴 저따위 연기로 꿈쩍 않는 독충들이 바글거린다고!
노상달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럼… 우리 대원들이 집어넣은 독물들이 보통 독물이냐. 살짝만 물려도 그 자리에서 절명하는 극독을 가진 놈들인데…….
―어쨌든 긴장을 놓지 말자고. 반드시 저놈들이 늪지대를 포기하고 다시 돌아가게 만들어야 해!
―우달극, 내 생각에 저놈들이 독물을 다 제거한다고 하더라도 절대 여길 통과 못 해. 이곳 늪지대가 생각보다 넓잖아. 이상 기후로 3년 전부터 생긴 곳이라고.
우달극은 노상달의 말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긴장을 풀지 말고 지켜보자고…….
―뭐, 상관이 말하는데 그래야지. 하하, 그나저나 난 우리 부족장님이 너무 대단하신 것 같아. 어찌 사신단이 여기로 온다는 걸 열흘 전부터 예측하고 계셨을까…….
―그야 지름길이 여기밖에 없기 때문이지. 저들은 그 동안 내린 비로 계속 출발이 뒤로 밀리고 있었으니, 일정을 맞추려면 지름길 외는 방법이 없겠지… 난 그보다 부족장님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그 많은 독물을 키우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노상달은 말할까 말까 하다가 전음을 펼쳤다.
―내가 우연히 부족장님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누군가와 밀담하고 계셨는데 그자가 자기 입으로 만독존자라고 소개하더라고.
―뭐라고? 만독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