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음모중첩 (2)
한데 그때였다.
“하하. 안녕들 하신가… 다들 팔팔하구먼…….”
4명의 살수 단체장들은 어딘가에서 갑자기 음성이 들려오자 모두 경기를 일으켰다.
“헉! 누구야?…….”
“큭! 어떻게…….”
“이런, 제기랄…….”
“나의 안목을 속이고……!’
늘 예기치 않은 곳에서 누군가를 기함하게 하던 그들 자신이 이번엔 전혀 반대 처지가 되어버린 거였다.
그들은 일제히 소리가 들려온 위쪽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자 언제부터 있던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천장에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는 복면인이 복면을 벗어 던졌다.
순간 변황난의 단주가 경악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아, 허상객!”
그의 말에 금방이라도 복면인에게 달려들려고 했던 자들은 일제히 살기를 지우고 두려운 표정을 짓는다.
그들은 숨죽여 중얼거렸다.
‘정말 허상객이다…….’
‘어쩌면 좋아…….’
‘안 죽었구나, 뒈진 줄 알았는데…….’
‘제길 오늘 점괘가 안 좋더라니…….’
사실 그들도 세외 청부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살수들이지만, 허상객에겐 몇 수 떨어지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상객은 늘 항상 홀로 활동하는 자였는데, 십 년 전만 해도 변황 최고 살수 자리는 언제나 그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종적을 감추어 안심했는데, 오늘 이 순간에 보란 듯이 나타난 거였다.
“후후. 나는 오랜만에 후배들을 봐서 반가운데, 후배들은 그게 아닌 것 같군…….”
휘익!
말을 마친 그가 천장에서 표표히 떨어졌다.
한데 더욱 놀라운 일은 허상객에게서 별다른 기세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4대 살수 단체장들은 그저 눈앞에 보이는 데도 마치 허깨비를 보는 듯 아무런 기운을 느낄 수 없자 저마다 놀라운 표정을 짓기 바쁘다.
어떤 이는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고, 어떤 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또한, 어떤 이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을 자책하기 바쁘다.
한데 가장 표정이 가관인 자는 변황국의 수장인 자로서 그는 무엇이 그리 억울한지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왜, 그리 썩은 표정들이지? 내 별명이 허상객인 걸 잊었나. 하하.”
“…….”
순간 그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눈으로 직접 보는 데도 허상을 보는 듯한데, 만일 그가 마음먹고 기습을 한다면…….
답은 각자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러자 그들은 지금껏 쌓아 올린 부와 세력을 잃고 싶지 않아졌다.
‘죽고 싶지 않아, 않아…….’
여기서 목숨을 잃는다면 죽어서도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그 생각이 그들의 뇌리를 파고들자 돌연 그들은 온순한 개가 되었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허상객 선배님의 존안을 뵙습니다.”
“존안을 뵙습니다…….”
허상객은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말했다.
“너희가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같은 동족으로 의견을 구하기 위해 너희를 찾아왔을 뿐이다.”
사실 그들 모두는 중원인이 아니었다.
순간 허상객의 말이 이어졌다.
“자. 누구나 목숨은 하나뿐이라는 알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말인데…….”
모두가 숨을 죽이며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가 원한다면 내가 동포애로서 도와주마, 다만 성공 보수의 9할은 내 몫이다.”
그들은 서로가 눈치를 볼뿐, 누구도 먼저 나서서 대답하지 않았다.
자칫 허상객의 심기를 거슬렸다가 목구멍에 구멍이 뚫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허상객은 그들의 심정을 읽고 있었다.
‘후후, 가소로운 놈들…….’
“이봐, 거절해도 좋아. 난 고이 물러갈 테니까…….”
“…….”
4명은 서로 눈으로 대화한다.
악명이 높은 살수들인지라 그들은 눈빛만 봐도 상대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의 의견이 일치되는 순간 허상객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도 그들의 눈빛을 보고 상황을 파악한 것이다.
“알겠네. 그럼 잘들 해보게…….”
허상객은 대답을 듣지 않고 그 자리에서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중얼거린 말이 공기 중에 짙은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쯧쯧, 불쌍해서 찾아왔건만 감히 내 제의를 뿌리쳐? 할 수 없다. 뒈지면 자업자득이지, 누굴 탓하겠어. 감히 알량한 실력으로 이기어검의 고수를 살해하겠다고?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멍충이들 같으니라고. 너흰 이기어검의 고수가 이기어검만 잘하는 줄 아나 본데, 그걸 구사할 정도의 무위라면 내공과 감각도 그에 못지않게 최고조에 올랐다는 걸 왜 모른단 말인지… 만일 네놈들이 주성진을 죽인다면 나 스스로 목을 내놓겠다!’
그는 최종적으로 주성진은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허무의 도를 깨우친 나와 그의 한판 대결이 되겠군. 하지만 내가 유리하지. 나는 살수이니까. 그러고 보니 머저리 같은 놈이 또 있었네. 동창 제독 그놈! 난 은자 한 냥을 받는다고 해도 난 이번 살수 행을 기꺼이 수락했을 것이라고, 하하하.’
한편 그 시각 사천상단과 휘주상단을 제외한 3대 상단의 이인자들이 북경에서 깜짝 모임을 하고 있었다.
공시적인 그들의 직함은 모두 수석 대행수였는데, 그들의 직분에 어울리게 모습에서는 노회한 상인의 풍모를 엿볼 수 있었다.
신광상단의 수석 대행수가 입을 열었다.
“잘 지냈나? 우리가 이렇게 모인 건, 근 10년 만이로군. 아 그전에 우리끼리 자축하자고. 동갑인 우리가 모두 수석 대행수로 진급했으니 말이야…….”
그러자 대륙상단의 수석 대행수가 말을 받았다.
“그래, 그래 그러자고. 한데 강신구, 자네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모양이야. 좋은 비결 있으면 내게 좀 가르쳐 주지…….”
“염병우, 무슨 좋은 비결이 있겠나?”
“강신구, 그러지 말고 좀 가르쳐 주라…….”
금호상단의 수석대행수가 가세했다.
“이봐 우상호, 비결이 없다니까, 하하.”
강신구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너, 정말 그럴래?”
우상호가 짐짓 화난 표정을 짓자 강신구가 희미하게 미소 짓는다.
“자자. 그러면 말이야, 오늘 너희들이 내 말에 동의하면 내가 방법을 알려 주지.”
“정말인가?”
“정말?”
나머지 두 사람은 오늘 모인 주제가 주성진때문이기에, 웬만하면 강신구의 말을 들어 주어도 손해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강신구는 두 사람의 표정을 바라보다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휘주상단이 오늘 회합에 못 온건 너희들도 알고 있겠지?”
염병우가 고개를 끄떡였다.
“내부 사정이 심각한 모양이더라고, 조선사신단에 합류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다들 알고 있었네. 그래서 말인데 오늘 회의에서 휘주상단의 일까지 추가하자고, 휘주상단이 상행에 가지 못하면 그 몫을 우리가 챙겨야 하지 않겠나?”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떡인다.
“당연하지…….”
강신구는 잠시 하늘을 쳐다보더니 재차 입을 열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사천상단의 기세가 만만치 않아, 더구나 공주가 그를 비호하고 있으니 상황이 좋지 않다고. 게다가 그자는 무공 실력도 뛰어나고…….”
“야. 서론이 너무 길다. 그래서 우리가 바쁜 시간을 쪼개 모인 것 아니냐고!”
염병우의 핀잔에 강신구는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환하게 미소 짓는다.
“자식, 급하기는… 좋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
“우리랑 손잡고 있는 세력들이 주성진을 벼르고 있더라고, 그걸 충분히 이용하는 거야.”
“우리라니 뭔 소리야.”
염병우의 말에 강신구가 눈살을 찌푸렸다.
“너. 자꾸 오리발 내밀래… 너희들이 누구랑 손잡은 지, 내가 모를 줄 알고?”
“어딘데?”
“대륙상단은 과거 무림맹 세력, 금호상단은 세외무림이지. 사천상단은 과거 사도련과 한 몸이었다가 주성진에게 먹혀 버렸지… 그리고 휘주 상단은 모용세가였다가…….”
그러자 조용히 있던 금호상단의 우상호가 입을 열었다.
“신광상단은 흑룡가와 손을 잡았고…….”
세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순간 재차 강신구가 입을 열었다.
“자, 자. 이럴수록 우리끼리 단합해야 하지 않겠나. 우리가 나서서 중원 5대 상단을 중원 3대 상단으로 만들어 버리자고.
“서로 약점을 쥐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군.”
염병우의 말에 강신구가 대꾸한다.
“이번 상행에서 우리가 큰돈을 벌면 우리의 약점을 지울 수가 있어. 돈으로 못할 게 뭐 있겠냐. 황제라도 움직일 수 있는 거라고!”
“네 말은 여론을 바꾸자는 것 같은데…….”
“그래. 이 일은 윗분들이 따로 논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 그러니 우리는 우리 일에 집중하자고…….”
우상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자고…….”
순간 대륙상단의 염병우는 자신이 소외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강신우와 우상호는 중요 결정 사항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길…….’
돌아가면 따져 물을 것이다.
그는 대륙상단의 젊은 상단주의 얼굴을 떠올렸다.
염병우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자 강신호가 얼굴을 찡그린다.
“야, 염병우, 주목해!”
그제야 자신의 실태를 알아차린 염병우가 얼른 주먹을 풀었다.
“하하, 듣고 있다고.”
“자, 그럼 말할게, 아까도 말했다시피 우리가 비호하는 세력들이 주성진을 벼르고 있어. 그러니 우리는 그 점을 최대한 이용해야 해. 그가 장사에 방해를 받을 때 우리는 경쟁하지 말고 단합해서 사천상단이 일을 제대로 못 하게 해야 한다고.”
“…….”
“그들이 누군가와 계약을 하려면 어김없이 우리가 나타나 방해하는 거야. 설령 좀 손해를 보더라도, 만일 너무 큰 손해라면 누구도 계약을 못 하게 만들어 버리자고!”
우상호가 손을 살짝 들었다.
“알겠는데 그전에 사천상단의 누가 조선사신단에 참여하는지 정보를 캐내야 한다고. 그래야 그들 성향을 읽고 미리 대비하지.”
“음, 십중팔구 사천상단 북경 지부장이 참석할 거야. 그놈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면 될 것 같은데. 네 말대로 각자 좀 더 알아보도록 하자.”
“좋아. 그렇게 하자. 다들 사천상단에 정보원들이 있을 테니 그들을 활용하자고. 단 들키면 안 된다. 자칫 타초경사의 우를 범할 수 있으니까.”
우상호가 두 사람을 보며 말하자 두 사람은 모두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자 탄력을 받았는지 우상호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난 주성진 그 자식을 좀 더 괴롭혔으면 하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겠다.”
“말해 봐, 좋은 생각이 있으면 말이야.”
강신호가 재촉한다.
“모용세가를 좀 이용하는 거지. 그들이 자의 반 타의 반 휘주상단에 손을 뗐을 때, 주성진이 간여했다고 소문을 내는 거야.”
강신호는 속으로 뜨끔했다.
그는 신광상단의 비호 세력인 흑룡가가 휘주에서 일을 벌이다 누군가의 방해로 좌절된 걸 알고 있었다.
“음, 거짓 소문이라도 내자는 것이냐?”
“그래. 대신 우리가 간여한 게 절대로 노출되면 곤란해. 뭐 혹시 알아 정말로 주성진이 관여했는지…….”
우상호는 생각 없이 말했지만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였다.
‘맞다. 정말 그럴 수 있겠는데… 그가 천화각과 친하다는 소문이 있었잖아. 천화각은 모용세가와 원수지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