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황궁무림대회 (11)
“잘 들었소이다. 그럼 소저도 낭인회 본부에서 자주 무예를 겨뤘소이까?”
“그럼요, 덕분에 실전 무예를 몸으로 많이 익혔지요. 낭인회주의 조언도 많이 들었고요.”
“하하, 낭인회주가 그대를 많이 귀여워했을 것 같소이다. 하하.”
그녀가 생긋 웃는다.
“그건 맞아요. 그래서 타 낭인들에게 질투를 좀 많이 받긴 했어요. 호호.”
“아. 낭인회주의 나이를 다들 잘 모른다는데 혹 그대는 아시오?”
“정확히는 잘 몰라요. 제 의견을 말한다면 50대가 아닐까 싶어요. 다만 용모는 40대로 보이지만요.”
주성진의 생각에는 50대보다는 더 위일 것 같았다.
그러다 다른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가만 그녀를 데리고 황궁 무림 대회에 간다면… 잘하면 가능하겠는데? 그녀가 같이 가 준다면 내 부담이 줄고 일이 좀 쉬워질 것 같아. 아무래도 여자이다 보니 관심도 많이 받을 것이고, 게다가 그녀의 내공 심법도 특이하잖아…….’
“음. 그렇구려. 그런데 소저, 황궁 무림 대회를 구경하고 싶소?”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럼요. 언제 제가 그런 진기한 구경을 해 보겠어요. 게다가 제가 건축물에 관심이 많은데, 황궁의 전각들을 몸소 보고 느끼고 싶어요.”
주성진은 그녀가 건축에 관심이 많은지는 몰랐다.
“건축에 관심이 많다고요?”
“네. 이상한가요?”
주성진은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요. 너무 의외라서…….”
“저도 꿈이 있다고요. 돈을 많이 벌면 멋있는 집을 직접 지어 보고 싶어요. 마교에서는 과거 집을 전문적으로 짓는 무인들이 있었죠. 그들이 남긴 건축 기법과 각종 기술을 책으로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그들의 조언이 있었어요.”
“…….”
“그게 뭐냐면 황궁보다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물은 없다. 그러니 꼭 한번 눈으로 보길 바란다 라고요.”
주성진은 무인이 집을 지으면 빨리는 지을 것 같았다. 다른 건 잘 모르겠고…….
‘하하. 그야말로 생활 무공이네. 이참에 나도 건축 사업에 뛰어들어 볼까?’
생각해보니 괜찮은 생각 같았다.
‘그래. 그녀 덕분에 좋은 사업 거리를 찾았구나. 우선 중원 각지의 좋은 곳에 땅을 사 두어야겠군. 거기에다 그녀 말처럼 내공을 익힌 토목공들을 양성한다면 집을 빨리 지을 수 있겠어.’
주성진은 히죽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저. 전에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인데, 내가 좀 이름이 알려져서 소저를 황궁 내에 들일 수 있을 것 같소이다. 다만 그 방법이 좀 이색적이오. 그대가 빙공을 펼쳐서 물을 얼려 주어야 할 것 같소. 황제와 황실의 인물들을 위해서 말이오.”
그녀가 살짝 주성진을 노려보았다.
그렇다고 화가 난 건 아니었다.
“뭐, 저더러 빙당호로라도 만들라는 것인가요?”
“말하자면 그렇소. 실은 얼음을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였소. 사실 이 일은 내가 하려고 한 일인데, 아무래도 그대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소이다. 하하.”
배한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깐만요 방금 그 말은 빙공을 시전 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정통 빙공은 아니고, 실은 내가 음양오행의 원리를 이용해 내공의 성질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이 있소이다. 그래서 가능한 것이오.”
배한나는 주성진이 도무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저 사람 뭐지. 그럼 마음만 먹으면 열화공도 가능하다는 이야기 아냐…….’
“대단하군요. 비결이 뭔가요?”
“음, 일단은 내공이 아주 높아야 하오. 그런 다음에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지. 일종의 깨달음 같은 것…….”
“아, 그렇군요. 그럼 제가 얼음을 만들겠어요. 기왕이면 빙당호로도 같이 말이죠.”
주성진은 환하게 미소지었다.
“잘 생각했소. 그리고 이건 혹시 실망할까 봐 미리 말하는 것인데, 황궁 무림 대회가 사실 황궁의 3대 특무 세력. 그러니까 동창, 금의위, 육선문에게는 질 수 없는 한판의 자존심 싸움인 건 이미 알 것이오. 하지만 주 관객이 누구인지 유념할 필요가 있소이다.”
“…….”
“아마 딱 감이 올 것이오. 주 관객은 바로 황제요.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비무는 우선 그의 눈에 들어야 한다는 말이요. 그래서 비무를 하더라도 화려하면서 큰 동작 위주로 흥미를 유발할 필요가 있소. 안 그러면 황제는 연신 하품만 할 테니까…….”
배한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그러면 비무에 승리하고도 황제에게 좋은 평가를 못 받을 수도 있겠군요. 잘 알겠어요, 한데 왜 제가 실망한다고 보는 거죠? 전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하하, 그 긍정적 태도 참 훌륭하오. 그리고 한 가지 더. 비무를 하기 전에 황제 앞에서 온갖 재주를 펼쳐야 하오. 가령 굵은 나무를 반 토막 낸다든지, 뭐 그런 것… 사실 나도 얼마 전에 이 사실을 알았소이다.”
“그러니까 눈에 확 띄는 것을 펼쳐야 한다는 거군요. 음 그럼 주 상단주님은 황제 앞에서 시범을 보인다면 뭘 할 생각인가요?”
주성진은 빙긋이 웃었다.
“원래는 아까 말한 빙공을 차용하려 했소. 하지만 그대에게 그 일을 맡겼으니, 나는 열화공을 선보일 것이외다. 쇠 대야에 물을 팔팔 끓여 수증기를 내뿜게 하면 어떨까 생각 중이오.”
“어머,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그게 뭐요?”
주성진은 살짝 불안했다.
배한나의 눈빛이 순간 악동처럼 빛났기 때문이었다.
“그게 뭐냐면, 바로 입으로 불을 내뿜는 것이죠. 전설의 용처럼 말이죠…….”
“나더러 저잣거리 광대들이나 하는 불놀이를 하라는 거요?”
“잔재주가 아니라 진짜로 불을 일으켜 불놀이를 하는 거죠. 아주 거대한 불이 하늘에 치솟으면 황제가 벌떡 일어나서 좋아할 것 같은데요. 거기에 불꽃 모양이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보이면 금상첨화겠죠, 호호호.”
주성진은 살짝 그녀를 째려보았다.
“좋소, 그렇게 하겠소. 아, 혹시 모르는 일인데 비무 참가자들이 남자들이라서 그대가 번외로 참여할지도 모르겠소.”
“그거 거짓말이죠?”
“거짓말은 아니고 내가 건의하면 그렇게 될 것 같소이다. 황제도 남녀의 성 대결이라면 특별히 관심 있어 할지 모르니까.”
“호호. 그러면 저는 옷을 짧게 입어야 할 것 같군요. 미끈한 다리가 드러날 수 있도록…….”
주성진은 깜짝 놀랐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는데…….”
“왜요, 남자들이 좋아할 것 같은데, 호호.”
“음, 너무 티 나게는 하지 맙시다. 그건 그렇고 어떤 무공을 펼칠 것이오?”
비무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그녀의 표정이 돌연 진지해졌다.
전형적인 무인의 얼굴로 돌아간 것이다.
“제가 여러 사부가 있다고 말했잖아요. 그분들은 사실 가문의 고수들은 아니고 빙룡가의 여인들과 결혼한 분들이에요. 그중에서 한 분의 절기가 쌍 부채 술이에요. 저는 그걸 펼치고 싶어요.”
“음, 부채라… 화려해서 좋을 것 같긴 한데, 그러려면 좋은 부채가 필요할 듯한데.”
“그거야 구해 주셔야죠, 기왕이면 아주 비싼 걸로. 호호.”
* * *
황궁 무림 대회 전날 오후, 주성진은 육선문의 왕천유와 역산도를 데리고 북경반점에 도착했다.
새로 생긴 북경반점은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오리 구이를 잘하는 맛집으로 명성을 떨쳤다.
주성진이 굳이 가까운 곳을 마다하고 멀리까지 그들을 데리고 북경반점을 찾은 이유는 훈련에 지친 그들의 몸보신을 위해서였다.
자리를 잡은 그들은 오리구이 특을 주문하고는 이야기꽃을 피워 나갔다.
“이봐, 그거 알아. 황궁 무림 대회에 왜 육선문의 포쾌들이 참여하게 되었는지?”
왕천유의 말에 주성진과 역산도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다 아는 이야기를 뜬금없이 말하는 게 이상해서였다.
역산도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이봐, 다 아는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꺼내, 황제 폐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한 것 아냐, 물론 밑에서 동창과 금의위의 입김이 들어갔겠지만…….”
“친구,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사실은 공주님의 입김이 들어갔다고 하더군.”
“뭐라, 공주님이…….”
최근 들어 육선문과 부쩍 친하게 지내는 공주였기에 역산도는 그 소리에 일종의 배신감마저 들었다.
역산도가 얼굴을 찡그리며 툴툴거렸다.
“객관적으로 열세인 우리를 끌어들인 게 공주님이란 말이지, 만일 주 상단주가 합류하지 않았다면 우린 꼴찌가 떼 놓은 당상이었다고! 이거 우리를 물 먹이려고 그런 거 아냐?”
“자자, 흥분은 금물. 내 말을 들어보라고. 황제 폐하께 육선문을 끌어들였다면,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이유는 무슨… 불철주야 고생하는 우리를 위로하기는커녕 저잣거리 광대 취급한 거잖아. 무슨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불순한 의도가 담겨 있는 거라고!”
주성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내가 말해도 되겠소이까?”
“아, 그러시오.”
“해 보시오.”
두 사람이 동의하자 곧바로 주성진이 입을 열었다.
“전통적으로 금의위와 동창은 서로 경원시하는 관계인데, 거기에 더해 둘 사이의 비무로 양측 사이의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면 이건 황제 폐하께 결코 좋은 일이 아닐 것이오. 사사건건 부딪칠 것이고 자칫 그로 인해 황궁 내 피바람이 불지도 모를 일이지.”
“…….”
“해서 공주께서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육선문을 합류시킨 거 아니겠소……?”
그러자 역산도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 그렇게 깊이 뜻이… 라고 할 줄 알았소이까? 한마디로 흥이올시다. 결국 둘 사이의 앙금이 더 나빠지는 걸 막기 위해 육선문을 끌어들인 건 아니오. 안 그렇소?”
“허허, 소림사로 돌아가실 분이 왜 이리 성질이 급한 것인지. 내 말이 끝나지 않았소. 마저 들어 보시오.”
주성진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재차 입을 열었다.
“공주의 진정한 의도는 육선문을 비무에 참여시켜서 황제 폐하에게 그곳의 존재감을 고취시키려 했던 것 같소. 비무에서 비슷하게 승패를 나누어 가진다면 금의위와 동창이야 좋아하지 않겠지만, 상대적인 열세인 육선문은 오히려 황궁 내에서 명성이 높아지게 되는 셈 아니오?”
“…….”
“난, 아마 육선문의 고위층과 공주님이 사전에 이 일로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고 생각하오. 공주의 처지에서는 육선문을 우호 세력으로 두는 것이고, 육선문은 그간 금의위와 동창 사이에 끼인 존재가 아니라 당당히 그들과 어깨를 겨루는 세력으로 부상하는 것이지.”
역산도는 여전히 불신의 빛으로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아니, 고수가 동창이나 금의위보다 적은데 무슨 수로 그게 가능하겠소? 물론 내 말은 주 상단주를 배제하고 말한 것이오.”
“그건 내가 말할게, 친구.”
왕천유가 역산도를 쳐다보며 말했다.
“말해 봐, 빨리.”
“강호에서 임시로 고수를 영입하려고 했고 이미 섭외도 끝났다. 한데 공교롭게도 주 상단주가 참여하는 바람에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동창이나 금의위는 어림없지만, 우리야 강호 인사의 영업이 빈번하니 가능한 계책이었지…….”
“…….”
“아, 임시로 영입할 고수들을 위한 자금은 공주가 댈 계획이었다고 하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