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음모중첩 (1)
주성진은 회가 진행될수록 점점 정교해지는 이철용의 검에 고개를 끄떡였다.
거기에 다소 조화롭지 못해 보였던 그의 보법도, 점차 검초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주성진은 왜 그가 자신과 같은 고수와의 비무를 절실히 원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마음껏 무위를 펼칠 수 있는 상대가 있었다면 진즉에 지금의 수준을 벌써 뛰어넘었을 거야…….’
상대는 완전히 비무에 몰입된 상태에서 자신이 가진 바를 마음껏 쏟아 내고 있었다.
주성진의 눈빛이 별안간 반짝였다.
‘어라, 이젠 검기까지…….’
그의 검에서 검기가 들쭉날쭉 쏟아져 나온다.
이철용도 그걸 아는지 검기를 제어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직 검기를 제어하지 못했구나. 한데 충분히 연습만 하면 가능할 텐데, 무슨 문제라도… 아! 잠깐…….’
자세히 보니 단순한 검기가 아니었다.
‘어라, 저건 검기가 아니라 초기 형태의 검강인 것 같은데…….’
상대가 검강을 뿜을 줄 아는 고수라면 이미 절정의 경지에 올라섰다고 봐야 했다.
‘음, 강 호법보다 무위가 위인 것 같은데…….’
주성진은 언제 그에게서 검강 같은 검기가 튀어나올지 몰라 가일층 주의해야만 했다.
그가 제어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거리를 벌리지는 않았다.
그에게 검기를 제어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함과 동시에 본인의 감각을 키우는 장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하, 나도 좀 이참에 배워 보자고.’
깡깡깡!
주성진은 아주 간발의 차로 공격을 피해 내기만 할 뿐, 공격에 나서진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그만큼 틈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이 오른 상대의 검초는 점점 더 간결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변화해 갔다.
하지만 그 속의 숨은 변화는 만만치 않았다.
사실 그게 상승 검도의 무리였다.
단순하면서 모든 것을 포괄한…….
주성진은 최대한 평상심을 유지한 채, 방어에만 신경 썼다.
그렇게 한동안 비무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철용의 눈빛이 반짝이는 순간.
파파팟.
그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지이이잉.
캉……!
연속으로 휘두른 이 초, 삼 초, 사 초.
그리고 검에 강한 기운을 담아 내지른 오 초…….
그는 마지막 내공까지 짜내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공격이 무산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최고조의 내력이 담긴 초식을 펼쳤지만, 오히려 튕겨 나간 것은 이철용의 검이었다.
주성진는 비무를 끝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쯤이면 그도 여한이 없을 거야!’
주성진이 검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쉬익!
삽시간에 거리를 좁힌 주성진의 검에 이철용은 뒤로 주르륵 밀려 나갔다.
캉, 캉!
또다시 이어진 이 연타.
이철용은 패배를 직감하면서도 악착같이 검을 휘둘렀다.
쉬익!
주성진는 고개를 숙여 그의 검을 피해 냈고 그사이 그의 목 가까이에 검을 붙였다.
실로 전광석화 같은 빠르기였다.
이철용은 씩 웃었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저도요.”
둘은 간단히 말을 주고받았지만, 그 속엔 수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비무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짝짝짝, 짝짝짝…….
“와. 잘 보았습니다…….”
“보여 주신 무공 때문에 안계를 크게 넓힐 수 있었습니다…….”
누구에게 말한 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잠시 후, 공터에 둘러앉은 그들은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주 상단주님, 제가 왜 간절히 비무를 원했는지 아시겠지요?”
이철용의 말에 주성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잘 모르겠던데요.”
“에이, 정말로 모르신다는 말입니까?”
“비무를 통해 숙련도를 높이는 것이라면 그건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아서 말입니다. 검법이 변화한 건지, 혹은 내공심법이 바뀐 건지, 아니면 둘 다든지…….”
이철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다 알고 계셨군요.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전에 저와 단원들이 강을 건너다 모래톱에서 의식을 잃고 죽어 가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엔 익사한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아주 가늘게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긴급 처방으로 입을 벌려 숨을 불어넣고 가슴을 압박했습니다.”
이번엔 주성진이 놀라워했다.
“그런 방법이 있었습니까? 생전 처음 들어본 것이라…….”
“제가 어릴 적 살던 동네가 바닷가였습니다. 다른 동네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우리 동네에서 대대손손 어부들 사이에 내려온 비법입니다. 저는 사실 어깨너머로 배운 건데 운 좋게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 것이죠.”
“…….”
“하지만 목숨을 건진 그 사람은 2년이 채 되지 않아 죽었습니다. 지병이 악화하여서 말이죠. 유감스럽도 너무 갑자기 숨을 거두어 그의 신분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말하기 싫어하는 건 알았지만 어떡하던 알아보려고 했는데 말이죠. 확실한 건 그가 보통의 무림인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주성진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궁금한 게 있어서였다.
“그러니까 구조한 사람과 2년을 같이 지냈다는 말입니까?”
“아, 네. 그 당시 저희가 짊어진 짐이 너무 많아 저나 단원들이 힘들어했습니다. 그렇다고 일꾼을 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다들 조금만 힘을 더 내어 보자고 서로 격려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가 짐꾼을 자처했고, 그러다 보니 그가 죽는 그 날까지 같이 있게 되었습니다.”
“…….”
“그는 우리와 생활하면서 틈틈이 무공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르쳐 준 건 하나의 내공심법과 검법, 그리고 보법이었지요. 그가 알려 준 내공심법은 다행히 저희가 익힌 내공심법과 충돌하지 않았습니다.”
“…….”
“뭐 솔직히 말하면 저나 단원이 익힌 내공심법이 토납법의 범주에서 아주 약간 진일보한 심법이라 무리가 없는 듯합니다. 안전하지만 축기가 더럽게 더딘… 하하. 다만 그런데도 저는 어릴 적 오래된 하수오를 먹은 적이 있어서 다른 이들보다 내공이 월등히 높았습니다.”
“…….”
“하수오 덕에 비록 작은 표국이지만, 어린 나이에 표두 노릇까지 할 수 있었던 거죠.”
주성진은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신의 지난 일이 생각났다.
어찌 되었든 자신도 기연을 얻지 못했다면 지금의 자리에 없었을 테니까…….
그 순간 이철용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그는 내공심법과 검법 그리고 보법을 가르쳐 주면서 처음엔 따로 익히라고 주문했습니다. 저희는 당연한 말이기에 그렇게 했었지요. 한데 1년이 지나고 나서 검법에 내공을 불어넣고 거기에다 보법까지 섞으니 파탄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
“그는 곧바로 종합 수련을 멈추라고 지시했어요. 아직은 시기상조라 하면서요. 제가 대표로 연유를 물으니 내공심법과 검법 그리고 보법은 자신이 기존의 것들을 참고해 직접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부조화의 가장 큰 원인이 검법에 있다고 했어요.”
“…….”
“자신이 가장 많이 차용한 것이 마교의 검법인데, 그 부분에 착오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원래 마교의 검법은 살기가 짙은 검법이지만 그가 차용했던 것이 그 정도가 심했다고 해요. 마음속에 상대를 죽이겠다는 살심이 가득 차야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데, 그걸 너무 간과했다고 하더라고요.”
“…….”
“애초에 그는 마공 대신 자신이 만든 내공심법과 일부 뜯어고친 초식이라면 살심이 없어도 최고의 검법을 펼칠 수 있을 거라 보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일부 수정해야 했어요.”
“…….”
“검법에 파탄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최소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두 배의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고요.”
주성진이 손을 들었다.
“그럼 그는 자신이 창안한 검법을 익히지 않은 건가요?”
“조금 익히긴 했는데 실전에서 써먹은 적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완성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하하, 대충 그림이 나오는 군요, 저와 비무를 원한 게…….”
이철용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습니다.”
* * *
“놈이 곧 만리장성을 넘을 모양이더군.”
“만리장성을 넘는다라…….”
칙칙한 실내 안에 네 명의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들 신분은 세외 살수 단체의 수장들이었는데, 원래는 한 뿌리였지만 지금은 각자 독립한 상태였다.
그들 조직은 각각 변황매, 변황난, 변황국, 변황죽으로 불리고 있었다.
지금 은밀히 모인 네 명의 인물, 개개인만 하더라도 세외 살수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이들로 지금까지 그들의 손에 죽은 자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음, 우리 4대 변황 살수단이 힘을 합쳐 천라지망을 펼치는 날이 올 줄이야. 돈으로 귀신을 부린다지만, 이런 날이 올지 몰랐군. 안 그런가?”
“크크. 의뢰인이 신분을 감추고 있지만 짐작하고도 남지, 의뢰인은 바로 동창이야.”
“그걸 모르는 바보가 여기 누가 있을까, 우리에게 쏟아부은 돈이 과히 천문학적이잖아. 물론 이 일에 성공해야 대다수를 받는 거지만, 우리 누구도 실패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걸…….”
일반적으로 살수에게 의뢰할 때는 계약금 2할, 성공 보수 8할이 관례였다.
하지만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었다.
또한 4대 변황 살수단은 각각 활동하는 지역이 다르지만, 독립한 이래 서로 경쟁하는 사이였다.
사실 활동하는 지역이 다르다고 하기에 애매한 구역이 많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영역은 반드시 깨지기 마련이었다.
세외 4대 살수단은 독립한 이래 수십 년 동안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계속해 왔다.
이는 의뢰자의 의뢰와 관계없는 그들끼리의 치열한 전쟁이었다.
그리고 큰돈을 가진 의뢰인들일수록 가까운 곳의 살수가 아니라 최고의 살수를 찾는 법이었고, 의뢰자인 동창은 때마침 세외에서 최고 살수단을 찾아낸 것이었다.
“자자. 과거의 은원들은 잠시 접어 두도록 하지.”
“이봐, 그렇지만 변황매에서 지난번 우리의 의뢰를 가로챈 것은 너무하지 않았나? 잠시 일로써 뭉쳤지만, 부하들의 앙금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고…….”
변황매의 단주가 짐짓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 그때 그 건은 유감스럽게 생각하네. 내가 마침 자리를 비우는 통에… 하지만 우리 누구도 돈에 자유로운 자는 없어. 어찌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그야 그렇지만, 너가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모른 척 한 것일까?”
“이봐, 내가 아니라고 하잖아. 억울하면 내가 했다는 증거를 가져와 보든지…….”
변황죽의 단주는 변황매의 단주를 죽일 듯이 차갑게 노려보았다.
“그래, 좋다. 나중에 증거를 발견하면 너를 뼈째로 갈아 마셔 주마.”
“호호, 만용 부리지 말게. 그러다 자다가 지옥으로 갈 수 있으니까 말이야.”
순간 변황난의 단주가 끼어들었다.
“이봐,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건 너희들의 은원을 해결하자는 게 아니야. 주성진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논의하는 자리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