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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184화 (184/250)

184화 황궁무림대회 (10)

저녁이 되어 주성진과 배한나는 허름한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이 몇 순배 정도 돌자 배한나의 안색은 다소 붉어져 있었다.

평생 술이라곤 몇 차례 마셔 본 바가 없는 그녀인지라 도수가 높고 시큼한 마유주는 꽤 부담되었다.

은근히 취기가 몸 전체로 번져 나가고 있었다.

“소저, 괜찮소? 안색이 많이 붉어졌는데. 인제 그만 마시는 게 어떻소이까?”

주성진의 말에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아니, 괜찮아요. 기왕이면 좋은 술을 마시고 싶었는데 그게 좀 아쉬울 따름이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아요. 분위기도 고즈넉하니 딱 좋은데요. 저기 보이는 석양도 멋있고…….”

“하하, 미안하오. 목이 칼칼해서 술은 마시고 싶은데, 이놈의 동네에는 마땅히 술 마실 때가 여기 밖에 없구려. 북경에 돌아가면 아주 좋은 술로 대접하겠소. 그나저나 오늘 배 소저가 아니었으면 여인들 문제로 골치 아플 뻔했소이다.”

“장성 너머 가까이에 낭인회 지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설마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래도 낭인회 지부에 거금을 쓰신 건 주 상단주님이잖아요.”

바로 얼마 전 산검산장의 무인들을 처리한 주성진은 내부를 뒤져 동창과 연관된 서류를 찾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지나고 남은 여인들을 보자 고민에 빠졌다.

산검산장이야 시체와 함께 흔적도 없이 불태우면 그만이었지만, 가련한 여인들을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중원도 아닌 장성 너머 오지에 그녀들을 남겨 두었다간 어떤 횡액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을 데리고 만리장성의 성문을 통과해 중원으로 건너가기엔 여러 문제가 많았다.

조사를 받다가 동창에 의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때 배한나의 한마디가 주성진의 고민을 말끔히 해소해 준거였다.

주성진은 그때 일을 잠시 떠올리곤 다시 배한나를 바라보았다.

“돈이 문제가 아니오. 낭인회에서 그녀들을 맡아 준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를 일이오.”

낭인회에서 그녀들의 신분을 새로 만들어 중원으로 데려갈 예정이었다.

그리고 살 곳도 마련해 주기로 한 것이다.

물론 이에 들어가는 일체의 비용은 주성진이 대기로 한 것이지만…….

“호호, 낭인회도 활용하면 유용할 때가 많다니까요. 그런데 제가 고작 몇 잔 마신 사이 독한 마유주를 입에 털어 넣다시피 하신 것을 보면 오늘의 일이 꽤 마음이 걸리신 모양이에요.”

“도수 낮은 마유주는 배만 부르지 성에 차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요. 그런데 배 소저는 왜 나를 따라 이걸 마신 거요, 도수 낮은 것도 있는데…….”

그녀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호호. 모르겠어요, 내가 왜 그랬는지. 아마 바늘 가는 데 실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주성진의 마음이 출렁였다.

‘에이 아니야. 그녀가 별다른 뜻으로 한 말은 아니라고…….’

보통 그 말은 사람의 긴밀한 관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부부 관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말이었다.

애써 딴생각을 지운 주성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늘과 같이 일방적인 살인은 왠지 마음이 무겁소이다. 하루속히 장사에만 전념했으면 하는데, 어쩌다 보니 무림에 발을 너무 많이 담근 것 같소이다.”

“뭐, 그게 운명이겠죠. 오늘 일은 너무 염두에 두지 마세요.”

그러면서 그녀가 술은 한잔 더 마셨다.

이미 발개진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소저, 안색이 더 붉어졌소이다. 괜찮소?”

배한나는 손으로 자신의 볼을 매만졌다.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분가루가 떨어질 듯, 하얀 얼굴에서 가벼운 미열이 감지되었다.

역시 본인의 주량에 비해 많이 마셨음이 분명하다.

‘내공으로 주기를 몰아내야 하나… 아니야 좀 더 버텨 보자고. 주성진이 날 잡아먹을 리는 없고. 뭐 그런다면 나야 좋지. 어머 무슨 망측한 생각이야…….’

그녀가 무슨 생각하는지 까마득히 모르는 주성진이 손가락으로 안주를 가리켰다.

“소저, 술은 안주와 먹어야 하는 법이오. 아까부터 보니까 술만 들이켜던데…….”

주성진이 얼른 젓가락으로 안주로 나온 노루 고기를 집어 들었다.

배한나 부끄러워하면서도 얼른 젓가락에 들린 노루 고기를 혀로 쏙 빼먹었다.

“맛있군요. 호호호.”

순간 야릇한 분위기가 흐르자, 주성진이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안되겠다. 이러다 정분이라도 생기면…….’

“그런데 빙룡가에서 나온 진짜 이유가 뭐요? 어린 나이에 독립했다는 게 믿기지 않소이다.”

배한나는 아쉬움을 뒤로하며 배시시 웃었다.

“뭐, 그걸 여태 마음에 담아 두고 계셨나요? 뭐 이제는 제가 부하나 다름없으니 말해드리죠. 하긴 저를 부리려면 저의 과거가 궁금하기 할 거예요. 처지가 바뀌었다면 저도 궁금했을 거니까요.”

“아니, 난 그런 뜻은 아닌데. 음… 모르겠소. 은연중 소저가 말한 것처럼 그런 이유였는지도…….”

“이해해요. 믿음이 필요하니까요. 제가 낭인회에 가입할 때도 많이 물어봤죠. 낭인회에서 고정 급여를 주지 않는데도 말이에요. 하물며 주 상단주님은 계약금에다 고정 급여까지 주시잖아요, 그리 투자를 했는데도 제가 문제가 있다면, 큰 손해를 입게 되는 거니 묻는 게 당연해요.”

주성진은 배한나가 처음 대면했을 때 그 여인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사람이 너무 달라지니 오히려 내가 적응이 안 되는군. 아주 의젓하네, 그려.’

“하하, 솔직히 그대의 말이 옳소. 다만 내가 상인이 아니라 같은 무인으로 그대를 바라보다 보니 물어보는 게 조심스러운 것 같소. 왜 무인들은 개인사를 밝히는 걸 좋아하지 않지 않소이까. 자칫 무공의 연원을 캐 보려는 것으로 오해하니까…….”

“전 괜찮아요. 한데 저의 개인사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아요. 제가 일찍 빙룡가를 떠난 건 아버지가 새 장가를 갔기 때문이에요. 그때 저를 지도하던 사부님들이 저에게 짐을 꾸려 빨리 떠나라고 재촉하셨어요.”

“…….”

“새어머니가 될 여인이 집념과 야망으로 똘똘 뭉친 아주 무서운 여인이라 하시면서… 아마 그대로 집안에 남아 있으면 얼굴도 모르는 작자에게 강제로 시집을 갔을지도 모르겠네요.”

주성진은 지금의  빙룡가가 궁금해졌다.

“그럼, 지금의 빙룡가는……?”

“사부님들의 말처럼 빙룡가는 그녀가 완전히 장악했죠. 가주인 아버지는 허수아비일 뿐. 새어머니의 치마폭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살고 있어요.”

주성지는 그녀의 신분이 범상치 않음을 알고 다소 놀랐다.

“음, 가주님의 따님이었구려. 내 생각에 그대의 아버님이 그대를 잊었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소이다, 아마 알게 모르게 그대를 도왔는지도 모르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랬나… 아, 아닐 거야.’

“뭐, 모르겠어요. 어쨌든 과거는 과거고 지금의 생활도 나쁘진 않아요. 처음에 적응한다고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아까 언뜻 보니 빙공은 사용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맞소이까?”

그녀는 그제서야 주성진이 자신과 독심호리의 싸움을 지켜봤다는 걸 알았다.

‘내가 위험에 처했다면 도와주었겠구나.’

그녀가 술 한 모금을 마시고는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네. 목숨이 위태로울 때 아니면 사용하지 않으려고요.”

그러면서 그녀도 주성진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그에 관해 아는 건 그저 소문뿐이었다.

그래도 여인의 감이라 할지, 주성진이 필요 이상으로 열심히 행동하는 것 같았다.

대부분 사람이 꺼리는 황궁의 일에도 적극 개입하는 걸 보니…….

“저, 혹시 복수할 대상이 있는가요?”

주성진의 눈에 강한 기운이 담겼다.

여태까지 그를 무공이 높은 상인으로 대하고 있던 배한나의 얼굴에 움찔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뭐야. 정말 원수가 있는 모양인데. 사람이 확 달라졌어!’

그녀가 질문한 건 강호상에 은원 관계가 흔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소이다. 하지만 곧 복수할 날이 올 것 같소. 머지않아…….”

“아, 그렇군요. 전 모르겠어요. 솔직히 새어머니가 밉긴 하지만 복수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오히려 그녀 덕에 빙룡가의 세가 더 커졌다고 하더라고요.”

주성진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오늘은 왠지 고주망태가 될 정도로 취해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허허, 참 애매하겠소이다. 그건 그렇고 내 얘기를 좀 하겠소이다. 나에 대해 많이 궁금할 것 같아서…….”

“많이 궁금하죠. 그 나이에 높은 무공이나 상단주가 된 것 등이 정상적으로 이해가 안 되니까요.”

“하하, 알았소.”

주성진은 뺄 건 빼고 자신의 과거를 간추려 말했다.

“…이상이오. 더 자세한 건 그때그때 물어보시오. 물론 민감한 사항은 내가 답을 하지 않을 수도 있소이다.”

배한나는 자신도 모르게 주성진의 술잔에 마유주를 꽐꽐 넘칠 정도로 따라 줬다.

“고맙소이다.”

“아니에요. 저 황궁 무림대회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제가 실은 싸움 구경하기를 좋아한답니다. 비무를 보면서 깨우치는 것도 있고요.”

“싸움 구경을 자주 했소이까?”

그녀가 고개를 끄떡였다.

“낭인회 본부에 있으면 흔한 일이 비무에요. 사람들이 구경하면서 자기들끼리 내기를 하기도 하지요.”

“비무를 자주 하는 이유가 뭐요?”

“낭인회 회주가 장려하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그가 비무를 보고 난 뒤, 꼭 감상 소감을 말해 줘요. 누군가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지요.”

주성지는 낭인회 회주가 강자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는 꼭 한번 만나고 싶은 인물이야.’

“소저, 낭인회 회주의 무공이 대단하다고 들었소만 도대체 얼마나 강한 분이오?”

“글쎄요… 딱 한 번 제가 무위를 견식한 적이 있었는데, 제 동체 시력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죠. 거기에 검기도 아닌 검강을 힘들이지 않고 뽑아 올리더라고요. 아마 검강, 그 이상의 무공도 펼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구려, 그의 출신을 혹시 아시오?”

배한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극소수 그분의 측근만이 안다고 하는데, 혹 누구 말로는 천상천 출신이란 말도 하던데, 확실한 건 아니에요.”

주성진이 멀뚱거리자 그녀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 이분은 무림사에 좀 약하다고 했지.’

사실 이 이야기를 주성진이 들으면 섭섭해 할 거였다.

나름 부족한 무림사 공부를 그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었다.

하나 아쉽게도 천상천은 주성진이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음, 천상천은요, 무림에서 은퇴한 사람들이 모여 조직한 단체래요. 처음엔 은퇴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가볍게 놀고 즐기는 친목 단체였는데, 그게 발전해서 천상천이 된 거래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금분세수를 번복한 것이오?”

“그게 좀 애매해요. 군림하되 군림하지 않는다 뭐, 그런다네요. 저도 잘 이해가 되진 않고, 천상천이 실제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거기서 내보낸 인물이 낭인회주인데 그는 원래 천상천에서 요리사였다고 하더군요. 믿거나 말거나…….”

주성진은 새삼 무림이 깊고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알아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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