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무공 지도
‘이제 3일 남았구나. 이번에 가장 큰 수확 중의 하나는 북경지부장의 발견이다. 그가 이렇게 유능한지 몰랐어. 조선과의 교역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면 그를 사천상단의 이인자로 임명해야겠어.’
주성진은 열심히 무공 수련 중인 보부상단 소속의 단원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주 상단주님!”
보부상단의 단주인 이철용이 공터에 나타난 주성진을 보며 소리쳤다.
그러자 보부상단의 단원등이 일제히 연무를 멈추고 주성진에게 다가온다.
주성진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스무 명의 인물들을 보자 마음이 푸근해졌다.
‘저들은 진흙 속의 진주였어. 못하는 게 없거든. 무공이라면 무공, 장사라면 장사, 거기에 잡다한 기술까지… 마음 같아서는 할당된 인원을 저들로 채우고 싶지만, 인원이 20명뿐이라 아쉽군.’
일꾼으로 할당할 인원은 총 22명이었다.
주성진은 그들의 요청으로 틈틈이 무공지도와 비무를 해주기로 약속했고, 바로 지금이 첫날이었다.
물론 주성진이 응낙한 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번 상행에 혹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고자 함이 가장 컸지만, 그 외 그들 보부상단에서 특출한 인재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보부상단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고 원래는 쟁자수 출신이었다.
한데 그는 범인들이 가지지 못한 특이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그게 다는 아니었다.
신체 조건이 훌륭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무공에 대한 감각이 매우 탁월했다.
한번 본 것은 웬만해서는 잊어버리지 않고 동작에 대한 신체 적용력이 대단했다.
주성진은 무공의 재질이 발군인 그의 능력도 특이한 능력에서 비롯되었을 거로 생각했다.
‘이도연 그자! 세상에, 내 눈으로 염력을 부릴 줄 아는 인물을 보다니… 세상은 넓고 더 넓어…….’
주성진은 이철용이 그를 처음 소개를 했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상대적으로 내공이 뛰어나지도 않는데도 물건을 들어 올려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본 거였다.
이는 허공섭물로 내공이 대단한 경지에 오른 자도 쉽사리 할 수 없는 기예였다.
그렇다고 염력이라는 능력이 단순히 물건을 들어 올리는 것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었다.
그건 극히 일부분으로 활용 부분이 무궁무진했다.
왜냐면 염력은 달리 말해 상단전이 열려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주성진은 심검의 경지로 넘어가는 단계에 있었기에 불가해라 불리는 상단전의 영역을 경험으로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성진의 경우는 후천적이었다.
반면 이도연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게 크게 다른 점이었다.
만일 그가 어릴 적에 술법을 배웠다면, 아마 세상을 뒤흔들 엄청난 술법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주성진은 그의 무공을 지도하면서 그를 통해 상단전의 비밀을 엿볼 생각이었다.
가능하다면…….
주성진은 다가온 그들을 보며 얼굴에 웃음을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오늘은 이도연 단원부터 무공을 봐주기로 하겠습니다. 한데 여러분! 호명되지 않았다고 투덜거리지 마십시오, 개개인 모두 봐줄 테니까… 그리고 대련은 상행 중에 해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여러분이 깜짝 놀랄 선물도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하십시오. 하하.”
“깜짝 선물요? 그게 뭔가요?”
이철용이 상기된 얼굴로 말하자, 주성진은 빙그레 미소지었다.
“약재가 준비되는 데로 여러분에게 기력을 돋굴 환단을 하나씩 선물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그게 다가 아닙니다, 제가 자그마치 금침법으로 여러분의 혈도를 봐 드릴 겁니다. 아마도 몸속에 쌓여 있던 노폐물과 탁기가 그 덕에 많이 배출될 것이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하하하.”
주성진은 신천단 100개를 만들 생각이었다.
신천단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약재인 수령이 이백 년인 장백산삼이 북경 약재상에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신천단 100개면 5년의 공력을 올려 줄 신공단 10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었다.
“정말입니까?”
이철용은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혹 환단의 이름이 뭔가요?”
“천하보양단이라고 합니다.”
주성진은 신천단을 천하보양단으로 바꾸어 말했다.
‘뭐, 어때, 나중에 천하보양단이라는 이름으로 팔 건데.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고.’
이철용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다.
“저희를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는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신천단에다 금침 시술이라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드리는 것뿐이에요. 자, 그럼 이 이야긴 여기서 그치고 무공 지도를 시작해 볼까요.”
잠시 후, 이철용이 물러나고 이도연이 검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챙!
그가 검을 뽑자 날카로운 기운이 검날에서 솟구쳐 나온다.
‘오라, 제법인데.’
“자, 그럼 검을 펼쳐 보세요.”
주성진이 말하자마자 그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려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완만하게 현기를 담기 시작한 검은 점점 더 느려지더니, 실낱같은 검기를 올올이 풀어내기 시작했다.
‘대단한데, 벌써 검기상인의 경지라니… 음, 내가 너무 내 기준으로 상대의 내공을 평가하나 봐, 내가 비정상적인 거라고.’
바로 이때, 주성진의 옆에 있던 이철용이 주성진에게 소곤거린다.
“하하, 시작은 도문의 검법입니다.”
이철용은 죽은 기인에게 배운 무공을 언급하고 있었다.
“아, 그렇군요. 시작이 좋은데요.”
그리고 점차 이도연의 검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잔잔하게 흐르는 검세가 돌연 풍랑을 만난 바다처럼 삽시간에 요동치고, 점점 투로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기세는 점점 더 강하고 억세졌다.
한데 주성진의 반응은 영 그렇다.
그의 눈썹이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꿈틀거린다.
‘음, 빈틈이 너무 많이 보여.’
주성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곤 이내 손을 들어 그의 시범을 중단시켰다.
“잠깐! 마음속으로 상대를 벨 생각을 버려 보세요.”
“저는 살기를 품지 않았습니다만…….”
주성진은 가타부타 말없이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투로 자체는 별로 나무랄 데가 없어요. 하지만 검이 조화롭지 못해요. 이 행수가 익힌 내공이 마공이라면 상관하지 않겠는데, 그대가 익히 내공은 정종 심법이라는 걸 명심하세요.”
주성진은 편의상 보부상단의 단원들을 행수라고 부르고 있었다.
“자, 보세요.”
주성진은 검을 여러 번 휘둘렀다.
그의 검로를 흉내 내 따라 한 거였다.
처음엔 다소 어색했지만, 점차 나아지더니 급기야는 놀라운 신위가 발휘되었다.
휘리릭……!
“어때요. 무슨 차이가 보이나요?”
이도연은 존경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여러 차례 끄떡였다.
“네, 많이요. 빠르기도 하거니와 심한 압박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럴 거예요. 음, 사실 상대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필살의 검법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내공과 조화롭지 못한 검은 파탄을 드러내고 이는 상대에게 틈을 내주게 되죠.”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주성진은 그를 보며 빙긋이 웃었다.
“저는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검을 펼쳤습니다. 상대를 베겠다는 마음을 품지 않았어요…….”
“상대를 의식하지 않았다고요?”
“제가 펼쳐 보니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오로지 검에 집중했어요. 이 행수가 익힌 검법은 상대를 의식하는 순간 살검으로 돌변해요. 한데 내공은 정종 심법이죠. 그러니 파탄이 드러날 수밖에요. 정파에서는 무인을 살인귀로 키우지 않아요. 결과론적으로 상대를 죽이더라도…….”
이도연은 알듯 모를 듯했다.
“음, 그게…….”
“하하.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나중에 저와 비무를 하게 되면 확실히 알게 될 거예요. 오늘은 그저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한다. 뭐 이 정도만 염두에 두면 좋을 것 같네요.”
그 순간 이철용이 아쉬운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저, 주 상단주님, 맛보기라도 좋으니 비무를 보여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순간 뇌리에 번뜩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래! 그의 염력을 시험해 보자고. 염력의 공능 중에 위험을 예지하는 공능이 있다던데…….’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이 행수 준비하시지요. 제가 이번엔 보법의 중요성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행수는 얼른 자리를 잡고 주성진을 바라본다.
“자, 그럼 갑니다.”
주성진은 이 행수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이 행수는 방어하려고 검을 뻗다가 그만 움찔하고 말았다.
‘헉, 검 끝을 어디로 겨냥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검을 뻗어 상대의 전진을 저지하려고 해도 주성진의 신형이 흔들리니, 맥을 끊을 수가 없었다.
주성진이 다시 한 발짝 성큼 다가왔다.
‘제길, 착각인가. 도대체 몇 명의 주성진이 있는 거야…….’
주성진의 신형이 겹쳐 보여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상대가 검의 사정권 안으로 들어오는데도 자신의 검으로 쳐내지 못하고 그는 하염없이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래도 명색이 보부상단 내, 무위로 인정받는 그였다.
이대로 대책 없이 물러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 염력을 써 보자!’
이도연은 주성진의 의도와 다른 염력을 선보이고자 했다.
그가 하려는 건 주성진이 앞으로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거였다.
고오오오!
순간 이도연의 미간이 좁혀지며 그의 눈동자가 유리알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어!’
주성진은 별안간 뭔가가 자신을 옭아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발을 떼는 것이 부자연스러워졌다.
‘오라, 염력이로군. 하지만 힘이 약해!’
주성진은 강한 내기와 필승의 수법으로 마치 그물을 찢어 버리듯, 상대의 염력을 헤쳐 나기로 했다.
‘후후, 놀랄 걸…….’
쿵!
주성진이 발을 내딛자, 단숨에 염력이 흔들린다.
이도연은 정신을 모아 상단전에 집중했지만, 머리만 깨어질 듯 아플 뿐이다.
‘이럴 수가. 나의 염력이 깨지다니. 그가 발을 내딛자 염력에 흩어졌어, 도대체 이게…….’
그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주성진이 천뇌자의 미완성을 무공 중 하나를 시전한 것을…….
주성진이 시도한 건 천마군림보를 본떠 만든 미완성 무공이었다.
천마군림보는 보법이면서 동시에 무공이었다.
시전하면 상대가 공격하든 방어하든 상관없이 그대로 기세로 찍어 눌러 상대를 압도하는 보법이었다.
또한, 천마군림보는 상대의 심력을 갉아먹는 능력이 있었다.
덕분에 맞서는 상대는 마음에 타격을 받아 극한의 공포를 맛보게 되어 있었다.
천뇌자가 생전에 완성하지 못한 이유는 그가 천마심공을 대체할 내공심법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주성진은 이를 자신의 압도적인 내공력으로 보완한 것이었다.
이도연은 자신의 염력이 깨지자 이판사판 격으로 검을 내질렀다
‘이리 패하나, 저리 패하나 매한가지다!’
야합!
쉭…….
쭈욱 뻗어 나간 검…….
한데 주성진이 툭 하고 검면을 때리는 듯하니, 어이없게 검 자루가 자신의 손아귀를 벗어나 버렸다.
“헉, 언제!”
그가 놀라 당황스러워할 때, 주성진이 날아간 검을 집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좀 전, 염력을 사용했군요.”
“네. 그래도 역부족이었습니다.”
“실은 제가 이형환위의 보법을 쓴 이유가 그대의 염력을 유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도연은 순간 주성진이 말한 의도가 뭔지 깨달았다.
“아, 저더러 예지력을 써 보라고 한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만일 예지력을 발동한다면 아무리 저의 보법이 이형환위라 할지라도 감지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