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황궁무림대회 (15)
황제는 많이 이들이 운집하자, 자신의 수신호위를 불러냈다.
“준비되었소?”
“네, 폐하!”
“아, 그들도 데려왔소이까?”
“네, 그렇습니다.”
황제는 고개를 돌려 만인을 향해 소리쳤다.
“주성진과 대결할 인물은 내 수신호위요. 그전에 여흥을 북돋우기 위해 내 수신호위가 맛보기로 대결을 펼칠 것이오.”
알려지지 않았던 최종 비무자가 공개된 순간이었다.
황제가 주성진의 상대로 수신호위를 지명하자, 금의위 수장은 남모르게 곤혹스러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이런, 예상은 했다지만…….’
사실 수신호위가 금의위 출신은 맞지만 이미 금의위를 떠난 지 오래된 인물이였다.
그렇기에 그를 마냥 금의위 사람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만일 수신호위가 주성진을 이기기라도 한다면…….’
금의위 수장이 걱정하는 건 자신의 안위였다.
그가 황제의 신임을 듬뿍 받고는 자신을 밀어내 금의위 수장으로 영전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런 제길. 내가 주성진을 응원하게 생겼구나… 수신호위 그놈은 야심을 숨기고 있는 놈인데…….’
이때 금의위 수장, 못지않게 기분이 매우 언짢은 인물이 둘이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동창 첩형과 주성진이었다.
동창 첩형은 부하의 긴급 보고를 받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그건 바로 산검산장이 불타 없어지고 많은 시신이 재로 남았다는 보고 때문이었다.
‘미치겠군, 도대체 어떤 놈이야!’
그는 재로 남은 시신이 자신의 수족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욱더 마음이 쓰라린 건 독심호리의 행방불명이었다.
‘하필 독심호리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니, 그놈은 없어서는 안 될 놈인데. 아 돌아 버리겠군…….’
한편 연무장 옆 대기실에서 있던 주성진은 여전히 공력의 절반을 끌어올릴 수 없자, 초조감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내가 마비산을 우습게 보았구나. 어떡하나, 절반의 공력으로는 이기어검을 제대로 구사할 수 없는데, 음 무슨 방법이 없을까…….’
주성진의 원래 계획은 마지막 대결을 자신의 성명절기 이기어검으로 장식하려 한 거였다.
연무장에 나와 있어야 할 주성진이 모습을 보이지 않자, 공주가 몸소 대기실을 찾아왔다.
“들어가도 되죠?”
“아, 네 공주님, 들어오십시오.”
공주가 주성진의 안색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대결 상대는 들었죠?”
“네. 여기서 황제 폐하의 말씀은 들었습니다.”
공주는 황제가 행차한 연무장에, 모습을 비추지 않은 주성진을 책망하는 대신 다른 말로 그의 잘못을 일깨웠다.
“수신호위의 무위를 탐색할 기회인데 안 나와 봐도 되는 건가요?”
“아, 그렇군요, 나가겠습니다.”
“음, 한데 무슨 문제가 있나요? 얼굴이 수심에 싸여 있는 것 같은데…….”
공주는 주성진의 미묘한 얼굴 변화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주성진은 사실대로 고하기로 했다.
“실은 제가 좀 전 경공 시합 도중에 마비산에 중독되었습니다.”
공주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녀는 금의위와 동창이 사용하는 군자산과 신선폐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그걸 왜 여태 이야기하지 않은 건가요?”
“죄송합니다, 곧 내공이 회복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 혹 그 주머니가?”
공주는 누각에서 주머니가 두 개가 주성진의 머리 위로 떠 오른 것을 보았다.
하지만 거리상 무채색에 가까운 분말의 존재를 제대로 인지하지는 못했다.
다만 그 순간 왜 주머니를 던졌을까 의아하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나 의아한 생각도 잠시, 주성진이 동창와 금의위의 무인들을 물리치자 더는 그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는데…….
“네, 그렇습니다.”
“그들이 뭐라 하지 않던가요?”
“했었습니다만… 내공의 절반은 살아 있었기에 무시했었습니다.”
공주는 콧잔등을 찡그리다가 품속에서 하얀 옥병을 꺼냈다.
옥병은 가늘고 길쭉한 형태였는데 마개가 밀랍으로 단단히 밀봉되어 있었다.
“비상시에 먹으려는 가지고 있었는데… 어서 먹어요.”
“공주님 그게 뭡니까?”
“공청 석유 3방울이에요.”
주성진은 손을 거세게 흔들었다.
“아니, 그 귀한 것을… 괜찮습니다, 공주님! 넣어 두세요.”
공청 석유는 공력 증진에 크게 도움 되는 영약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 기사회생의 묘약이었다.
만일 공청 석유 3방울을 복용한다면 죽은 자도 벌떡 일어나 걷는다는 게 인구에 회자되고 있었다.
공주는 주성진이 강하게 거절하자 순간 달콤한 생각이 들었다.
‘주성진이 나의 안위를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이게 바로 사랑의 신호탄이지, 뭐겠어. 호호.’
“시간 없으니 빨리 먹어요. 난 다시 구하면 되니까. 황궁에 공청석유가 아직 스무 방울도 더 남아 있다고요. 아버지께 잘 이야기하면 문제없어요!”
“정말이죠? 공주님!”
“그렇다니까요. 빨리 먹고 차분히 운기조식이나 해요. 수신호위의 번외 비무를 보는 건 생략하기로 하고요.”
주성진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주성진이 운기조식을 하는 사이 번외 비무가 시작되었다.
와아아!
지켜보는 관중들의 호응이 연무장을 뜨겁게 달군다.
수신호위가 상대하는 이들이 다수여서 비무대를 사용하긴 어려웠다.
수신호위는 황제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보무당당하게 연무장 중앙으로 향했다.
저벅저벅!
그의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강한 패기가 흘러나와 빠르게 대지를 잠식해 갔다.
그는 거칠 것도 망설일 것도 없었다.
굳이 자신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수신호위의 몸에서 실타래처럼 기운이 풀려나와 사방으로 뻗쳐 나갔다.
수신호위는 그를 포위한 무인들을 보며 생각했다.
‘관중들에는 미안하지만, 내 신위를 바로 드러내야겠어, 황제가 재미없다고 투덜거릴 수도 있겠지만 그건 잠시일 뿐이야. 황제에게 나의 무위가 강하게 각인되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고!’
순간, 포위한 자들의 몸에서는 살벌한 기세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정작 수신호위는 그들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가 입을 열었다.
“뭐해, 먼저 공격하라고!”
“제2 수호대, 공격해!”
제2 수호대는 황태자의 호위 무사들이었다.
아직 나이 어린 황태자를 위한 자들로 특별히 황제가 지시해 엄격한 심사를 통해 외부에서 발탁했다.
그 탓에 대내에서 선발한 원래의 수호대는 명칭을 제1수호대로 바꾸게 되었다.
그들은 영입된 지 한 달이 채 안 된 자들이었기에 어쩌면 황제가 그들의 무위를 살피기 위해서 호출했을 수도 있었다.
제2수호대의 대장이 외치자, 수신호위를 포위한 자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라락!
옷 스치는 소리와 함께 검에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수신호위를 향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오라, 저 녀석들 모두 검기상인의 경지에 입문했구나. 폐하께서 어린 황태자를 위해 많이 신경 썼는데…….’
수신호위의 몸체가 금방이라도 검기에 난도질당할 것 같았다.
우우웅!
바로 그때 수신호위의 흑색 장포가 크게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회색빛 기운이 흘러나와 그의 몸을 휘감았다.
곧이어 회색의 기운은 반투명한 구체로 변해 수신호위의 전신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사실 말이 쉽지 몸속 기운을 외형화 할 수 있는 자는 무림에서 절대 흔치 않았다.
금의위 수장은 수신호위의 모습을 보며 강한 경계감을 드러냈다.
‘저 녀석의 경지가 나와 필적하는구나. 도대체 어찌 저리 강해진 거야…….’
금의위 수장의 눈에는 수신호위에게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제2수호대의 말로가 보이는 듯했다.
한편 몸에서 천불이 나고 있는 동창의 제독도 잠시 화를 누르고 수신호위를 살피고 있었다.
‘음, 소문대로 무공이 상당히 강하군… 앞으로 저 녀석을 눈여겨 봐야겠어.’
쿠와아앙!
“크헉!”
“억!”
굉음과 함께 쇄도하던 제2수신대의 무인들이 일제히 뒤로 튕겨 나왔다.
그들이 애써 만들어 낸 검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장을 제외한 나머지 대원들은 내상을 입은 듯 입가에서 선혈이 흘러내렸다.
‘뭐야. 반탄강기?!’
‘반탄강기다!’
금의위 수장과 동창의 제독이 소리죽여 외치며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열심히 수신호위의 무위를 살피던 공주의 표정도 과히 좋지 않았다.
‘아버님의 수신호위가 저리 강했단 말인가. 나에게는 사람 좋은 아저씨였는데…….’
제2수신대의 대장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동자는 불신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반탄경기라고?! 믿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무공의 경지를 나누는 것이 대략적인 분류는 될 수는 있겠지만,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낮은 경지에 분류된 무인들이 그날의 상황에 따라서 높은 경지에 이른 무인들을 이기는 일이 심상치 않게 일어나는 곳이 강호였기에…….
하지만 그런데도 굳이 서열 나누기 좋아하는 강호인들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보는 경지가 있었다.
그게 바로 초절정 이상의 경지였다.
초절정에 이른 자들은 기를 유형화해서 자유자재로 강력한 강기막을 만들 수 있었다.
비단 그것뿐이 아니었다.
단순히 방어로 끝내는 게 아니라 상대가 공격한 힘을 배가시켜 피해를 되돌려 주는 방법이 탄생했고 그것이 바로 수신호위가 시전한 반탄강기였다.
제2수신대의 대장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수신호위는 자신들의 수준으로 감히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황제가 보는 앞에서 무기력하게 물러날 수는 없었다.
‘후…….’
제2수신대 대장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음을 깨달았다.
반탄강기에 당한 부하들은 내장이 진탕됐는지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손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항복해야 할 판이다.
순간, 제2수신대 대장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 역시 강호에서 살아가는 무인.
‘좋다. 나라도 붙어 보자.’
패배가 두렵다고 자꾸 물러서다 보면 종국에 설 자리를 잃게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싸우기로 했다.
제2수신대 대장은 검으로 수신호위를 겨눴다.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기백이 공기를 타고 수신호위에게 전해졌다.
‘후후, 기백은 좋네.’
“와라! 옥영훈 대장!”
“가겠습니다.”
“야합!”
옥영훈이 수신호위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랫 동안 갈고닦은 자신의 검초가 그의 손에서 펼쳐졌다.
부챗살처럼 붉은 검기가 수신호위를 휩쓸어 갔다.
우웅!
주인의 절박한 심정을 읽기라도 한 듯 옥영훈의 검이 울음을 토해 냈다.
검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자 수신호위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좋구나!”
검을 울게 했다면 그 역시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줘야 했다.
하여 수신호위는 무위를 낮추려 대결하려는 생각을 급히 바꾸었다.
수신호위는 옥영훈을 향해 몸을 날렸다.
휘류류!
일진광풍이 불었다.
그의 몸을 둘러싼 반탄강기가 회전하면서 회오리를 일으킨 것이다.
쿠콰쾅!
폭풍이 휘몰아치고 옷이 갈기갈기 찢긴 신형 하나가 뒤로 튕겨 나갔다.
‘으음……!’
찢어진 옷 사이로 여기저기 혈흔이 드러났다.
하지만 밀려난 이의 표정은 이내 밝았다.
‘최선을 다했어. 고로 나는 만족한다.’
옥영훈은 수신호위를 보며 포권했다.
“많이 배웠습니다. 선배님!”
“좀 더 노력해 봐, 다시 도전해 봐야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