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황궁무림대회 (14)
바로 그 순간 강 무관의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들었고 이에 호응하듯 등 첩형도 기합을 터트렸다.
“얍!”
“야핫!”
주성진은 자신을 향해 두 사람이 달려들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쯧쯧, 불나방이 따로 없군. 하긴 저들이 스스로 패배를 선언하길 기다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야. 차라리 잘되었어, 한꺼번에 처리하자.’
주성진은 두 사람이 좀 더 가까이 오길 기다렸다.
그들이 공격하는 순간을 노려 역공을 취할 생각이었다.
‘먼저 창을 막고 그다음 검을 막자고, 아무래도 창이 더 기니까.’
삼 장, 이 장, 일 장…….
양쪽에서 그들이 점점 거리를 좁혀 왔고. 주성진은 검을 들어 양측의 무기를 잘라 버리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드디어 주성진이 바라던 순간이 도래하였다.
그들이 창과 검으로 주성진의 향해 공격해 들어오고 있었다.
쐐애액!
‘지금이다.’
주성진의 검이 꿈틀거렸다.
한데 그 순간.
‘뭐야?!’
그들이 순간 방향을 틀었고 동시에 그들은 왼손으로 뭔가를 움켜쥐더니, 이내 하늘을 향해 던져 버렸다.
‘암기다! 그런데?’
주성진은 양측에서 쏜 암기가 자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라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자 순간 당황했다.
‘뭐지? 설마 기운으로 암기를 조정하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그들의 무공을 높이 쳐주어도…….
한데 그러고 보니 암기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날아오는 게 둘 다, 작은 주머니 같은 거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주성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혹 전설의 독 모래……!’
주성진은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독 모래가 너무나 악독한 암기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음, 닿기만 하면 바로 중독되어, 순식간에 한 줌의 고름으로 변한다는 바로 그것…….’
특히나 독 모래는 대량 살상이 용이하기에, 예로부터 사용하는 자는 무림 공적에 처해졌다.
눈 깜짝할 사이, 주성진은 고민했다.
피할 것인가 아니면 막을 것인가를…….
아무리 본인이 독에 내성이 있다고 하지만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자!’
답은 곧바로 정해졌다.
피하기엔 독 모래의 살포 범위가 가늠이 안 되었다.
자신의 경공보다 독 모래의 살포 범위가 광범위하다면, 이는 부처님 손바닥에서 노는 손오공 꼴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문제가 있었다.
혹여나 피한다고 인공 호수에 풍덩 빠지기라도 한다면 그건 바로 실격이었다.
‘검막을 처야겠다, 물샐틈없이 촘촘하게……!’
주성진은 공중을 바라보며 검을 풍차처럼 돌리기 시작했다.
순간 그들의 움직임을 포착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이상한데, 아무리 독 모레의 살상 범위가 넓다고 해도 저들이 저렇게 멀리 물러난다고?!’
지금 암기를 던진 자들은 주성진의 곁을 멀찍이 벗어나 기다란 바위의 양 끝단에 가 있었다.
‘에이 모르겠다. 그들이 던진 암기에만 집중하자고!’
부우웅!
검막이 쉼 없이 돌아간다.
이제는 주머니의 끈이 저절로 풀리면서 독 모레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하지만 정작 시간이 지나 떨어지는 건 그가 예상한 독 모레가 아니었다.
‘뭐야, 저건!’
떨어지고 있는 건 완전치는 않으나 무채색에 가까운 분말이었다.
공력이 일정 수준 이상인 무인이 아니라면 쉽사리 그 존재를 알아차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주성진은 열심히 검을 돌리고 있었지만 내심 뭔가가 찜찜했다.
‘음, 저 분말은 독 모레보다 훨씬 가벼워, 그렇다는 건…….’
그때였다.
‘휘이잉!’
‘아, 안돼, 하필 바람이 이때 불다니…….’
순간 주성진의 코가 간질거렸다.
에취!
재채기를 한 주성진은 순간 자신의 콧속으로 미량의 부유물이 들어왔음을 알아챘다.
‘이런! 바람 때문에 분말들이 코로 들어왔어…….’
주성진은 씁쓰름했다.
검막의 방어막 밖에서 부유한 분말들이 때마침 불어온 바람을 타고 자신의 코로 들어온 거였다.
운 나쁘게…….
이 결과는 주머니를 던진 두 사람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주성진의 검막이 완벽에 가까웠기에 그들의 계획이 수포가 되는가 했다.
한데 적절한 시기에 바람이 불어온 것이다…….
주성진이 재채기를 하자 두 사람은 환호했고, 그 즉시 바위 양쪽 끝단에서 출발해 주성진을 향해 다가왔다.
주성진은 그들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혹시나 해서 공력을 끌어올려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잘 모이지 않았다.
‘제길, 당했군!’
대략 절반 정도의 공력이 그 짧은 순간 무력화된 거였다.
주성진은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비겁한 술수를 쓰다니, 부끄럽지 않소?”
등 첩형이 비웃음을 흘렸다.
“흥, 애초 당신 같은 자가 대회에 참가하면 안 되었어. 안 그래?”
“뭐라, 당신 같은 자라고. 말이 좀 짧소이다.”
“후후, 나이 어린 친구 한때 하대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지. 그리고 말이야,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텐데…….”
주성진이 그를 노려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얻어터지기 싫으면 주절대지 말고 깨끗이 항복하라는 말이다.”
주성진의 화가 폭발했다.
“이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그 순간 강 무관이 비아냥거리며 끼어들었다.
“하하, 공력도 없는 자가 큰소리는? 셋을 셀 동안 호수로 뛰어들어, 안 그러면 온몸에 피멍이 들게 만들아 줄 테니까.”
“오라, 네놈이 실토하는 군. 주머니 속에 든 게 뭐지?”
“마비산이다. 어쩔래? 그리고 말이야, 마비산은 극독이 아니기에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어.”
주성진이 검을 들어 올렸다.
“셋을 셀 필요도 없다, 두 놈이 한꺼번에 덤벼라. 아주 결딴을 내줄 테니까.”
“대단한 허풍이군. 뭐 기어이 벌주를 마시겠다면야 그렇게 해 주지.”
바로 그때 주성진이 신형이 흐릿해졌다.
그리곤 벼락같이 강 무관에 다가간 주성진이 검을 내리쳤다.
순간 당황한 강 무관이 급히 창을 내밀었다.
그는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분명 군자산과 신선폐를 들이마셨는데…….’
주성진이 들이마신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의 전 공력 중 절반만이 활동하지 못할 뿐, 나머지 절반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절반만 해도 세상을 오시할 엄청난 공력이었다.
거기에 보검까지 들고 있으니…….
스각……!
강 무관은 경악했다.
‘아악, 내 창이 반 토막이 나다니, 이럴 수가…….’
바로 그 순간 눈 앞에 손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짝!
찰진 소리와 함께 강 무관의 뺨이 홱 돌아간다.
크윽!
그리곤 곧바로 그 충격에 흐물흐물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흥!’
주성진은 기세를 몰아 등 첩형에게 달려갔다.
너무 갑작스러운 순간이라 상황파악이 되지 않던 등 첩형은 엉겁결에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검 역시 반 토막이 나고 곧이어 복부에 심한 충격이 밀려들었다.
퍽!
크윽!
그는 오만상을 찡그리며 엉덩방아를 찧더니, 그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많이 봐 주었다. 자식들아!”
주성진은 그 둘과 일별하고는 걸음을 옮겨 좀 전 대결 중에 발견한 화살을 바위에서 뽑아냈다.
“얍!”
워낙 깊숙이 박힌 화살이라 내공을 쓰지 않고선 어림도 없었다.
‘휴, 다 끝났군. 이제 황제를 보러 가면 되는 건가?’
한데 그때였다.
별안간 인공 호수 속으로부터 시커먼 그림자들이 벼락처럼 쭈욱 솟구치는 것이 아닌가!
‘아차, 함정이라는 게 바로 저것이로구나!’
쉬이익!
그들은 체공 상태에서 무언가를 힘차게 뿌려 댔다.
‘이런, 또 암기야……!’
주성진은 투덜대면서도, 침착하게 검을 휘저었다.
따따다다당!
새파란 불꽃을 튀기며 바닥으로 떨어진 것들은 불가사리 모양의 날붙이들이었다.
주성진이 암기를 쳐내는 틈을 타 바위 위로 착지한 자들은 검은 복면을 뒤집어쓴 아홉 명의 무인들이었다.
“하하. 이거 살살 합시다.”
그들은 일언반구 대구도 없이 폭이 좁고 기다란 칼을 뽑아 거침없이 공격해 왔다.
‘저건 협봉검!’
까가가강! 깡깡!
격렬한 격돌이 숨 쉴 틈 없이 이루어졌다.
그들은 완벽한 합격술로 주성진을 상대하고 있었다.
주성진은 쉼 없이 검을 놀리면서, 고개를 미미하게 끄떡였다.
‘음. 잘 짜인 검진이다. 저들은 심지어 공중까지 봉쇄하고 있어. 아!’
바로 그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게 있었다.
‘아하. 그렇군, 이들은 경공 고수들을 상대하려는 비장의 수였구나!’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한 주성진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후후. 내게 쓰러진 두 놈을 상대하기엔 부족함이 없어. 하지만 나는 나라니까…….’
주성진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들었다.
‘저들만 암기가 있는 것이 아니지…….’
주성진은 평소에 암기로 쓰려고 동전 3개를 항시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있었다.
‘자. 그럼 각각의 동전으로 세 명을 상대하면 되겠어!’
주성진은 슬그머니 왼손을 주머니에 집어넣더니 돌연 3개의 동전을 홱 뿌렸다.
동전은 마치 눈이 달린 듯, 좌측, 우측, 그리고 공중까지 3개의 방향으로 사라졌다.
휘익……!
주성진의 좌측에서 동전을 처음으로 본 자가 놀라, 빠르게 보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나 그가 피하기도 전에 동전은 그자의 왼쪽 무릎을 스쳐 지나갔다.
“큭!”
뼛속 깊이 스며든 통증에 그가 신음을 토해 냈다.
그러곤 더는 서 있을 수 없는지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사실 주성진이 날린 동전엔 강한 암경이 남아 있었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무릎 뼈 자체를 박살을 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동전은 방향을 선회했다.
“으악, 으악!”
연속적으로 동전에 무릎을 얻어맞는 자들 역시 똑같이 신형을 휘청거리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 순간 우측과 공중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으아악……”
삽시간에 9명의 복면인을 무력화시킨 주성진은 쪽배를 타러 걸음을 옮겼다.
마음만 먹으면 경공으로 누각까지 날아갈 수도 있었으나, 그건 실례인 것 같아 마음을 고쳐먹은 거였다.
잠시 후 누각에 도착한 주성진은 오로지 눈길을 황제에게만 주며 공손히 화살을 바쳤다.
“여기 있사옵니다. 폐하.”
“후후, 수고했다. 조금 있다가 몸을 또 써야 할 터이니 이만 물러가서 쉬어라. 아, 너와 단둘이 술을 마시는 건 그 이후에 하마. 물론 비무를 이겨야겠지만…….”
주성진은 고개를 조아리며 말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황제 앞에서 토를 다는 건 장사를 포기하고 영원히 무림으로 돌아간다는 결심이 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제길 마지막까지 무예를 겨루게 생겼네.’
그는 돌아서며 관리들의 시샘 어린 눈빛과 마주했다.
‘하하, 저 눈빛들은… 내가 황제와 술을 마신다고 저러는 모양이네. 하긴, 황궁에서 단둘이서 술 마시는 게 쉬운 게 아니겠지…….’
황제의 변덕인지 갑작스레 금의위 연무장에 새로이 비무대가 설치되었다.
금의위 연무장은 황궁 외곽에 있었는데, 그 규모가 황궁 내 여느 연무장보다 가장 컸다.
황제가 그곳에 비무대를 설치한 건 황궁 내 모든 이들이 구경토록 한 배려로 생각될 수 있었다.
하지만 양이 있으면 음도 있는 법.
부랴부랴 제 시간 내에 비무장과 간이 관람석을 설치하느라 죽도록 고생한 이들이 있었고, 하던 일을 멈추고 반강제적으로 불려 나온 이들도 있었다.
일을 중단하고 억지로 나온 이들은 비무를 보기 위한 설렘보다는 돌아가서 밀린 일을 해야 하는 중압감이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