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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192화 (192/250)

192화 새로운 상행 준비 (1)

“음, 궁내에서 자네를 질시하는 세력들이 자네를 죽이려 들 걸세. 그러니 조심하게…….”

주성진은 황제의 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휴, 올 게 왔구나. 내 그럴 것 같아서… 안 그래도 적의를 보이는 자들이 많았거든.’

한데 달리 생각하니 황제가 밉다.

‘뭐야 그런 정보력이 있으면 본인이 나서서 해결해 주면 되잖아…….’

주성진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불만을 겨우 잠재워야 했다.

“네, 알겠습니다.”

“후후, 자네의 표정을 보니 날 원망하는 것 같은데…….”

주성진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폐하.”

“세상엔 불가항력이란 게 존재하지. 그중의 하나가 황궁 내 음모와 암투야. 나라가 망하기까진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 발본색원하려 들었다간,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돼 버린다고… 대역죄가 아닌 이상은 그저 적당히 모른 척해야 하는 게 나의 처지인 것이야.”

주성진은 황제의 말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무슨 뜻으로 꺼낸 말인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황제의 말이 이어졌다.

“가령 신하들이 밉다고 그들을 모조리 죽인다면 나라가 돌아가겠나? 엉망이 되겠지… 또한 내부 암투는 적절한 선에서 필요악일 수도 있어. 그게 달리 보면 경쟁이거든. 경쟁이 없으면 발전이 없어. 역사적으로 봐도 진보는 경쟁의 산물이야…….”

“…….”

*     *     *

우여곡절 끝에 황궁을 나왔지만 주성진은 호남성 장사로 내려가지 못했다.

조선 사신단 합류를 위해 북경에 머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이는 갑자기 일정이 변경된 까닭 때문이었다.

공주를 통해 알아본 바로는 황제가 하루속히 조선과의 교역을 진행하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이는 조선에서 사 교역을 금지시킨 탓에 중원의 상단들이 황제에게 빗발치게 상소를 한 탓이 컸다.

그러다 보니 사신단이 두 나라 간 외교사를 논하는 원래의 의미는 퇴색하고 교역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나라에서 정한 최대인원은 5대 상단은 30명, 기타 상단은 15명이었기에 그에 맞추어 일행을 꾸며야 했다.

그리고 기타 상단이라 해서 모든 상단이 포함되는 것은 아니고 총 10개 상단이 선발되었다.

그렇기에 사신단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 상단이나 개개 상인들은 합류한 상단에 물품 구매를 간곡히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주성진은 호위 격으로 낭인회 소속의 배한나와 강국영 그리고 양은지를 대동하고 자신을 보좌할 상인으로 사천상단 북경 지부장과 그 휘하 상인 셋을 차출했다.

나머지 22명의 인원은 지원 인원으로 짐꾼 등이 망라되어 있었는데, 아직 선발하지는 않았다.

부랴부랴 주요 인원 구성을 마친 주성진은 점검을 위해 호위 격인 세 사람을 포함하여 상인들을 집합시켰다.

잠시 후 회의에 참여할 인원들이 모두 착석하자 주성진이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를 준비하느라 노고가 많으십니다. 음, 저는 자유롭게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니 눈치 보지 말고 기탄없이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낭인회의 세분도 경험이 풍부한 분들이니 상행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개진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자 제일 먼저 사천상단 북경 지부장이 손을 살짝 들었다.

그의 이름은 송명철이고 대행수신분이었다.

“말씀하시지요, 송 지부장님.”

“상단주님, 채색 비단 외에 다른 품목도 가져가고 싶은데요. 제 생각에는 말안장과 책이 어떨까 싶습니다만…….”

“조선에서 말안장과 책을 찾는 수요가 많다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타 상단도 이를 간과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송 대행수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제가 왜 그걸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저에게 나름의 방법이 있습니다. 저희 비단이 자타공인 최고로 인정받는 것처럼, 말안장과 책도 여느 상당 못지않게 최고로 꾸밀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 훨씬 경쟁력 있는 상품을 내놓을 수도 있겠습니다. 잘 만하면요…….”

주성진은 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 책이나 말안장은 잘 취급하지 않아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하여 다른 상단의 주력 품목을 따라잡거나 앞설 수 있다는 송 대행수의 말에 혹할 수밖에 없었다.

“하, 그래요? 그렇다고 해도 단가가 비싸면 안 될 텐데…….”

“제가 경쟁력 있는 상품이라 말한 이면에는 구매 단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적정가격에 맞출 수 있다고요! 다만 책은 주 상단주님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주성진은 자신을 가리켰다.

“저의 결단이 필요하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주 상단주님, 북경제일서점을 인수하십시오. 그곳 주인이 서점을 내놓은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매수자가 없는 상태입니다”

주성진은 인수 가격이 매우 비쌀 것이라 짐작했다.

안 그러면 타 상단이나 돈 있는 누군가가 벌써 매수 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왜냐면 북경제일서점은 누구라도 군침이 돌 만한 곳이었기에…….

‘북경제일서점! 중원에서 책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지. 나도 한번 가 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곳이야.’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는 건 무슨 이유가 있나요?”

“그게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곳에 고서적이 많이 있습니다. 한데 고서적 가격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부르는 탓이고. 두 번째는 북경제일서점에 딸린 인쇄소까지 인수해야 해서 그렇습니다…….”

주성진은 그의 말을 듣고 매수자가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특히나 고서적은 가치를 매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음, 문제인데…….’

“고서적을 비싼 가격에 사는 건은 저로서도 난감한 일인데요. 아시다시피 고서적의 가치라는 게 정해진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그걸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한다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주 상단주님! 서점을 여기로 옮기시지요. 그리고 그곳을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겁니다. 제 생각에는 음식점으로 바꾸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 안 그래도 북경 지부에 노는 땅을 어떻게 활용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서점을 옮겨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여기 위치가 북경제일서점 만큼 좋으니까요. 특히 대로변이라 접근성만큼은…….”

송 대행수는 주성진이 북경 지부의 노는 땅을 눈여겨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역시, 상재를 타고난 인물이야. 바쁜 와중에도 그런 것까지 관심이 있었다니.’

송 대행수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고서적 중에 일부는 무공서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상단주님의 전공이니 별로 가치가 없는 건 과감하게 가격을 낮추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잘되었군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 그 문제는 일단 넘어가고 인쇄소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아무래도 인쇄소가 이번 상행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만…….”

“하, 역시 대단하십니다. 사실 이번 상행만 국한해서 봤을 때는 값어치가 있는 것은 서점이 아니라 인쇄소입니다. 서점을 인수한다고 해서 그곳의 책을 굳이 수출용으로 쓸 이유가 없지요. 여기서도 잘 팔리는데 말입니다.”

순간 주성진은 뭔가 집히는 것이 있었다.

‘음, 인쇄한 책은 사실 나라의 독점물인데, 예외가 있더라도 나라의 허가 없이는 인쇄한 책을 찍어낼 수가 없지. 음, 그런데도 사야 할 이유가 있는 거라면…….’

“하하.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모양이군요. 빨리 말씀해 보시지요.”

송 대행수는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사실 인쇄소가 파리를 날리는 건 나라에서 북경제일서점에 더는 외주를 주지 않고 전량 직접 인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 상단주님이 힘을 쓰신다면 인쇄소는 다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습니다.”

“…….”

“영락제 이후 선대 황제까지만 해도 나라가 운영한 인쇄소와 함께 북경제일서점의 인쇄소가 같이 운영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황제 이후에 그 정책이 바뀌었죠. 제가 알기로는 동창에서 강한 입김을 넣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주성진은 동창이 거론되지 얼굴을 찌푸렸다.

‘아이고 또 동창이야. 허허 악연일세그려.’

“동창에서 왜 그런 거죠?”

“그야 북경제일서점이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서점의 주인장이 꼬장꼬장한 성격이라 고분고분 말을 듣지는 않았을 겁니다. 음, 여하튼 결국에 황제께서 동창의 의견을 받아들여 기존의 관례를 깨고 나라에서 직접 운영하라고 명하셨지요.”

“잠깐, 종전의 그 말은 서점 주인이 동창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송 대행수는 주성진을 잠시 응시했다.

증거도 없이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이 문제는 결단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저더러 힘을 써달라는 것 같군요.”

주성진에겐 강력한 우군인 공주가 있었다.

송 대행수는 그 점을 알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고.

사실 주성진과 공주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게 누가 소문을 퍼트렸는지 모르겠지만, 북경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하다못해 어린이까지…….

주성진은 육선문의 포쾌 중 누군가가 술에 취해 말을 흘렸지 않나 생각하고 있었지만, 공주나 황제가 일부러 소문을 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하,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이 문제만 해결되면 과거에 인쇄한 목판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에 기존에 출판된 책을 대량으로 찍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된다면 타 상단에 전혀 꿀리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능가할지도 모릅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낭인회의 세 사람은 딴에는 귀 기울여 열심히 듣고 있긴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하나 주성진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감을 잡았다.

‘오라, 나라에서 간행한 도서를 수출용으로 활용해 보자 그런 뜻이겠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습니다. 도서는 수요는 많지만, 항상 부족한 것이니 이번 조선 상행이 아니어도 다른 나라에 수출한다면 많은 돈을 벌 수 있겠지요. 음, 그런 측면에서 이번 일은 반드시 성사되도록 해야겠군요.”

“그렇습니다. 주 상단주님.”

“저,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오직 수출용으로만 활용하겠다고 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부탁을 받는 입장에서도 부담이 덜할 것 같거든요. 내수까지 다 하겠다고 하면 주변의 반발이 심할 것입니다.”

송 대행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는 진정으로 감복한 상태였다.

“역시 주 상단주님은 하나를 알면 열을 아시는 분입니다. 실은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주성진은 너무나 쉽게 공주의 힘을 빌리려는 자신을 보며 착잡한 심정에 빠졌다.

‘휴, 이것 참…….’

황제의 압박 때문에 인제 와서 공주와의 관계를 되돌리기엔 너무나 멀리 가 버렸다고 자신을 스스로 합리화하려 해 보지만,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인간의 마음은 갈대라고 하더니만 꼭 나를 지칭하는 말이로다…….’

차후 걱정거리는 강설현이 이 일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이냐는 거였다.

‘휴, 아마 길길이 날뛰겠지. 아 그러고 보니 배한나도 문제군…….’

주성진은 공주의 일로 배한나에게 잔뜩 눈총을 받는 중이었다.

그녀가 왜 시샘을 하는지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었다.

‘아, 모르겠다. 일단은 조선 사신단에 집중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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