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이철용의 기연
이도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긴 한데 주 상단주님의 무위를 보고 나니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제가 예지력을 발동하더라도 분명 다른 방법으로 저를 흔들어 놓았을 것 같거든요.”
“다른 방법을 쓸 수도 있겠지만, 저의 계획은 이형환위를 극한으로 올려 보고 싶었습니다.”
“주 상단주님, 죄송하지만 다음에 다시 해볼까요? 지금은 제가 많이 피곤해서요.”
주성진은 염력에 관해 궁금한 것이 많았다.
“염력을 써서 피곤한 것인가요?”
“네. 평상시와 다르게 무리를 했거든요. 아무래도 주 상단주님을 상대하다 보니까…….”
“그럼 다시 염력을 사용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요?”
이도연은 순간 염두를 굴렸다.
‘이참에 나도 궁금한 것을 물어봐야지…….’
“한 시진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 그렇군요. 염력이 고갈되었다는 건 어찌 아는 것인가요?”
“머리 꼭대기가 말랑말랑해지면서 마치 천지와 소통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
주성진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천지교합 뭐 그런 건가? 그건 이 세상을 초월한다는 것인데…….’
“혹시 그게 혼백이 빠져나가는 느낌입니까?”
“비슷합니다. 뭐, 죽더라도 지옥으로 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하하.”
“음, 신선이 될 수도 있겠네요. 한데 염력은 어떻게 얻게 되었나요?”
이도연은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신이 부여한 능력이 아닐까요. 어느 날 갑자기 제게 부여된…….”
“그래도 뭔가가…….”
“실은 돌아가신 저의 어머니께서 무당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신기를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주성진은 턱을 괴고 잠시 생각했다.
‘역시 그런 일이 있었군. 신기와 염력이 관계가 있는 게 틀림없어.’
“그럼, 상단전이 선천적으로 열려 있었다고 봐도 될까요?”
“네. 주 상단주님. 한데 제가 알기로는 무공이 극한으로 치달으면 후천적으로도 상단전을 열 수가 있다고 하던데요.”
주성진은 얼버무렸다.
“네, 뭐 듣기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이유는 제삼자의 입장이 아니라, 본인이 그런 경지를 가고 있기에 말하기가 껄끄러웠다.
‘미안하지만 아직은 공개하기가 뭐, 그래.’
“음…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요. 염력이 사용하기 힘든 거라면 동시에 사용할 수는 없겠네요. 가령 예지 능력과 허공섭물을 동시에…….”
이도연은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건 무리인 것 같아요.”
주성진은 이도연의 내공을 올려 주고 싶은 마음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 건 그의 재질이 탐이 났기 때문이었다.
‘음, 안되지. 신공단을 선물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나니까. 가만 저들의 운을 시험해 볼까.’
주성진은 고개를 돌려 보부상단의 단원들을 바라보았다.
“여러분! 장백산삼을 아시는지요?”
주성진의 예상과 다르게 모두가 손을 든다.
‘어라. 다들 알고 있네.’
“그러면 혹시 수령이 2백년이 넘은 장백산삼을 보거나 들은 적이 있습니까?”
그러자 이철용을 제외한 모두가 손을 들었다.
주성진은 개중에 한 명을 지명했다.
“본 적이 있다고요?”
“아뇨.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실은 저희 단주님이 무려 세 뿌리나 가지고 계십니다. 하하.”
그 순간 이철용의 얼굴이 벌레 씹은 표정이 되었다.
“전길 형.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요. 이젠 내 것도 아닌데…….”
“본인 것이 아니긴 왜 본인 것이 아니에요. 가서 돌려 달라고 하세요.”
“끙…….”
이철용은 자신의 부하지만 나이가 많은 전길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제길 괜히 단원들에게 이야기해서…….’
주성진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무슨 사연이 있음을 직감했다.
‘사실대로 말해 보자, 어떤 반응이 나올지…….’
“이백 년산 장백산삼 세 뿌리라면 여러분 모두에게 줄 내공증진단을 만들 수 있어요. 자그마치 개인당 5년 치 내공을 말이죠.”
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입니까?”
“정말요……?”
이철용이 갑자기 주성진의 손을 잡았다.
“이틀만 말미를 주십시오. 당장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 대신 내공증진단 두 알을 더 주시면 안 될까요?”
“음… 제가 좀 많이 손해 보지만 그렇게 하지요.”
주성진이 짐짓 엄살을 부렸다.
“그 손해! 제가 꼭 보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저 그런데 부탁이 있습니다. 2명의 인원을 더 충원해야 하는 거로 아는데, 제 여자 친구와 딸을 데려가면 안 될까요?”
주성진은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이혼한 건가?’
“혹 결혼하셨습니까?”
“결혼은 하지 않았고요. 뭐, 까짓것 이번에 결혼식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철용은 자신의 과거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실은 이백 년산 장백산삼 세 뿌리는 제 여자 친구가 가지고 있습니다. 20년 전 예기치 않게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 제가 그녀에게 맡겼었지요. 뭐 일종의 증표 같은 것이었습니다. 장래를 약속한다는…….”
“아! 그렇군요. 한데 그간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마음이 돌변한 것 같은데…….”
이철용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뭐, 단원들을 위해 제 한 몸 희생해야지요. 주 상단주님이 저를 나쁜 놈이라 봐도 어쩔 수 없지만, 저는 얽매여 사는 것보단 자유롭게 사는 게 좋았습니다. 그리고 변명 같지만 제 여자 친구도 속박되는 걸 싫어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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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날 일은 서로 어린 나이에 술을 먹고 그렇게 된 것이랍니다. 깨어나 보니 둘 다 옷을 벗고 있더라고요. 음음…….”
주성진은 그의 말을 통해 대강의 사정을 알 수 있었다.
‘술을 많이 먹었나 보군, 가만 혹 이철용의 여자 친구도 무림인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여염집 규수는 아닌 것 같은데…….’
“아, 그렇군요. 그럼 따님과는 자주 연락하고 지내나요?”
“아닙니다. 여자 친구와는 연락을 주고받습니다만, 딸아이는…….”
“아, 그래요…….”
순간 이철용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
“사실 제 딸아이는 제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그렇게 정리된 것입니다.”
그의 말에서 주성진은 이철용의 씁쓸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저 그런데 내공증진단 2개를 더 달하고 한 게 혹 모녀와 관계가 있습니까?”
“네, 여자 친구와 딸아이에게 주려고요. 그녀들도 무공을 익혔거든요.”
“아, 그래요? 그럼 좋아하겠네요. 한데 소속 문파가 있으면 데려오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이철용은 고개를 저었다.
“문제없어요. 얼마 전에 듣기로는 동림당에서 독립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동림당이라 하면 강북에서 의가로 유명한 곳 아닙니까? 아, 약방 사업도 한다고 들었는데.”
동림당은 무림소속이면서 의가였다.
소속 인원들의 구성은 무림세가와 유사했고.
“지금은 약방사업에 더 주력하고 있지요, 의가는 뒷전이고…….”
주성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이철용의 여자 친구가 동림당 소속이라면 이백 년산 산삼이 여태 있을 리가 없는데, 벌써 사용하고도 남음이야.’
“저, 산삼이 아직 있다는 게 신기하군요. 그곳에서 쓰임이 많을 텐데요?”
“사실 이 말씀을 드릴까 말까 고민했는데 말씀드려야 할 것 같군요. 아마도 제 여자 친구와 딸이 저희와 합류한다면 주 상단주님이 귀찮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왜 시달린다는 겁니까?”
“하하, 그게요… 실은 제 여자 친구의 소원이 내공증진단을 만드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여태 성공하지 못했거든요. 만일 내공증진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면 제가 맡긴 산삼이 벌써 없어졌겠지요.”
“아, 그래서 저에게 질문할 것이다 뭐 그런 뜻이군요. 알겠습니다. 하하.”
이철용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괜찮겠습니까?”
“네.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뭐 비법을 알려 줄 수는 없지만, 방향성 정도는 대답해 줄 용의가 있습니다. 하하.”
“아이코 고맙습니다.”
주성진은 손을 흔들다 말고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 실험하느냐고 장백산삼을 모두 소진하지 않았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실험용 산삼은 모두 동림당 것입니다. 아 그리고 제가 그녀에게 듣기로는 실험용으로는 아주 소량이면 충분하데요. 물론 반복적으로 실험하다 보면 그 양도 무시하지 못할 것 같지만서도.”
“아, 그렇군요. 한데 장백산삼을 어떻게 구하셨습니까?”
이철용은 손을 들어 본인을 가리켰다.
“제가 어떻게 구했느냐고요?”
“네, 말하기 거북하시면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아, 아닙니다. 실은 아버지를 졸라 장백산맥에 따라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랍니다. 아버지는 일인 전승 문파의 문주셨는데, 어느 날 문득 무림에 회의를 느껴 무림을 떠나셨지요. 그리곤 평소 취미인 사냥을 아예 직업으로 삼으셨습니다.”
“…….”
“장백산 깊은 곳에서 하루를 헤맨 끝에 거대 호랑이를 발견했고, 아버지가 호랑이를 추적하는 사이 저는 힘이 달려 점점 뒤처졌지요. 그러다 부주의로 돌부리에 채여 넘어졌고, 그만 언덕에서 구르게 되었습니다.”
“…….”
“다행히 낙엽이 뒤덮인 곳이라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는데, 거기서 사람을 닮은 인형설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직감적으로 영약임을 알아챘고 인형설삼이 도망치기 전에 날름 잡아 해치웠습니다.”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형설삼이 움직인다고요? 그런 예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요.”
“하하. 모르셨습니까? 영초로 변한 삼은 움직인답니다.”
주성진은 여전히 믿기 어려웠지만, 그의 말이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뭐, 맞겠지. 영초나 영물은 영성을 뛰고 있으니 뭐가 달라도 아주 다를 것이야…….’
그 순간, 이철용의 말이 이어졌다.
“인형설삼을 먹고 저는 곧바로 배운 대로 운기조식을 취했지요. 그리고 눈을 떠보니 아버지가 저를 지키고 계셨어요. 그리고 아버지 옆에는 커다란 호랑이 가죽이 놓여 있었고요. 아버지가 자초지종을 묻자 저는 경험한 바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죠.”
“…….”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아버지는 돌연 낙엽 주변을 열심히 뒤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거기서 산삼 여섯 뿌리를 발견하셨어요. 그때는 아버지나 저나 그냥 귀한 산삼인가 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모두 수령이 이백 년이 넘은 엄청난 것들이었습니다.
“…….”
“하하. 이제 아시겠지요. 제가 가진 세 뿌리의 산삼은 그때 그렇게 얻게 된 것이랍니다. 한데
아버지는 하산하면서 저더러 벽에 똥칠할 때까지 장수할 거라고 말했어요. 저는 막연히 인형설삼 때문일 것이려니 생각했는데, 아버지 말씀과는 온도 차가 있었어요.”
“…….”
“아버지 말씀은 제대로 준비해서 인형설삼을 먹었다면 그게 모두 공력으로 흡수되었겠지만, 당시 제 능력으로는 그 일부만 흡수했을 것이라 하더군요. 나머지는 신체 어딘가로 숨어들었고…….”
주성진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한 가지를 유추할 수 있었다.
‘인형살삼이 산삼을 잡아먹으러 온 것이로구나.’
“단주님의 아버님이 낙엽을 뒤진 이유를 알겠습니다. 하하.”
“그렇습니다. 인형설삼이 장백산삼을 먹잇감으로 생각한 것이지요. 따지고 보면 같은 종 같은데 피도 눈물도 없는 게 꼭 세상사와 닮은 것 같아요.”
“허허, 그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